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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에서 행하는 가장 대표적인 기도인
“뭇 중생을 천도하는 그 자체가 수행입니다” 한국전쟁 당시 폐허된 천년고찰 심원사 복원 불사 추진 “바른 마음 생각 지니고 혼신 다하는 ‘상생의 천도’원력”
<사진설명> 지난 2004년 해인사 주지소임을 마친 세민스님은 3년째 연천 원심원사 복원불사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원심원사에서 6.25 전몰장별을 비롯한 조상들의 1029일 천도재를 봉행하는 스님은 “수행자로서 참선도 하고 경도 읽으며 본분을 다하고 살지만, 내게 있어 뭇중생을 천도하는 그 자체도 수행”이라고 말했다. 원(元)심원사 복원불사는 평범한 불사가 아니다. 연천.철원지역은 삼국시대의 혼란기부터 한국전쟁까지 수많은 병란으로 무수한 호국영령과 유주무주고혼이 산화해 간 곳이다. 세민스님은 이같은 지역의 역사환경을 고려해서 건물불사를 서두르지 않았다. 대신 지난 2006년 6월, ‘6.25 전몰장병 및 호국영령 위령대제’를 봉행했다. “심원사 복원 문제로 5사단 사단장을 만나러 가는 도중에 부대에 끝도없이 안치된 장병들의 위패를 목격했습니다. 1만명이 넘는 규모였지요. 그 때 복원불사에 앞서 위령제를 봉행해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스치더군요.” 이 날 고혼영가들을 위한 위령제를 봉행하고 전몰장병들의 위패를 태우자, 어디선가 군복문양처럼 얼룩달룩한 나비떼들이 몰려와 원심원사 허공위를 한참동안 돌다 날아갔다고 한다. 위령제를 봉행한 뒤 복원불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대웅전과 산신각 요사채 등의 건축허가가 잇따라 떨어졌다. 원심원사의 사격이 갖춰질수록 원심원사에 대한 불자들의 발걸음도 잦아졌다. “심원사는 금강산 유점사 말사로서 신라 진덕여왕 원년인 서기 647년 창건돼 6.25사변으로 소실되기까지 1300년 역사동안 신라의 범일국사 조선의 무학대사 등 수많은 선지식을 배출한 도량입니다. 근현대에 와서는 화산경원이라는 근대강원을 설립해서 서암스님이나 월하스님 대은스님 운허스님 등이 이곳에서 교학을 배우고 후학을 양성했습니다. 유서깊은 지장성지로 호국불교의 중심역할을 했고 한때 250칸의 위용을 자랑할 정도로 큰 사찰이었지요.” 세민스님은 이처럼 위엄과 영험이 깃든 도량을 손수 복원하여 가람을 수호하고 불자들에게 역사와 문화가 농축되어 환희심이 샘솟는 도량을 만들어 주는 것이 수행자의 본분이자, 포교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비닐천막으로 조성된 임시법당이라도 만들어 부처님을 모시고 불공을 올리며 기도하는 모습에, 원심원사를 감싼 보개산 곳곳서는 ‘오색서광’이 비추면서 신도들의 신심을 돋워줬다. 세민스님은 해인사에서 처음 올렸던 ‘1029일 조상천도법회’를 원심원사에서도 직접 봉행한다. 지장도량인 원심원사의 복원불사 원만성취를 발원하고, 남북의 경계선상에서 무자비하게 희생된 전몰장병들의 넋을 추모하는 1029일 천도재는 지난 8일 총무원장 지관스님의 입재법문을 시작으로 내년 8월까지 인환, 월운, 무진장, 월탄, 고우, 오현, 지하, 흥교스님 등 원로스님들을 초청법사로 모시고 진행될 예정이다. 스님의 천도재를 두고 세간에선 말도 많지만 재(齋)에 대한 스님의 견해는 남달랐다. “수행자로서 참선도 하고 경도 읽으며 본분을 다하고 살지만, 내게 있어 뭇중생을 천도하는 그 자체도 수행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남을 위해 기도하고 불공하고 제사를 지내주며 살았지만, 단 한번도 그러한 의식이 남의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내 수행의 한 부분이라고 여겼습니다. 참선과 염불, 주력 모두가 방편입니다. 수행자로서 시줏밥을 먹고 사니, 염불을 하든지 참선을 하든지 경을 읽든지 모두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그만입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지요. 삿된 마음을 가지면 천도를 해도 소용없지요. 바른 마음과 바른 생각을 지니고 청정한 수행자로서 혼신을 다해 천도를 하면 그것이 바로 너와 나를 위한 상생의 천도가 되는 법이지요.” 스님은 해인사 주지소임을 맡았을 때 벌어졌던 ‘해인사 청동대불 사건’에 관한 이야기도 거침없이 들려줬다. 500여명이 넘는 대중스님들의 의식주를 책임지고 수행을 돕기 위해 세민스님이 기울인 노력은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였다. 스님의 표현에 따르면, “해인사는 겉으로는 부자지만 속으로는 가난하다.” 해인사에서 네 번의 겨울을 나면서 주지로서 스님이 겪은 고충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컸던 것 같다. 스님은 팔만대장경을 동판으로 새겨 판전을 새로 짓고 신행문화도량을 조성해서 법보사찰의 위용을 지켜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또 1029일 천도재를 봉행하면서 신도없는 관광사찰에 재적신도를 만들면서 포교에 안간힘을 기울였다. 어쨌든 스님은 원심원사의 복원불사가 원만회향하는 그날까지 오늘도 서울과 연천을 오가면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세민스님은… 지관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세민스님은 1956년 1월 합천 해인사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66년 9월 자운스님을 계사로 비구계 및 보살계를 각각 수지했다. 1966년 9월 해인사승가대학을 졸업하고 1981년 3월 일본 경도불교대학서 불교학을 전공.졸업했다. 1984년 동국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1989년 동대학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75년부터 1994년까지 서울 삼성암 주지를 역임했고 조계종 중앙종회 제 8,9,10대 종회의원을 역임했고 1992년부터 1994년까지 조계종 중앙선거관리 위원 및 위원장을 맡았다. 1995년 7월부터 2005년 6월까지 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 자문위원을, 2000년 9월부터 2004년 10월까지 해인사 주지를 역임했다. 현재 수안사 회주, 연천 원심원사 주지, 조계종 재심호계위원으로 있다. |
첫댓글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우리 고유의 명절 설입니다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