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것은 아름답다
-빙그레 오비 회원님들께
어제 저는 빙그레 OB 송년모임에 참석하여 오랜만에 만나는 회원님들과 친교를 나누며 정말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이지만, 구성원들이 고령화되고 또한 이기적인 성향에 이끌리어 단체 활동이 매우 어려운 시대입니다. 특히 코로나를 겪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공동체의식을 잃어버리고 개인주의적인 사고에 젖어 제자리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러한 때에 타의 귀감이 되는 OB모임을 이끌어 주시는 정인영 회장님과 여러 회원님들께 깊은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모임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많은 분들과 동행하며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일부는 몽촌토성역에서 헤어졌고, 천호역과 군자역에서 또 헤어지고, 마지막 세 사람이 7호선을 타고 제가 사는 하계역 방향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태릉입구역에서 강명길 회원이 내린 후, 김남권 회원이 제게 이런 질문을 하더군요. “선배님께서 만약 10년만 젊으셨다면 무슨 일을 하고 싶으세요?” 그때 마침 지하철은 공릉역에 도착했어요. “너무 갑작스러운 질문으로 부담을 드린 것 같아 미안합니다.“ 하며 그는 공릉역에서 내렸고, 저는 미쳐 대답할 겨를이 없이 한 정거장을 더 가며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지난 3월 15일부터 5월 31일까지 서울 충무아트센터에서 사진 전시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2018년 5월, 같은 장소에서 그 작품을 관람했습니다.
'있는 것은 아름답다(Right, before I die)'라는 제목의 사진전이었습니다. 미국의 사진작가 앤드루 조지(Andrew George)는 ‘당신에게 있어 시간이란 무엇을 의미합니까?’라는 주제로 2년에 걸쳐 이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전시된 20명의 사람들은 각각의 삶의 환경이나 상황이 전혀 다르지만, 자신들의 사연과 가치관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습니다. 죽음을 앞에 두고도 의연하게 지내며, 죽음이라는 무자비한 현실 앞에서 삶에 대한 의미를 찾으려는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며 우리의 삶을 더욱더 풍요롭게 해줄 것입니다. 사진 속의 사람들은 대부분 지금 이 세상에 없지만, 여러분이 나와 같이 그들을 추모하고 그들이 남겨 준 메시지와 지혜를 소중히 간직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삶에 관련된 36가지의 질문들을 제시하고, 1년 후의 나에게 편지를 쓸 것을 제안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방법과 그것을 이끄는 주체는 나(我)이며, 우리는 모두 지금 이 순간이 주는 아름다움을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삶에 관련된 36가지의 질문들
1. 후회한 적이 있나요?
2. 좀 더 젊어질 수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나요?
3. 당신에게 행복은 어떤 의미인가요?
4. 다시 한 번 살고 싶은 삶이었나요?
5. 기쁨을 느끼는 게 있나요?
6. 인생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나요?
7. 그 의미에 대해 말해 주세요.
8. 살면서 가장 사랑했던 것은 무엇인가요?
9.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10. 필요했던 일과 원했던 일을 이루었나요?
11. 둘 다 아니라면, 무엇을 하고 싶나요?
12. 사후 세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13. 죽은 뒤 영혼이 어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14. 지금 세상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15. 당신이 죽으면 누가 남아 있나요?
16. 친구들과 가족은 당신의 지금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나요?
17. 당신이 겪은 일로부터 우리가 배울 것이 있을까요?
18. 한 시점에서, 시간은 어떤 의미인가요?
19.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싶나요?
20. 처음 진단을 받았던 순간에 대해 말해 주세요.
21. 당신의 병이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을 어떻게 바꾸었나요?
22. 살면서 자랑스러웠던 적이 있나요?
23.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주세요.
24. 당신이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나요?
25. 당신은 무엇으로 기억될까요?
26. 당신이 누구이며,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27. 지금의 느낌을 말해주세요.
28. 꿈에 대해 말해주세요.
29. 무엇을 믿나요?
30. 당신에게 천국은 어떤 의미인가요?
31. 죽음을 맞이하는 데 종교가 영향을 주었나요?
32. 사랑에 빠진 적이 있나요?
33. 사랑에 빠졌을 때, 느낌은 어땠나요?
34. 인생에서 사랑의 역할이 있었나요?
35. 우정에 대해 말해 주세요.
36.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어떤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나요?
사진전을 보면서 저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한 할머니는 ‘아침에 눈을 떠서 창가에 지저귀는 새소리를 듣는 것, 그리고 햇볕을 피부로 느끼는 것, 그것이 정말 좋으며 자기 인생의 의미이자 행복'이라고 했습니다. 그 무렵 저는 제주 올레길을 걸으며 한창 아름다운 새소리에 심취해 있던 때였거든요. 정말 저는 그분들을 위해 새가 되고 싶었어요. 그 때 지은 산문시 한 편이 월간 『문학세계』 2021년 6월호에 발표되었습니다.
<시> 아침 새소리
淸溪 이종선
세상에 아름답지 않은 새소리가 어디 있을까 참새는 짹 짹 개개비 개 개 뻐꾹새 뻐꾹 뻐꾹 꿩은 꿩 꿩 이건 자연에서 들은 대충 내가 아는 새소리다 그러나 흉내 낼 수 없는 새소리가 더 많다 음악처럼 리듬이 있는 새소리는 저녁에는 낮은음, 아침에는 대개 높은음을 낸다
어느 것이나 다 아름답다
그렇지만 나는 맑고 고운 높은음
해 뜨는 아침 새소리가 더 좋다
내가 아는 여인, 에디샤*는 마지막 시간을 보내며 아침에 눈을 떠서 창가에 지저귀는 새소리를 듣는 것 그리고 햇볕을 피부로 느끼는 것 그것이 정말 좋으며 자기 인생의 의미이자 행복이라고 했다
인생에서 마지막이 아닌 삶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 나는 햇볕 드는 창가에
아침 새소리가 되고 싶다
새소리를 좋아하는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
*에디샤: ‘있는 것은 아름답다(Right, Before I Die)’에 전시(충무아트센터)된 작품 속 주인공.
첫댓글 이 글은 지난 연말 빙그레 OB 송년회를 마친 후 카톡 대화방에 올린 글입니다.
삶에 대한 질문 에 두통이 생기는군요. 이리칠 저리칠 살아온 나로서는 그렇게 슬퍼할 것도 기뻐할 것도 없이 살아온것 같아 생각이 못미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