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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소원
아침에 좀 늦게 일어난 고 운규는 어제 저녁에 친구 모임에 가서 술을 한잔 나누다가 오 정규와 무슨 약속을 한 생각이 문득 났다.
그런데 그 약속이 무엇인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를 않는 것이어서 운규는 머리를 흔들어 보았다.
때때로 어떤 생각이 얼른 떠오르지 않을 때에 머리를 흔들게 되면 잊었던 생각도 금방 떠오르던 기억이 있기에 그렇게 했지만 간밤에 먹은 술이 아직도 깨지를 않았다는 말인지 도통 그 약속한 일이 떠오르지를 않는다.
그는 창문을 활짝 열고 맑은 공기를 가슴가득 들이마시니 속이다 후련하고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는 잠시 후에 수돗물을 확 틀고는 대접 가득히 냉수를 받아서 들이키자 그제야 그와의 약속한 일이 떠올랐다.
‘ 그러면 그렇지 이 좋은 머리가 어디로 가지는 않지.’
혼자 속으로 쾌재를 올리다가 ‘그게 아니지’ 하면서 방으로 들어섰다.
그와의 약속은 오늘 자기 집 근처에 살고 있는 친구가 운영하는 중소기업개관식을 하는데 사람을 많이 참석시키기 위해서 초청을 하였으니 9시에 만나서 함께 가자고 하여 대답을 하였었다.
그리고 시간을 보니 1시간 밖에 남지를 않았다.
그는 급하게 와이셔츠를 입다 보니 소매가 뒤집혀서 제대로 팔이 꿰어지지를 않는 것을 억지로 입은 다음에 거울을 보다가 세수를 하지 않은 생각이 나서 급하게 욕실로 들어가다가 기둥을 들여 박는 바람에 금방 이마에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금방 무슨 방도를 취하지 않으면 부어오를 것 같아서 계란 노른자위를 바르면 낫는다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아서 계란을 꺼내려고 냉장고 문을 급하게 열었다.
그런데 아뿔싸! 어제 저녁에 아욱국을 끓여 먹은 후에 나머지를 뚝배기 그릇에 담아서 앞턱에다가 넣었던 것이 아래로 미끄러지면서 국이 쏟아지는 바람에 바닥이 국 벌창이 되고 말았다. 계란은 둘째 치고 쏟아진 국 국물부터 걸레로 닦고 보니 시간은 거의 반시간이 채 남지를 않았다. 언제 계란을 깨서 노른자위를 상처에다가 바를 사이가 없어서 할 수없이 얼굴만 문대고 밖으로 나오다가 생각을 하니 이런 때에 아내가 있었다면 이런 일은 없을 텐데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사실 아내가 집을 비운 것은 자그마한 일로 해서 다른 때 같으면 허허 웃어넘길 일을 가지고 그날은 화가 단단히 나서 쌩하고 집을 나갔다.
“그놈의 성질머리 때문에 내가 못살아 으이구.“
아내는 그날 새벽에 일어나서 몸이 찌뿌듯해서 밥도 하기 싫다고 하면서도 1년 열두 달 삼백예순날 어느 하루 몸이 아파도 남편에게 찬밥을 먹이지 않으려 새 밥을 해주었는데 그런 공은 생각지 않고 고추장을 상에 놓지 않았다는 소리를 한 것이 화를 내게 한 원인이었다.
아내는 그날 그렇게 화를 내고 나가긴 하였지만 곧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는데 집을 나간지 일주일이 되어도 감감무소식이다.
사실 아내는 지금까지 남편의 일이라면 전적으로 믿어 주었고 남편이 무슨 일을 할려고 하면 적극적으로 밀어주던 사람이다.
그런데 문제는 아내가 집을 나가면서 아무 말도 하지를 않아서 지금 아내가 어디로 갔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형편이다.
고 운규는 처음에는 친정으로 갔으려니 하고 태평치고 있었으니 그 전에도 친정엘 가게 되면 보름이나 한 달가량을 있다가 오곤 하였기 때문이다.
그때 장모님이 하시는 일은 미장원으로 그 분은 혼자손이면서도 다른 고용원을 두지 않기 때문에 외동딸인 아내가 가서 종종 일을 보아드리곤 하였다.
그런데 며칠 후에 간접적으로 장모님에게 전화를 드리자 일상적인 말씀만 하시고 지금 바쁘니 나중에 전화를 하라는 것으로 보아 아내가 간 곳이 친정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렇다면 어디로 갔단 말인가. 고 운규는 겁이 덜컹 나면서 아내에게 싫은 소리를 한 것을 후회하였다.
고 운규는 그런 생각을 하다가 친구의 행사에 갈 것이 아니라 아내부터 찾아 나서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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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운규가 만난 것은 고등학교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운규의 아버지는 시골 읍내에서 좀 떨어진 농촌에서 농사를 지으시면서 작은 잡화상을 하시고 어머니는 화장품 방문판매를 하시느라 만날 아침에 나가시면 밤중에나 집으로 돌아오셨다.
외아들인 운규는 학교에서 돌아오게 되면 어머니가 돌아오실 시간에 맞추어 신작로에 나가서 기다리곤 하였는데 그날도 어머니를 맞으려 나가서 기다리고 있었지만 버스 몇 대가 지나가도 어머니는 돌아오시지를 않아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큰 소리로 운규를 부르시는 소리가 들리었다.
운규는 반사적으로 왜 그러시냐면서 큰 소리로 대답을 하고 아버지에게로 뛰어가자 아버지는 처음에는 미처 말씀을 하시지를 못하시었다.
운규는 직감적으로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철렁 내리앉았다.
“ 아버지 왜 그러셔요.”
그러자 아버지는 어서 병원으로 가자는 말씀을 겨우 하셨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병원의 응급실로 들어서니 한쪽 침대 옆에 의사들이 모여 있어 그쪽으로 다가서니 의사들은 막 응급처치를 하고 돌아서는데 간호사의 말을 들어보니 어머니가 차에 받혀서 쓰러지신 것을 모시고 왔을 때만 해도 의식이 없었는데 다행이도 머리에 타박상이 심할 뿐 뇌에는 이상이 없다는 말을 해 주었다.
어머니는 바로 일반병실로 옮겨지셨는데 그 시간이 벌써 자정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 엄마 지금 어떠셔요.”
붕대를 머리에 칭칭 감으신 엄마가 아들의 목소리를 들으셨는지 눈을 겨우 뜨셨을 때 눈에서는 눈물이 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 여보 좀 어때요.”
운규의 아버지가 손을 만지면서 말을 하였지만 아무 대답도 하시를 않았다.
그러기 며칠 전 엄마는 밤이 늦어서야 돌아오셨는데 그날은 그 시간까지 아버지가 계시지를 않았으니 그날이 바로 아버지 친구들 간에 계를 태워주는 날로 저녁 후에는 자리를 옮겨서술 한 잔 씩을 나누는 날이었다.
아버지는 기분이 좋아서 집으로 돌아오셨는데 어머니가 벌써 와계시자 아버지는 깜짝 놀라시었다.
“ 당신 오늘은 웬일로 일찍 돌아오셨네. 나는 술 한 잔을 친구들과 나누고 왔는데 당신은 아직 저녁도 자시지를 않았소. 미안해요. 그래서 내가 만날 고만두라고 해도 고집을 피우고 다니고 있으니 …”
그러자 몸이 고단하신 운규의 어머니는 짜증을 내셨다.
“아이 학비를 대려고 다니지 내가 한가하게 놀러 다녔단 말이에요.”
엄마가 그 피곤하신 중에도 가시 돋친 말씀을 하시자 아버지는 더 이상 아무 말씀도 하시지를 않으셨다.
사실 집에서 아버지의 목소리는 어머니에 비해서 낮을 수밖에 없었으니 아버지는 집에서 농사를 지으시긴 하지만 돈이 나올 데라고는 가을에 가서야 겨우 참깨 들깨를 팔아야 돈이 되지 그 외의 감자나 고구마 농사에서 나오는 수입은 영농자금 빌린 빚을 갚아나가는데 겨우 보탬이 될 정도였다.
돈 한 푼 만져보지 못하는 농촌에서 그래도 어머니가 힘이 들어도 화장품을 판매를 하시는 돈으로 아들의 학비를 댈 수가 있었기에 아버지는 돈 이야기만 나오면 어머니에게 한 말씀도 하시지를 못하셨다.
그렇지만 저녁마다 어머니가 돌아오셔서 다리가 아프네 허리가 아프네 하시게 되니 아버지는 나중일이야 어찌 되었던지 간에 그래서 장사를 고마두라는 말씀을 하시다가 부부싸움으로 번질 때가 많았다.
“ 아들 대학 졸업할 때까지는 장사를 할 테니 더 이상 아무 소리도 하지 말아요.”
어머니가 그렇게 나오시니 아버지는 아무 소리도 하시지를 않다가도 다시 무슨 모임이라도 있어 술이라도 한잔 자시게 되면 그 소리는 다시 재연되었다.
“ 여보 오늘도 힘이 들지요. 그러니까 장사를 고만두란 말이여. 아들 학비는 논을 팔거나 밭을 팔면 될 수가 있는데 왜 그리 고생을 하느냐구. 이 냄편 속상하게 말이야.”
“ 오늘도 술 한 잔 하셨구랴. 논을 팔구 밭을 판다구요. 그러면 며칠간은 기분이 좋을지 모르지만 한겨울 쌀 떨어지면 그때는 당신이 장리쌀이라도 구해 오겠느냐구요.”
“장리쌀 그거야 구해오기 쉽지. 이 고 을래 하면 이 마을에서는 그래도 신용을 잃지는 않아서 누구든지 오케 할거요.”
“운규 아버지. 내가 언제 말을 했지만 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이 누구냐 하니 남에게 빚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이라고 하였어요. 나는 빚을 지기 싫은 사람이기에 나이가 이렇게 되어도 그 무거운 화장품을 메고 다니는 거예요.”
“ 엄마 몸도 아프신데 고만 좀 하셔요.”
“ 네 아버지가 자꾸 엉뚱한 소리를 하시지 않니.”
“ 아버지가 모처럼 술을 한잔 잡수셨으니까 한 말씀하신 것뿐이에요. 평상시에 아버지를 두고 동네 사람들이 샌님이라 하신다면 서요 .”
“ 샌님이라고 하여서 나도 한 때는 꽤 좋아하였는데 남자가 너무 쫀쫀하면 못쓴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남자는 좀 활달하고 어떤 때는 여자의 기분도 맞추어 줄 줄을 알아야 하는데 너의 아버지는 그런데 에는 20점도 받지 못할 것이야.”
“ 그런 아버지를 닮은 나도 어머니에게는 그 점수이상은 받지 못하겠네요.”
“ 허허. 너는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거냐. 우리 아들은 어디를 내 놓아도 일등이고 백점이지. 엄마는 너 바람에 신이 나서 다닌단다.”
“ 엄마. 정말 우리 엄마 멋지셔요. 하하.”
“ 그래. 너야말로 멋진 아들이지.”
엄마는 일주일 후에 겨우 퇴원을 하셨는데 보행이 불편하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그러면서도 보름동안만 병원 치료를 받게 되면 마음대로 움직여도 좋다고 의사선생님이 하셨다면서 다시 장사를 다니실 것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의사 말과는 달리 어머니의 건강이 좀처럼 회복이 되지를 않아서 다시 의사와 상담을 하니 워낙은 약한 체질은 아니지만 날마다 먼 길을 다니시느라 가력이 쇠진한데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후유증으로 인해 1년간은 댁에서 요양을 해야 회복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의사의 권고가 이렇게 나오자 어머니는 더는 장사 다니시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어머니는 평상시에도 새벽 일찍 밥을 해서 상을 차려놓으신 후에야 집을 나서셨으니 남편과 자식을 위해서 끔찍하게도 사랑을 다하신 분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몸이 말을 듣지 않게 되자 하루는 어머니가 운규를 조용히 부르시었다.
“엄마가 오늘은 너에게 단단히 한 가지를 부탁을 하려고 한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지금까지는 엄마가 너를 위해서 정성을 다 하였는데 사고 이후에는 내가 그렇게 하질 못하게 되어 이 말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네가 어서 장가를 들어야겠다는 말이다. 아버지와는 미리 말씀을 나누었다마는 어미는 네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만 장사를 하고 그 후에나 고마두려고 하였는데 이제는 그렇게 할 수 없게 되니 밥을 해먹는 것도 버겁다. 그래서 너를 장가부터 보내려고 하는데 너의 생각은 어떤지 말을 해 보거라.”
어머니의 간절한 말씀을 들은 아들은 우선은 어머니의 심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어머니의 말씀을 거역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는 곰곰이 생각 끝에 말씀을 드렸다.
“ 어머니 말씀대로 가급적 일찍 장가를 들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아직은 색시가 없으니 어머니가 며느리 감을 물색을 해보시면 안 될까요.”
사실 어머니는 장사를 다니시면서 그냥 다니신 것이 아니고 어느 동네에 색시가 잘 자란다는 소리를 듣게 되면 그 동네를 누비고 다니셨다.
어쩌면 장사를 다니면서 며느리 하나만은 마음에 맞는 아이를 얻으려고 그렇게 애를 쓰시면서 다니셨다고 보아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옛날과 비교하여 세상이 얼마나 많이 변하였는지 어머니의 마음에 드는 색시를 아무리 눈 여겨 보아도 찾지를 못하게 되자 어머니는 할 수없이 아들을 불러 앉히신 것이다.
“ 얘야. 엄마가 아무리 너의 색시를 찾아보았으나 내 눈에 띄지도 않았지만 간 데마다 네 얘기를 했지만 내 말을 들으려는 사람은 없었으니 이제는 할 수없이 네 색시는 네가 골라야 하겠다. 엄마 마음으로는 아직도 젊은 사람 못지않게 펄펄 날아다닐 것 같은데 몸이 따라주지를 않으니 이제 엄마도 늙었는가 보다. 그러고 생각을 하니 이러다가는 며느리에게 밥 한술도 얻어먹지 못하고 죽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니 맥이 다 풀리는구나.”
어머니의 말씀을 들은 운규는 어머니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오셨다는 생각을 하니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려 드리지 못한 것이 너무도 가슴을 뭉클하게 하였다.
“ 엄마. 죄송해요. 엄마가 그토록 이아들 하나 때문에 고생을 하셨으니 이제는 엄마의 의도에 어긋나지 않도록 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어디 엄마 모르게 색시라도 하나 숨겨 놓았다는 거냐."
" 우리 엄마라서 그런지 단수가 높으시네요. 하하. “
“내가 너의 아버지와 결혼을 하였다마는 네 아버지도 결혼 전에는 색시들이 주르르 따라다녔다는 소리를 나중에서야 들었다. 하기야 부전자전이라구 제 아빠를 닮았다면 엄마 모르게 너에게도 따르는 색시들이 몇 명쯤은 있지 않니 ”
“ 엄마도 참 .”
“ 네 말을 들으니 그럴 만 한 모양이구나. 호호 .”
“ 엄마. 제가 누구의 아들입니까. 엄마를 기쁘게 해드릴 색시를 1년 안으로 엄마 앞에 대령할 테니 그리 아셔요. “
“ 그 말을 믿어도 된다구. 정말.”
어머니가 말씀을 하셨지만 사실 운규에게는 고등학생으로 올라오면서 좋아하는 여학생들이 몇 명 있었다.
운규가 그 여학생들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보이걸스카우트대회를 강원도 고성에 있는 스카우트야영장에서 야영을 할 때에 처음으로 만나 알게 되었다.
학교 별로 몇 명씩 선발이 된 대원들은 다른 학교대원들과 혼성으로 한 팀을 8명으로 정하게 되었을 때에 운규는 여자 3명과 함께 한조가 되었다.
한 텐트에 한 조씩 들어가게 되었으나 남녀 혼성팀은 별도의 텐트를 한 개씩 더 주어 남녀가 각각 쓰게 하였다.
첫날은 조별로 텐트를 치고 야영에 따른 각종 행사는 전 대원이 함께 교육과 실습을 받았다.
2박3일간의 일정으로 시작된 스카우트대원들의 활동은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는 각각 대원별로 프로그램에 의해서 진행이 되다 보니 자유분방하게 생활하던 대원들은 오후에는 맥을 추지 못하였다.
둘 째 날의 일정은 고성의 화진포 해수욕장으로 나가서 활동을 하는 날이다.
화진포는 바다와 접해 있는 호수로서 면적은 72만평이고 둘레의 길이는 16km에 이르는 동해안 최대의 자역석호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더구나 호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울창한 송림은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어 자연풍광이 아름답고 바다의 기암괴석은 태고의 신비스런 자태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곳에 와서 바다를 배경으로 놀이를 하고 조개를 주우면서 모래사장을 누비고 다니게 되자 모두는 아름다운 주위환경에 매료되어 넋을 잃었다.
그날 운규의 조에 속한 남녀 학생은 황 애지 손 순자 윤 호자 이렇게 네 학생이 한 조가 되어 활동을 하게 되었고 서로 주소와 전화번호를 나누어 가졌는데 그 중에서 고 운규의 마음에 쏙 드는 학생은 손 순자라는 대원이었다.
얼굴이 갸름하고 키는 보통인데다가 말을 또박또박 끊어하는 그는 말을 할때마다 살짝살짝 미소를 띄우기도 하였는데 그는 장차 미국으로 유학을 갈 것이라고 하였다.
어떻게 미국으로 갈 생각을 하였느냐고 묻자 그는 서슴없이 영문과를 진학하여 미국의 변호사를 꿈꾼다는 것이다.
운규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자신은 아직 장차 무슨 일을 할지도 결정을 하지도 않았는데 그런 포부를 가진 그가 부럽기까지 하였다.
손 순자와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손 순자도 운규가 하는 말을 가로질러서 오빠의 앞으로의 꿈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너무도 갑작스런 질문에 고 운규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순자가 한 말을 생각하였다.
“ 사실은 나의 희망도 미국으로 유학을 가려고 하는데 영어가 딸려서 어찌할지 몰라.”
그러자 손 순자는 얼굴에 환하게 백합 꽃 같이 활짜 웃으면서 엉뚱한 제안을 하였다.
“ 미국에 유학을 갈 때에 혼자 가기보다는 친구가 있었으면 하였는데 오빠와 함께 가면 좋겠네요. 그렇게 해요. 오빠.”
고 운규는 순 순자가 그런 제안을 할 줄을 몰랐는데 같이 가자고 하니 가슴이 뛰기 까지 하였다.
그런데 그 때에 바닷가 저쪽에서 군인들이 훈련을 하는지 구령소리가 들리었는데 그 순간 누가 저쪽에서 손 순자를 가만히 부르는 소리가 들리었다.
그러자 그는 고 운규를 보면서 금방 갔다가 오겠다는 뜻인지 눈을 찡긋하고 가자 고 운규도따라서 일어서다가 도로 앉았으니 옆에는 두 여학생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맞은쪽에 앉아 있으면서 고 운규를 째려보던 황 애지가 고 운규의 손을 덥석 잡으면서 소곤거리자 “어마” 하면서 놀라는 아이는 방금 전까지 운규의 옆에 있던 윤 호자였다. 그렇지만 황 애지는 누가 보거나 말거나 고 운규에게 바짝 다가서면서 들릴락말락하는 목소리로 말을 하였다.
“오빠. 나는 아까부터 오빠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어쩌면 걔한테만 정신이 팔려서 나에게는 눈길도 주지를 않는대요.”
그러고 생각을 하니 손 순자에게 푹 빠져 있었다는 말이 맞는 말이었다.
“나는 원래 다른 사람이 이야기를 하게 되면 거기에 몰두하는 습관이 있다 보니 그렇게 된가 봐 미안해.”
“ 오빠 정말이래요. 그럼 잘 되었네요.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를 잘 들으세요. 나 솔직한 말로 어제 처음으로 입소하는 날 오빠를 먼발치에서 보았을 때에 어떤 기분이었는지 알아요.”
“ 내가 어떻게 한 번도 만나지 않은 사람의 마음속을 알겠어.”
“ 오빠. 그런 말이 있대요. 그것을 인연이라고 한다던가. 뭐. 아무튼 자기가 연모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텔레파시라는 게 통한다고 하던데 오빠는 내가 그런 신호를 잔뜩 보냈을 때에 어떤 자극도 오지 않던가요.”
“ 허허. 난 그런 데에 둔해서 그런지 아무 신호도 자극도 받지를 못했는데.”
그러자 황 애지는 순간 주위를 살피는가 싶더니 준규의 가슴속에다가 손을 드미는 바람에 준규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 오빠. 이게 텔레파시의 첫 신호인줄이나 아세요.”
고 운규는 황 애지의 행동에 대해서 다소 황당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에 대해서 먼저와는 다르게 약간의 호기심이 생기었다.
“ 황 돼지라고 하였나. 키가 꽤 작은 편이네.”
고 운규는 무심코 황 애지를 부른다는 게 고만 실수로 돼지라고 불렀다.
“ 오빠. 지금 뭐라고 하였어요. 내 이름을 황 돼지라구요.”
그러고 생각을 하니 고 운규는 무슨 말을 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 내가 뭐라고 하였지 나도 모르겠네.”
“ 맙소사. 하느님. 오빠. 나 황 애지.”
고 운규가 보았을 때에 황 애지는 키도 작지만 몸집도 작은 편이고 목소리 또한 가는 편인데다가 안아보면 품안에 바짝 안길 것 만 같았다. 어찌 보면 그를 보는 순간 희한하지만 귀엽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는 동안 호르라기 소리가 들리면서 모두에게 1시간동안 자유 시간을 가진 다음에 오전에 타고 온 버스에 오르라고 하였다.
자유 시간 이후에 버스에 오른 대원들이 화진포를 떠나서 야영장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저녁식사를 하게 되어 있어 운규는 얼른 식당 앞에 가서 줄을 섰는데 황 애지가 어느 결에 고 운규 뒤에 서고 그 바로 뒤에는 윤 호자가 서면서 운규에게 눈을 꽂았지만 운규는 황 애지의 귓속말만 엿듣고 있었다.
“ 오빠. 식사 후에 좀 있다가 분과 별 발표와 장기자랑이 끝나게 되면 점호가 있을거예요. 점호 후에 모두가 취침으로 들어가게 되면 눈치를 보아 살짝 서쪽에 있는 소나무 숲에서 밤 12시에 만나요.”
고 운규는 아까 손 순자와 말을 나누다가 헤어졌기에 야영장에 돌아오게 되면 조용하게 그를 만나고 싶어서 손 순자를 두리번거리면서 찾는 중인데 황 애지가 뛰어들었으니 고 운규는 어찌 해야 좋을지 몰랐다. 고 운규는 순간 무슨 대답을 할지 몰라서 뜸을 드리고 있는데 황 애지는 “그럼 있다가 만나요." 하고는 밥을 타가지고 자기 구릅이 있는 곳을 향하여 갔다.
고 운규는 황 애지가 간 다음에 생각을 하니 내일 야영장을 떠나게 되면 손 순자를 다시 만나지도 못할 것 같아 조바심이 나기 시작하였는데 그때 윤 호자가 다가서면서 “오빠” 하고 불렀지만 그 소리가 너무 작아서 그런지 운규는 듣지를 못하고 다른 남자 친구들 속으로 가는 바람에 그냥 돌아선 호자의 얼굴은 홍당무가 되고 있었다.
고 운규는 남자대원들 틈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손 순자가 어디 있는지를 고개를 돌리며 찾았지만 순자는 전혀 보이지를 않았다.
그런데 저녁 후에 본부에서 들려온 말은 손 순자의 집에서 연락이 오기를 엄마가 갑자기 입원을 하게 되어 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고 하였다.
고 운규는 그 소리를 듣고 나서 얼마나 마음이 상하는지 점호가 끝나고 자리에 누웠으나 손 순자의 얼굴만이 어른거려서 잠이 오지를 않았다.
게다가 밤 12시에 소나무 숲으로 나오라고 하였으니 안 나갈 수도 없어서 혹시 그 안에
잠이 올까 봐 찬물을 한 모금 씩 마시었다.
마침내 밤 12시가 되자 고 운규는 살며시 자리에서 일어나자 옆에 친구가 이쪽으로 돌아누워서 얼른 발을 옮겨 텐트 밖으로 나가니 사방은 쥐 죽은 듯이 고요하였다.
고 운규는 황 애지가 만나자고 한 소나무 숲을 향해서 빠른 걸음으로 가다 보니 운규의 텐트는 곧 시야에서 멀어졌다.
넓은 야영장에서 멀리 떨어진 대로를 지나는 차량들의 소리가 기적소리처럼 들리고 있었다.
소나무 숲에 이르자 어느 결에 와 있었는지 황 애지가 다가서더니 고 운규의 목을 붙잡고는 바로 입을 맞추어 고 운규는 순간 얼굴을 돌리자 황 애지는 거듭 목에 매달리며 그대로 쓸어졌는데 바닥에는 커다란 수건이 깔려 있었다.
“ 오빠."
그런데 고 운규가 놀란 것은 황 애지가 어느 결에 치마를 내리는데 아랫도리가 희미하게 강물에 산 그림자 비추듯이 보이는 가 하면 신기한 것은 거기에서 달빛 같은 빛이 흐르고 있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다니 ‘이것은 내가 지금 꿈을 꾸는 것이지 생시가 아닐거야.’ 운규는 눈을 비비고 다시 보고 넓적다리를 꼬집어보았는데 얼굴이 찡그려질 정도로 아픈 것으로 보아 꿈은 아닌데 그때 그에게는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신호가 온몸을 감싸도는가 하면 그 빛이 나는 곳으로 돌진하고 싶어져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한 여름 날씨가 몹시 더울 때에 언덕바지에서 강물로 몸을 던지듯이 애지를 향하여 엎어지고 말았다.
“ 오빠. 조심해. ”
순간 애지는 어느 결에 배구쎈터가 강력하게 날아오는 공을 가볍게 받아넘기듯이 운규를 살짝 받아 안았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운규는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환상의 순간을 맛보았으니 저녁노을처럼 하늘의 오색구름이 두둥실 떠가는 것 같더니 어느 결에 그 구름들은 순식간에 살아지고 그의 등에는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고 운규는 사실 중학교 입학을 한 뒤부터 여학생들을 먼발치에서 보거나 혹시 그들의 옆을 지나가게 되면 그들의 대화가 어떤 관점에서 이루어지고 더구나 그들도 남학생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지고 있을까 하는데 대해서 궁금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워낙 내성적인 인데다가 중학교 저학년 때만 해도 여학생을 만나게 되면 말 한마디도 제대로 하지를 못하였는데 스카우트 활동을 시작하면서 부터 차츰 대화의 실마리가 풀어질 정도가 되어가고 있는 중에 설악산의 울산바위가 바라다 보이는 보이걸 스카우트야영장에 와서 여자 친구들과 한 조가 되는 순간 맨 처음에 손 순자에게 홀딱 마음을 빼앗겼다.
그로 인해 하루 종일을 흥분으로 있던 중에 황 애지의 느닷없는 제의를 따르다 보니 생전 처음으로 길을 가다가 황금보물을 발견한 듯 황홀한 여학생을 그림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속속들이 탐닉을 하게 되었으니 이야말로 고 운규에게 여자 복이 터진 것인가.
그야말로 꿩 대신 닭이라는 말도 있지만 뜻밖에도 황 애지와 갑작스럽게 몸을 부딪칠 줄은 꿈에도 생각지를 못하였다.
아니 총각의 단단한 뿔을 바위가 아니라 보드라운 보료 위에서 해수욕장에서 수영을 하듯이 마음껏 앞으로 헤엄을 치며 나갈 수가 있었으니 아! 그 순간이야말로 천지가 무너져 내리는 줄 알았다.
어릴 때 구슬치기를 할 때에 유난히 색깔이 빨갛고 예쁜 구슬이 있으면 탐을 낸 적이 있긴 하지만 전혀 탐을 내지도 않았던 구슬이 굴러 들어왔으니 고 운규는 반사적으로 그 보물을 거절하지 못 하였다.
“ 오빠 가만히 있으면 어떻게 해. 남자는 능동적이란 소리도 못 들었어요.”
황 애지의 선동에 넘어간 고 운규는 그의 리듬에 맞추어 순간적으로 큰 파도를 일으키며 다가오는 물결 속으로 빠져들다가 미끄러지고 말았다.
“ 난 오빠를 처음 만나던 날 저 사람을 내 사람으로 만들어야지 하는 결심을 하였어. 오빠가 그렇게 좋아 보일 수가 없고 너무 좋았어. 왜 그런지 나도 이유를 모르겠어. 어쩌면 오빠는 여자를 끌어 잡아 다니는 힘을 가지고 있는가 봐. 여기에…”
황 애지는 그리고는 운규의 꽁무니에 손을 넣더니 능숙하게 고 운규를 끈으로 동여매듯이 꼼짝을 하지 못하게 하고는 가만히 속삭였다.
“ 오빠 내일을 위해서 우리 고만 들어가자.”
황 애지는 고 운규의 허리춤을 잡아 일으키면서 다시 휘감았다.
“ 오빠. 내일아침 이곳을 떠나게 되면 언제 만나지. 난 오빠를 죽어도 놓지 않을 거야. 알았지.”
황 애지는 아무 미련도 없듯이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빠른 걸음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고성 보이 걸 스카우트대회가 끝나고 얼마동안 고 운규는 한동안 손 순자를 만나고자 하였으나 연락이 제대로 닿지를 않았는데 그 대신 황 애지가 뻔질나게 만나자는 연락을 하였다.
고 운규는 그때 아버지가 갑자기 병이 나신 관계로 집으로 내려가서 아버지를 간호해야 했으니 어머니가 간호를 해드릴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며칠 뒤 해가 막 지려는데 누가 대문 밖에서 주인을 찾고 있어 문을 열고 나갔다가 고 운규는 뒤로 나가자빠질 뻔 하였으니 거기에는 그가 그리던 손 순자가 아니고 황 애지가 와서 있었기 때문이다.
“오빠.”
황 애지는 누가 보거나 말거나 고 운규에게 바짝 매달리는가 싶더니 고성의 숲속에서 하듯이 입을 맞추었다.
고 운규는 누가 볼 것 같아서 그를 밀어내려 하였으나 그는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었다
“ 오빠. 내가 시골로 내려온 것을 보고 많이 놀랐지.”
고 운규는 황 애지를 어떻걸까 하다가 어차피 어른들에게 알려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 방으로 들어가자구.”
안방에는 아버지가 누워계시고 어머니는 잠시 밖으로 나가시고 안계셨다.
“ 아버지. 앞서 알던 친구가 지금 찾아 왔습니다.”
“ 친구라구. 어서 와. 내가 몸이 아파서 못 일어나 .”
“ 많이 아프셔요. 아버님.”
고 운규는 황 애지가 서슴치 않고 아버님이라고 호칭을 하자 묘한 기분에 휩싸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 어머니가 방문을 열고 들어오시다가 낯선 아가씨가 방안에 있는 것을 보시고는
발걸음을 멈칫하셨다.
문득 언젠가 아들이 어머니 앞에서 하던 소리가 들리는 듯 하였다.
「“ 엄마. 제가 누구의 아들입니까.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릴 색시를 1년 안으로 어머니 앞에 대령할 테니 그리 아셔요. “
“ 그 말을 믿어도 된다구. 정말.” 」
어머니는 대뜸 아가씨를 보자마자 운규를 향하여 말씀을 하셨다.
" 네가 언젠가 말하던 그 색시냐. “
운규는 어머니, 물음에 닁큼 대답을 하였다.
“ 어머니 제가 누구 아들입니까.”
이날 운규는 나중에야 어찌 되든지 간에 제 발로 찾아온 황 애지를 아버지 어머니께 단단히 소개를 올렸다.
“ 이 아가씨가 장차 어머니 아버지를 진정으로 잘 모실 며느리감 입니다. 많이 사랑해주셔요.”
어머니는 아들의 말을 들으면서 생각을 하신다.
“ 이 녀석이 학교를 잘 다니라고 유학을 시켰더니 색시 낚을 공부만 하였나. 어찌 저렇게 예쁜 아이를 데려왔지. 희한하네. 기특하기도 하구. 히히.”
황 애지는 다음날 한나절이 되기 전에 떠나가면서 인사를 드렸다.
“ .아버님 어머님 저 올라가겠습니다.”
운규는 버스정거장까지 바래다주기로 하면서 어찌되었든지 간에 어머니의 소원을 일찍 풀어드렸다는 의미에서 마음이 흡족하였다.
‘ 뒤엉박이 덩굴채로 구른다더니 나 참 .’
황 애지는 차에 오르면서 다음 토요일에 다시 오겠다 하고는 손을 흔들었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항상 마가 따른다는 말이 있고 호사다마라는 말이 있듯이 그렇게도 다정하게 모든 정을 고 운규에게 홀딱 쏟을 것 같던 황 애지가 그러고 난 후에 한동안 소식을 전해 오지를 않았다.
고 운규는 황 애지에 대해서 궁금하긴 하였지만 아버지도 그렇지만 어머니의 건강이 좋지를 않은 중에 허리까지 몹시 아프시다고 해서 날마다 병원엘 모시고 다니게 되니 한 달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나고 말았다.
그러고 나서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뜬금없이 편지 한통을 받았는데 그것은 황 애지의 이름이었다.
‘ 웬일로 애지가 편지를 보냈지.’
운규가 생각을 하니 그동안 애지에 대해서 궁금하긴 하였지만 어머니로 해서 그의 소식을 알려고도 하지를 못한 것이 미안하기 짝이 없었는데 편지를 받게 되니 무슨 내용이 쓰여 있는지가 궁금하였다.
얼른 편지를 뜯어서 읽다가 운규는 가슴이 서늘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랑하는 고 운규 오빠!
나 지금 바다 건너 아주 멀리 와서 있어요. 갑자기 아버지가 승진을 하셔서 제주도의 일출봉이 바라다 보이는 한전으로 전근을 오시는 바람에 오빠에게 아무 연락도 하지 못하고 왔어요. 아버지가 전근을 오시는데 마음은 조금도 오고 싶지를 않았지만 어떻게 해요. 할 수 없이 따라오긴 하였지만 사랑하는 오빠를 떨어질 생각을 하다가 아무데서나 떨어져 있다가오빠네 집으로 곧장 찾아갈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앞으로 난 오빠가 그리워서 어떻게 살까 하는 것이 수수꺾기에요. 혹시 오빠가 이리로 올 수는 없을까요. 나 오빠를 보지 못해서 미칠 지경이에요. 오빠 나 좀 살려 주세요. 네. “
애지의 편지를 받은 운규의 눈에서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 남자가 마음이 약해지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초등학교의 담임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 제주도에 한번 가보기로 하자. 애지를 찾아가면 애지는 깜짝 놀라서 한달음에 뛰어나오겠지. 애지는 오빠 하고 달려들어 나를 하늘로 치솟게 할 할 수가 있을 거야! 설악산 소나무 숲에서처럼.’
그런데 운규는 지금 아버지와 어머니를 간호해야 한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도저히 갈 수가 없고. 어쩌면 이러다가 애지를 영영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며칠 후 저녁나절에 어디서 전화가 따르릉 울렸다.
“ 누구세요.”
“ 오빠 오래간만이에요.”
한 여름의 소나기구름처럼 다가선 목소리의 주인공은 어! 듣던 소린데. 윤 호자?
“ 네가 웬일이냐.”
“ 오빠 놀랐지요. 내가 감히 전화할 줄을. 나사실은 오빠의 정황을 다 알고 있고 최근에 손 순자가 오빠 곁을 떠난 것도 알고 있어요. 오빠는 지금 부모님을 간호하느라 꼼짝도 하지를 못하지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제주도로 간 황 애지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할 테고…
오빠 일찌감치 모두를 포기하고 다른 친구를 물색하는 게 좋을 거예요. 간 사람들은 이미 오빠를 떠난거와 마찬가지예요. 새로운 사람이 어쩌면 일생을 동반해 줄 수 있는 진실한 사람일 수도 있으니까.”
“어떻게 연락을 할 생각을 하였어,”
“ 오빠는 모든 것은 때가 있고 기다리게 되면 때가 오거든요.”
운규는 그러고 생각을 하니 순자도 애지도 불가피하게 다 떠난 게 맞는 말이었다.
“ 오빠. 나 지금 집 근처에 와 있어요. 내가 보고 싶거든 버드나무 아래로 9시 정각에 나와요.”
운규는 윤 호자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세 학생 중에서 무슨 말을 걸어도 금방 얼굴이 빨개지고 수줍음을 몹시 타던 얌전이었다. 그런데 그의 말을 들어보니 대 가을 김장밭에 짚으로 단단히 묶여 있는 속이 꽉 찬 배추처럼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버릴 것이 없었다.
운규가 손 순자를 좋아하다가 황 애지에게 푹 빠져 있었던 것 까지 알고도 아무 반응이 없는 것처럼 하였지만 둘이 다 운규에게서 멀어진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옆구리를 치고 들어와서 절묘하게 운규에게 대들어 꼼짝할 수 없게 만든 당사자! 그의 치밀한 작전은 적의 요새를 하룻밤사이에 공격하여 주져물러 앉게 한 성공의 전쟁신화와 같았다.
‘호자는 그렇다면 운규를 처음부터 사랑의 상대자로 정했던 것일까. 물론 그는 여자들에게 필수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이 되는 사랑에 대해서 은연중에 기회가 된다면 놓치지 않으려는 심리가 작용하였을 것이며 그런 생각이 맞아떨어져서 지금 그가 운규를 밧줄로 꽁꽁 묶듯이 조여들어 왔다.
그날 밤 버드나무 아래에는 오래간만에 만난 두 사람이 기계방아가 맞물려 돌아가듯이 한 몸이 되어 있었다.
“ 오빠. 나 오빠 없이는 못살아.”
지금의 아내가 그때의 윤 호자이고 지금 어디로 갔는지 행방이 묘연하기는 하지만 가만히 생각을 해보다가 간곳이 짐작이 되어 가는 코스를 생각해 보았다.
충청도 대전에 있는 동학사!
그곳은 한동안 운규가 사업에 실패하고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할 때에 호자가 어느 날 운규에게 바람이나 쏘이러 가자고 하여 간곳이 동학사였다.
그 후 한 달 동안이나 거기에 있었으니 그 절의 비구스님이 운규가 다시 사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셨기 때문이다.
이따금 아내는 심신이 괴로울 때면 동학사에 가서 푹 쉬고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몇 번인가 한 적이 있었다. 金 斗 洙 7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