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탈저(脫疽)
입재(立齋)가 이르기를 "탈저(脫疽)는 정(疔)이 족(足)이나 족지(足趾)에 환(患)하고 중(重)하면 궤(潰)하여 탈(脫)하므로 이로 명(名)한 것이다. 또 수지(手指)에 환(患)하는 경우도 있으니 이를 명(名)하여 주절정(蛀節疔)이라 한다.
중(重)하면 본절(本節)이 부(腐)하여 거(去)하고 경(輕)하면 근련(筋攣)한다.
이 증(證)은 고량(膏粱) 후미(厚味)나 주면(酒麵) 자박(炙煿)으로 인하여 적독(積毒)한 소치(所致)이다. 혹 방노(房勞)를 불신(不愼)하여 신수(腎水)가 고갈(枯竭)하거나 단석(丹石)의 보약(補藥)을 복용하여 먼저 갈(渴)하다가 후에 환(患)하는 경우와 먼저 환(患)하다가 후에 갈(渴)하는 경우가 있으니, 모두 신수(腎水)의 휴후(虧涸)으로 화(火)를 제(制)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증(證)은 형세(形勢)가 비록 소(小)하나 그 악(惡)함은 심(甚)히 대(大)하다.
종궤(腫潰)를 불문(不問)하고 모두 반드시 격산구(隔蒜灸)로 하여야 하고 불통(不痛)하면 마땅히 명구(明灸)로 하여야 그 독(毒)을 조금이라도 살(殺)한다.
초발(初發)하여 색(色)이 흑(黑)하고 불궤(不潰)하면 불치(不治)하고, 독(毒)이 복(腹)에 연입(延入)하면 불치(不治)하며, 색(色)이 흑(黑)하고 불통(不痛)하여도 불치(不治)하지만, 색(色)이 적(赤)하고 작통(作痛) 자궤(自潰)하면 가치(可治)한다.
만약 해독(解毒)을 실(失)하여 육사(肉死) 색흑(色黑)하면 급히 참(斬)하여 거(去)하여야 한다.
또한 수족(手足)을 수(修)할 때 구(口)로 교(咬)하는 등의 상(傷)으로 인하여 이르는 경우도 있다.
만약 원기(元氣)가 허약(虛弱)하거나 방사(房事)를 범(犯)하거나 외(外)로 한량(寒凉)을 도(塗)하거나 내(內)로 극벌(剋伐)을 복용하여 비위(脾胃)를 손상(損傷)하여 환처(患處)가 불궤(不潰)하거나 흑(黑)이 족(足)까지 위로 연(延)하게 되면 또한 대부분 사(死)에 이른다.
중(重)하면 반드시 당연히 각도(脚刀)로 주골(周骨)을 전해(轉解)하고, 경(輕)하게 예거(拽去)하여 근(筋)이 골(骨)을 따라 출(出)하게 하여 독(毒)을 설(泄)하니, 또한 불통(不痛)한다. 그렇지 않으면 독(毒)의 근(筋)이 내(內)에서 단(斷)하여 비록 거(去)하여도 궤(潰)한다.
또 편벽(偏僻)한 곳에는 기혈(氣血)이 도(到)하기가 어려워(:罕) 약(藥)의 도달(導達)이 어렵다. 하물며 공독(攻毒)하는 제(劑)는 반드시 먼저 비위(脾胃)를 상(傷)하여 오히려 원기(元氣)를 손(損)하니, 구법(灸法)만큼 좋지는 않다. 중(重)하면 반드시 해거(解去)하는 것이 좋다.
따라서 손진인(孫眞人)이 이르기를 '육(肉)에 있으면 할(割)하고, 지(指)에 있으면 절(截)한다.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반드시 요몰(夭歿)하고 해(害)는 더 심(甚)하게 된다.' 하였다.
하물며 환처(患處)가 이미 괴(壞)하였으면 비록 해(解)하여도 불통(不痛)하니 또 무엇을 두려워(:憚) 하지 않는 것인가? 환자(患者)는 당연히 이를 알아야 한다.
만약 여인(女人)이 이를 환(患)하면 또한 대부분 찰박(札縛)으로 인하여 혈맥(血脈)이 불통(不通)하고 결국 사육(死肉)이 된다. 오직 당연히 그 비위(脾胃)를 장(壯)하고 그 경락(經絡)을 행(行)하며 그 혈기(血氣)를 생(生)하면 낫게 된다." 하였다.
또 치법(治法)에서 이르기를 "색적(色赤) 작통(作痛)은 원기(元氣)가 허(虛)하면서 습독(濕毒)이 옹성(壅盛)한 것이다.
먼저 격산구(隔蒜灸)로 하고 다시 해독(解毒)하는 약(藥)인 활명음(活命飮) 턱라선(托裏散)의 속(屬)으로 하고, 속히 보제(補劑)인 십전대보탕(十全大補湯) 가감팔미환(加減八味丸)으로 하면 독기(毒氣)가 상침(上侵)하지 않고 원기(元氣)가 휴손(虧損)되지 않으니, 보생(保生)할 수 있다.
작갈(作渴)하면 마땅히 자음(滋陰) 강화(降火)하여야 한다.
색흑(色黑)하면 불치(不治)한다." 하였다.
최씨(崔氏)의 방(方):
이는 수족(手足)의 갑저(甲疽)나 수갑(修甲: 손발톱 다듬기)으로 인하여 육(肉)을 상(傷)하거나 손(損)한 족(足)이 창(瘡)이 되므로 인하여 상각(上脚)이 궤란(潰爛)한 것을 치(治)한다.
녹반(綠礬)을 철판(鐵板) 위에 두고 단비(煅沸)하니 색(色)이 적(赤)하여 흐르는(:溶) 금색(金色)과 같으면 진(眞)이다. 비(沸)가 안정(:定)되면 꺼내어 가루로 연(硏)하고, 염탕(鹽湯)으로 환부를 세(洗)하고는, 이를 바르니라.
어떤 남자(男子)가 족지(足趾)에 이를 환(患)하니, 흔통(焮痛) 색적(色赤) 발열(發熱)하였다.
격산구(隔蒜灸)로 하고, 다시 인삼패독산(人蔘敗毒散)에 길경(桔梗)을 거(去)하고 금은화(金銀花) 백지(白芷) 대황(大黃)을 가한 것으로 2제(劑)를 하니, 통(痛)이 지(止)하였다. 또 십선산(十宣散)에 길경(桔梗) 관계(官桂)를 거(去)하고 천화분(天花粉) 금은화(金銀花)를 가한 것 여러 제(劑)로 하니, 나았느니라.
어떤 남자(男子)가 족지(足指)에 이를 환(患)하니 색자(色紫) 불통(不痛)하였다.
격산구(隔蒜灸)로 50여 장(壯)하니, 통(痛)을 부지(不知)하였는데, 명구(明灸)로 100장(壯)하니, 비로소 통(痛)하였다. 다시 선방활명음(仙方活命飮) 4제(劑)를 투(投)하고 탁리(托裏)하는 약(藥)으로 하니, 궤(潰)하여 탈(脫)하면서 나았느니라.
어떤 고량(膏粱)의 사람이 먼저 작갈(作渴) 족열(足熱)하고 후에 족(足)의 대지(大指)가 적통(赤痛)하며 육맥(六脈)이 홍삭(洪數)하면서 무력(無力)하고 좌척(左尺)이 심(甚)하였다.
내가 이르기를 '이는 족삼음(足三陰)의 허증(虛證)이니, 당연히 화원(化源)의 자(滋)를 위주로 하여야 한다.' 하였다.
그가 제습(除濕) 패독(敗毒)하는 등의 제(劑)를 복용하므로 인하여 원기(元氣)가 더 허(虛)하게 되고 색암(色黯)이 족(足)에까지 연(延)하였다.
내가 조(朝)에는 보중익기탕(補中益氣湯)을, 석(夕)에는 보음팔물탕(補陰八珍湯)을 써서 각 30여 제(劑)로 하고 상지구(桑枝灸)를 하니, 궤(潰)하면서도 농(膿)이 청(淸)하고 작갈(作渴)이 부지(不止)하였다.
이어 조(朝)에는 앞의 탕(湯)으로 가감팔미환(加減八味丸)을 송(送)하고 석(夕)에는 십전대보탕(十全大補湯)으로 30여 제(劑)를 하니, 나았느니라.
이 시(時)에 이 증(證)을 같이 환(患)하였던 자는 패독(敗毒)의 약(藥)을 복용하고는 모두 불구(不救)하였다.
어떤 고량(膏粱)의 사람이 나이가 50세가 넘어 또한 이를 환(患)하였으니, 색(色)이 자흑(紫黑)하고 각(脚)이 흔통(焮痛)하였다. 다행히 음식(飮食)은 여고(如故)하였고 동식(動息)은 자녕(自寧)하였으니, 창양(瘡瘍)의 선증(善證)으로 가치(可治)이었다.
이에 연교소독산(連翹消毒散) 6제(劑)로 하고 다시 금은화(金銀花) 감초절(甘草節) 과루(瓜蔞) 20여 제(劑)로 하니, 환(患)하던 지(趾)가 궤탈(潰脫)하였다. 다시 당귀(當歸) 천궁(川芎) 연교(連翹) 생지(生地) 금은화(金銀花) 백지(白芷)로 20여 제(劑)하니, 나았느니라.
어떤 촌부(:芻蕘)가 좌(左)의 족지(足趾)에 일포(一泡)를 환(患)하여 마목(麻木) 색적(色赤)하였고, 다음날 지(趾)가 흑(黑)하였으며, 5일에는 그 족(足)이 흑(黑)하고 냉(冷)하였으며, 동통(疼痛)을 부지(不知)하였고, 맥(脈)이 침세(沈細)하였다.
이는 비위(脾胃)가 독(毒)을 받은 소치(所致)이다. 비룡탈명단(飛龍奪命丹)을 일복(一服)하니, 다음 날 족(足) 상의 사육(死肉)을 할거(割去)하고 할(割)한 후에 골(骨)이 비로소 통(痛)하면서 구(救)할 수 있었다. 이에 십전대보탕(十全大補湯)으로 치(治)하였더니, 나았느니라.
사육(死肉)은 독기(毒氣)가 성(盛)하여 영기(營氣)를 거절(拒絶)한 소치(所致)이다. 하물며 지음(至陰)의 하(下)는 기혈(氣血)이 달(達)하기가 어려운 곳이니, 경(經)에서 말한 "풍(風)이 음(淫)한 말질(末疾)"이 바로 이것이다.
만약 이를 공벌(攻伐)하였으면 원기(元氣)가 더 허(虛)하게 되고 사기(邪氣)가 더 성(盛)하게 되어 허(虛)를 승(乘)하여 상침(上侵)하므로 반드시 불구(不救)에 이르게 되었을 것이다.
(이상은 모두 설안(薛按)에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