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나무
신일수
ilsooshin@hanmail.net
가로수라고 하면 흔히 플라타너스나 버드나무가 자리매김한지도 꽤 오래인 듯싶다. 긴긴 여름날 따가운 햇살을 머리에 이고, 뽀얀 먼지를 둘러쓰고도 말없이 그늘을 드리우며 삶에 찌든 우리네 민초들에게 휴식과 위안을 보내주곤 했다. 생각해 보면, 이 두 가로수는 오래 동안 우리들과 친숙해진 것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다 성장을 꾸민 잎들을 하나 둘 떨 구워 내고 침잠하는 시간이 오면, 그 고마움을 깡그리 잊은 채 가지치기라는 미명하에 온몸이 무참히 수난을 당해도 변함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봄이 오기가 무섭게 이내 새싹을 틔우고 가지를 뻗어내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우리들과 삶의 애환을 같이 하면서 언제나 우리들 곁에 서성대기를 즐겨 했다.
그러다가 길이 포장되고 초가집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모두가 일어서 잘 살아보자고 외치는 소리가 드높아 지면서, 예 섰던 그 자리에 푸른 장막을 두른 철갑옷으로 중무장을 한 히말라야시다라는 낯선 점령군에게 한동안 그 자리를 물려주더니, 지금 그 점령군조차 흔적 찾을 길 없으니 격세지감이 든다.
이에 뒤질세라 그 뒤를 이어 은행나무가 등장하더니 지금까지 변함없이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은행나무를 두고, 중국 사람들은 당대當代에 심어 손자 때에 가서 결실을 거둔다는 뜻으로 공손수公孫樹라 일컫기도 한다. 이 나무는 원래가 교목성이라 높이 자라는데다, 성장속도가 빨라 널따란 공간이 제격이라 할 수 있는데, 사람들은 타고난 성정은 아랑곳 하지 않고 기호에 따라 가까이 두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어딜 가나 대부분의 가로수가 은행나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아무래도 도심지의 가로수로서는 무리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지닌 본래의 성정을 상실한 아픔도 크겠지만, 여기저기에서 쉴 사이 없이 품어 나오는 온갖 매연과 시멘트로 얼룩진 좁디좁은 공간에 터를 잡아, 버티고 서 있는 걸 보면 대견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쓰러운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고도로 발달된 문명과 끊임없는 인간의 욕망 앞에 환경은 점차 파괴되고, 지구의 온난화는 가속화되고 있다. 국립생물자원관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한반도의 난대성 상록활엽수 48종의 생육지를 조사한 결과, 지난 60년 동안 모든 조사대상 식물의 북방한계선이 14에서 74km까지 북쪽으로 이동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결국 난대성 식물이 점차 북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근한 예로 상록 활엽수인 보리밥 나무와 후박나무는 60년 전에는 전라북도 어청도까지만 자랐지만, 지금은 인천 백령도와 덕적군도에서도 관찰 된다고 한다. 사과 주산지가 북쪽으로 점차 이동하고, 제주도에서만 생산되던 감귤 농사가 내륙지방에서 재배되는 것만 봐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늦었지만, 이런 변화의 바람을 타고 이 땅에 배롱나무가 요즘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시작했다. 배롱나무는 오래 전부터 남부지방에서 사찰이나 비교적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무덤가나 재실, 사당 근처를 지키면서 남녘 사람들과 애환을 함께 해 온 민속수라 할 수 있다. 흔히 이 나무를 일컬어 슬프고도 짙게 백일 동안 꽃을 피운다고 하여 백일홍百日紅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처럼 한 나무가 오랫동안 그것도 백일 동안이나 꽃을 피우는 경우는 아주 드문 일이다. 나무가 꽃을 피우는 작업이란 알고 보면,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손을 번식하기 위한 본능적인 것이며, 적당한 시기에 적당히 번식할 만큼만 꽃을 피우면 그만인 것을 그들 자신은 잘 알고 있다.
배롱나무 역시 번식하기위해 꽃을 피우긴 하지만, 방법이 다른 나무들과는 좀 다르다. 대부분의 나무는 거의 같은 시기에 꽃을 피워 스스로가 맡은 의무를 다한다. 그러나 배롱나무는 꽃을 피우기 위해 철저하게 분업체계를 갖추고 있다. 그것은 백일 동안 쉼 없이 꽃을 피워 내야만 열매를 맺기 때문에, 피웠다지고를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끊임없이 열정을 토해 낸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우리들이 부르고 있는 배롱나무란 이름은 단지 백일홍을 우리말로 바꾼데 지나지 않고, 나무의 특성을 이해하는 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러고 보면, 백일홍이란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흰 배롱나무, 보라색배롱나무, 연분홍배롱나무 등 꽃 색깔이 너무 다양하다.
근래에 들어와 가로수나 정원수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배롱나무가 갑자기 각광을 받기에 이르렀다. 특히 남부지방 곳곳에 지금 배롱나무 식재가 한창이다. 가로수나 공원 등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 배롱나무가 심어져 있음을 본다.
부처 꽃과의 이 배롱나무는 다른 나무와는 달리 껍질이 없다. 물론 대나무도 껍질이 없는 건 마찬가지지만, 배롱나무는 껍질이 없으면서도 대나무처럼 속이 비어 있지 않고 꽉 차있다. 재주 많은 원숭이도 이 나무에 오르기 위해 애를 쓰지만 미끄러질 정도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이 나무를 두고 ‘사루스베리’ 즉 ‘원숭이가 미끄러지는 나무’라 부르기도 한다.
얼핏 보아 껍질이 없어 다소 밋밋한 것 같지만, 나뭇결이 곱고 재질이 단단해서 여러 가지 세공품을 만들기에도 좋고, 고급가구나 조각품, 장식품을 만드는데 귀하게 쓰일 뿐 아니라, 겉과 속이 다른 존재보다 겉과 속이 일치하는 존재로 예로부터 선비들 사이에 고고한 기질과 품성을 갖추고 있다하여 일편단심一片丹心의 상징으로 통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마음을 배롱나무를 통해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따뜻한 남쪽에서만 볼 수 있던 배롱나무가 훈풍을 타고 올라가 지금은 강원도나 경기지방에서도 볼 수 있게 됐다. 배롱나무의 습성은 양지바른 곳을 좋아하며, 빨리 성장하며 한꺼번에 가지를 많이 만들어 내며, 내한성이나 병충해에도 강해 쉽게 키울 수 있다.
내가 자주 찾아가는 진양호반晋陽湖畔에 가면 배롱나무 군락이 수 없이 펼쳐져 있음을 본다. 가장 뜨거울 때 선홍색의 화사한 꽃을 수없이 달았다 피워내고 지기를 반복하며, 푸르디푸른 잎은 화색花色과 오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다.
그러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면, 바뀌는 계절을 스스로 감지하고는 황금빛 잎들을 하나 둘 떨어뜨린다. 그 속에는 조신하며 뒤안길로 물러 앉아, 가녀린 자태로 조용히 물러설 줄 아는 지혜로움이 배여 있음을 본다.
지금은 찬 서리가 내리고 만상이 고요와 침잠 속에 묻힌 겨울. 모든 걸 떨쳐버리고 나신으로 아낌없이 속살을 드러내고 있는 배롱나무. 말없이 그냥 그 자리에 서 있어도, 그 속에는 은근과 끈기로 화사한 봄을 기다리는 넉넉함이 있어 바라볼수록 마냥 사랑스럽기만 하다
누군가가 사랑하면 보인다고 했다. 배롱나무와 함께 그 속에 나의 삶의 한 부분을 함께 엮어 본다.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그날을 기다리는 부푼 기대와 함께,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아름답도록 사랑하리라고 새삼 다짐해 본다.
신일수
수필가. 《한국수필》(1985)에 <겨울 연지>로 등단, 진주문인협회장, 경남수필문학회장, 한국수필작가회장 역임, 한국문인협회 남북문학교류위원, 국제펜클럽 경남지역본부부회장, 한국수필가협회 이사,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 한국수필문학상, 수필문학상, 한국예총 예술문화상, 경남수필문학상 수상, 수필집 「내 작은 뜰에는」「내삶의 새로운 지평」「단 한번의 인생」사랑, 그 영원한 테마」「자연과 더불어 살아 온 세월」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