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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보험은 언제 닥칠지 모를 사고를 대비하고 노후를 보장받기 위한 필수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보험이 최근 들어 범죄에 악용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보험금 노리고 남편 살해 보험금 타내려 아들 손가락 잘라 남편 청부살인 의뢰한 비정한 아내 등과 같은 기사 제목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실제로 우리나라 보험범죄 발생 건수는 매년 30% 이상씩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 서대문경찰서 강력6팀 이대우 팀장(41·경위)이 이번주 전하는 사건은 운전자보험 약관을 악용해 교통사고를 위장한 살인을 저지르고 수천만 원의 보험금을 챙긴 나쁜 사내에 대한 것이다.
자칫 완전범죄로 끝날 뻔했던 이 사내의 보험살인극은 공교롭게도 그가 거액의 빚을 지고 있던 한 지인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실체가 드러나게 됐다.
이 팀장은 삶의 질을 윤택하게 하기 위해 개발된 보험이 일부 사람들의 나쁜 의도에 의해 살인방조상품으로 전락하게 된 모습에 통탄을 금할 수 없었다며 당시 기억을 들춰냈다.
사건의 장본인 박 아무개 씨(36)는 결코 평탄치 못한 길을 걸어온 사람이었다.
18세가 되던 1989년 특수절도 혐의로 수감된 것을 시작으로 여러 차례 교도소를 드나들었고 그 결과 강도상해와 폭력 등의 전과가 해가 다르게 쌓여갔다.
반복되는 수감생활로 몸과 마음은 점점 피폐해졌고 달리 모아놓은 돈조차 없어 그의 삶은 하루하루가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과도 같았다.
마땅한 기술도, 전문 지식도 없던 박 씨가 서른이 넘은 나이에 갖게 된 직업은 포주. 물장사, 여자장사가 제일 남는 장사’라는 생각에 지인에게 돈을 빌려 성매매 업소를 운영하게 됐던 것이다.
서울 영등포 지역에 가게를 냈지만 장사가 잘 되지 않아 수입은 항상 변변치 못했다.
특히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이후 그나마 간간이 있던 손님들의 발길마저 뚝 끊기자 박 씨의 생활은 더욱 쪼들렸다.
결국 박 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고 아무개 씨로부터 고리의 사채까지 끌어다 쓰기에 이른다.
이것이 화근이었다.
일단 급한 대로 돈을 빌려 쓰기는 했지만 장사는 여전히 되지 않았고 아가씨들의 월급은커녕 가게 월세를 내기조차 벅찼다.
그러는 사이 사채 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수천만 원에 달했고 고 씨의 빚독촉은 날로 심해졌다.
하루하루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박 씨는 결국 위험한 범행을 계획하게 된다.
어떻게 하면 크게 한 건 할 수 있을까.
고심하던 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이 바로 언젠가 얼핏 주워들었던 운전자보험 약관이었다.
박 씨는 운전자보험에 가입하면 교통사고를 낸 운전자도 형사합의금으로 보험금을 지급받는다는 점을 악용하기로 했다.
보험사로부터 ‘고의성이 드러나지 않으면 가해자도 보험금을 지급받는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한 박 씨는 2005년 5월과 6월경 범행을 목적으로 3개의 운전자 보험에 가입했다.
이 팀장은 “당시 박 씨는 특정인을 차로 들이받아 고의로 살해한 후 과실에 의한 교통사고인 것처럼 가장하기로 마음먹었다.
그후 여러 보험사로부터 형사합의금 등의 보험금을 지급받아 일부를 피해자 측에 합의금이나 공탁금으로 지급하고 나머지 금액을 편취하기로 계획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2005년 8월 30일 새벽 2시 20분경 박 씨는 경기도 안양시 만안동 일대를 운전하고 다니며 범행대상을 물색하고 있었다.
박 씨는 고령자가 사망했을 경우 합의금을 더 적게 지급할 수 있다는 점까지 감안, 마땅한 대상자를 찾던 중이었다.
마침 편도 4차로의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고가던 노인 김 아무개 씨(70)가 눈에 들어왔다.
경비원으로 근무하고 있던 김 씨는
그 시각 평소와 마찬가지로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중이었다.
그 일대는 평소 교통량이 많은 지역이었지만 새벽시간이라 주변에는 지나가는 차량이 없었고 사람들도 눈에 띄지 않았다.
무려 1시간 이상을 김 씨의 자전거를 따라가던 박 씨는 순간 속력을 높여
김 씨를 고의로 들이받았다.
이어지는 이 팀장의 설명이다.
박 씨는 당시 시속 80㎞ 정도의 속도로 치었다고 하는데 현장검증 결과 실제 속도는 그 이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노인이 받았을 충격을 짐작하고도 남는 속도였다.
사망할 경우 더 많은 보험금이 나오기 때문에 브레이크도 밟지 않았다’는 박 씨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박 씨는 범행 후 차에서 내려 인도에 쓰러져 있는 김 씨의 상태를 확인한 후 119에 구급차를 불러달라고 요청하고 연이어 112에 교통사고 신고를 하는 등 단순 사고로 위장하기 위해 ‘정상적인’ 수순을 밟아나갔다.
갑자기 뒤에서 나타난 차량에 치인 김 씨는 즉시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로 후송되어 치료를 받았지만 외상성 늑골절과 출혈성 쇼크 등으로 다음날 사망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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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호 팀장이 교통사고 위장 살인사건의 현장검증을 지휘하고 있다.
김 씨의 사고 소식에 유가족들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사고로 위장된 사건 속에 감춰져 있는 무서운 진실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박 씨는 어두운 밤길에 실수로 김 씨를 친 것이라고 주장했고 피해자 가족들에게 진심 어린 듯한 위로의 말을 건네는 등 자신의 범행을 숨기기 위해 그럴싸한 연기를 펼쳐보였다.
결국 그는 미리 가입해둔 보험사로부터 형사합의금 등의 명목으로 1억 3000만여 원을 타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계획대로 1800만 원을 유족에게 합의금으로 지급하고 나머지를 챙겼다.
이처럼 겉으로 보기에 이 사건은 통상적인 교통사고였고 처리 과정 역시 일반적인 관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따라서 아무도 이 사건이 계획된 보험 살인이라는 점을 의심하지 못했다.
박 씨는 자신의 완전범죄를 ‘자축’하며 모처럼 풍요로운 생활을 만끽했다.
하지만 추악한 진실은 드러나게 마련. 단순 교통사고로 묻혀질 뻔한 사건의 진실은 뜻하지 않은 일로 그 실체가 드러나게 된다.
사건이 일어난 지 한 달쯤 지났을 무렵, 박 씨에게 돈을 빌려줬던 고 씨가 다른 사건에 연루되어 서대문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게 됐다.
조사과정에서 우연히 고 씨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얼마 전 박 씨로부터 획기적인 범행을 제의 받은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고 씨의 고백을 직접 들었던 이 팀장의 얘기.
(박 씨가) ‘쉽게 한탕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너도 한번 해봐라’고 했다는 거였다.
차로 치어 살해한 후 실수라고 주장하고 보험금을 받아 일부만 합의금조로 떼주고 나머지는 먹으면 된다.
나도 그렇게 해서 크게 한건 했다’고 자랑 삼아 늘어놓았다는 것이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박 씨의 ‘완전범죄’에 대한 ‘무용담’을 고 씨가 모조리 녹취해놓았다는 것.
고 씨의 고백을 토대로 경찰은 즉시 재수사에 착수했다.
이 팀장은 고 씨로부터 압수한 녹취테이프와 녹취록을 확인하는 동시에 박 씨가 지급받은 보험금 내역 등을 면밀히 조사했다.
박 씨가 한꺼번에 운전자보험에 가입한 시기 등으로 보아 범행의 의도성이 다분하다고 판단한 이 팀장은 사건 후 박 씨의 행적을 추적했다.
그 결과 박 씨가 3개 보험사로부터 형사합의금과 교통사고위로금, 면허정지에 대한 위로금, 교통사고수습지원금 등을 지급받은 사실을 확인, 결국 박 씨의 범행을 밝혀내는 데 성공했다. 교통사고로 위장됐던 살인극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완전범죄를 확신하고 있던 박 씨는 경찰에 체포된 뒤 처음에는 완강히 자신의 범행을 부인했다고 한다.
박 씨는 무조건 실수였다고 잡아뗐다.
과실에 의한 사고로 인정되어 보험금까지 지급받았는데 무슨 소리냐면서 오히려 큰소리를 치더라.
그래서 조용히 녹취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랬더니 의자에 앉자마자 바로 꼬리를 내리며 범행을 자백하더라.
자칫 단순 교통사고로 묻혀버릴 뻔했던 이 보험살인극은 결국 자신의 완전범행을 과시하고 싶어 했던 박 씨의 언행과 그와 돈거래를 하던 지인의 고백으로 사건 발생 32일 만에 진실이 밝혀지게 됐다.
박 씨로선 고 씨가 경찰에 와서 그 얘기를 할 줄 상상이나 했겠나.
자신과의 통화내용을 모조리 녹음하고 있다는 것도 전혀 몰랐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격’이다.
고 씨가 왜 박 씨와의 통화를 녹음해놨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둘 사이에 채무관계가 있었던 점 등으로 미뤄보아 만약의 경우를 대비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박 씨의 범행에 대해 이 팀장이 더욱 분개한 이유는 처음부터 살인을 계획했다는 점 때문이다.
박 씨는 피해자가 사망할 경우 보험금이
더 많이 나온다는 점을 이용, 애초부터 살해하기로 마음먹었다.
돈 앞에서 일흔 노인의 목숨쯤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사망사고 발생시 피해자의 가족들과 합의가 되거나 1500만~2000만 원 상당의 공탁금을 걸면 피해자 측과 합의가 된 것으로 간주되어 구속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했던 셈이다.”
하지만 억울하게 살해된 노인의 유가족들이 받은 상처는 상상 이상이었다.
현장검증 때의 분위기는 더없이 험악했다고 한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따로 있었겠나.
평생 고생만 하신 노인이 하루아침에 돌아가신 것만도 억울한데 그것이 사고가 아닌 범행이었다니 유족들의 충격이 얼마나 컸겠나.
유족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피해자의 아들은 옆에 있던 4.5t 트럭으로 박 씨를 깔아버린다고 하고, 돌로 찍어버린다고 하고…
현장검증이 몇 번이나 중단될 만큼 분위기가 살벌했다.
겨우 뜯어말리기는 했지만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겠더라.
이 팀장은 노인의 억울한 죽음의 진상을 밝히고 박 씨 등의 추가 범행을 막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밝혔다.
박 씨는 자신의 범행을 지인에게까지 제의하는 등 자신의 범행수법에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의 범행이 발각되지 않았더라면 추가범행으로 인한 피해자가 더 나왔을 수도 있던 상황이었다”는 것이 이 팀장의 얘기.
한편 사기 및 살인죄가 적용되어 20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박 씨는 “범행 후 죄책감에 한 번도 마음 편히 잠도 못 잤다.
다 밝혀지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많이 뉘우치고 있고 피해자에게 정말 죄송하다”며 뒤늦게 참회의 뜻을 내비친 것으로 전해진다.
이 팀장은 “박 씨가 잘못을 뉘우치고는 있지만 억울한 노인의 죽음과 유가족들이 받은 상처는 무엇으로도 보상되지 않을 것”이라며 착잡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