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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둔산도립공원(논산지역) 대둔산은 호남의 소금강이라 불리우며 기암절벽등의 웅장한 형태는 옛부터 시인 묵객의 절찬을 받을 만큼 아름다우며 군지계곡, 수락폭포, 마천대 선녀폭포, 낙조대, 수락계곡 등 다양한 볼거리와 비경을 간직하고 있다. 특히 논산시 벌곡면 쪽의 수락계곡은 삼복더위에도 냉기가 감도는 계곡으로 1km 정도의 깍아지른 절벽과 저녁햇살에 비쳐지는 기암괴석의 절경은 한폭의 산수화로 대자연의 신비로움을 느끼게 한다. 논산시 벌곡면 수락리의 관리사무소를 지나, 오르는 대둔산 산행길은 입구부터 절경을 만나게 되는데 특히 수락폭포와 군지계곡은 초입 산행길에 등산객들에게 산행의 즐거움을 한층 더 안겨준다. 군지계곡을 지나면 절벽부에 철 다리로 220계단을 만들어 놓아 등산로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였는데 이곳을 오르내리는 길은 경사가 급해 스릴마저 느낄 수 있다. 수락계곡에서 대둔산 정상인 마천대까지는 약 2시간 정도 소요된다. 논산시 벌곡면 수락리수락계곡 관리소 041-732-3568 동암서원 이 서원은 조선 인조 12년(1634) 이곳에서 1.5km 떨어진 숲말에 세워졌었다. 현종 원년(1660)에 사액서원이 되었으나 지대가 낮아 홍수 때에는 물이 뜰까지 넘쳐들어 오므로, 고종 17년(1880) 현재의 자리인 임리 74번지(서원말)로 옮겨 지었다. 고종 3년(1865) 서원철폐령에서도 제외된 서원이었다. 내부의 양봉은 전통적인 모습을 유지하고 있고, 창방 위에 설치된 화반형의 초각반은 기둥 사이마다 1개씩이다. 지붕가구는 퇴고주를 세워 퇴량과 대들보를 걸었는데 용재는 새우처럼 휘어진 것을 썼다. 대들보 위에 일종의 포대공을 얹어서 퇴고주와 함께 종량을 받쳤으며 다시 종량위에 파연대공을 두고 종도리를 받쳤다. 사우에는 김장생을 주향으로 하여 김집 송준길 송시열선생 등 문묘에 배향된 네 분만을 모시고 있는 보기 드문 선정 서원이다. 돈암서원비문에 의하면 방, 대청, 툇마루, 행랑을 갖춘 응도당이 있었고, 응도당의 왼쪽 에 거경제 오른쪽에 정의재가 있었으나 현재로서는 그 건물이 어느 것인지를 분간하기도 어렵고 원형대로 보존되어 오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19년(936)에 창건된 사찰로 그 내역은 《고려사》와 《여지도서》에 기록되어 있다. 그 기록에 의하면 개태사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후 후백제를 평정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약 4년간에 걸쳐 축조했다. 그래서 태조의 영정을 모시는 진전(眞殿)이 있었으며, 국가에 변고가 있을 때에는 이곳에서 신탁(神託)을 받는 등 왕실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고려 말기에 이르러 사운은 쇠퇴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한다. 즉 고려 말기 잦은 왜구의 침입에 의해 잦은 방화와 약탈을 당하게 되어 조선시대에는 계속 폐사된 채 방치되어 왔는데 1934년에 이르러 오늘날의 사찰이 재건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호남의 소금강으로 불리우며, 주봉인 천마봉, 거성봉을 비롯하여 기암괴석, 선송, 장죽 등의 웅장한 형태는 옛부터 시인묵객의 절찬을 받을 만큼 아름다워 충청남도와 전라북도에서 각각 도립공원으로 지정해 놓았을 만큼 수려한 자연경관을 지닌 명산이다. 대둔산 도립공원내에는 곳곳에 저마다의 특성을 지닌 계곡들이 많으며, 다양한 볼거리와 비경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최근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계곡이 이곳 논산시 벌곡면의 수락계곡이다. 한여름에도 온몸이 오싹해질 정도로 시원한 수락계곡에는 발을 담그고 있기 어려울 정도로 차고 깨끗한 계곡물이 있으며, 계곡 곳곳에 여러개의 폭포가 있어, 가을이면 단풍과 멋진 조화를 이룬다. 특히 가을철이면 노랗게 물든 단풍과 푸른 소나무가 기암괴석과 어울려 장관을 이룬다. 약 60도 경사의 가파른 철제 계단인 220 계단이 절벽 사이로 길게 뻗어 있는데, 이 계단은 대둔산 정상으로 가는 등산객들을 위해 암벽사이에다 설치해 놓은 것으로 수락계곡을 찾아온 사람이라면 한번쯤 오르게 되는 명물이다. 논산시 벌곡면 수락리 대둔산 관리사무소 041-732-3568 흔히 '은진미륵'으로 불리는 이 불상은 높이18.12m, 둘레 9.9m, 귀의 길이 3.3m, 관높이 3.94m 로 국내 최대 석불이다. 또한, 경내에는 관촉사 석등(보물 제 232호), 배례석등 (충남유형문화재 제 315호) 등의 문화재가 있다. 특히 논산시에서 관촉사에 이르는 관촉로 4㎞ 가로에는 벚꽃나무가 빽빽히 들어서 매년 4월 꽃이 만개할 때면 벚꽃터널을 이루어 환상적인 광경을 연출해서 가족이나 연인들의 산책코스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논산시는 전국딸기 생산량의 13%를 차지하고 있어 자녀들을 동반한 농장견학은 물론 저렴한 가격으로 지역특산품도 구입할수 있다. 논산시 관촉동 254번지 관촉사 041-736-5700~2 군지폭포
계백장군 묘소, 황산벌, 그리고 사계 김장생 우암 송시열 선생이 강학을 하며 풍류를 즐기던 곳, 돈암서원 윤증고택 등 문화유산과 선현들의 얼이 깃든 충절과 예학의 고장 논산의 천혜의 여름 휴양지 도립공원 대둔산은 논산시 벌곡면 수락리에 위치한 해발878m의 준봉으로 예로부터 호남의 금강산으로 불리워졌으며 천마봉 거성봉 등 웅장한 기암괴석이 자태를 뽐내는 명산이다. 특히 여름철에는 하늘을 덮은 울창한 숲 아래로 맑고 차가운 계곡물이 시원스레 흐르고 있어 여름철 피서지로 최고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데다, 벌곡 수락리에서만 볼 수 있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등산로는 도심에 지친 여러분의 스트레스를 단숨에 풀어드릴 것이라고 확신한다. 호남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대둔산 도립공원에는 삼복더위에도 냉기가 감도는 1km의 수락계곡을 비롯한 기암절경은 대자연의 신비로움을 느끼게 하며 일상생활에 지친 많은 등산객들의 심신의 피로를 말끔히 풀어 주고 있는데 특히, 자연 그대로의 등산로가 일품이다. 논산시에서는 지난 97년 대둔산의 비경 중 가장 아름답고 신비로운 8곳을 선정하여 수락 8경이라 하고 이에 대한 집중적인 개발을 하고 있는데 저마다의 역사와 전설을 비경과 함께 고이 간직하고 있다. 논산시 벌곡면 수락리 문화관광과 041-730-3224 계백장군 유적지
계백(階伯 ; ?-660)은 백제의 장군이다. 554년 성왕(聖王)이 관산성(管山城)에서 전사한 뒤 백제와 신라의 관계는 매우 악화되었다. 641년 의자왕(義慈王)의 즉위이래 백제는 고구려와 제휴하면서 신라를 자주 공격했다. 그러나 고립된 신라가 당나라와 협력하여 고구려.백제 두 나라를 노리면서 상황은 크게 변했다. 논산시 부적면 신풍리 14 문화관광과 041-730-3224 논산명재고택
조선 숙종대에 윤증(尹拯) 선생이 지었다고 전하나 그 세부기법으로 미루어 19세기 중엽 무렵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노성산성이 있는 이산(尼山)의 산자락에 기대어 노성향교와 나란히 남향하여 놓여 있다. ㄷ자형의 안채가 날개를 펴서 뒤에 배치되었는데 그 앞을 막아 중문간(中門間)의 출입에 방해가 안되도록 비끼면서 동쪽으로 축을 옮겨 가로로 배치되었다. 사랑채 앞은 행랑채 없이 전면이 개방되며 안채 축의 정면에 정갈한 조선식 우물이 축조되었고 그 남서쪽에 는 역시 조그만 연못이 조성되었다. 그러나 종도리는 굴도리이며 장혀 받치고 소로를 끼워서 뜬창방 을 보냈다. 보의 단면은 굴린 네모꼴이며 대공은 높은 사다리꼴 판대공이다. 기둥은 네 모꼴이고 덤벙주초이며 막돌 허튼층쌓기 기단(基壇)이다. 사랑채는 높은 2단축대(築臺)위에 있으며 정면 4칸, 측면 2칸의 간살이이다. 동쪽에 대청을 두고 복판 2칸은 사랑방이며 서쪽간은 앞에 높은 누마루를, 뒤에는 사랑 부엌을 배치했다. 사랑 앞퇴에는 툇마루가 놓이는데 사랑대청과 연결되며 대청전면에는 문 시설이 없이 개방되었다. 전체적으로 볼 때 남도풍의 평면구성이다. 사랑채의 서쪽과 안채 작은 부엌 사이에는 2칸구들을 두어서 조그만 샛마당을 만드는데 이 건물은 아마도 나중에 만 들어 넣은 듯 보인다. 구조는 1고주5량으로서 구조기법 등은 모두 안채와 유사하다.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 306 문화재청 042-481-4650
소슬 3문으로 꾸며진 입덕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양성당 좌측에 응도당 그리고 사우는 양성당 후면에 있고, 장판각, 정회당, 산앙루가 있다. 유림들이 매년 음력 2월과 8월 중정에 제사를 올리고 있다. 사우의 전면은 1칸통을 개방하여 전퇴를 두었고, 내부는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전퇴는 전돌 바닥이다. 전면 기둥사이에는 사분합 띠살문을 달고 옆면과 뒷면은 회벽이다. 공포의 구성은 이익공외출목과 동일한 수법으로 짜여져 있다.
논산시 연산면 임리 74번지 돈암서원 041-736-0096
개태사
개태사는 논산에서 대전으로 향하는 국도변, 천호산(386m) 기슭에 위치해 있다. 고려 태조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 108번지 개태사 041-734-8730
쌍계사
쌍계사는 논산의 남방 대둔산의 북록 산곡간에 위치한 큰 사찰이다. 이 사찰은 불명산이란 산록의 동쪽기슭에 위치하고 있는데 보물 408호로 지정된 대웅전이 있다. 이 대웅전의 꽃무늬창살은 그 기교가 신비에 가깝다. 쌍계사의 중건 시기는 자세하지 않으나 현재 남아있는 중건비에 의하면 이 사찰이 고려말에 중건되고 있는 내용을 전하면서 그 이전에 백암(白庵)이란 명칭의 절이 있었음을 전하고 있다. 따라서 이 사찰은 암자형의 불사로 고려시대에 존속되다가 말기에 크게 중창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사찰에는 보물 408호의 대웅전을 중심으로 대웅전의 좌측에 나한전과 칠성각이 있으며 대웅전의 전면 좌측에 명부전과 우측에 요사가 배치되어 있다. 사찰 입구에는 부도군과 중건비가 위치하고 있다. 한편 이 사찰에 유존된 유물로는 직경 1.82cm의 대형 법고와 전패 2개가 있으며, 공주의 갑사에 있는 월인석보(月印釋譜)가 이곳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논산시 양촌면 중산리 3번지 쌍계사 041-741-8955
수락계곡
위치는 충청남도 논산시, 금산군 / 전북 완주군에 있으며,대둔산은 해발 878m의 준봉으로
관촉사
위치는 충청남도 논산시 관촉동 254. 관촉사는 논산시내에서 3km 남짓 떨어진 반야산(100m)기슭에 병풍을 두른 듯 감싸여 있다. 이 사찰에는 고려 광종 19년(967)에 착공하여 38년 후에야 혜명스님에 의해 완공된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보물제218호) 이 있다.
더욱이 의자왕의 실정으로 국내가 혼란해지고, 고구려가 연개소문의 정변 등 국내 문제로 백제와의 동맹에 소극적으로 되자 백제의 위기는 점차 현실화되었다. 결국 660년(의자왕 20) 소정방(蘇定方)과 김유신(金庾信)의 나당연합군이 백제의 요충지인 탄현(炭峴)과 백강(白江)으로 쳐들어왔다.
이에 의자왕은 계백에게 5,000명의 결사대를 주어 이를 막게 했다. 계백은 죽기를 각오하고 출전하여 1당 100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4번을 싸워 이겼으나 백제군은 결국 중과부적으로 대패하여 계백이 전사했다. 이 황산벌전투로 백제는 비운의 종말을 맞이했으며, 계백장군은 통한을 품고 이곳에 묻혀 있다.
안채 동북쪽 모서리에는 사당채가 있는 데 근래에 다 시 복원 한 것이며 사당 주위로 담을 둘러서 공간을 따로 구획하고 있다. 안채의 평면구성은 대체적으로 중부방식을 좇으면서도 남도풍 (南道風)이 들어가는 특이 한 구성이다. 전체적으로는 좌우대칭으로 가로칸은 겹집인 양통 뼈대로,세로칸은 서쪽을 전후퇴, 동쪽을 전퇴로 간살이를 하고 복판에 3칸 ×2칸의 넓은 대청(大廳)을 두었다. 서쪽날개는 앞쪽으로 부터 2칸부엌, 2칸안방, 웃방이 차례로 배치되며 꺾어져서 웃방 옆 은 찻방, 그 앞은 넓은 대청과 연결되는 대청공간이 있다.
안방과 부엌 웃간까지의 전퇴 및 안방 뒷퇴는 모두 툇마루가 놓였으며 웃방의 뒷퇴에는 골방이 놓였다. 동쪽날개는 앞 으로부터 2칸 작은부엌, 2칸 안사랑, 마루방, 뒤쪽 모에는 가로 2칸을 건넌방으로 꾸몄다. 안사랑 앞퇴는 툇마루이고 건넌방의 앞칸은 역시 대청이 되어 안대청과 연결되었으며 마 루방을 따로 구획하여 이용한다. 구조는 양통집과 같이 3평주3량인데 대청 중앙만 긴보 5량이다. 도리는 납도리인데 모를 굴렸고 장혀를 받쳤다.
다만 네모뿔대의 높은 주초(柱礎)를 쓰고 화강암 가공석 바른층 쌓기 댓돌과 축대(築臺) 를 쓴 점만이 다르다. 대문채는 높은 2단 축대 위에 자리했다. 맞걸이 5칸집이며 가운데 2칸에 꺾여 통행되도록 대문간을 만들었다. 지붕은 모임이며 평으로 처리했다.광채는 안 채 서쪽에 세로로 배치되었는데 4칸 ×2칸의 박공지붕집이다. 구조는 안채와 같은 3평주 3량집이다. 사랑채 앞의 축대와 우물, 연못 그리고 몇그루의 나무들은 당시의 조경미를 느끼게 해준다. 또한 뒤안의 축대와 장독대, 대나무숲의 울창함은 우리나라 살림집 공간 구조의 아름다움을 한껏 발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