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테의 돈으로 세상 읽기 63
가짜의 전성시대
딥페이크(DeepFake)를 접하지 않는 날이 없다. 이 기술은 죽은 사람이라도 영정사진만 있으면 생시처럼 볼 수 있다. 홍콩 배우 장국영이 딥페이크로 부활했고 사망한 몇몇 국내 연예인도 생전의 미소와 목소리를 팬들에게 선사했다.
딥페이크는 단순히 유명인의 이미지를 합성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독일 뤼벡대 의료정보학연구소가 원본 영상과 진위를 구별할 수 없는 딥페이크 의료영상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이를 이용하면 환자의 인권침해 없이 의료영상을 분석할 데이터를 만들 수 있다.
한국에서는 가슴 뭉클한 딥페이크가 만들어졌다. 2007년 전투기 요격 훈련 중에 순직한 고 박인철 소령이 어머니 이준신 씨와 만났다. 박 소령의 아버지는 1984년 팀스피릿 훈련 때 순직한 고 박명렬 소령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꿈을 대신 이루겠다고 같은 공군 조종사가 됐다. 아들이 조종복을 입은 채 엄마가 보고 싶었다고 말하자 어머니는 아버지를 만났느냐고 물으며 아들로 태어나줘서 고마웠다고 눈물을 흘렸다.
기술 오용이 그렇듯 딥페이크 그림자도 만만치 않다. 연예인의 얼굴을 도용해 성인물을 만드는 것은 고전이다. 최근에는 여론조작을 위해 가짜뉴스를 만드는 데도 딥페이크를 이용한다. 또 다른 문제는 철학적 질문이다.
얼마 전 미국의 배우와 작가들이 동맹파업했다. 콘텐츠 생산자인 작가와 배우들은 배고픈데 스트리밍 플랫폼 기업만 배 불리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사실 창작물에 대한 이익 배분 문제는 늘 하던 투정이고 정작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딥페이크다. 생성형 AI가 대본을 쓰고, 딥페이크 기술로 배우의 연기를 대체할 수 있다는 두려움은 밥그릇의 크기가 아니라 예술의 본질을 묻는다.
미국만의 야단이 아니다. 언론 보도를 보면 독일 예술가들은 저작권침해라며 AI 규제 강화를 유럽연합에 요구하고 웹툰 시장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다. 이제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창작활동을 두고 AI와 겨뤄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 대결에서 예술가의 종말이 올 것이냐는 아직 물음표다. 다만 AI의 창작활동을 제한하더라도 그 진위를 판단하는 일은 AI의 신세를 져야 한다.
딥페이크 악용에 대한 탐지 기술 역시 진화하고 있다. 사람의 경우에는 얼굴에 나타나는 혈류의 변화를 AI가 분석해 딥페이크 여부를 가려낸다고 한다. 그럴수록 딥페이크 또한 정교해질 것이다. 쫓고 쫓기는 게임에서 누가 승자가 될지는 알 수 없다. 문제는 거짓을 사실처럼 꾸미는데 한나절이 족하지만, 진실을 알았을 때는 게임이 끝난 후다.
지구상에 가인의 돌멩이가 사라지지 않는다. 잠시 숨 고르기 하던 중동이 살육의 광기로 피범벅이다. 종교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수행되는 전쟁은 어김없이 성전이란 명패를 단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어린아이들까지 참수하자 모세의 분노가 스무 장의 석판도 깰 참이다. 신의 정의가 절대적이라면 한쪽이 악마이거나 양쪽 모두 케르베로스의 이빨에 살점을 내줘야 한다.
선은 진실의 침대에서 안온함을 찾고 악은 거짓의 화로에서 원기를 보충한다. 하지만 참과 거짓을 분별하기는 어렵다. 종교와 학문의 궁극적 목적이 진리를 찾는 것이라고 하지만, 인류는 아직도 등불 없는 밤길에 절벽 위를 걷고 있다. 그러지 않고서야 솜털이 마르지 않은 어린애의 목에 칼날을 들이댈 수는 없다.
전장은 딥페이크의 좋은 활동무대다.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유포하는 사진과 영상물들은 진짜와 가짜가 교묘히 섞여 있다. 가자지구 병원에 떨어진 로켓에 500명 넘게 희생됐다는 뉴스로 세계가 경악하자 서로 삿대질이다. 하마스는 국제사회가 이스라엘의 만행을 응징해야 한다고 피 주먹을 흔들고 이스라엘은 감청한 하마스 조직원의 음성파일을 공개했다. 로켓 충돌구 사진분석에 따르면 사망자가 50명 정도에 이를 것이라는 전문가의 주장도 언론에 떠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링거를 매단 사람들의 주검이 역사의 작은 먼지로 잠시 떠돌 뿐이라는 사실이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을 두고 X(전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가짜뉴스가 범람하자 유럽연합이 두 회사에 허위정보 경고서한을 보냈다. 디지털 서비스법(Digital Services Act)에 따라 매출액의 6%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근거에서다.
세계가 긴장하는 것은 확전이다. 론 더머(Ron Dermer) 이스라엘 전략부 장관은 이번 전쟁을 문명과 야만의 대결이라고 규정했다. 문명이 승리하는 것이 정의라며 이란과의 성전도 불사하겠다는 속내를 숨기지 않는다. 이란이 하마스와 헤즈볼라에게 돈과 무기를 제공하는 뒷배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적들에게 교훈이 될 모든 조치를 할 것이며 이스라엘이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국제사회는 침묵하라고 입술을 앙다문다.
참혹한 전쟁을 피하려면 최소한 두 가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평화의 성립은 역설적으로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결기가 있어야 하며 한 대를 맞으면 두 대를 돌려줄 힘이 있어야 한다. 알고 보면 인권도 소유권이 전제이고 소유는 평화 속에 지켜진다. 국제 정치에서 힘없는 평화는 노예의 굴종이며 깡패의 선의에 평화를 의탁하는 것은 소유의 박탈을 의미한다.
안보에 여야가 있을 수 없다. 군사전문가들은 대만 다음으로 한반도를 염려한다. 물론 남북 무력충돌은 장약의 크기가 중동과 다르다. 거지는 아무리 포악한 화염이라도 잃을 것이 없다. 깡패의 불꽃놀이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살다 보면 너른 거실에서 퍼팅 연습하는 사람부터 꿈자리가 사나울 것이다.
이준신 씨는 뼈를 녹여 사랑한 두 남자를 조국의 창공에 재로 뿌렸다. 하지만 남편과 아들을 살려내라고 국방부 정문 앞에 천막을 치지 않았다. 천안함 폭침으로 전사한 고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는 유족 보상금을 해군에 기부했다. 우리는 그 덕에 갈대의 순정을 노래하고 붉은 단풍을 꽃시로 엮는다. 시월, 쪽빛보다 파란 하늘에도 새까맣게 탄 가슴의 별들이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