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으로 읽는 한국 생활사□67
김칫국:조선시대 복통약
조선 초, 명나라는 조선에서 여자를 뽑아 황제의 후궁이나 궁녀로 삼았다. 태종 때 명나라 영락제의 후궁으로 뽑혀 중국으로 간 여자 중에 황씨와 한씨가 있었는데 북경으로 가는 도중 황씨가 갑자기 복통을 앓았다.
의원이 여러 약을 모두 써보았지만 효과를 보지 못한 가운데 황씨가 김칫국 한 사발만 마시면 아픈 배가 나을 것 같다며 김칫국을 찾았다. 황씨를 호송하던 중국 사신 황엄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동행한 조선 관리에게 김칫국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설명을 들은 황엄이 얼굴빛이 창백해지며 “혹시 사람 고기가 먹고 싶다면 내 다리를 베어서라도 바치겠지만 이런 황무지에서 어떻게 김칫국을 얻을 수 있겠냐?”며 탄식했다.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내용인데 조공녀의 형식으로 끌려가는 것이지만 황제의 후궁으로 뽑힌 여자고 혹시라도 황제의 총애를 받을 수도 있기에 호송 관리가 황씨를 대하는 태도가 지극 정성이었다.
아무리 정성을 다해도 김치 없으면 밥을 먹지 못했던 우리나라 사람이니 만주를 거쳐 북경으로 가는 도중 기름진 중국 음식만 먹었다면 배탈이 날 만도 했다. 아무리 좋은 약도 다 필요 없고 그저 김칫국 한 사발만 마시면 아픈 배가 싹 나을 것 같았던 모양이다.
황씨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김칫국을 마시지 못했기 때문인지 며칠이 지나도록 복통이 낫지를 않았다. 그리하여 밤마다 몸종이 손으로 황씨의 배를 문지르며 아픈 배를 가라앉히려는데 어느 날 측간에 갔다가 황씨의 몸에서 죽은 아이가 나왔다. 후궁으로 간택되어 가던 멀쩡한 처녀가 사산을 한 것인데 이웃집 관노와 통(通)해 아이를 가진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모두가 쉬쉬하며 북경에 도착해 황제가 황씨와 동침을 했다. 다음 날 아침 황제가 진노해 황씨가 처녀가 아닌 것을 문책하니 모든 것이 들통이 났다. 그리하여 조선에다 이를 문제 삼으려고 하는데 황씨와 함께 와 후궁 여비(麗妃)가 된 한씨가 “사사로운 간통을 조선의 임금이 어찌 알았겠느냐”라며 말려 문제 삼지는 않았다. 황씨는 결국 참형을 당해 죽었고 여비 한씨는 영락제가 죽은 후에 산 채로 순장을 당했으니 김칫국 이야기에서 슬프고 황당한 역사의 일면을 엿보게 된다.
한국인이 아플 때 약 대신 김칫국을 마신 역사는 뿌리가 깊다. 조선 초기뿐만 아니라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시골에서 아이들이 배앓이를 하면 할머니가 장독대에서 시원한 동치미 국물이나 배추김치 국물을 떠 주며 아픈 배를 달래주곤 했다.
1970~1980년대 난방으로 연탄을 많이 때던 시절에 연탄가스에 중독되면 지체 없이 김칫국이나 동치미 국물을 마시라며 응급 처방으로 김칫국을 장려하기도 했으니 김치 없이 못 사는 한민족에게 김칫국은 음식이자 훌륭한 약이었다.
따지고 보면 2003년 무렵,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이 나돌았을 때도 한국은 물론 중국에서도 김치와 김칫국을 마시면 예방이 된다는 소문이 돌았으니 김칫국에 대한 신뢰가 무척 깊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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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덕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