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모습을 빌리다
동이포루 난간에 기대앉은
한 움큼의 고요는 누구인가
앉은 채로 떠내려가는 섬 하나
그 섬이 날 뒤흔들 때
밖은 축소되고 안은 비대해진다
거친 물줄기가 등 뒤에 새겨진다
비굴한 이별과 합리적 상처로 가득한 뒷모습은
차디 찬 이미지의 따뜻한 능실陵室
나는 그를 모르지만 지금 이 시각 그는 나의 주인공
저 중무장한 무채색의 항명을 음악이라 우긴다면
아마도 서주부는 오랜 망설임
휘저을수록 끈끈해지는 침묵 사이로 머뭇머뭇 비가 내린다
외로움의 극지에서 내리는 비는
피의 길로 온다
응답을 받지 못한 비의 전사들이
내 안의 파이프라인을 통해 지난날을 송출할 때
너는 비스듬히 포개 앉아 숨은 별의 박동을 듣는다
동이포루와 동이치 사이
수원 화성 돌담길을 천천히 걷다가
동장대 지나 구절초 꽃밭에 나란히 앉는다
지금쯤 천진한 양들이 풀을 뜯겠지
아프지 않기 위해 아파하겠지
초스피드의 지루함으로 어두워지겠지
오랜 아픔이 음악이 되어 흐르는 동안
비스듬히 기대앉은 저 뒷모습을 훔쳐와
지동시장 순대국밥집 유리창에
밥풀로 가만히 붙여둔다
빌려서 노래하고 갚지 못한 것들이 아득하다
이재린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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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마농꽃이 걸어서 우체국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