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요, 내 사랑 / 백봉기
지난 일요일, 후배의 동생결혼식에 주례를 서게 됐다. 40대 초반에 주례를 선 뒤 15년 만이다. 세상 모든 것들이 다 바뀌고 있는데, 결혼식만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았다. 굳이 찾는다면 두 사람의 성장과정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것이 좀 다르다고나 할까?
결혼식의 꽃이라면 나는 주례사라고 생각한다. 재미있는 주례님들은 웃기기도 하고, 어떤 분은 직접 축가를 불러주기도 한다. 그래도 대부분은 두 사람의 결혼생활에 필요한 덕담이나 소중한 인생경험담을 말씀해 주신다. 그래서 나는 결혼식장에 가면 주례의 말을 귀담아 듣는다. 나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내 결혼식에 주례를 맡았던 분은 대학교 때 지도교수님으로 시인이셨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그날의 주례사는 민망할 정도로 나에 대한 칭찬이 많았고, 예쁘고 착한 신부를 아내로 맞아서 기분이 좋겠다는 말씀도 하셨다. 기억에 남는 말은 “하인이 주인을 섬기듯 아내에게 잘하라.”는 말씀이었고, 신부한테는 “남편을 하인 부리듯 지혜로움을 가지고 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하인은 주인에게 성실하고, 순종하며, 일 잘하고, 한결같은 마음을 가져야 되고, 주인은 하인을 부릴 때 적당한 일감과 휴식을 주고, 아프면 치료해 주고, 때로는 맛있는 음식도 줘야하며, 일을 시킬 때는 칭찬과 격려의 말이 꼭 필요한 것이다.”라는 말씀도 덧붙여 주셨다. 결국 하인과 주인관계는 존경과 사랑과 지혜로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번에 주례사를 준비하면서 나도 이 말을 해줄까 생각했지만 양가의 부모님들이 계신 자리에서 ‘하인과 주인’ 이야기가 나오면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그만두기로 했다. 대신 노래 한 곡을 소개하면서 그 속에 담긴 가사의 뜻을 음미하도록 했다.
강재현 시인의 시를 가수 신계행이 노래로 부른 <고마워요>라는 노랫말이다. 이 노래는 결혼식 축가용으로 만들어서 곡속에는 ‘결혼행진곡’의 일부가 삽입되는 등 너무나 좋아서 아들 결혼 때 신계행 씨를 직접 초청하여 축가를 부르게 한 일도 있다.
♬고마워요 날 위해 태어나 준 그대 / 감사해요 그대를 알게 해 준 세상
그대를 만나기 위해 이 먼 길을 돌아왔나 봐요.
이제 나는 세상이 두렵지 않아요. / 그댈 위해 고난도 이겨낼 수 있죠.
하늘이 정해준 운명, 단 하나의 사랑인걸요.
그대가 내 안에서 오래오래 행복할 수 있게
그대가 내 안에서 오래오래 편안할 수 있게
뜨거운 가슴으로 살아갈게요. / 감사해요, 내 사랑. 고마워요, 내 사랑♬
결혼은 인륜의 대사요 가장 축복받을 일이다. 두 사람이 만나 부부로서의 연을 맺고 평생을 같이 살기로 서약하는 성스러운 의식이다. 거기에는 사랑이라는 힘이 바탕이 되고, 존경이라는 나무에 소망의 꽃이 피어 가정이라는 열매가 맺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사랑의 힘은 위대하고 죽음보다 강하며, 어떤 이는 하늘이 정해준 운명이라고도 말한다. 나는 신랑 신부에게 이 시를 소개하면서 항상 “고마워요, 내 사랑!”이라는 감사의 마음으로 행복하게 살라며 주례를 마쳤다. 하지만 나는 주례사를 하는 동안 줄곧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진정 나는 날 위해 태어나 준 그대와 세상에게 얼마나 감사하며 살았는가!
그대가 있기에 세상이 두렵지 않았고, 어떠한 고난도 이겨낼 수 있었는가!
그대를 하늘이 정해준 운명이고 단 하나의 사랑으로 생각하고 살았는가!
그대가 내 안에서 행복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는가!
젊은 날의 아름답고 소중했던 시간들이 그립다. 하늘이 정해준 운명으로 생각하고
오직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었던 옛날이 그립다. 같이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어떠한 고난도 이겨낼 수 있었던 그 때가 그립다. 결코 지금의 생활이 불만스럽거나 후회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껏 함께 살아준 아내에게 감사하고 고마울 뿐이다. 단지 지나온 세월이 그립기 때문이다. 이제는 연인 때보다 더 소중한 사람으로, 신혼 때보다 더 아름다운 부부로, 하늘이 정해준 일생의 반려자로 살고 싶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한다.
남은 삶, “그대가 내 안에서 행복할 수 있게, 그대가 내 안에서 편안할 수 있게, 뜨거운 가슴으로 살아갈게요. 감사해요, 내 사랑! 고마워요, 내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