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아빠 해주세요
190924 다시 아빠 해주세요.hwp
2019.09.24. 임윤택
“내 자유를 뺏어간 건 따따이라구요. 저한테 왜 쓸데 없이 큰 가능성을 바라셨어요? 결국 이렇게 되어버렸는데.... 저는 단 한 번도 따따이를 아빠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아예 처음부터 몰랐던 사이처럼 다시 밝은 모습으로 만날 날 같은거 기대하지 마세요.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안 볼거니깐..... 도움 따윈 필요없으니깐 제발 내 인생에서 사라져 주세요. 왜 저를 진심으로 위하고 걱정을 해요? 그딴 감정들도 필요없으니깐 낭비하지 마시고요. 저 말고 다른 애한테나 그러세요. 내가 어떻게 살든 내 인생이니깐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세요. 이젠 내 인생에 나타나지 마요. 알아서 살거니까요”
얼어붙은 땅도 녹아내리고 꽃이 피며 생기가 돋는 어는 봄날. 따따이는 소년원에서 온 편지를 한 통 전해 받았다. 편지를 보낸 아이는 지원이였다. 지금껏 둥지를 거쳐간 수 많은 아이들 중 가장 마음이 아린 녀석 중 하나이다.
지원이의 부모님은 지원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이혼하였다. 사업실패 후 가정을 외면한 채 바깥을 떠돌며 알코올 중독자가 된 아버지와 이단 종교에 빠져 광적인 신앙생활을 하던 어머니마저 집을 나가 소식이 없었다. 지원이는 부모님이 이혼한 후 언니 2명과 함께 생활했다. 가끔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오는 아버지는 딸들에게 폭행을 휘둘렀다. 이를 못 견딘 큰 언니가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자 독립을 선언하고 서울로 직장을 구해 먼저 떠나버렸다. 고등학생이던 둘째 언니마저 가출하여 집에 안 들어오는 날이 잦아지면서, 아직 중학생으로 어렸던 지원이만 홀로 남았다. 거의 매일 술 냄새를 잔뜩 풍기며 들어오는 아버지와 단 둘이 있는 시간이 견디기 힘들만큼 너무 싫었다. 결국 지원이도 가출을 하기 시작하였고 거의 1년 정도 가출팸들과 생활하며 지내다가 돈이 없으면 편의점에서 음식을 훔쳐 먹기도 했는데 결국 발각되게 되었다. 그 절도사건으로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따따이가 국선보조인을 맡으며 처음 만나게 된 것이었다.
분류심사원에 위탁되어 있는 지원이에게 따따이는 물었다.
“그래도 이 곳에 갇혀 있는데 아버지에게 연락은 해야 되지 않겠니? 연락처 아니?”
“아뇨. 아빠는 제게 신경 안 쓸꺼예요. 그동안도 아무런 관심이 없었어요”라고 아버지에 대해 단호하게 대답하던 지원이였다.
“저는 가족여행을 꼭 가고 싶었어요”
“있잖아요. 우리 가족 모두가 모여 함께 밥 먹은 기억도 없어요”
“그동안 아빠가 술 먹으면 때리고 망치나 칼로 겁주고 그랬어요. 집에 아빠와 둘이 함께 있으니 너무 싫어서 가출한 거예요. 그때 가출한 친구들을 만나게 되어 같이 생활하게 되었구요”
“그동안 언니와 한번 같이 집에 가서 아빠를 만나 적이 있어요. 몇 달 만에 갔는데 그 날도 아빠는 아무 말도 안했어요. 언제나 뭐라고 말을 전혀 안하고....... ”
“언니들이 집을 나간 후에는 술을 마셔도 폭력은 별로 하지 않았지만... 아빠는 보기도 싫어요”
재판을 앞두고 있지만 지원이의 보호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던 중 어렵게 지원이의 둘째 언니와 연락이 되었다. 고등학교 때 가출하여 이제 20살이 된 그 언니를 통해 들은 말은 더 충격적이었다.
“아버지가 알코올중독 증상이 있어 술을 먹고 집에 들어오는 거의 매일 밤마다 난리가 났죠. 큰 언니와 저 그리고 지원이까지 세 딸을 마구 때렸어요. 주로 막대기로 종아리나 등을 때렸고 머리채를 잡기도 했죠. 가끔은 망치나 칼을 들고 위협하면서 겁을 주어 우리 세 명은 바깥으로 도망 나갔다가 아버지가 잠이 들 때 쯤 들어오기도 했어요”
그리고 어렵게 말을 이어갔다. “특별히 나는 엄마와 많이 닮았다는 이유로 제일 많이 맞았어요. 새벽에 술 취한 아버지가 잠이 들면 집에 들어갔고, 아침에 아버지가 일어나서는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하러 나갔어요. 전날 밤에 대해 아무런 말이 없는게 저는 이해가 되지 않고 너무 싫었어요”라고 하였다.
둘째 언니의 기억으로 “아버지는 술을 마치면 폭력을 휘두르고, 술을 안마시면 말이 전혀 없어 대화나 소통이 안되는 분이었죠. 거의 매일 술을 마셨어요. 아버지는 술 마시고 들어오고 때리다 자고, 우리는 자다가 맞고 도망가는 것이 일상이으니깐요”라고 아픈 가족사를 전해주었다. 그리고 둘째 언니는 스무살의 이른 나이지만 동거 중인 남자와 곧 혼인신고할 예정으로 임신 중이어서 지원이를 돌볼 여력이 안된다는 것이었다.
지원이의 재판날이 다가올수록 따따이는 어떤 처분의견을 적어야 할지 막막해지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원이 둘째 언니의 남자 친구로부터 급히 전화가 걸려 왔다.
“선생님! 언니가 집을 나가 문제가 생겼어요. 혹시 선생님께 연락온 것이 없습니까?”
“아뇨. 제게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습니다만.....”
“선생님! 이제야 이야기인데... 이 집안 사람들 다 골치 아픕니다. 그 전에도 이런 일이 자주 있어서 마음 잡으라고 혼인신고를 하자고 했는데..... 언니나 아버지나 모두 무책임 한 것이 집안 내력인 것 같습니다. 저도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는 것이었다.
결국 지원이는 보호자 없이 홀로 법정에서 재판을 받아야 했고 판사님은 안정된 환경에서 생활하면서 학교도 다시 다닐 수 있도록 둥지센터 처분을 내렸다. 그리고 국선보조인이었던 따따이와 함께 둥지센터에서 지내게 되었지만, 가출이 습성화된 지원이는 센터를 이탈하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시설내처우인 6호 처분을 받고 아동치료보호시설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 곳에서 일주일에 한 번 주어지는 전화시간에도 지원이는 전화를 걸 사람이 없었다. 그때마다 지원이는 생각나는 사람이 따따이 밖에 없었다. 그렇게 따따이에게 전화를 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주절주절거렸다. 그 곳에서의 시간이 지나가도 지원이의 상황은 악화되었다. 아버지는 노숙인이 되어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알코올 중독병원에 입원하였으나 당뇨합병증으로 다리까지 절단하여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다고 하였다. 집을 나간 어머니는 계속 연락이 되지 않았기에 지원이를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느 날 가을 지원이의 생일에 따따이가 그 곳을 찾았다. 지난 주 전화통화에 “저 다음 주 생일이예요. 축하하러 와주실거죠?”라는 말이 마음에 걸려서였다. 좁은 면회실에서 생일케익에 불을 붙이고 지원이를 향해 따따이 혼자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주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지원이~~~ 생일 축하합니다~~~~” 이렇게 서글픈 생일 축하노래가 있을까 싶을 정도였지만 지원이는 흐르는 눈물을 닦고 “감사해요. 저 이제부터 진짜 잘 살거예요. 기대하셔도 되요”라고 약속하며 함께 웃던 생일이었다.
그리고 6개월간의 6호 처분 이후 따따이는 지원이를 위해 따로 원룸을 마련해주고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잘 지내기로 손가락을 걸고 약속하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곳에서도 지원이는 도망가 버리고 다른 비행에 연루되다가 보호관찰소에서 구인장이 발부되어 다시 도망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재판을 받아 가장 중한 10호 처분으로 2년간 소년원에 가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잔뜩 독이 올라 원망과 저주가 가득한 말을 편지에 가득하게 써서 따따이에게 보냈던 것이다. 따따이는 한 순간 그 동안의 노력과 수고가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아 온 몸에 힘이 빠졌다. 그렇게 안타까운 마음만 품고 시간을 흘러갔다.
유난히 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되었다.
세찬 비바람이 몰아쳐 태풍 경보까지 내려진 날 오후. 따따이에게 다시 편지가 왔다. 자기 인생에 나타나지 말라며 원망을 쏟아낸 지난 번 편지 때문인지 따따이는 무거운 마음으로 지원이의 편지를 열어보았다.
“어.... 안녕하세요..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먼저 죄송해요. 지난 번 편지에 너무 모진 말들만 썼죠. 정말 힘든데 쏟아낼 때가 없어서 그랬나봐요. 솔직히 들어온지 얼마 안됐을 때 편지 받고 많이 울었어요.... 저 여기 오면 아무도 찾아와 줄 사람이 없다는거.. 많이 힘들고 외로울거라는거 아시잖아요? 그렇게 목 맸던 친구들은 8개월 째 소식이 없고 면회 오는 사람도 없고 혼자 버티려니깐 너무 버거워요. 저 진짜 잘못 살았나봐요.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그렇게 조심스럽게 적어 내려간 지원이의 편지를 읽다가 따따이는 그만 마음이 멎는 듯 했다.
“따따이를 진짜 아빠라고 생각했었어요. 가족보다 더 보고 싶은 사람이었어요. 내가 이렇게 모질게 굴어도 따따이는 달래주실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했어요. 죄송해요. 진짜 죄송해요. 따따이는 저를 많이 도와주셨는데 은혜를 갚지도 못할망정 상처를 드려서 죄송해요. 제발 저 여기서 혼자 힘들어하게 하지 말아주세요. 따따이. 다시 아빠해주세요... 작년에 가족도 안 챙겨주던 제 생일날 바쁘신데 와주시고 그랬는데.. 아빠보다 더 아빠같이 생각했었는데 제가 왜 그랬을까요? 죄송해요. 아빠. 그리고 보고 싶어요”
따따이는 진하게 커피를 한 잔 내려 마시면서 창가에서 바깥을 내다 봤다. 어제 폭우와 강풍을 동반한 태풍이 우려한 것보다는 큰 피해가 없이 비켜갔다. 아침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화창한 날씨에 밝은 태양이 떠올랐다. 따따이는 모진 비바람을 겪은 지원이의 짧은 인생 같아 괜히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지난 번 그렇게 심한 말에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이렇게 편지 한 장에 다시 마음이 녹아내리는 것이다.
‘이제 태풍이 지나갔으니...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찾겠지. 다음 주엔 녀석을 만나러 가야겠다’ 이제 며칠 후면 지원이의 생일. 다시 서글픈 축하의 노래라도 불러주러 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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