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 투어가 열리고 있다. 미국 언론에서는 미셸 위(한국명:위성미)를 2010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시즌 첫 메이저대회의 기대주로 지목했다. 신지애와 위성미는 나란히 올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 이 대회 생애 첫 우승에 도전장을 내민다. 위성미는 사상 첫 메이저대회 우승을 노리고 신지애는 2008년 브리티시여자오픈 이후 2번째이자 2년만의 메이저 정상탈환을 외치고 있다.
박세리의 생애 그랜드 슬럼 달성 여부도 관심사고 신지애의 세계랭킹 1위 탈환 여부도 관심사인데, 유독 미국 언론은 미셀위에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 같다. 미국 뉴스전문방송인 KESQ는 전 세계에서 몰려든 100명 이상의 최정상급 여성골퍼들로 북적거릴 이번 대회에서 특히 주목할 선수로 위성미를 포함한 6명을 꼽았다.
디펜딩챔피언 자격으로 대회에 임하는 브리트니 린시컴 및 세계랭킹 1위 로레나 오초아, 시즌 첫 2개대회를 독식한 일본의 미야자토 아이, 크리스티 커, 폴라 크리머 등과 함께 가장 주목받는 스타플레이어로 꼽혔다. 반면 지난 시즌 3관왕에 빛나는 신지애를 비롯, 생애 그랜드슬럼에 이번 대회만 남겨놓고 있는 박세리는 빠졌다.
생애 그랜드슬럼을 노리는 박세리야 한물 간 선수라 치고, 골프여제를 다투고 있는 오초아는 그렇다쳐도 시즌 첫 2개대회를 우승하긴 했어도 아직은 깜냥이 안 돼보이는 미야자토보다 신지애가 기대를 모으지 못한 건 의외였다. 신지애의 스타성이 아직은 미국무대를 접수하지 못했다는 증거로 풀이될 수 있을 것이다. 연간 10여개 대회에서 우승하고 한 대회에 40명에 달하는 선수들이 출전하는 한국이 우승후보 하나 없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한국선수들의 우승이 한국인들만의 잔치가 아닌 세계의 이슈로 부각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형 스타선수로 발돋움하는 선수가 나와야 한다. 대형스타는 물론 실력으로 되는 것이지만, 프로선수에게 중요한 것은 실력 외에도 이미지다.
실력은 우승과 직결되기 때문에 그대로 돈이 된다. 실력이 돈이 되고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독특한 스포츠가 프로골프다. 그래서 골프는 흔히 자영업자, 1인 기업이라는 말을 할 정도다. 혼자 대회에 출전해 번 상금으로 생활하는 프로골퍼들에게 있어서 이보다 중요한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프로골퍼에게 상금만큼이나, 때로는 상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스폰서십이다.
프로골퍼들은 우승 상금보다 더 많은 기업의 후원금을 받고 소속 프로가 된다. 그런데 문제는 기업이 프로골퍼와 계약을 맺을 때 염두에 두는 것은 두 가지라는 사실이다. 하나는 이미 말한 실력이고 나머지 하나가 바로 이미지다. 이미지가 훌륭한 선수는 그만큼 상품가치가 올라간다.
소속 선수가 우승하면 미디어와 팬들에게 노출되고 기업의 매출과 자체 이미지 상승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실력은 이미지 형성에 있어 중요한 요인이다. 그렇지만 어쩌면 이미지 창출에 있어서 실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인기고, 인기에는 실력못지 않게, 때로는 실력보다 더 중요한 게 바로 외모다. 특히 여자선수들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기업들이 잘 생긴 선수, 예쁜 선수를 좋아하는 이유다.
다시 처음에 시작하는 얘기로 돌아가보자. 왜 미국 언론이 신지애가 아닌 미셀 위를 주목했을까? 신지애는 한국사람이고 미셀위는 미국사람이라서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이유도 물론 있기는 하겠지만 다른 무엇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셀위와 신지애는 무엇으로 대비되는가. 논점을 좁혀보자. 천정부지의 몸값을 받는 前 천재소녀와 전년도 LPGA3관왕에 빛나는 골프지존? 그게 아니면 멀대같이 키만 크고 실력은 별로인 장다리와 실력은 출중하나 키도 작고 볼품없는 뚱뎅이?
아마 전자보다는 후자일거다. 최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인터넷 홈페이지에서는 재미있는 팬 투표가 진행된 바 있었다. 4월 중순 자메이카에서 열리는 이벤트 대회인 '더 모조 6'라는 대회에 출전할 한 명의 선수를 팬 인기투표로 뽑는 것이었는데, 출전자 수 16명 중 신지애(22.미래에셋), 최나연(23.SK텔레콤), 김송희(22.하이트) 외에 크리스티 커, 폴라 크리머, 모건 프레셀(이상 미국) 등 LPGA 투어에서도 내로라하는 15명이 미리 정해진 가운데 나머지 1명은 팬 인기투표로 출전권을 주기로 했다.
팬 투표의 후보 12명 중에는 로라 데이비스(잉글랜드), 카트리나 매튜(스코틀랜드), 니콜 카스트랄리(미국) 등 쟁쟁한 선수들이 많았으나 가장 많은 표를 얻어 출전이 확정된 선수는 무명의 신인 베아트리스 레카리(스페인)였다. 많은 팬이 후보 명단에 올려진 그녀의 사진에 반해 표를 던진 것으로 추측된다. 12명의 후보 중에는 산드라 갈(독일), 안나 로손(호주) 등 한 미모 하는 선수들이 있었지만 이들의 외모가 밀려다는 평이다. 외모지상주의는 팬들만의 목시 아니었다. 대회 조직위원회는 팬 투표에서 밀린 로손을 대회 운영팀에 초청해 시청자들과 만나는 리포터 형식의 역할을 맡겨 팬들의 관심을 유도했다.
올해 LPGA 투어 개막전이었던 2월 혼다 PTT LPGA 타일랜드 1라운드에서도 180㎝의 늘씬한 키가 돋보이는 '섹시 골퍼' 산드라 갈(독일)과 '골프계의 샤라포바'로 불리는 마리아 베르체노바(러시아)를 한 조에 묶는 '미모 마케팅'이 선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 KIA클래식에서 우승한 뒤 스타덤에 오른 서희경은 실력도 빼어나지만 '필드위의 슈퍼모델'이라는 별명에 어울리는 수려한 외모 덕도 꽤 봤다. 주위에서 "서희경이 아닌 다른 선수였으면 이만한 센세이션은 일으키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그녀의 별명 중에 '업그레이드된 신지애'라는 별명이 있다. 신지애의 무엇을 업그레이드하면 서희경의, 그놈의 인기가 될 것인지.....
최근 선종구 KLPGA 회장이 "언론에서 '얼짱', '모델, 몸매짱' 등 외모와 관련된 표현들을 자제해 주셨으면 한다. 골프선수는 외모보다는 실력이다. 여자선수들이다 보니 실력보다는 외모 가꾸기에 열을 올리는 경향이 일부 있다. 프로골퍼는 잘 먹고, 힘을 기르고 코스에서 파워를 발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호소하기도 했지만 마이동풍처럼 오늘도 서희경은 '업그레이드된 신지애'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일부 주니어 여자 선수들은 일찌감치 성형수술을 받기도 한다. 박세리는 쌍꺼풀 수술을 했다고 밝히기도 했지만 이 정도는 애교다. 수년전 LPGA에 진출했던 선수는 연감에 실린 얼굴과 실제 얼굴이 완전히 다른 경우도 있었다. KLPGA 한 임원은 "주니어 선수들의 경우 방학이 끝날 때마다 얼굴이 살짝살짝 바뀐다. 눈, 코, 광대뼈 등 갈수록 범위가 커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것이 어제 오늘 문제도 아니다. 중-고 여학생들의 성형은 골프계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으로 퍼져 있어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데 하물며 외모 하나로 스포선 몇 명이 왔다갔다 하는 골프계야 말할 필요가 있을 것인가. 사실 여자 선수들이 실력보다 외모로 평가받는다는 주장은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 골프만의 일도 아니며 우리만의 문제도 역시 아니다. 국내 선수들로는 피계의 김연아, 프로 당구계의 차유람, 인라인 스케이팅의 궉채이같은 선수들이 한 미모하거나 한 미모했던 선수들이다.
테니스계에서도 자주 있었던 일이다. 주요 메이저대회의 센터 코트에 랭킹이 높은 선수들이 아니라 외모가 빼어난 선수들이 우선 배당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어서 지난해 윔블던에서도 이 같은 주장이 영국 일간지 데일리 메일에 실리기도 했다. 대회 조직위원회 대변인 조니 퍼킨스는 실제 "외모도 코트를 배정할 때 고려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라고 설명했다.
당시 세계 8위 빅토리아 아자렌카(벨라루스)와 27위 소라나 키르스테아(루마니아)의 경기가 센터 코트에 배정된 반면 2위였던 서리나 윌리엄스(미국)는 53위 로베르타 빈치(이탈리아)와 경기를 2번 코트에서 치러야 했다. 또 당시 랭킹 기준으로 45위였던 지젤라 둘코(아르헨티나)와 60위였던 마리아 샤라포바(러시아), 9위 캐롤라인 워즈니아키(덴마크)와 59위 마리아 키릴렌코(러시아) 등 '예쁜' 선수들이 센터 코트를 누비는 동안 당시 1위였던 디나라 사피나(러시아)는 4회전에 가서야 처음 센터 코트를 배정받았다.
‘외모냐, 실력이냐’는 논쟁이 늘 있어온 미국 프로스포츠에는 출중한 외모로 인기와 돈을 독차지하고 있는 ‘3대 미녀 스타’가 있다. 테니스의 마리아 샤라포바(24), 여자 골프의 미셸 위(21), 자동차 경주의 데니카 패트릭(28)이 그들이다. 실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닌데 명성에 걸맞게 최정상의 실력을 갖췄다고 보기에는 뭔가 부족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면서도 최정상급의 대우를 받는다. 2% 부족한 실력을 외모로 채우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는 이들의 공통점은 외모와 실력의 경계선에 서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샤라포바는 그동안 외모와 실력을 겸비한 선수로 평가받아 왔지만 세계 최강인 세레나 윌리암스보다 언론 노출도가 훨씬 높은 것을 발판삼아 선수 가치에서는 그녀를 훨씬 능가하여 여자 ‘타이거 우즈’라고 할 정도다. 샤라포바는 2004년 윔블던, 2006년 US오픈, 2008년 호주오픈 등 3개의 메이저 타이틀을 따내며 정상급 선수로 발돋움했지만 2008년 7월 어깨 부상 이후 10개월 만에 복귀한 뒤 제 기량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US오픈 3라운드 탈락, 윔블던 2라운드 탈락의 수모를 당했다. 올해도 나이키와 재계약한 직후 출전한 호주오픈에서 1라운드에 탈락했다. 얼굴과 몸매로 버틴다는 소리가 나올 조짐이다.
수영복 화보를 촬영할 정도의 ‘섹시 아이콘’으로 통하는 미국의 카레이서 패트릭의 인기도 이에 못지 않다. 지난 2008년 ‘인디 재팬 300’에서 우승함으로써 ‘인디카 사상 첫 여성 드라이버 우승’이라는 기록을 남겼지만, 지난해 전체 성적 5위를 기록했을 뿐이다. 패트릭은 올해부터 미국 자동차 경주로 가장 인기가 높은 나스카 레이스에 출전한다. 인디카에 이어 나스카에서도 그녀가 실력을 입증할 수 있을지 미지수지만 사람들은 현재 시들해져 가고 있는 나스카의 인기가 그녀의 출전으로 올라가고 시청률도 상승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골프의 미셸 위 역시 마찬가지 경우다. 화려한 외모와 실력을 갖추고 등장한 그녀는 14세의 나이에 280야드를 넘나드는 장타를 뿜어내고 남자 대회에 출전하면서 여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고, 급기야 나이키로부터 1000만 달러를 받는 거물급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미셸 위는 ‘성(性)대결’에서 번번이 커트 탈락하더니 손목 부상 등이 겹치면서 극심한 슬럼프에 허덕이더니 급기야 드라이버샷 거리는 250∼260야드 안팎으로 뚝 떨어지고 여자 대회 커트도 통과하지 못할 정도로 샷 난조에 허덕였다.
‘돈벌이’에 눈이 멀었다는 여론의 호된 비판도 잇따르는 가운데 미셸 위는 퀄리파잉스쿨을 거쳐 자력으로 미국 LPGA 투어 풀시드권을 얻어낸 뒤 지난해 자신의 마지막 대회에서 우승컵을 거머쥐며 기사회생했지만 아마추어 시절 ‘US아마추어퍼블릭링크스’ 대회에서 정상에 오른 후 처음이었다. 미국 언론들은 미셸 위의 우승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만 현 세계 최강은 신지애와 오초아니 그녀는 그저 그런 선수 중 하나일 뿐이었다.
미셸 위가 외모보다 실력이 낫다는 말을 들으려면 이들을 넘어서야 할 것이다. 하지만 오초아나, 특히 신지애가 실력도 없는 미셀 위가 자기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는 것을 억울하다고 말하려면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운동 선수는 실력이 우선'이라는 주장과 '프로 스포츠에서는 선수의 외모도 경쟁력'이라는 반론이 맞서고 있지만 요즘 돌아가는 추세를 보면 후자 쪽 이야기가 힘을 얻을 가능성이 커 보이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여자골프는 르네상스다. 이미 미국의 LPGA에는 대회마다 적게는 20%에서 많게는 30%가 넘는 한국선수들이 참여하여 KLPGA 미국투어라고 한다. 그런 붐은 국내에 역수출되어 패션, 전자, 금융, 건설 등 다양한 기업들이 앞다퉈 선수들을 통해 마케팅을 펼치면서 올해 대회가 26개나 열리고 있다.
같은 실력이라도 외모가 훌륭한 선수는 더 대접받고, 거대 스폰서십을 척척 얻는다. 여자골프계의 수장까지 나서 외모보다 실력에 치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일 정도로 여자골프계의 외모 지상주의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사회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 한 대세가 흐트러질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하지만 미셀 위나 서희경도 살아야 하고 신지애도 살아야 한다. 골프에서 실력과 이미지가 다같이 중요하고 이미지가 더 중요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실력이 우선이고 이미지는 양념이어야 한다. 외모와 더불어 실력이 또한 이미지를 꾸미는 변수이기 때문에 외모와 실력의 가중치는 1:2인 것이다. 그래야 골프가 사는 것이다. 이는 비단 골프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자 프로종목 모두의 공통적 현안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나는 지난 번 김연아가 놓친 세계선수권보다는 지난해 신지애 선수가 단 1점 때문에 놓친 올해의 선수상이 더 아깝다고 생각한다. 김연아나 신지애나 그거 하나만 더 챙겼으면 그대로 영원한 지존이 됐을 것이다. 둘다 해당 분야의 세계적인 역사를 쓸 기회를 놓치고 2% 부족한 신화에 만족했지만 외모로 먹고 들어갈 수 있는 김연아보다는 신지애에게 그 역사가 더 필요했다는 얘기다. 그래서 신지애에게 이번 나비스코 우승이 절실히 필요할 것이다. 실력보다 얼굴을 더 따지는 더러운 세상에 아름다움이 2% 부족한 그녀가 복수하는 길은 메이저대회를 족족 땡기는 임팩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