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3Nfhf8xHN0I
안녕하십니까, 성도 여러분. 다시 '에스라엘 나무 강단 성경의 어휘 연구'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여러분, 어휘 하나하나를 연구해 나가는 것이 재미있죠? 재미있기를 바랍니다. 하나씩 하나씩 알아감으로써 우리는 성경의 특별한 측면 또는 부분을 더 자세히, 깊이 깨닫게 될 줄 믿습니다.
이것을 연구하는 목적에 대해서는 앞에서도 여러 번 이야기했습니다. 단어의 성경적 의미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국어사전이나 백과사전의 의미가 아니라, 성경의 의미를 통해서 그 단어가 포함된 본문의 정확한 이해를 추구함으로써 마침내는 바르고 건전한 신학을 수립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목적을 가지고 오늘 다시 한번 한 단어를 공부하겠습니다.
예순여섯 번째 시간으로, 사사는 무엇을 하던 사람인가 연구해 보겠습니다. 성경에 사사기라고 하는 책이 있고, 거기에 한 12명의 사사들이 활약합니다. 그들은 도대체 무얼 하던 사람들인가 대체로 다 아십니다만, 좀 더 성경적으로 또 언어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지 함께 공부해 보겠습니다.
먼저 이 사사라는 말이 성경에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한번 보겠습니다. 사사라는 단어가 개역한글판(제가 지금 사용하는 성경입니다. 여러분 대부분이 사용하고 있죠)에는 30개 절에 나와요. 그런데 어떤 절에는 두 번 사용되었기 때문에 총 32회 나타나고, 그보다 후에 나온 개정개정판에는 26개 절에 28회 나타납니다. 왜 이렇게 다를까요? 번역하는 사람들이 좀 다르게 번역했기 때문입니다. 개정개정판에서는 민수기 25장 5절, 시편 148편 11절, 이사야 1장 26절에서 이 사사를 '재판관'으로 번역했습니다. 히브리어 똑같은 단어를 개역한글판에서는 이 세 곳에서 사사라고 했는데, 개정개정판에서는 사사를 재판관으로 번역했고, 사사기 13장 31절에서 개역한글판에는 있지만 원문에는 없는 단어인 사사를 개정개정판이 빼버렸습니다. 그래서 개역한글판의 32회에서 4회를 빼니까 28회가 된 것입니다. 복잡한 걸 꼭 알 필요는 없지만 제가 단어의 용례를 살펴보니까 가운데 이런 차이가 있던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사기에서 주로 사용된 사사라는 원어는, 우리말로는 명사잖아요. 그러나 사사라는 말이 원어에서는 명사보다는 동사로 쓰인 경우가 꽤 많습니다. 약 절반이 동사의 형태인 '샤파트(Shaphat)'라는 동사인데, 동사의 뜻이 뭐냐 하면 재판하다, 심판하다, 다스리다, 사사 노릇하다입니다. 이 히브리어 동사 샤파트는 구약의 마소라 사본(앞에서 공부했습니다. 구약의 사본 가운데 가장 권위 있는 본문을 마소라 본문이라고 했어요)에 141회 사용되었고, 이 단어 샤파트에서 파생된 명사 등을 다 합치면 170회 이상 나타납니다. 다스린다 또는 지배한다, 심판하다는 뜻에서 나온 명사, 즉 다스리는 자, 심판자, 재판장을 다 합치면 이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국어로는 이 샤파트가 재판하다, 심판하다, 판단하다, 판결하다, 신문하다, 국문하다 등으로 번역되었습니다. 문맥에 따라서 여러 단어로 비슷하지만 다양하게 번역되었는데, 보십시오. 재판, 심판, 판단, 판결 등 '판(判)' 자가 많이 들어가죠. 그 다음에 또 '심(審)' 자나 '문(問)' 자가 들어가는 심판, 신문, 국문이라는 말이 많이 들어갑니다. 다 물어서 답을 끌어낸다는 뜻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분사형으로 '재판하는', '심판하는'이 되는데, 히브리어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이 분사가 명사로 사용된다는 점입니다. 심판하는, 재판하는이라는 분사가 아무런 변화 없이 그대로 심판하는 사람, 재판하는 사람으로도 사용돼요. 이것이 히브리어의 특징 가운데 하나입니다. 영어는 그렇지 않아요. 영어는 가령 달린다(Run)의 분사가 러닝(Running, 달리는, 달리고 있는)이지만, 달리는 사람이라고 하려면 뒤에 사람을 붙이거나 러너(Runner)라고 다르게 써야 합니다. 하지만 히브리어는 샤파트가 '쇼페트(Shophet)'가 되면 '심판하는/재판하는'이라는 분사도 되고 '심판하는/재판하는 사람'도 됩니다. 이것이 분사형으로서 사람을 가리킬 때는 재판장 또는 사사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래서 단수는 쇼페트(Shophet)이고 복수는 쇼페팀(Shophetim)입니다. 재판자들, 사사들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분사형의 명사가 재판장을 뜻하는지 또는 사사를 뜻하는지는 문맥과 그 시대를 보고 판단할 것입니다. 사사 시대 전후에 전혀 사사가 없던 시대에 나오는 것은 재판장이 되는 것이고, 사사 시대에 나오는 것은 사사가 됩니다. 히브리어는 똑같지만 그런 특징이 있습니다.
자, 이 히브리어 동사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간추리면 한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재판하다/판단하다(to judge)는 뜻이고, 둘째는 정죄하다/처벌하다(to condemn)는 뜻이 있으며, 셋째는 다스리다(to rule)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것이 더 적합한 번역어가 될지는 문맥에 따라 역자가 선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까 보시다시피 개역한글판에는 사사라고 했는데 개정개정판은 재판장으로 바꾸기도 하여 나타나는 횟수가 다르게 된 것입니다. 이 동사 샤파트의 현재분사형 쇼페트가 명사로 사용될 경우에 재판장, 사사로 번역되는 것입니다. 방금 설명한 바와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말 '사사'라는 말은 어디서 왔을까요? 재판장이나 재판관은 흔히 세상에도 많이 있으니까 우리가 금방 이해하지만, 사사라는 말은 일상에서 들을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우리말 사사가 어디서 왔는지 오늘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이 사사(司寇)라는 말은 고대 중국의 감옥을 다스리는 장관을 가리키는 칭호였습니다. 아주 옛날, 고대에 감옥을 관장하는 아주 높은 장관이었습니다. 그러한 용어가 이미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성경을 중국어로 번역하는 사람들이 히브리어 쇼페트를 번역할 때 이 단어를 차용했습니다. 백성을 어려움에서 무찌르고 인도한 그런 사람을 뭐라고 번역할까 고민하다가, 꼭 재판장인 것은 아니잖아요. 재판도 하긴 하지만 재판장은 법원에만 있는데, 이들을 뭐라고 할까 하다가 사사(司事)라는 말을 차용하여 쓰게 되었습니다. 중국어로는 '시시'처럼 발음합니다. 그러므로 사사들의 활동을 기록한 책을 사사기라고 일컫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사사기라 그러고 중국 성경에서도 사사기라 그럽니다. 중국 발음은 달라도 한자가 똑같습니다. 중국 사람들이 사사라는 말로 사사기에 나오는 그 영웅들을 번역한 이후로(중국어 성경에 먼저 번역됐어요), 그 후에 성경을 한국어와 일본어로 번역하는 사람들이 이 단어를 그대로 차용했습니다. 동양 삼국이 한자를 공용하는 그런 문화권의 사람들로서 때때로는 참 편리합니다. 먼저 쓴 사람들이 만든 단어를 갖다 빌려 쓰면 되니까요. 하지만 또 어려움도 있습니다. 그 사람들의 역사적인 맥락이 우리하고는 관계가 없는데 그렇게 번역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사라는 단어의 한자를 보십시오. '선비 사(士)' 자에 '스승 사(師)' 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마치 사사는 선비나 스승과 같은 사람, 즉 학자나 교사로 생각되기 쉽습니다. 저도당당히 나이가 들기까지 사사라는 말의 정확한 뜻을 몰랐어요. 사사기라는 이름이 이상했습니다. 내용을 보니까 선비도 아니고 학식 있는 사람도 아니고 교사도 아닌데 사사라고 하니까요. 나중에야 그 유래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공동번역은 이 사사라는 말이 선비도 아니고 스승도 아니기 때문에 '판관'으로 번역했고, 한글 킹제임스 성경은 '재판관'으로 고쳐서 번역했습니다. 사사라는 말을 다 지워버린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사사라는 한자가 풍기는 뉘앙스와 다른, 본래의 의미에 더 가까운 말이 되겠죠. 그래서 공동번역에서 사사기는 '판관기'로 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출애굽기 내려가다가 사사기는 판관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그토록 자주 나타나는 이른바 사사들은 과연 무엇을 하던 사람인가, 그 하는 역할은 무엇이었는가 보겠습니다. 사사는 이스라엘의 지도자 여호수아가 사망한 후부터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등장할 때까지 하나님에 의해 세워진 이스라엘의 군사 및 치안 지도자였습니다. 여호수아는 출애굽 때의 지도자 가운데 모세가 죽고 가나안에 들어올 때 백성을 끌고 들어와서 땅을 다 분배하고 나이가 많아 110세에 죽지 않습니까? 여호수아가 죽은 후부터 사울 왕이 등장할 때까지의 치안(Security), 즉 외부가 침략할 때 물리치고 편안하게 지켜주는 역할을 잘해 낸 지도자들입니다.
이 사사를 뜻하는 히브리어 쇼페트(복수는 쇼페팀), 그리고 헬라어 크리테스(Krites)는 원래 재판장(Judge), 지배자(Ruler)라는 뜻으로서 사람들 사이에 생기는 분쟁과 소송을 해결하는 심판관이었습니다. 그래서 판관이라고 한 말이 좀 더 어울리는 말입니다. 사사는 내력을 알고 보면 그렇겠다 싶긴 하지만, 한자의 구성이 '선비와 스승'이다 보니 오해하기 쉽지만 본래 그런 재판과 통치의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사사의 영향력이 정치와 군사적으로 확대되었고, 무엇보다도 이스라엘을 위기에서 구하는 구원자로서의 성격이 강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아직 왕조가 성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외부의 침략이 자주 있었습니다. 암몬, 모압, 블레셋 등이 자꾸만 괴롭히고 오랫동안 지배하니까, 이에 맞서 싸우는 장군으로서 점점 정치와 군사적으로 세력이 확대된 것입니다.
그 당시 사사기의 형편을 아주 잘 요약하는 성경 구절이 사사기 21장 25절에 나옵니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왕이 없으니까 제멋대로이고 법이 없었습니다. 무정부, 무질서, 무법천지의 혼란한 상태였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얼마 동안 했느냐 하면 약 350년 동안이었습니다. BC 1400년경에 가나안에 들어와서 BC 1050년경 사울 왕이 세워질 때까지, 이 350년 동안 편안하다가 또 지배당하고 하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우리 일제 36년도 긴데 그 거의 10배에 달하는 350년 동안 참 무질서하게 지냈습니다. 그때에 12명의 사사들이 활동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 보십시오. 그림이 좀 흐려서 잘 안 보이지만, 12명의 사사들의 기록된 특징을 반영하여 그린 그림들입니다. 온니엘도 있고, 왼손잡이 에훗도 있습니다. 또 딸을 바쳐야 했던 입다의 장면도 있고 입산, 엘론, 압돈, 삼손 등등 사사의 특징적인 면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확실하게 사사로 활동한 12명의 이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온니엘, 2. 에훗, 3. 삼갈, 4. 드보라, 5. 기드온, 6. 돌라, 7. 야일, 8. 입다, 9. 입산, 10. 엘론, 11. 압돈, 12. 삼손입니다. 이 외에도 사무엘도 사사라고 칭해지고 그의 아들들도 사사로 불렸지만, 공식적인 사사 명단에서는 보통 이 12명을 꼽고 있습니다.
여기 보시면 사사기의 사회상, 즉 국가와 민족의 형편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잘 나타내는 사이클(주기)이 있습니다. 사사기의 사이클은 자꾸자꾸 돌았습니다.
여기 왼손잡이 사사 에훗이 나옵니다. 왼손에 좌우에 날 선 칼을 들고 서서 모압 왕 에글론을 찌르는 장면이 사사기 3장 12절에서 30절에 나와 있습니다. 여기 보시면 다 아실 것입니다. 에훗이 칼을 들고 왕에게 나아가는 장면입니다. 이 모압이 이스라엘을 쳐들어와서 조공을 많이 받아 갔습니다. 곡식 등을 하도 무자비하게 긁어 가니까, 조공을 가지고 가서 바치고 돌아오는 길에 자기와 함께한 사람들은 먼저 보내고 자기는 도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에글론 왕에게 가서 "왕이시여,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밀한 기별이 있어서 왔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고는 자기 오른쪽 다리 속에 감추었던 칼을 왼손으로 빼서 왕을 찔러 죽여버립니다. 얼마나 못되게 굴었으면 이렇게 앙갚음을 당했겠습니까? 그러고 나서 모압의 멍에로부터 이스라엘이 벗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삼갈이라고 하는 사람이 블레셋 사람을 쳐 죽이는 장면입니다. 삼갈은 소 모는 막대기 하나로 블레셋 사람 600명을 죽였습니다. 중세 독일의 원고에 있는 그림인데 그대로 따왔습니다. 또 이 가운데 있는 분은 누구입니까? 드보라와 바락입니다. 그리고 이분은 야엘이라고 하는 여인인데, 원수 시스라를 말뚝과 망치로 그의 관자놀이를 박아 죽이는 장면이 사사기 4장에 나오죠. 드보라와 바락이 정말 합동해서 원수를 물리치는 장면, 그리고 나서 부르는 아주 장쾌한 드보라의 승리의 노래가 4장과 5장에 있습니다.
그 다음에 여기는 다 아시겠죠? 기드온의 300勇士들입니다. 항아리 속에 횃불을 감추고 나팔을 들고 있는 모습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블레셋 사람들의 신전을 두 팔의 완력으로 기둥을 무너뜨림으로써 사생결단하여 3,000명이 죽게 했던 삼손입니다. 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입다가 있습니다. 입다는 적군을 물리치게 해주시면 내가 평안히 돌아갈 때 나를 맞이하러 나오는 첫 번째 사람을 하나님께 번제로 바치겠다고 서원했습니다. 개선장군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니까 소고를 치며 기쁘게 맞이하러 나오는 사람이 다름 아닌 그의 외동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딸을 어떻게 처치했는지에 대한 해석은 학자마다 좀 다르지만, 입다라고 하는 사사의 슬픈 모습이 전해집니다.
오늘 우리는 '사사는 무엇을 하던 사람인가'라는 제목 하에 사사들의 정체와 그들의 역할, 그리고 그 칭호가 왜 사사인지에 대해서 잠시 살펴보았습니다. 다음에 사사기를 읽으실 때 '사사는 이런 사람들이었구나' 하고 읽으시면 더 큰 유익을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다음 시간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