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곳에든지
매 5월달에는 각종 푸짐한 문화 행사가 많이 열립니다
벚꽃이 필 무렵부터 열리기 시작하는 지역별/도시별 향토문화 축제는
5월 달에 피크를 이루게 되지요
가을에 하는 지방도 있습니다만
암튼
지난주 인천시 부평에서는 2004(제5회)부평풍물대축제가
2004. 5. 19∼23까지 열렸습니다
23일 일요일이 피날레였는데
마침 기회가 되어 맘껏 즐기고/보고 왔드랬습니다
부평역에서 옛날 북구청까지 약 1 Km거리를
차량 통제하고 풍물을 소재로 한 문화행사 거리로 꾸며놓았는데
예산 좀 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푸짐하게 잘 준비를 했드랬습니다
17년 전 그 곳 부평에서
조그만 중소기업에 다닐 적에 그 곳에서 살았었는데....,
'86년 여름 민주화 운동의 한 굵은 마디를 이룬
소위"6월 항쟁"으로 시끄러울 때였습니다
"6.29선언"(체육관 선거인 호헌을 철폐하고 대통령을 직선제로 선출하겠다는 노태우 선언)을 받아 내기 위한 대학생들의 시위장소였고
DJ와 YS의 신민당 창당 방해사건(일명,용팔이 사건)의 현장이기도 하였습니다
그 대로에는 저녁때만 되면 최루탄으로 뒤 덮여 통행이 불가 하였드랬습니다.
※ 용팔이 사건
1987 총선 전에 DJ와 YS의 신민당과 군부세력인 민정당과 의
정치적 싸움의 한 사간으로, 민정당의 전두환 노태우 측에서
이제 막 뜨고 있는 DJ와 YS의 신민당의 민주 세력을 말살하기 위하여
각 지역구 신민당 창당대회를 하는 곳에
깡패 김용팔과 그 부하들을 돈을 주고 사주하여
창당식 직전에 몽둥이(야구 방맹이)와 흉기(칼,낫)등 휘둘러
당사를 지키는 청년당원들을 폭력으로 몰아내고
유리창을 부수고 머리띠를 두르고 몽둥이를 휘둘러 깽판을 치며
허리춤에 부엌칼을 꽂고서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며 농성함으로써
신민당 창당을 원천적으로 봉쇄하여
말썽이 많았던 사건,
당시 많은 경찰 병력이 미리 출동하여 있었음에도
묵시적/방관으로 일관하여
보는 시민으로 하여금 욕이 저절로 나오게 하였음,
나도우연히 이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는데
험악하게 생긴 용팔이가 칼을 허리춤에 차고
대갈일성 욕설하고, 협박하고, 부수고, 사람을 패고 하는걸 직접 목격했었습니다
잘 정비된 도로와
10여 년 사이에 쭉쭉자라난 빌딩
그 당시 가장 높았던 건물들도 이젠 초라한 모습으로 왕년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이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했던가 봅니다.
보도 블록이 다 파헤쳐지고
돌멩이와 최루탄 전쟁터였던 거리가
세계의 민속공연 팀들을 초청하고 풍요를 만끽하는 축제의 거리로 바뀌었으니
세상은 오래 살고 보아야 할 가치가 충분히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풍물에 관심이 많았으므로
특히 독특한 창작품으로 우리 풍물을 이끄는
전국학생 풍물경연대회를 구경하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좀 싱거워서 그렇고 고교는 정말 볼만합니다.
특히 지방에서 종합고교나 정보고가 많이 참가하였는데
남녀공학인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풍물패도 47명씩이나 되었고
동원된 잡색들의 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잡색
바랑을 메고 삿갓에 박자 안 맞는 목탁을 치는 땡중.
호피 조끼에 호피모를 쓰고 총을 든 포수,
도포자락에 갓을 쓰고 긴 수염과 곰방대를 들고 어그적 거리며 걷는 양반,
꿩털을 갓에 달고 빨강 파랑 관복을 입은 원님과 ,
패랭이를 쓴 상놈 ,꽃 부채를 든 기생 ,
그리고 청순한 한복에 긴 홍청 자락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춤을 추는 색시....등으로
분장하여
풍물패의 뒤를 따라다니며 춤을 추거나
온갖 재롱을 피워 흥을 돋우고
객이나 굿을 해준 주인이 준 금품<일명 걸립>을 걷기도 하는 역할를 함.
호남지방에서는 군산여자상고, 김제덕암 정보고, 광주 종합정보고가 나왔는데
역시 판소리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악의 고향 출신답게
타 지역학생들과는 실력적으로 단연 앞섰습니다.
여학생들의 공연은 부드럽고
잘근잘근 씹는 맛이 일품이었고
남학생들의 공연은 선이 굵고 웅장 담대하여
그 기세가 공연장을 들썩이게 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천지를 흔드는 우렁참이 풍물의 참 멋 아닙니까?
아직
솜털이 채 가시지도 않은 1∼2학년 학생들의 앳된 모습이었지만
연습을 많이 한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특히 광주종고의 작품은
세계의 공연장에 놓고 보여주고 싶을 정도로
정교하고 참신하고 정성이 잔뜩 들어 있는 공연이었습니다
퉁수(나발)를 부는 나발수만도 4명이나 되었고
특히 학교 자랑을 하려는 듯 이쁜 학생들로만 잡색을 선발하여
보는 이들의 기분을 흐믓하게 하였습니다
거믓거리는 콧수염이 제법 자란 남학생들의 어깨에 올라서서
춤을 추는 무등놀이는 보기 좋았습니다.
군더더기 없고 깔끔한 공연은 참 멋드러졌습니다
어떻게 하여
중학교 시절에 금마의 금마 중고등학교 에 가게 되었는지 잘 모르지만
금마에서 거행되던
"마한제"란 축제가 생각 납니다
동네에서 가장 굵고 긴 대나무를 잘라다
맨 꼭대기에는 꿩털을 동그랗게 말아 한껏 뽐을내고
머리에 흰천을 불끈동여맨 어른들의 어깨위에 올라서
족두리를 쓰고 춤을 추던 어린애들이 생각납니다
전국 노래자랑 라디오 프로 녹화도 하였는데
프로 중간에 하는 선전내용이 그대로 방송되는게
참 신기하였습니다
나도 라디오에 녹화하는 장소에 있었다는 뿌듯함이 좋아서
꼭 그 프로가 시작되는 시간이면
언제 "금마 마한제"때 녹화 한것이 나오나 기다리던 생각이 납니다
지금도 여전히 마한제가 열리는지 모르겠지만
중학생시설 어린 나이에
학교 운동장 가득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축제를 벌이는 것을 처음으로 보았으니
얼마나 감동이 되었으면
그 즐거웠던 추억이 강렬하게 남아 있겠습니까?
어른들은 다 쇠하시고(더러는 돌아가시고)
명절 때나 읍민, 면민 체육대회 때
그런 축제들이 아직도 고향에서 열리고 있으며
그 가락과 맥이 이어져 내려오고 또 전수되고 있는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동네 어른들이 치는 가락이래야
질굿(걸어가며 치는 가락)이나 풍류굿(3채)두가지 뿐이고
풍물(풍장)의 기물이래야 깽괴리(깽매기),징,장고(장구),북 각 한 개씩에 불과하지만
우리민족 정서를 자극하고 흥을 돋우게 하는 민속놀이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공동체의식을 함양하고
단결케하고
이웃으로서의 정을 확인하는 풍물놀이야 말고 잊혀져서는 안될 소중힌 우리의
문화유산이 아닐수 없습니다
우리 마을에도 희미하게 이어져 오는 그 맥을 잇기위하여 조그만 노력을 해보지만 잘 되질않아 안타까운 맘 금할길이 없습니다
깽매기가 앞서서 죽께!주께!주께!주께!~, 죽께!주께!주께!주께!~ 하면
장구가 따라서 "줄똥~ 말똥~, 줄똥~ 말똥~ 뒤를 잇고
맨 뒤에서 황소 울음 울 듯
징이 "주어라!~ 주어라!~ 한다고
가르치던 풍물가락 선생님의 찐한 농이 섞인 재치가 생각납니다
우리가 환갑을 넘어 동창회라도 하게 되면
그 풍장 한 번 울리어
어릴적 느끼던 그 맛깔스런 가락은 아닐지언정
우리들 마음 밑면에 잠자는 흥을 깨우고 느끼고 해 보기로 해요
풍장 한 번 칩시다
뚫어라! 뚫어라! 물구녕을 뚫어라!
물주쇼! 물주쇼! 용왕님네 물주쇼!
샘굿이나 정지굿 장독굿 그 모든 소리는 다 기억나지 않지만
덩~더덩~, 덩~더덩! 더덩덩~ 쿵딱!
이집 저집을 돌아다니며 치던 질(길)굿....,
가락이 귀에 들리는 듯 합니다
저 앞마을에서 방앗간 방아 찧는 소리와 함께
어루러져 퍼지던 풍장소리 다시 듣고 싶습니다.
* html 편집기가 난 왜 실행이 안되나요?
html 편집기 도움말만 뜨고요
주인장님 도와 주세요
2004.05.27 ,,,김범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