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마후라의 서사시
"하늘에 산다"
글: 박 종 권
수필편.4
동작동에 묻힌 얼굴들
전투 조종사로서 하늘을 날으며 살아온 지 어언 20년, 현충일을 맞이 할 때마다 나는 많은 전투기 조종사들이 잠들고 있는 동작동 국립묘지의 한 모퉁이에 서서 새삼 내 자신이 운 좋게 건재한 모습으로 이 자리까지 와 있구나 하는 감회를 느끼게 된다.
10여 년 전만 해도 애기와 더불어 하늘에 산화해 간 전투 조종사들, 그들의 묘비를 찾는데 별로 어려움이 없었다. 그 때는 다행히 같은 구역에 모여 있어 생전의 그 발랄한 모습을 그려보노라면 마치 살아서 대화를 나누는 듯 했다.
지금은 누구인지 조차 알 수 없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다 찾아 볼 수도 없게 됐다.
잊을 수 없는 사람들, 난생 처음으로 하늘을 나는 기법을 가르쳐주던 비해 교관의 모습, 서로 서로의 꼬리 잡기를 하며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선후배 경쟁자,공중 사격대회에서 야심 찬 다툼을 하던 동기생의 얼굴들, 날개의 높고 낮음을 지적하며 전시 편대을 이끌어 나가던 엄하면서도 다정다감했던 선배 조종사, 선배님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겠다 했던 의리 넘치는 후배 조종사들, 이들의 모습들을 떠올리면서 그들의 묘비 앞에서 몇 송이 꽃을 헌화하고 추모하는 것이 연례 행사가 되어 왔다.
매년 이날 이곳에 오면 그 동안 만나지 못했던 많은 하늘의 동지 선후배들을 만나게 된다. 이제는 기억도 없는 후배 조종사들이 이 구역 저 구역 흩어져 잠들어 있음을 발견하게 되며 그럴 때마다 내 혈육의 일처럼 가슴이 뭉클거린다.
<동해 상공에서 작전 중 순직하다> <사천 상공에서 산화하다> <서해 상공에서···> <영월 상공에서···>이런 비문을 읽을 때 마다 내개는 무척이나 가까웠던 푸른 하늘이 순간 멀고도 먼 잿빛 하늘로 다가 왔다.
그 동안 수백 명의 조종사가 사라져 갔으니 아무 말도 없는 하늘의 비정함을 깨달은 듯 하고 인생이 무상하다 함을 느낀다.
나는 1960년에 초등 훈련기 L-19를 거쳐 중등 훈련기인 T-6를 탔다. 사관학교 졸업을 1년 앞둔 때부터 비행 훈련이 시작 됐으니 23살의 약관 시절이다. 그 후 T-33 제트기 조종훈련을 마치고 그 당시 주력 전투기인 F-86F 세이버 제트 전투기 조종사가 됐다. 그 후 F-5A, F-4D/E, 기종 전환을 했다. 그 후 이곳 저곳 비행단 지휘관으로 부대를 지휘하면서 최첨단 전투기 F-16D 전투기는물론 수송기, 헬기까지도 조종하는 많은 기회가 있었다. 초급 장교였던 중소위 시절부터 군복을 벗을 때까지 끊임없이 하늘을 날았다. 하늘이 두렵다는 생각을 가진 적이 한번도 없었다.
선배를 따르며, 후배를 이끌며 두려움 없이 구름 속을, 눈 비 속을,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함께 날기를 같이 했다. 하늘은 우리의 삶 터였고 매력이었으며 영원한 망향이었다. 서로가 가장 높이 날기를 가장 빠르게 날기를 다투며 그들과 하늘에서 열정을 다했다. 30여 년 간의 전투기 조종사로 하늘을 날며 살아 오는 동안 이처럼 많은 선추배가 그리고 동기생이 사라져 갔다. 이들이 이 묘역에 모두 묻혀 있다. 이 순간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비정하고 무심한 곳이 하늘이구나 느끼면서도 이 길을 후회 없이 걸어 온 30여 년 긴 세월이 어제만 같다.
하늘에서 꿈을 못 다 펼친 날개들, 나는 그들을 '불새'라 이름했다. 영원히 죽지 않는 전설의 새가 된 그 들, 신화의 새가 된 신념의 조인들, 전투기 조종사가 되어 조국의 하늘을 지키다가 손직한 이들을 이 언덕의 해와 달과 별들이 그들을 지키리라.
1987. 6.
현충일 동작동 국립묘지에서..
나는 하늘에 살아 있다.
사라진 鳥人을 위한 獻詩
하늘에 살다 승화해 간
외로운 넋은 말한다.
"26세 짙은 젊음을 조국의 하늘에다 살라 먹었노라"
뜨거운 사랑도 하늘을 바꾸지 못했고
대지으 권세와 명예로
하늘의 꿈과 맞설 수 없었다.
날로 높아가는 하늘 아래서
아, 내 조국의 저 하늘 아래서 자라 온
한 떨기 꽃잎은 졌어도
낛은 영원히 하늘에 살아 있다.
그리고
내 후예들, 그 꿈은 더 높아
하늘로,
하늘로
잇대어 올 것이니
그 기쁨 느끼며 나 숨 지노라
살아 비겁하지 않았고
살아 헤매질 않았다.
그리고 나 살아 우질 않았다.
가슴에
는 높고 푸른 끝없는 하늘이
항사 내 곁에 있기 때문이었다.
서해의 거센 해풍에
끝내 못다한 이 맘
그녀에게 전하고 싶다
깊은 가슴 속 사랑의 뜻을···
이제 열풍은 가고
잿빛 먼 망향에서
지나간 일들을 기억하며
나 편히 쉬노라.
그리고
남은 젊은 날들을
구름에 흘러 보내노라.
1964.10. 24.
↓ 이사진은 유립이 간직한 자료입니다.
↑동작동 현충원 정문에 들어서면...
↑ 순직, 작고한 유립의 동기(공사21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