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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2장> 17 (바리새인들이)...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한대 18 예수께서 저희의 악함을 아시고 가라사대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19 셋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20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뉘 것이냐 21 가로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가라사대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
첫번째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신의 것은 신에게 바치라'고 말 한 것으로 예수에게는 가이사의 것이 신의 것이 아니다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틀림없이 예수의 생각이며 적어도 사도들이 의도적으로 작성한 구절로서 가이사에 내야 할 세금은 가이사에 내고 신에게 내야 할 헌금은 따로 내야 한다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두번째 주의해야 할 점으로 여기에서 신에게 헌금을 내야 한다는 것은 천부(천국의 아버지)가 아니고 유대인들이 자체적으로 걷는 헌금 입니다. 물론 예수도 헌금을 받았으니 헷갈릴 수 있지만 차이가 분명히 있습니다. 예수는 신에게 헌금 하는 것을 이해하는 것 처럼 이야기하지만 예수는 제사장에게 헌금하지 말라고 가르쳤고 예수 자신은 헌금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여기에서 신에게 헌금하는 것을 인정하는 발언은 바리새인 앞이였기에 너희도 헌금을 받는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자신이 헌금을 거두는 것을 정당화하는 것입니다.
세번째 로마에 세금을 내야 하는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그런데 왜 바리새인들이 로마에 세금을 내야 하는 지를 물어보는 내용을 성경에 적었을까요? 이는 그 시대에 로마에 대항해 세금납부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증거 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로마에 세금을 제대로 바치고 있었고 그것이 당연했다면 세금내는 당위성을 묻는 사람은 없었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로마에 세금을 내지 말것을 주장하던 사람들은 누구였을까요? 그렇습니다. 위의 성경에서 보듯이 그들은 바리새인이였고 세례요한과 서기관들로 구성된 유대인의 지도자들이였습니다. 결국 위의 내용은 바리새인들이 예수에게 누구의 편인지 묻는 내용이였습니다. 물론 예수는 로마의 편으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네번째로 위의 이야기는 당연하기 때문에 의미 없는 내용이며 신약에 있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에 있는 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것입니다. 이외에도 예수는 세금 바치는 것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위의 성경 구절은 예수와 사도들 그리고 로마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로 세금을 내라는 주장이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교도들은 위의 내용에 대해서 예수가 로마에 세금을 바치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하면 바리새인들이 헤롯과 빌라도에 고발하여 죽이려 했다고 해명합니다. 예수교도들의 이 단순한 핑계는 조금만 생각하면 두가지 사실을 알게 됩니다. 첫째로 예수가 세금을 내지 않을 것을 주장 할 어떤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과 두번째로 예수교도들은 예수가 죽음이 두려워 거짓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됩니다. 따라서 예수는 로마에 세금을 내지 말라고 말할 수 있었음을 설명하는 것이기에 예수교도들의 이러한 주장은 모두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아래의 설교는 신약성경의 모든 줄거리를 함축적이면서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마태복음 21장 33절 이후의 내용은 신약성경 그 자체 입니다. 따라서 긴 내용이지만 전부 살펴 보겠습니다.
먼저 아래 성경구절에서 포도원은 갈릴리와 예루살렘을 의미하며 집주인은 헤롯과 로마를 의미하고 농부는 피지배층을 의미하며 그리고 종은 세리들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세금은 직접적으로 세금이라고 표현하였고 이 내용은 위의 [1. 세금을 바치라는 예수]와 같이 마태, 마가, 누가복음 모두에 나타나는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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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1장> 45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비유를 듣고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
먼저 마태복음 21장의 결말 부분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래의 45절에서 예수의 비유가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따라서 농부는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을 의미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를 알고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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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1장> 33 ... 한 집주인이 포도원을 만들고 ...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34 실과 때가 가까우매 그 실과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
아래에서 '세'라는 단어는 세금을 의미하며 따라서 실과 때가 가까우매라는 것은 농부에게서 세금을 받을 때가 되었다는 뜻이며 그래서 집주인이 종을 농부에게 보냈다고 합니다. 따라서 집주인이 보낸 종은 농부를 구원하기 위해서 온것이 아니고 세금을 받기 위해서 온 것 입니다. 어떤 사람은 세금이 아니고 사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분명한 세금을 이야기하는 것 입니다. 예수교도들은 세금을 복음이라고 변명하는데 맞습니다. 예수의 복음이 세금과 빚이며 예수에게 바치는 재물입니다. 이 발언은 예수교도들도 인정 할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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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1장> 35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거늘 36 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많이 보내니 저희에게도 그렇게 하였는지라 37 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가로되 저희가 내 아들은 공경하리라 하였더니 38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업을 차지하자 하고 39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어쫓아 죽였느니라 |
세금을 받으러 온 종(세리)들을 농부들이 죽이는 내용입니다. 이는 다르게 보면 세금을 납부하지 않고 대항하는 농부들이 있었다는 뜻이 됩니다. 따라서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음을 예수가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바로 그들이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였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집주인은 한 번이 아니고 두 번 종들을 보냈는데 많은 종들이 죽어 나가자 이번에는 집주인의 아들을 보냈다고 합니다. 집주인의 아들은 예수를 의미 합니다. 세금을 받는 사람은 로마와 헤롯이기 때문에 그 아들이라 함은 로마황제 혹은 헤롯의 아들을 의미하게 되고 세금을 받는것은 예루살렘의 지배권이기 때문에 이를 거부하는 것은 로마와 헤롯에 대한 대항이며 반란이며 민란임을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제2장에서 설명한 민란을 일으킨 바라바라는 사람은 왜 살인한 자가 되었을까요? 바라바는 세금을 납부하지 않고 로마와 헤롯에 대항했던 사람이였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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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1장> 40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이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뇨 41 저희가 말하되 이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실과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 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44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 |
그래서 예수는 '너희가 로마와 헤롯의 아들을 죽였으니 로마와 헤롯이 너희를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40절에서 묻고 그 답을 스스로 하고 있으니 예루살렘을 다른 농부들에게 줄 것이라고 말을 하면서 그 다음에 직접적으로 비유가 아닌 현실적으로 이야기 합니다. 43절에서 그 농부는 곧 백성이였던 것이며 그 백성은 유대인이 아니라 새로 바뀐 사람들이기에 이방인입니다. 그리고 열매는 세금을 의미하기에 그 세금의 열매는 곧 이방인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제사장과 바리새인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유대인들로 부터 신의 나라를 빼앗고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였으니 이는 곧 66년 독립전쟁 이후 유대인들이 나라를 빼앗기고 뿔뿔이 흩어지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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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1장> 45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비유를 듣고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46 잡고자 하나 무리를 무서워하니 이는 저희가 예수를 선지자로 앎이었더라 |
그런데 위의 46절을 보면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잡고자 하나 잡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두가지 입니다. 첫째가 무리를 무서워 했다는 것이고 두번째 이유는 예수를 선지자로 알았다고 합니다. 참으로 어이 없는 핑계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를 사탄으로 보았고 그 증거를 [제6장 4. 사탄을 찬양하는 예수]에서 보았습니다. 따라서 선지자로 알았다고 적은 것은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비웃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무리가 많아 무서웠던 것이고 무리들이 예수를 보호하는 사람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그들은 심지어 무기를 들고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로마와 헤롯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를 죽여야만 했던 그 명확한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일제의 지배를 받을 때에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일제에 대항한 것과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고 유럽이 제국주의에 휩싸였을 때에 수많은 나라들이 독립을 위해 많은 희생을 받았던 것과 다를바가 없었습니다. 이들은 독립자금을 얻기 위해 노력했고 예수는 독립자금을 바치지 말라고 이야기한 것 입니다.
혹자는 그냥 참고 로마의 지배를 받았으면 편했을거 아닌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저는 이 문서의 제5장과 제6장을 다시 읽어 보시라고 하겠습니다. 그들은 더 많은 돈을 받기 위해 사채를 장려했고 아내와 아이들을 창기와 노예로 만들었고 살인과 협박으로 재산을 모았습니다. 어떻게 그러한 핍박이 편했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이제 위의 1번과 2번을 정리할 시간입니다. 예수는 [2번]과 같이 자기가 온 목적은 세를 바치지 않고 투쟁하는 사람들 멸하고 세리들을 돕기 위해 왔다고 분명히 이야기 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로마에 세금을 내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던 것 입니다. 이는 누가복음과 마가복음을 통해서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2번]의 이야기를 이번에는 마가복음 12장을 통해 [1번]과 연결되는 내용을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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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2장> 1 예수께서 비유로 ...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고 ...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2 때가 이르매 농부들에게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을 보내니 (이하생략) 13 저희가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매 14 ...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누가복음 20장> 9 ~ 26 [마가복음 12장과 같습니다] |
예수교도들은 이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예수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헌금을 나누어 준다며 헌금을 받고 있었는데 바리새인들이 예수가 헌금을 받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해서 예수가 로마에 세금을 바치지 않는다면서 고발 할 생각에 예수에게 물어 보고 있었다는 것 입니다. 예수교도들의 이 해명에는 몇가지 큰 오류가 있습니다.
첫번째로 예수가 말한 [포도원의 농부와 세금]은 누가 보아도 명백한 로마에 세금을 바치라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위와 같은 설교하는 예수가 로마에 세금을 내지 말라고 할 이유가 없습니다. 결국 바리새인들은 예수가 로마에 세금을 내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물어 본 것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예수에게 '예수야 너 정말 로마에 세금 내야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냐?' 이에 예수가 말하기를 '그래 당연하지 왜 너희는 로마에 세금 내는 것을 그리도 싫어하냐? 그 농부와 같이 너희도 죽어 봐라.' 라고 말하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바리새인들이 헤롯당 사람과 함께 예수에게 간 것은 무엇일까요? 이것은 많은 해석이 가능한 이야기이므로 결론은 내기가 힘듭니다. 따라서 헤롯당의 문제를 예수교도들이 계속하다면 이는 핵심을 피하고자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두번째로 예수의 설교가 하나였다면 우연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모이고 모여 예수의 4대복음서 전체 이야기라면 예수의 확실한 교리가 됩니다. 다시말해서 이러한 이야기가 이것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며 이 모든 것이 예수가 천국에 먼저간다던 세리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 문서의 제5장과 제6장의 내용 그리고 이후의 모든 내용을 모으면 이는 세금과 사채와 관련되었다고 인정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또 다른 많은 예수의 세금과 사채와 돈과 관련된 내용들이 있음을 예수교도들에게 보여주시면 되고 예수교도들은 이를 모두 해명해야 합니다. 예수교도들의 해명은 돈은 복음이다라고 해명 할 것이 분명합니다. 맞습니다. 예수의 복음이 돈이였습니다.
세번째로 예수교도들의 핑계는 예수가 세속적인 헌금의 문제로 돈을 얻기 위해서 바리새인과 싸웠다고 주장하는 것이기에 예수교도들은 예수를 재물을 탐하는 속된 인간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예수교도들은 예수를 재물을 탐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을 생각하지 않은 핑계였던 것 입니다. 따라서 저렇게 핑계하는 예수교도들에게 '그럼 돈 때문에 바리새인과 싸웠냐'며 탐욕스런 예수의 모습을 보여주시면 됩니다.
아래의 마태복음 21장 31절을 보면 세리들이 창기와 먼저 천국에 간다고 말을 합니다. 그 이유가 28절부터 31절에 있습니다. 지금 정신없이 읽는 분들을 위해 다시 말을 합니다. 정신차리세요.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어 주세요. 마태복음 21장 31절에 예수가 말하기를 세리들이 창기와 함께 먼저 천국에 간다고 적혀 있고 그 이유가 28절 부터 31절에 있습니다. 먼저 31절을 아래에서 확인해 보세요. 31절을 읽으셨습니까? 이제 아래의 성경 구절을 전부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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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1장> 28 ... 한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29 대답하여 가로되 아버지여 가겠소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30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이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싫소이다 하더니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31 그 둘 중에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뇨 가로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32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저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기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종시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
예수가 말하는 두 아들이 포도원에 무엇을 하러 갑니까? 세금을 걷으러 가는 것 입니다. 그 내용을 [2번]에서 보았습니다. 마태복음 21장에서 예수는 세금을 걷는 포도원 이야기를 했고 그 아래에서 또 다시 포도원에 아들을 보내는 이야기를 또 하고 있는 것 입니다. 따라서 포도원에서 일하는 것은 사채가 아니라 세금을 걷는 것 입니다. 그래서 위에서 말하는 세금을 걷겠다고 하는 아들이 아비의 뜻대로 하는 사람이고 그 사람이 31절에서 이야기하는 세리 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창기와 함께 천국에 간다고 한 것 입니다.
따라서 예수교도들의 포도원 이야기와 세금에 관한 해명은 모두 거짓 입니다. 위의 글을 읽고 이제서야 깨닳는 분들이 계실 지 모르겠습니다. 포도원에서 일 하는 것은 세리들이 세금을 거두는 행위를 비유 한 것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다른 비유는 없습니다. 포도원의 비유는 복음을 전파하라는 것이 아니라 세리들이 세금을 거두는 행위임을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저의 주장을 인정하는 예수교도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로마의 식민지로 살고 있는 유대민족이 로마에 세금을 내는 것이 당연하며 유대인들이 이를 내지 않는 것은 마귀와 같은 것이라고 주장할 것 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있다면 이들은 마치 일제의 식민시대를 찬양하는 사람들과 같다고 보시면 쉽게 이해가 될 것 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를 찬양하는 사람들은 매국노 이완용을 찬양하는 것과 같습니다. 나아가 예수와 사도들은 살인을 했으니 사탄과 같고 히틀러를 찬양하는 것과 다를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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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
위의 말은 악마가 있다면 악마가 할 만한 이야기 입니다.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는가?'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해봐야 소용없다.'라고 이야기 하는 것 입니다. 그렇게 하는 말하는 사람들이 세리들입니다. 세리들은 유대인을 핍박하는 로마와 헤롯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었고 따라서 세리들과 같이 세금을 잘 내어 상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리가 받은 상은 무엇입니까? 권력자와 친분을 쌓고 떡과 포도주를 마시며 창기와 함께 천국에서 즐길 수 있는 권리였으며 예수가 말한 천국은 헤롯과 로마의 성임을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천국에 관한 증명은 다른 장에서 합니다.
요한복음에서는 농부와 관련된 다른 설교 내용이 있어서 이를 설명하고자 합니다. 역시 긴 내용이지만 먼저 성경 구절을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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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5장> 1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2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8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
이제 제가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 하실 분들이 있겠습니다. 그러나 혹시나 싶어 중요한 한가지를 설명 합니다. 예수가 말하는 제자라 함은 과실을 맺는 다른 말로 세금과 사채를 잘 걷는 사람들을 의미 합니다. 그러한 세리들이 깨끗하게 되었다고 하는 것은 이들이 유대인들을 실질적으로 탄압하며 실제로 돈을 잘 걷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 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세리들은 유대인들로 부터 비판을 받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비판을 받은 세리들은 예수가 믿을 수 있었습니다. 지탄을 받지 않는 세리들은 예수가 믿을 수 없었던 사람이고 영원한 옥에 갇혀야 할 사람들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이는 다르게 표현하면 말로만 세리인척 하면서 유대인들로 부터 세금을 거두지 않고 유대인들을 위해 일하지 않는 세리들도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세금이 잘 걷히지 않았다고 예수의 측근들은 생각 한 것입니다. 그래서 위에서 말하는 과실을 맺지 못하는 가지라는 것은 바리새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을 위해 거짓으로 세금을 작게 거두는 세리들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들을 찾아내어 벌을 주겠다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세리들이 나쁘다고 할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물론 바리새인들도 그 중에는 반역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세리와 바리새인이라는 것은 대표적인 의미로 이해하면 됩니다.
예수에게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재물을 빼앗을 물건으로만 보았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예수가 구원할 사람은 오로지 세리였고 영원한 옥에 가둘 세리를 구분하기 위해 온 것임을 충분히 생각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가 스스로 세금을 걷으로 보낸 헤롯왕 혹은 로마황제의 아들이라고 칭하는 것을 보았고 그 내용은 마태복음 21장의 내용이였습니다. 또한 문서 제6장에서 예수가 사채장사를 장려하는 모습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예수가 돈장사를 하라고 명확하게 이야기하는 부분을 보겠고 이번에도 자신이 유대왕이 될 것임을 암시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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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9장> 12 ...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13 그 종 열을 불러 은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14 그런데 그 백성이 저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가로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노이다 하였더라 15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서 은 준 종들의 각각 어떻게 장사한 것을 알고자 하여 저희를 부르니 |
위에서 말하는 귀인은 예수를 의미 합니다. 예수가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겠다고 먼 나라에 갔다고 하는데 그곳이 어디입니까? 설마 신이라는 사람이 있다면 정신병자입니다. 왜냐하면 왕위를 내리는 사람은 로마황제이기 때문에 저기서 말하는 곳은 로마입니다. 갈릴리왕 헤롯도 정식 왕의 칭호를 얻지 못했었고 왕의 칭호를 얻기 위해 로마를 방문 한 적이 있었고 헤롯은 결국 왕위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14절에서 예수가 왕이 되는 것을 방해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이들이 예수가 왕의 칭호를 얻지 못하도록 로마에 사람을 보내 방해하였다고 이야기합니다. 재미있는 비유이지만 15절에서 예수는 왕위를 받아 온 것 처럼 이야기 하지만 헤롯이 정식 왕이 되는 것은 예수교도들의 희망사항일 뿐 입니다.
이 설교의 중요한 내용은 예수가 종(세리)들을 불러 돈을 주고 장사를 하라고 말하는 부분입니다. 이들이 어떻게 장사를 했을지는 충분히 짐작 할 것입니다. 장사를 잘하여 돈을 많이 벌어 세금을 잘 바치면 그 결과가 19절에 있으니 세리와 사도들에게 고을을 다스리게 해 주겠다는 설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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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9장> 16 그 첫째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17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18 그 둘째가 와서 가로되 주여 주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19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하고 |
위에서 많은 종들이 많은 돈을 남겨 예수에게 바치고 고을을 다스릴 권리를 얻게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래에 보면 조금이라도 이익을 내지 못한 세리들에게 '내가 준 돈을 은행에 맡겼다면 이자라도 챙겼을 것이다'라고 말 합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정말 작은 돈이라도 벌어야 한다는 예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는 돈을 벌지 못한 세리들이 가진 모든 것을 빼앗겠다고 이야기 합니다. 탕감하면 그 빚이 종에게 옮겨가고 결국에 갚지 못하면 아내와 아이들이 팔리는 천국의 모습을 우리는 이미 보았습니다. 이와 차이점이 없고 같은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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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9장> 20 또 한 사람이 와서 가로되 주여 보소서 주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었나이다 22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 23 그러면 어찌하여 내 은을 은행에 두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변리까지 찾았으리라 하고 24 곁에 섰는 자들에게 이르되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하니 25 저희가 가로되 주여 저에게 이미 열 므나가 있나이다 26 주인이 가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
그리고 아래의 구절에서 예수는 자신의 왕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 원수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예수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었지만 자신에게는 해당사항이 아니였던 것이며 예수는 돈만 아는 돈벌레였던 것 입니다. 예수가 얼마나 돈벌레였는지는 다른 장에서 계속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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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9장> 27 그리고 나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 |
누가복음 19장 27절은 예수가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중요한 내용입니다. 예수는 요한복음에서 스스로 신과 동일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제6장에서 잠깐 보여드렸고 자세한 내용은 제14장에서 설명합니다. 신과 같은 예수가 사람이 인정하지 않는다고 왕이 되지 못할까요? 신은 사람이 인정하든지 그렇지 않든지 왕이고 신입니다. 그리고 얼마나 예수가 신과 같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무서워하지 않고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을까요? 상상이 충분히 가능한 것입니다.
아래의 누가복음에 나온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교를 통해 우리는 몇가지 정보를 얻게 됩니다. 먼저 토색은 남의 것을 강제로 빼앗는것으로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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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8장> 11 바리새인은 ...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세리는 멀리 서서 ...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
첫번째로 알 수 있는 것은 바리새인들이 세리와 다르게 토색, 불의, 간음을 하지 않았으며 토색, 불의, 간음하지 말 것을 입밖으로 이야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곧 바리새인들의 주장이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러한 주장을 했다고 예수와 사도들이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리들은 이와 다르게 죄를 말하고 용서를 받았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는 다른 말로 세리들은 분명히 토색하고 불의하고 간음했음을 이야기하는 것 입니다. 그러한 세리들이 죄값을 치르지 않았다는 것 입니다. 바리새인들의 입장에서 정말 허무하고 화 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두번째로 바리새인들은 일주일에 두번씩이나 금식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현재의 이슬람 사회와 같은 것으로 당시에 핍박받는 유대인들을 생각하며 그 고통을 함께 느끼기 위한 행위이며 부족한 식량을 금식을 통해 모아 가난한 자들을 위해 구제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세리들은 고통받는 동족을 외면하고 항상 기름진 떡과 포도주를 마시며 놀았습니다. 물론 세리들 속에 예수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가 세리들과 함께 떡과 포도주를 마신 것은 알지만 바리새인들이 구제했다는 것은 못 들어 봤다는 예수교도들에게 그 증거를 성경을 통해 설명 할 것 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는 14절을 통해 '자기를 낮추는 자가 높아지리라'고 말 하고 있습니다. 이것에 대한 진실은 아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위 성경 구절을 보면 세리들은 바리새인과 같은 장소에서 기도 한 것이 아니라 멀리 떨어 진 곳에서 기도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왜일까요? 이는 같은 건물에서 기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리들은 멀리 떨어진 헤롯과 빌라도의 성에서 세금을 바치며 자신들이 이렇게 죄를 저지르며 돈을 걷었다고 보고하고 있었고 이 모습을 기도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세리들은 유대인에게 있어서 권력자였습니다. 이는 자신들이 높다고 이야기하지 않아도 유대인들은 이들 앞에서 조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세리들이 자기를 낮추는 대상은 로마황제와 헤롯입니다. 그들 앞에서 스스로를 낮추어 온갖 수종을 들며 아부하므로서 유대인들 앞에서 더욱 더 자신들의 권력이 높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리들이 자신의 죄를 입밖에 이야기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악한 사람들 중에 더욱 악한 사람들은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자신들의 악행을 자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세리들은 '난 이런 저런 죄를 저질렀어. 무섭지?'라고 말 했던 것이며 '저희 사도들과 세리들이 유대인들을 학살하고 창기들을 모아 많은 재물을 모았습니다. 제가 바치는 세금을 잘 받으소서. 예수여. 헤롯이여. 로마황제여'라고 말하며 이를 기도라는 종교적 형식으로 상급기관에 보고 했던 것이고 그들로 부터 잘 했다며 칭찬을 듣고 유대인들 중에 더욱 높아졌던 것 입니다. 죄라는 것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이해 하셔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13절에 보면 세리들이 신에게 '자신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는 유대인의 신을 의미하고 또한 유대인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예수와 사도들은 신을 믿는게 아니라 천국의 아버지와 사탄을 찬양했기 때문에 이는 유대인들과 그들의 신에게 '너희는 우리를 용서하란 말이다'라며 희롱하는 것입니다.
위의 누가복음 18장에서 바리새인들이 청렴한 사람들임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청렴하지 못한 예수의 실체를 예수의 설교를 통해 설명하고자 합니다. 아래의 이야기는 몇가지 중요한 내용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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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9장> 14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누가복음 15장> 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3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4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하느냐 5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
누가복음 15장은 마태복음 9장의 이야기와 같은 것으로 세례요한의 제자들도 바리새인들과 똑같이 금식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고통 받는 유대 민족을 생각하지 않고 세리와 죄인들과 기름진 음식을 먹고 있었고 이러한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잃어버린 양 한마리 이야기로 해명하는 것입니다. 예수교도들은 이러한 핑계를 설교라며 자랑하지만 그 진실을 안다면 스스로 부끄러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교도들은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회개시켜야 한다'고 항상 말을 하며 자신들이 의로운 척 합니다.
먼저 7절을 이해합시다.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은 회개하지 않는 바리새인을 의미합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게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바리새인들을 비꼬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이렇게 바리새인과 유대인을 비꼬아 말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예수는 참으로 재미 있었나 봅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은 세리와 죄인을 의미합니다.
두번째로 예수는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았을 뿐입니다. 다시말해서 사악한 죄인을 찾아가 그들과 기름진 음식을 먹었을 뿐입니다. 그들이 회개하여 유대인을 토색하지 않도록 교육 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어떻게 알까요? 세리와 예수가 정말 핍박받는 유대인을 생각했다면 기름진 음식이 목구멍으로 넘어 갈 수 없기 때문에 금식일만이라도 다같이 금식하여 가난한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었어야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이것을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잃어버린 양 한마리를 찾아 기뻐서 기름진 음식을 먹고 있다고 엉뚱한 변명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이 먹은 것은 무엇입니까? 유대인의 음식은 기름기 없는 누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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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 20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
예수에게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천국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이였습니다. 따라서 사실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잃어버린 한마리 양이였지만 예수는 세리가 잃어버린 양 한마리라고 했으니 잃어버린 양 한 마리가 세리라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 입니다. 예수에게 회개 할 사람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이였지만 예수는 이들에게 회개할 것이 없는 99마리 양이였습니다. 예수에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처음부터 적대관계였던 것입니다.
세리들의 총 책임자였던 세리장 삭개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많은 예수교도들은 이 세리장 삭개오를 종종 칭송 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이 모습을 본다면 죽어서도 예수교도들을 저주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세리장 삭개오는 자신의 전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나누어 준다라는 개념이 약자에게서 빼앗아 자기들끼리 나누어 가지는 것을 의미하며 특히 사도들의 발 앞에 바치고 예수에게 바치는 것임을 제5장과 제6장을 통해 알았습니다. 따라서 삭개오가 나누어 준다는 재물은 예수에게 바치는 것 입니다. 이는 분명한 사실인거 같습니다. 왜냐하면 세리장 삭개오는 세리들이 모은 세금을 헤롯과 로마에 바쳤기 때문에 이를 종교적 형식으로 기록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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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9장>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5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
위의 내용에서도 예수는 유대민족의 반역자의 수장이였던 세리장의 집에서 놀겠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대부분 부유하거나 권세가 혹은 사도들의 집에서 거주하며 그들과 관계된 사람들의 병을 치료하였습니다. 그 외 사람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 했습니다.
위의 누가복음 19장이 말하는 핵심은 세리장이 죄를 짓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내용 입니다. 이는 세리들이 자신들의 죄를 자복했다는 내용과 완전히 다른 이야기 입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세리장이 직접 나서서 재물을 거두는 것이 아니라 부하였던 세리들이 거두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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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8장> 13 세리는 멀리 서서 ...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누가복음 19장>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
삭개오는 남의 재물을 토색한 적이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당시에 토색하는 세리들이 많았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누가복음 18장에서 보듯이 예수는 세리들이 스스로 죄인이라고 말했다고 하였지만 세리장 삭개오는 죄인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것 입니다. 그러나 이는 거짓이였습니다. 당시 세리들은 강제로 세금을 걷었으며 잔인한 방법으로 사도들과 함께 사채빚을 통해 전 재산을 몰수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세리장은 그 책임을 져야 했지만 예수는 이를 묵인하고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19장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삭개오가 바치는 재물이 예수에게는 헌금이고 헤롯과 로마에는 세금이였습니다. 이를 받은 예수와 로마의 입장에서는 세리와 세리장이 그동안 저지른 유대인에 대한 잔인한 실인과 핍박에 대한 죄를 묻지 않고 오히려 잘했다며 칭찬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는 죄를 면해 주는 면죄부의 성격을 가지는 것 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세리들이 유대인을 살인하고 핍박을 해도 세리들은 옥에서 금방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는 문서 제5장의 옥에 갇혔던 베드로를 통해 이미 확인하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내용으로 인해서 카톨릭에서는 면죄부를 본격적으로 판매하고 아무리 죄를 지어도 이를 통해 돈으로 그 죄값을 치르지 않고 옥에 갇히지 않게 되었습니다. 카톨릭의 면죄부는 단순한 종교적인 의미가 아니라 죄를 지었으면 돈으로 해결해도 되는 정치적인 행동이였습니다. 따라서 면죄부 판매 이전에도 면죄부는 공공연하게 예수교도들에게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부패가 유럽에 번져 있었던 것이며 유럽이 예수교를 국교로 승인하면서 천년이라는 암흑기를 거치게 된 이유 입니다. 이러한 일로 인해 종교적인 이유 뿐만아니라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종교혁명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결국 종교혁명으로 탄생한 예수교는 예수를 잘못 이해한 것이거나 종교의 이름으로 정치적 혹은 독립된 지배권을 얻기 위해 종교혁명을 일으킨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예수교 내에서도 면죄부를 제대로 이해한 사람들이 있었을 것 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예수교는 사회악을 키우는 집단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사탄을 숭배하고 재물을 탐하고 여자와 아이를 사고 파는 사채업을 인정하고 있으니 당연한 결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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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9장>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삭개오)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
누가복음 19장 9절은 매우 중요한 내용입니다. 왜냐하면 삭개오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 아닐까요? 그것은 삭개오에게 구원이 이르러 비로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전에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였다는 것 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예수는 스스로 다윗의 자손이고 유대왕이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삭개오에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칭호를 내렸던 것 입니다.
이는 유대 민족의 족보를 비웃기 위함입니다. 유대인들에게 너희 형제가 너희 재물을 달라고 하는 것이 무슨 죄인가?라고 말하기 위함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형제애 혹은 민족애가 매우 컸음을 짐작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그 대표적인 사람이 사도바울이기 때문이며 저는 개인적으로 사도바울을 비롯해서 예수와 사도들이 유대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확히 말해서 예수와 사도들은 갈릴리 사람들이며 헤롯의 측근들이고 사도바울은 요세푸스를 많이 닮았는데 유대인이면서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던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와 사도들은 헤롯과 같은 민족이였거나 갈릴리 사람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물론 세리장을 제외하고 세리들은 민족 반역자 유대인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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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3장> 9 (세례요한이)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
예수는 세례요한의 이름을 팔아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돌들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리라라고 하였습니다. 삭개오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칭호를 받은 것은 예루살렘을 실질적으로 다스릴 사람들을 이방인으로 채우기 위한 것입니다. 그 중 하나가 삭개오였고 삭개오는 분명한 이방인이였습니다. 사도바울도 로마사람이지 유대인이라고 보기가 힘들지만 스스로 유대인이라고 하였으니 답답 할 뿐 입니다. 또한 사도들도 마찬가지로 믿을 수 없는 이유가 분명히 성경에 존재하고 있음을 마태복음 3장 9절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차후 정리하여 드립니다.
여기에서는 예수가 베드로에게 세금을 내기 위해 돈을 구해 오라는 신약성경의 이야기를 보고자 합니다. 제10장에서 설명 하겠지만 예수는 분명히 헌금을 받았으며 삭개오와 세리들을 통해서 많은 재산들을 모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래의 반 세겔이라는 돈이 예수에게 없었다는 것은 거짓입니다. 이 글의 핵심은 문서 제10장에서 증명해 드리고 세리와 사도들 사이의 관계를 정립하기 위해 설명합니다.
<물고기로 세금을 내는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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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7장> 24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너의 선생이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25 가로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가라사대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뇨 세상 임금들이 뉘게 관세와 정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26 베드로가 가로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하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27 그러나 우리가 저희로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
위의 마태복음 이야기는 우리에게 세가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선지자 혹은 지도자 그리고 신의 아들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을 로마와 헤롯은 말하고 싶었고 두번째 베드로에게 물고기를 잡아 오라는 것은 문서의 제5장에서 베드로가 돈을 걷는 방법을 보았기 때문에 물고기가 유대인과 피지배층을 의미하고 그들이 입을 열면 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한 세겔이라고 했지만 이 보다 많은 돈을 받았을 것은 분명합니다. 세번째로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의 진짜 직업이 세리 밑에서 일하던 죄인으로 정치 깡패였고 행동대장이라는 것 입니다. 왜냐하면 물고기는 유대인과 피지배층을 의미하고 많은 제자들 중에 베드로가 직접 돈을 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부였던 베드로와 안드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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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4장> 18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
위에서 보면 베드로와 안드레가 어부로 나옵니다. 아래의 누가복음에서는 예수의 제자 중에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이 어부로 나옵니다. 여기서 잠시 문제를 내겠습니다. 기억을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위의 4명중에 한 명은 절대 어부가 아닙니다. 그가 누구 입니까? 안드레입니다. 안드레는 세례요한의 제자였기 때문에 요한의 곁에 있었지 어부로 활동 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안드레가 어부라고 말 하는 그 순간 부터 어부라는 단어는 이미 비유였습니다. 따라서 안드레를 끝까지지 어부라고 주장하면 안됩니다. 이제 실제 비유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베드로의 어부활동은 비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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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5장> 2 호숫가에 두 배가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
위에서 시몬은 베드로이고 예수를 만나기전의 이름이 시몬입니다. 예수가 시몬의 배에 올라가서 무리들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쳤다는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예수 혼자 가르쳤을까요? 그리고 무엇을 가르쳤을까요? 예수의 설교는 오로지 세리와 돈과 관련된 내용 뿐이였기에 돈에 관한 설교임에 확실 합니다. 왜냐하면 이외의 설교는 없기 때문입니다.
<물고기 한마리도 못잡는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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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5장> 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5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6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7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
위의 8절에 보면 시몬 베드로가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예수를 보고 떠나기를 청하고 있었고 스스로 죄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왜 예수에게 떠나기를 간청했을까요? 모르겠습니까? 그것은 예수로 인해 물고기를 잡기는 커녕 6절에서 어부의 그물을 찢어 버렸고 7절에서 어부들의 배를 바다속에 침몰 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에게 떠나라고 간청했던 것이며 이는 '제발 살려주세요'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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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5장> 9 이는 자기와 및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을 인하여 놀라고 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11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
위의 9절을 읽어 보셨습니까? 배를 잃어 물고기를 잡지 못했지만 위 9절에서 기록하기를 물고기를 많이 잡아 놀랐다고 엉뚱한 글을 적고 있습니다. 윗 글의 핵심은 10절 마지막 부분에 있습니다.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라고 말 하는 것 입니다. 다시 말해서 물고기를 잡은 사람은 베드로가 아니고 예수가 했던 것 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물고기를 잡은 것이 아니고 사람을 잡았던 것이고 그것을 베드로에게 가르쳐 주는 내용이였습니다. 그래서 '이제 부터는 너가 사람을 취하라'고 한 것입니다. 물고기를 잡는 것은 사람을 잡는 비유였으며 예수는 어부가 아니며 베드로와 제자들도 어부가 아니였고 다만 사람을 취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던 것 입니다.
위의 비유는 이것 입니다. 예수는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두 배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많이 잡았습니다. 물고기는 돈을 의미하고 강한 자에게서 물건을 빼앗듯이 재물을 강탈 한 것이고 선원들과 배는 그 자리에서 침몰 시켰던 것 입니다. 결국 돈 때문에 그물을 찢고 배를 침몰 시켜 그 배에 탄 사람들을 죽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4장에서는 베드로가 어부로 묘사되고 있었지만 안드레와 같이 실제 직업은 다르다는 것을 이해 할 수 있으며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 함은 앞으로는 옥에 갇히는 죄인이 되지 말고 권력자가 되어 제대로 사람을 낚으라는 것 입니다. 다시 말해서 옥에 갇히는 힘없는 깡패에서 권세가의 핵심 세력으로 성장한 정치 깡패가 된 것 입니다. 이는 베드로의 무식하고 폭력적이며 돈을 무지 밝히는 성품을 그의 진짜 직업에서 쉽게 확인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물고기가 여러 종교에서 종교적인 의미로 사용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한 내용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와 베드로에게 있어서 물고기는 유대인들을 의미하는 속어였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배 두척과 물고기 두마리는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이제 여러분은 물고기 문양을 보시게 되면 베드로에게 죽어간 유대인들과 그리고 삽비라와 아나니아를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특히 삽비라는 춘향이와 같은 여자로 자신의 정절을 죽음으로 지킨 대표적인 여자였습니다.
이제 제7장을 정리 합니다. 예수에게는 세금이 매우 중요했으며 그래서 세리들을 사랑했습니다. 이를 위해 세리장의 도움을 받아 세리 마태를 머리로 하고 옥에 갇히는 죄인의 신분이였던 깡패 베드로를 행동대장으로 하여 갈릴리 사람들과 유대인들을 살해하고 핍박하여 세금과 재산을 빼앗고 그들의 아내를 과부로 만들어 창기가 되게하였고 따라서 쾌락과 돈을 더욱 만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조직을 지키기 위해서 헤롯의 백부장과 많은 권세가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물론 예수의 제자들이 전부 세리들이였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다만 마태를 대표적인 세리로 표현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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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12번] 삭개오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불리는 이유에 대한 보충 설명을 추가 할 예정.
[13번] 예수가 물고기를 직접 잡았음을 분명하게 작성할것..수정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