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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0 장 온 세계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다
우리가 만일 육신의 부모에게 오는 아이의 단순함을 가지고 그리스도에게 와서 그가 허락하신 사물들을 구하고 이들을 받을 것으로 믿는다면 우리는 그 허락들을 받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우리가 응당 해야 할 만큼 믿음을 활용한다면 우리는 이 집회에서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제까지 받았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축복을 받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집회가 며칠 더 남아있는 것을 기뻐하는 바이다. 그런데 지금의 문제는 우리가 그 샘에 와서 마시는가? 진리의 교사들이 모본을 보이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만일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를 모신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큰 일들을 행할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다 같이 하나님 앞에 마음을 겸비하게 하는 것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 집회가 시작된 이래로 나는 사랑과 믿음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도록 역설해야 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것은 그대들이 이 증언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 선교 지방에 들어온 사람들 중에 더러는 말하기를 당신은 불란서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당신은 독일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저들은 꼭 이런 방법으로 대하여야 합니다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묻겠다. 하나님께서 저들을 이해하지 못하시는가? 당신의 종들에게 백성을 위한 기별을 주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 아니신가? 라고, 하나님께서는 저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바로 무엇임을 알고 계시다. 그러므로 기별이 하나님에게서부터 직접 당신의 종을 통하여 백성들에게 임한다면 그 기별이 보내진 그 곳에서 그 기별의 사업이 성취될 것이며 따라서 그 기별은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틀림없이 불란서 사람이요 어떤 이는 분명히 독일 사람이요 어떤 이는 분명히 미국 사람일지라도 저들은 분명히 그리스도와 같이 될 것이다.
유대의 성전은 산에서 쪼아서 잘라 낸 돌로 건축되었다. 그런데 모든 돌은 예루살렘에 옮겨 오기 전에 잘리고 닦이고 검사를 받아서 성전의 제자리에 각각 꼭 맞추어졌다. 그리하여 모두 기초 위에 운반되었을 때에 도끼나 망치의 소리도 없이 건물은 조화 있게 건축되었다. 이 건물은 모든 나라와 방언과 백성, 귀천과 빈부와 유식 무식을 가리지 않고 모든 계급으로부터 모인 재료로 구성된 하나님의 영적 성전을 표상하였다. 이들은 망치와 끌로 다듬어서 맞추어질 죽은 물질이 아니다. 저들은 진리로 말미암아 세상에서 쪼아지고 잘려져 나온 산돌 들이다. 그리하여 위대한 머리 건축가이신 성전의 주께서 이제 저들을 자르시고 닦으셔서 신령한 성전에 있어서 각각 저희들을 위한 적소에 맞추고 계시다. 이 성전이 완성될 때에는 모든 부분이 다 완전하여 천사들과 사람의 찬미의 표적이 될 것이다. 그것은 이 성전을 건축하시고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아무라도 자기들이 매를 맞는 공정(工程)이 필요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여서는 안 된다.
모든 습관과 생각이 완전한 사람도 민족도 없다. 이 사람은 저 사람에게서 서로 배워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상이한 민족들이 함께 섞여서 판단이 하나가 되고 목적이 하나가 되기를 원하신다. 그 때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연합이 실증될 것이다.
나는 이 나라에 오기를 거의 두려워할 지경이었다. 그 까닭은 매우 많은 사람들이 유럽의 상이한 민족들은 특수하기 때문에 어떤 일정한 방법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희의 부족을 느끼고 이를 위하여 구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지혜가 약속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진리를 받아들일 곳에 저들을 인도하실 수 있다.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빚어지는 것처럼 주께서 마음을 점령하게 하사 이를 빚으시게 하라. 그리하면 이런 차이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형제들이여, 예수를 바라보자. 예수의 태도와 정신을 모방하라. 그리하면 여러분은 이 상이한 계급의 사람들에게 접근하는데 아무런 곤난도 받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따라야 할 모본을 여섯개를 가진 것도 아니요 다섯개를 가진 것도 아니다. 우리는 다만 한 모본만을 가지고 있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만일 이탈리아 형제들과 프랑스 형제들과 독일 형제들이 예수와 같이 되기를 힘쓴다면 저들은 저희의 발을 같은 진리의 기초 위에 디딜 것이다. 즉 이 사람 안에 거하는 정신이 저 사람 안에도 거할 것이니 곧 영광의 소망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저들 안에 계실 것이다. 형제 자매들이여, 나는 상이한 민족들 사이에 막힌 담을 짓지 않도록 경고하는 바이다. 반면에 그 담이 존재한다면 어느 곳이든지 다 그것을 헐어 버리도록 힘쓰라. 우리는 모두 예수 안에서 융합이 되도록 노력하여 한 가지 목적, 곧 우리의 동료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활동하여야 한다.
목회에서 수고하는 형제들이여, 하나님의 풍성하신 허락을 붙잡으려는가? 자아는 시야에서 사라지게 하고 예수께서 나타나시게 하려는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하여 역사하실 수 있기 전에 자아는 죽어야 한다. 나는 피차에 자아가 여기 저기서 나타나는 것을 보고 놀란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내가 여러분들에게 말하노니 여러분의 의지는 죽어야 하고 그 의지는 하나님의 의지와 같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그대들의 자취를 사라지게 하고 모든 더러운 것에서 그대들을 깨끗하게 하기를 원하신다. 그대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충만하게 될 수 있기 전에 그대를 위하여 행하여져야 할 큰 사업이 있다. 나는 그대들이 그리스도께 가까이 나아가서 이 회가 마치기 전에 하나님의 풍성하신 축복을 깨달을 수 있게 되기를 간청하는 바이다.
민족에 대한 그리스도의 관계
그리스도께서는 민족이나 계급이나 주의의 차별을 인정하시지 아니 하셨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하늘의 모든 선물에 대해서 지방적이며 민족적인 이득을 얻고 세상에 있는 다른 하나님의 가족은 거기서 제외하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중간에 막힌 모든 담을 깨뜨리기 위하여 오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긍휼과 사랑의 선물은 공기나 빛이나 혹은 땅을 소생시키는 소낙비처럼 제한되지 않는 것임을 보이시려고 오셨다.
그리스도의 생애는 계급이 없는 종교, 즉 유대인과 이방인과, 자유한 자와 종이 공통된 형제로써 연합되고 하나님 앞에 동등한 종교 신앙을 확립시켜 놓으셨다. 어떤 정략적인 문제도 예수의 행동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였다. 예수께서는 이웃과 외인, 친구와 원수 사이에 차별을 두지 아니하셨다. 예수의 마음에 감명을 준 것은 생명수를 갈급하는 영혼이었다.
예수께서는 어떤 영혼이라도 무가치하다고 보셔서 그냥 지나시는 적이 없었고 오히려 모든 영혼에게 치료제를 사용하려고 힘쓰셨다. 그가 어떤 무리들과 함께 계시든지 그는 때와 환경에 합당한 교훈을 제시하셨다. 사람들이 저희 동료 인간들에 대해서 보인 모든 태만이나 멸시가 예수에게는 당신의 신인다운 동정을 저들이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을 한층 더 강하게 의식하시게 할 뿐이었다. 예수께서는 가장 상스러운 자와 가장 소망이 없는 자들에게 저들도 흠없고 깨끗하게 될 수 있으며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할 품성을 이룰 수 있다는 보증을 보이시면서 저들에게 소망을 불러 일으키고자 힘쓰셨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다는 전제 밑에서 예수께서는 피부색이나 종족이나 지위나 부나 가문이나 학식으로 말미암는 계급, 사회적인 차별, 동료 인간 상호간의 불목등을 어떻게 보시겠는가? 연합의 비결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들의 평등에서 찾을 수 있다.
연합을 가져온 실례
몇 해 전에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웠음을 믿는 신자들의 단체가 매우 작았을 때에 메인 주 톱샴에 있는 안식일 준수자들은 스톡브리지 하울랜드 형제 댁의 큰 주방을 예배 장소로 썼었다. 어느 안식일 아침 하울랜드 형제가 나오지 아니하였다. 우리는 이것을 보고 놀랐다. 그것은 그 형제가 항상 시간을 엄수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오래잖아서 그가 들어왔는데 그의 얼굴은 상기해 있었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빛났었다. 그는 말하였다. 형제들이여,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가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하신 보증이 있는 행동을 우리는 추구할 수 있음을 나는 발견하였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러고는 그는 한 형제, 곧 가난한 어부가 자기는 응당 존경을 받아야 할 만큼 크게 존경을 받지 못한다고, 다시 말하면 하울랜드 형제와 다른 형제들이 저희 자신들을 스스로 자기보다 나은 것처럼 여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눈치챘다고 우리에게 말하였다. 사실은 그렇지 아니하였는데 그것이 그에게는 사실인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서너주일 동안을 그 어부는 집회에 참석하지 아니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하울랜드 형제는 그 사람의 집에 가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말하기를 형제여, 나를 용서하십시오. 내가 저지른 일이 무엇입니까?하였다. 그 사람은 하울랜드 형제의 팔을 붙들고 그를 일으켜 세우려고 하였다. 하울랜드 형제는 말하였다. 아니오, 무엇이 형제의 비위를 거스르게 하였습니까? 하울랜드 형제가 말하였다. 비위를 상하게 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비위를 상하신 일이 틀림없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전에는 서로 얘기를 주고 받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형제께서 내게 말을 통 안하시니 웬 일인지 알고 싶습니다라고 하울랜드 형제가 말하였다.
일어나십시오. 하울랜드 형제여 하고 그는 말하였다. 아니오. 나는 일어나지 않겠습니다. 하울랜드 형제가 말하였다. 그럼 내가 의자에서 내려 앉아야겠군요 라고 그는 말하면서 그의 무릎을 꿇고 그가 얼마나 철없이 굴었으며 마음 속에 얼마나 많은 악한 억측들을 품었던가를 자백하였다. 그러나 이제 나는 이 모든 것을 버리겠습니다라고 그는 말하였다.
하울랜드 형제가 이 이야기를 하였을 때에 그의 얼굴은 주의 영광으로 빛났다. 그가 이야기를 막 끝마쳤을 때에 그 어부와 그의 가족이 들어와서 우리는 훌륭한 집회를 가졌었다.
우리 중에 누가 하울랜드 형제가 행한 그 행위를 따라야 한다고 상상해 보라. 우리의 형제가 악한 억측을 하는 경우에 우리가 그들에게 가서 내가 혹시 형제에게 해가 되는 일을 조금이라도 했다면 나를 용서하십시오 하고 말한다면 우리는 사단의 결박을 깨뜨리고 우리의 형제들을 저희 시험에서 자유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대와 그대의 형제들 사이에 아무것도 개입하지 못하게 하라. 그대가 혐의의 쓰레기를 제거하기 위하여 희생으로써 그대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를 행하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서로 형제로서 사랑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동정적이며 예모가 있기를 원하신다. 그는 우리가 스스로를 교육하여서 우리 형제가 우리를 사랑하고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기를 원하신다. 사랑은 사랑을 낳는다.
우리는 우리의 형제들을 하늘에서 만나기를 기대하는가? 우리가 만일 이곳 지상에서 저들과 함께 평화롭고 화합해서 살 수 있다면 하늘에서도 저들과 함께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만일 계속적인 분쟁과 싸움을 하지 않고는 지상에서 저들과 함께 살 수 없다면 하늘에서 저들과 어떻게 살 수 있을 것인가? 자신을 형제에게서 분리시키고 불화와 알력을 가져오게 하는 행동을 좇는 자들은 철저하게 개심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녹아지고 복종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갈바리의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보여 주신 사랑을 마음에 간직하여야 한다. 우리는 구주께 점점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기도를 많이 하고 믿음을 활용하도록 배워야 한다. 우리는 더욱 친절한 마음을 가지고 더욱 동정적이며 공손하여야 한다. 우리는 이 세상을 단 한 번밖에는 통과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와 사귀는 자들에게 그리스도의 품성의 감화를 끼치도록 힘쓰지 않겠는가?
우리의 고루한 마음은 부서져야 한다. 우리는 완전한 연합 가운데서 함께 되어야 하며 우리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바 됐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각 사람이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위하여 당신의 생명을 주셨다. 그런데 그는 내가 이 세상을 살아나갈 때에 그가 나를 위하여 자신을 바치심으로써 보이신 그 사랑을 보이기를 원하신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자신의 몸으로 친히 우리의 죄를 지신 것은 하나님께서 공의로우시며 또한 당신을 믿는 자들을 의롭게 하시는 자가 되시기 위함이었다.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생명, 즉 영생이 있다.
연합에는 힘이 있다
연합되기 위하여 진지하게 힘쓰라. 이를 위하여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일하라. 연합은 영적 건강과 고결한 생각과 고상한 품성과 경건함을 일으켜서 그대로 하여금 이기심과 악한 억측을 이기게 하며 그대를 사랑하사 그대를 위하여 자신을 바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승리자가 되고도 남음이 있게 한다.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아라. 그대 자신보다 다른 사람들을 더 낫게 평가하라. 이와 같이 할 때에 그대는 그리스도와 하나가 될 것이다. 하늘의 우주와 교회와 세상 앞에서 그대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딸이라는 명백한 증거를 나타내 보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대가 보인 모본으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세상은 하나님의 백성의 마음을 그리스도인의 사랑으로 한데 묶어 주는 이적이 그 앞에서 이룩되는 것을 보아야 한다. 세상은 주의 백성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서 함께 앉아 있는 것을 보아야 한다. 그대는 하나님의 진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를 섬기는 자들을 위하여 무엇을 행할 수 있는지에 대한 증거를 그대의 생애에서 보여 주지 않겠는가? 하나님께서는 그대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지를 아신다. 그대가 만일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면 하나님의 은혜가 그대를 위하여 무엇을 행할 수 있는지를 하나님께서는 아신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연합은 힘이요 분열은 허약을 가져온다. 현대 진리를 믿는 자들이 연합할 때에 저들은 눈부신 감화를 끼친다. 사단은 이것을 잘 알고 있다. 사단이 주의 백성들 가운데 비통과 분쟁을 일으킴으로써 하나님의 진리가 아무런 효험이 없게 하기 위하여 지금보다 더 굳게 결심한 적은 없었다.
제 51 장 기도회
기도회는 집회 가운데서도 가장 흥미 있는 모임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기도회가 빈번히 빈약하게 경영된다. 많은 사람들이 설교 예배에는 참석하나 기도회를 등한히 한다. 여기 재고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여야 하며 집회가 흥미있고 매력적일 수 있도록 그 집회를 경영할 계획을 세워야 한다. 사람들은 생명의 떡에 굶주리고 있다. 저들이 기도회에서 그 생명의 떡을 발견한다면 저들은 그것을 받기 위하여 그 집회에 나갈 것이다.
길고 지루한 얘기와 기도는 어느 곳에서든지 부적당한 것이며 특히 사교 집회에서 그러하다. 앞장서고 항상 말할 태세를 갖춘 자들로 인해 소심하고 수줍어하는 사람들의 간증이 밀어 내어지도록 허용된다. 대개 몹시 천박한 사람들이 말을 가장 많이 한다. 저희의 기도는 길고 기계적이다. 저들은 저들의 말을 듣고 있는 천사들과 사람들을 지루하게 한다. 우리의 기도는 짧아야 하며 요점을 바로잡은 것이라야 한다. 아무라도 그렇게 드릴 기도가 있으면 그 길고 지루한 기도는 골방에서 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대의 마음에 들어오시게 하라. 그리하면 모든 말라빠진 형식은 씻은 듯이 사라질 것이다.
공중 기도는 길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저희의 기도는 짧아야 하며 저희가 꼭 원하는 것을 나타내고 그 이상의 말은 하지 말라는 생각을 명심시키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저희 기도의 길이와 요지를 말씀하시고 세상의 축복과 영적 축복에 대한 저희의 소원과 이 축복에 대한 저희의 감사할 바를 말씀하셨다. 이 표본적인 기도는 얼마나 함축성이 있는 기도인가! 그 기도는 모든 사람의 현실적인 필요를 포괄하고 있다. 일반 기도는 어떤 기도든지 1, 2분이면 족하다. 기도가 특별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인도되고 성령 안에서 기도가 드려지는 실례가 있을 수 있다. 열망적인 영혼은 고민하게 되고 하나님을 찾아 신음한다. 그 심령은 야곱이 씨름하였던 것처럼 씨름하고 하나님의 능력의 특별한 나타나심이 없는 한 편안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되어지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무미건조하고 설교하는 방식으로 기도를 드린다. 이런 사람들은 사람들에게 기도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저들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다면, 그리고 저희가 어떤 일을 행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저들은 저희의 방약 무인한 행동에 깜짝 놀랄 것이다. 그것은 마치 우주의 창조주께서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하여 일반적인 문제들에 관한 보고라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저들이 기도의 형식으로 주님께 강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든 기도들은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와 같다. 이런 기도는 하늘에서 고려되지 아니한다. 하나님의 천사들은 이런 기도를 부득이 듣게 될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이런 기도에 싫증을 낸다.
예수께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 당신의 원하시는 것들을 알리시기 위하여 한적한 숲속이나 산에 가셨다. 하루의 사업과 볼 일을 마치고 피곤한 사람들이 쉼을 찾을 때에 예수께서는 그 시간을 기도에 바치셨다. 우리는 기도할 마음을 억제하지 말 것이니 그것은 기도와 경성함이 너무나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한 성령의 인도와 깨달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일이 더욱 적다. 열성있고 효력있는 기도는 항상 합당한 것이니 결코 싫증나지 아니할 것이다. 이런 기도는 기도하기를 좋아하는 모든 사람의 흥미를 일으키고 그들을 소성시킬 것이다.
은밀한 기도를 태만히 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모일 때에 그처럼 길고 지루하고 어긋난 기도를 드리는 이유인 것이다. 저들은 저희의 기도로 일주일 동안의 등한히 한 의무를 되풀이해서 말하고 마치 저희의 태만을 보충하고 저들을 괴롭히는 가책받는 양심을 달래기를 원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핵심에서 벗어난 기도를 반복한다. 저들은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서 스스로 기도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이런 기도는 빈번히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저희 자신의 영적 흑암의 낮은 수준으로 끌어 내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리스도인들이 깨어 기도하라는 그리스도의 교훈을 마음에 간직한다면 저들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에 한층 더 슬기롭게 될 것이다.
기도로써 더욱 찬양하라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우리 중에 얼마만큼 감사를 표해야 할 것인지 합당하게 생각해 본 사람이 있는가? 우리는 주님의 자비가 아침마다 새롭다는 것과 그분의 성실이 다함이 없다는 것을 기억 하는가? 우리가 그분에게 의존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분의 모든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고 있는가? 그렇기는 커녕 오히려 우리는 너무도 흔히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 내려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건강한 자들은 얼마나 흔히 날마다, 해마다 그들에게 끊임없이 주어지는 놀라운 자비를 잊어버리는가. 그들은 그분의 모든 은혜에 대하여 하나님께 찬양을 돌리지 않는다. 그러나 질병이 엄습하면 하나님을 기억한다. 회복을 받기위한 강한 욕망은 열렬한 기도를 하게 하는데, 이것은 옳은 일이다. 하나님은 건강할 때와 마찬가지로 병든 때에도 우리의 피난처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사정을 그분께 맡기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에 관한 걱정으로 허약과 질병을 조장한다. 만일 그들이 불평을 그치고 의기소침과 우울에서 벗어날 것 같으면 그들의 회복은 더욱 확실해질 것이다. 그들은 참으로 오랫동안 건강의 축복을 누린 것을 감사한 마음으로 기억해야 한다. 그들이 이 귀중한 은혜를 회복받으면 그들은 그들의 창조주께 새로운 의무를 지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열 사람의 문둥병자가 고침을 받았을 때 오직 한 사람만이 예수님을 찾아서 그분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왔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에 마음이 감동되지 않은 지각 없는 아홉 사람처럼 되지 말아야 한다.
예상되는 불행을 곰곰이 생각하는 습관은 지혜롭지 않고 그리스도인적이 아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현재의 기회를 이용하지 못한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의무를 이행하고 그 시련들을 견디도록 요구하신다. 우리는 오늘 말과 행동으로 잘못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이지 않으면 안 된다. 오늘 산 믿음을 실천함으로써 우리는 원수를 정복해야 한다. 우리는 오늘 하나님을 찾고 그분의 임재 없이 만족한 채 안식하지 않으리라고 작정해야 한다. 우리는 이 날이 우리에게 허용될 수 있는 마지막 날인 것처럼 경계하고 일하고 기도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생애는 참으로 얼마나 열렬해질 것인가! 우리는 모든 말과 행동으로 예수님을 참으로 밀접하게 따라가게 될 것인가!
하나님께서 작은 일에 관심을 두심
귀중한 기도의 특권을 올바르게 깨닫고 이용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우리는 예수께 가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그분께 알려야 한다. 우리는 더 큰 어려움은 물론이요 우리의 작은 염려와 걱정을 그분께 가져갈 수 있다. 우리를 곤란하게 하고 어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이든지간에 우리는 기도로써 그것을 주님께 가져가야 한다. 우리가 발걸음마다 그리스도의 임재가 필요함을 느낄 때 사단은 그의 시험을 개입시킬 기회를 거의 얻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가장 선량하고 동정 깊은 친구에게서 우리를 분리시키려고 그는 심사 숙고해서 노력한다. 우리는 예수님 외에 아무도 우리의 막역한 친구로 삼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모든 것을 그분께 안심하고 알릴 수 있다.
형제 자매들이여, 그대들이 예배를 위하여 모일 때 예수께서 그대들을 만나신다는 것을 믿고 그분께서 그대들에게 즐겨 복을 주시고자 하신다는 것을 믿으라. 자아에게서 눈을 돌려 예수님을 바라보고 비할 데 없는 그분의 사랑에 대하여 이야기하라. 그분을 바라봄으로써 그대들은 그분의 형상으로 변화 될 것이다. 그대들이 기도할 때는 간단 명료하게 하고 바로 요점으로 들어가라. 그대들의 긴 기도로 주님께 설교하지 말라. 마치 배고픈 어린이가 그의 육신의 아버지께 떡을 구하듯이 생명의 떡을 구하라. 만일 우리가 단순함과 믿음으로 하나님께 구할 것 같으면 그분께서는 필요한 모든 축복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
기도는 가장 거룩한 영혼의 활동이다. 그것은 진실하고 겸손하고, 열렬해야 하며,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발한 새 마음의 욕망이어야 한다. 탄원자가 거룩한 임재 앞에 있음을 느낄 때 자아는 잊어버린 바 된다. 그는 인간적인 재능을 과시하기 위한 욕망을 갖지 않을 것이다. 그는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고자 노력하지 않고, 영혼이 갈망하는 축복을 얻고자 노력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에는 공중의 앞에서든지 혹은 은밀한 방에서든지 주님 앞에 무릎을 늘 꿇고 하는 것이 우리의 특권이다. 우리의 모본이신 예수께서도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으며 그분의 제자들도 무릎을 끓고 기도하였다고 기록되었다. 바울은 말하기를 이러하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라고 하였고, 에스라는 하나님 앞에 이스라엘의 죄를 고백하려고 무릎을 꿇었다. 다니엘은 하루 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제 52 장 침 례
침례와 성찬 의식은 두 개의 기념하는 기둥으로서 하나는 교회 밖에서 행하고 하나는 교회 안에서 행하는 의식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의식에 참 하나님의 이름을 새겨 놓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침례를 당신의 영적 왕국에 들어가는 표로 삼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이것을 가지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권위 아래 있다는 인정을 받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이 따라야 하는 결정적인 조건으로 삼으셨다. 사람이 교회 안에서 하나의 가정을 발견할 수 있기 전에, 하나님의 영적 왕국의 문어구를 통과하기 전에 여호와 우리의 의라는 하나님의 이름의 인을 받아야 한다.
침례는 세상에 대한 가장 엄숙한 포기를 의미한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삼중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는 자들은 그리스도인 생애로 막 들어서면서 저들이 사단을 섬기는 일을 버리고 왕가의 일원, 즉 하늘 왕의 자녀들이 되었다는 것을 공적으로 선언하는 것이다. 저들은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는 명령에 순종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에게는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 하신 주의 말씀이니라는 허락이 성취된다.
우리가 침례받을 때에 하는 자신에 대한 맹세는 많은 뜻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처럼 장사 지냄을 받고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일으킴을 받았으니 새로운 생애를 살아야 한다. 우리의 생애는 그리스도의 생애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그러므로 신자는 자기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성령께 바쳐졌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는 모든 세속적인 생각은 이 새로운 관계에 버금가는 것으로 삼아야 한다. 그는 다시는 자만과 방종 속에서 살지 않기를 공적으로 선언하였다. 그는 다시는 부주의하고 냉담한 생애를 살지 않아야 한다. 그는 하나님과 계약을 맺었다. 그는 세상에 대하여 죽었다. 그는 주를 위하여 생애할 것이며 그 에게 맡겨진 모든 역량을 주를 위하여 사용하여야 할 것이요, 자기는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는 그리스도의 나라의 한 신민이며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라는 깨달음을 언제나 상실하지 말아야 한다. 그는 자기의 인격 전체와 소유 전부를 하나님께 바쳐서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그의 모든 재간을 사용하여야 한다.
철저히 준비해야 하는 수침 후보자들
수침 후보자들은 침례받기 위하여 한층 더 철저한 준비를 할 필요가 있다. 저들은 이제까지 저들에게 보통 주어졌던 교훈보다 한층 더 신실한 교훈을 받을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인 생애의 원칙이 새로이 진리에 접하게 된 자들에게 천명되어야 한다. 아무라도 저들이 그리스도와 산 연합을 가졌다는 증거로서 저희의 신앙 고백에 의존할 수는 없다. 우리는 다만 나는 믿는다고 말할 뿐만 아니라 진리를 실천해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길은 우리의 말, 우리의 행동, 우리의 품성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름으로써 되는 것이다. 사람이 언제든지 율법을 범하는 죄를 버리면 그 생애는 율법에 순응하게 될 것이요, 완전한 순종을 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다. 주의깊게 연구한 말씀의 빛, 양심의 소리, 성령의 역사하심이 전체 인간, 몸, 혼, 영을 구속하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완전한 희생물로 바치신 그리스도에 대한 순수한 사랑을 마음 속에 낳게 한다. 그리하여 사랑은 순종 가운데서 나타나는 바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들과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그 계명을 무시하는 자들 사이에 있는 한계선은 분명하고 명백할 것이다.
사단은 아무라도 하나님께 전체를 바칠 필요성을 깨닫는 것을 원하지 아니한다. 영혼이 이 복종을 하지 않을 때에 죄는 버린 바 되지 아니하고 식욕과 정욕이 지배하려고 애쓰며, 시험이 양심을 어지럽혀서 참된 회심이 일어나지 않는다. 만일 모든 사람들이 각 영혼마다 저 유혹하고 꾀이며 속이려고 애쓰는 사단의 세력들과 싸움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투쟁 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저들은 믿음이 어린 자들을 위하여 훨씬 더 부지런한 노력을 경주하였을 것이다.
침례를 위하여 아이들을 준비시킴
침례받기를 원하는 자녀들이 있는 부모들은 자성함과 저희 자녀들에게 신실한 교훈을 주는 일에 있어서 행해야 할 일을 가지고 있다. 침례는 매우 신성하고 중요한 의식인 바 침례의 의미에 대해서 철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침례는 죄에 대한 회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 생애로 들어감을 의미한다. 침례 의식을 받기 위하여 부당하게 서둘러서는 안 된다. 부모들과 자녀들이 다 그 대가를 계산에 넣어야 할 것이다. 자녀들의 침례에 동의함으로써 부모들은 이 자녀들의 신실한 청지기가 되어 저들의 품성 건설을 지도하겠다는 신성한 서약을 하는 것이다. 저들은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이 양 무리들을 지켜서 저들이 고백한 믿음을 욕되게 하지 않기를 서원하는 것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자녀들에게는 종교적 교훈을 주어야 한다. 그 교훈은 비난적인 정신으로 주어질 것이 아니요 명랑하고 즐거운 정신으로 주어져야 한다. 어머니들은 자녀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그런 모양으로 유혹이 저들에게 임하지 아니하도록 항상 경계할 필요가 있다. 부모들은 슬기롭고 명랑한 교훈으로 저희 자녀들을 지켜야 한다. 부모들은 이 미숙한 자녀들의 가장 좋은 친구로서 저들이 이기도록 도와 주어야 할 것이니 이는 그 도움으로써만 저들이 승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옳게 행하고자 힘쓰는 저희 사랑하는 자녀들이 주님의 가족의 어린 식구라고 생각하고 순종하는 왕의 대로에서 곧은 길을 가도록 저들을 도와 주는 일에 비상한 관심을 느껴야 한다. 부모들은 사랑하는 관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과 하나님께 순종하여 그 뜻에 복종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 것을 날마다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데는 곧 저희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포함된다는 것을 그들에게 가르치라. 이것은 날마다, 시간마다의 일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부모들이여, 깨고 또 깨어서 기도하라. 그리고 그대들의 자녀들을 그대들의 친구로 삼아라.
자녀들의 생애 가운데서 가장 행복한 시기가 오면, 그리고 저들이 저희 마음 속에 예수를 사랑하고 침례받기를 원한다면 저들을 신실하게 다루어라. 저들이 침례를 받기 전에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는 것이 생애의 최초의 목적이 될 것인지의 여부를 그들에게 물어 보라. 그런 다음에 그들에게 어떻게 시작 하여야 할지를 저들에게 말하라. 그것은 그 뜻이 매우 깊은 최초의 교훈이다. 하나님을 위하여 저희의 최초의 봉사를 어떻게 행할 것인지를 그들에게 단순하게 가르치라. 될 수 있는 대로 이해하기 쉽게 하라. 자신을 주께 바치고 그리스도인 부모의 권고 아래서 주의 말씀이 지시하시는 그대로 행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설명하라.
신실한 노력이 있은 후에 그대의 자녀들이 회개와 침례의 뜻을 이해하고 참으로 회개한 것을 그대가 만족히 여긴다면 저들로 침례를 받게 하라. 그러나 되풀이해서 말하는 바, 무엇보다도 먼저 저희의 미숙한 발을 순종의 좁은 길로 인도하는 신실한 목자로서 행동하기 위하여 그대 자신이 준비하라. 하나님께서는 필시 부모를 통하여 역사하셔서 저들이 저희 자녀들에게 사랑과 예모와 그리스도인의 겸양과 자신을 전적으로 그리스도께 바치는 일에 하나의 올바른 모본을 줄 수 있도록 하신다. 그대가 만일 그대의 자녀들의 침례에 동의한 후에 저들이 선택하는 대로 행하도록 저들을 방임하여 저희 발을 곧은 길에 있게 할 특별한 의무를 느끼지 아니한다면 저들이 믿음과 용기와 진리에 대한 흥미를 상실할 때에 그대 자신에게 이 책임이 있다. 장성한 남녀가 된 수침 후보자들은 어린 후보자들보다 저희의 의무를 더 잘 이해하여야 한다. 그러나 교회의 목사는 이 영혼들을 위하여 행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저들이 그릇된 습관과 행습을 가지고 있는가? 저들과 더불어 특별한 회집을 갖는 것은 목사의 행할 의무이다. 저들에게 성경 공부를 시키고 저들과 더불어 이야기하고 기도하며 저들에 대한 주님의 요구를 명백히 보여 주어라. 회심에 대한 성경의 교훈을 그들에게 읽어 주라. 회개의 열매가 무엇인지 저들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증거가 무엇인지를 보여 주어라. 참된 회개는 마음과 생각과 목적의 변화임을 보여 주어라. 악한 습관은 버려야 한다. 악담, 질투, 불순종의 죄는 내버려야 한다. 품성의 모든 악한 특징에 대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 그러면 믿는 자들이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라는 허락을 깨달음을 갖고 자기의 것으로 삼을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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