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회는 국민이 직접 뜻을 펼치는 장치
추미애(전 법무부 장관)
정치적 무지성과 사회적 무지성의 극복이 먼저
정치적 무지성과 사회적 무지성은 민주주의의 적입니다. 정치적 무지성과 사회적 무지성의 극복 없이는 민주주의 위기도, 불평등의 위기도 극복하기 어렵습니다. 기후 위기, 핵 위기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치적 무지성과 사회적 무지성의 극복을 위해 시민의회가 도입되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민의회는 깨어 있는 시민의 집단 지성을 모으고 작동시킬 수 있는 ‘진화된 민주주의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도 시민의회가 자리잡을 때가 되었습니다. 캐나다, 프랑스, 영국, 독일, 덴마크, 아일랜드, 벨기에 등 민주주의 선진국이라면 채택하고 있는 시민의회는, 대의제 민주주의 결함을 메꿀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보완 장치이기도 합니다.
선진국 민주주의의 대세는 시민의회
8년 전 촛불 국민 1700만이 헌정질서가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함께 하는 걸 보고 저는 강력한 에너지를 느꼈습니다. 아쉬웠던 것은 그 에너지를 이후로 체계화해 내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광장의 열기와 지성을 사회를 재구축하는 데까지 집단 토론으로 이끌어 낼 수 있는 아무런 장치가 없었던 것입니다.
정치권은 광장의 고에너지를 받아먹기만 하고 정작 권력을 잡은 후에는 시민과 함께 토론하면서 공론화해 나가는 지혜와 전략은 부족했습니다.
형해화된 주권재민
가령 의사한테 진료 다 맡겨 놓고 내 병을 고쳐주겠지 하고서 그냥 건강관리 안 하면 아무리 명의라고 한들 병을 고칠 수가 없는 것처럼 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의제 민주주의를 하고 있지만, 주권자가 국회의원을 뽑아주기만 하고 그들이 알아서 하겠지라고 여기고 눈을 떼면 주권자의 의사와 상관없는 결과가 생길 수 있습니다. 쉽게 기득권화 되고 주권자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자기들을 위한 정치, 직업화된 정치로 변질되는 것을 경험하면서 주권자가 이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수단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습니다.
온전한 주권재민은 주권자인 국민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정보주권을 전제로 합니다. 그러나 현대의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유권자는 자본의 힘에 따라 움직이는 언론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받습니다. 주권재민도 올바른 정보가 제공되지 않는다면 형해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정보 접근이 차단되거나 왜곡된 정보에 오염된 주권자, 참여의 기회가 봉쇄된 주권자, 또는 기득권화 된 대의제를 보완할 방법으로서 시민의회가 요구되는 것입니다.
추첨과 숙의로 이루어지는 시민의회
시민의회 의원은 추첨으로 선출되고, 짧은 임기 아래 투명하고 공정하게 운영됩니다. 기후위기 등 현실의 문제를 풀어가는 기술적 장치입니다. 숙의과정이 뒷받침되므로 여론을 제대로 집약할 수 있으면서 의제설정에 효과적입니다. 과거에는 어려웠던 그런 직접민주주의가 이제는 IT기술로 쉽게 구현될 수 있습니다.
시민의 의견을 입법할 수 있게 하려면 시민적 결론이 있어야 하는데 물론 그냥 되는 게 아닙니다. 시민들이 장시간 토론을 하므로 거기서 자기 의견을 바꿀 수도 있고 수정 보완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 과정을 반복해서 거치다 보면 처음에는 생각하지 못한 훨씬 나은 결론으로 접근할 수도 있습니다.
민주사회는 직접민주주의 기회가 많을수록 국민들이 정보에 더 관심을 갖게 되고 의견을 많이 개진할 수 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그 사회는 정치적으로 성숙하게 될 것입니다. 정치인들이 기피하는 사회 갈등 주제들도 이해의 폭을 좁히고 접점을 찾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국회도 미처 생각해내지 못한 결론에 이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집단 지성의 작동으로 갈등을 푸는 사회야말로 진정한 정치 선진국이고 숙의민주주의 사회라 할 것입니다.
언론개혁과 검찰개혁도 시민의회로
저는 시민의회가 우리 공동체의 정신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봅니다. 지금의 검찰독재 정권이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어도 언론이 제 역할을 안 하기 때문에, 어떤 국민들은 아직도 검찰이 공정하게 알아서 하겠지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대중이 점점 더 법 기술과 언론의 왜곡보도에 의해서 중우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검찰 정권이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제대로 보도하지 못하게 하는 중우정치를 막기 위해서도 시민의회의 필요성과 역할이 더 강조될 필요가 있습니다.
시민의회가 활성화되면 언론의 병폐도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 언론이 하고 있는 여론조사 선거가 주권재민을 형해화 시키기도 합니다. 지금의 선거는 비전과 정책과 역량에 대한 관심 대신 이미지와 선호도를 묻는 여론조사로 대통령과 지도자를 뽑는 선거가 돼버렸습니다. 시민의회가 활성화되면 이미지나 호감도에 집중하는 선거가 비전과 정책 역량으로 경쟁하는 선거로 바뀔 수 있고 따라서 언론의 초점도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실직적 언론개혁도 이루어질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계사에 유례없는 광장의 촛불이 고에너지 민주주의의 폭발력을 보여주었다면 그것을 사회 개선과 민생 개선을 위한 지속적인 숙의 공간을 마련해 사회 변혁의 에너지로 이어지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비판적 언론에 무기력하고 기득권화되는 의회를 견제하고 자극을 주는 역할도 필요합니다.
특히 대통령의 권한이 큰 우리나라는, 시민의회가 국회의 견제 권능을 합리적으로 가능케 해주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시민의회를 제대로 운영하려면 비용이 들어가게 됩니다. 공적 대표성과 객관성 그리고 숙의성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시민의회는 그 구성과 운영을 제도로 뒷받침하여야 합니다. 저는 새 국회에 들어가게 되면 동료의원들과 함께 그 입법을 추진하고자 합니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은 잘 알고 있습니다. 공짜 민주주의도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다양한 수준의 민주주의도 시민적 노력에 비례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노력만큼 민주주의를 우리가 만들 수 있는 겁니다.
시민의회는 우리 민주주의를 높여서 우리 시민이 바라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긍정의 에너지를 투입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