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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간 사이 동생 죽였어요”···피비린내 나는 자연의 동족상잔 [생색(生色)]
강영운 기자(penkang@mk.co.kr)2024. 12. 15.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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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색-39] 가까운 사이일수록 관계는 대개 극단을 오갑니다. 무척 친하거나, 서로를 증오하거나. 친구 사이의 우정에서도 그렇지만, 한 배에서 난 형제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애가 좋은 형제가 있는 반면, 서로를 죽지 못해 안달하는 사이도 분명 존재합니다.
역사적으로 봐도 그렇습니다. 피비린내 나는 권력 찬탈은 형제 사이에서 일어난 경우가 많았습니다.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습니다. 인류의 첫 살인 역시 형제간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아담과 이브의 아들 카인이 동생 아벨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형이랑 싸우지 말랬지.” 프랑스 화가 윌리엄 아돌프 부게로의 첫 번째 다툼(186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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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랑 싸우지 말랬지.” 프랑스 화가 윌리엄 아돌프 부게로의 첫 번째 다툼(1861년).
민주적인 현대사회에서도 한 그룹의 후계를 둘러싼 치열한 ‘전쟁’이 벌어집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신발 아디다스와 푸마 역시 형제간 반목으로 갈라진 브랜드들입니다.
형제간의 갈등은 욕망덩어리 인간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비극은 아닙니다. 동물 세계에서도 치열한 형제간 전쟁이 벌어집니다. 어미 배 속에서부터 피비린내가 진동합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Bellum omnium contra omnes)이라는 말은 자연계에서 형제 사이를 묘사하는 데 탁월한 문장입니다. 형제같았던 정치적 동지가 하루 아침에 칼을 들고 반목하는 오늘날. 자연의 세계로 떠나기에 좋은 시간입니다.
“형아, LOL 하러 피씨방가자면서, 그 몽둥이는 뭐야?” 영국 화가 제임스 티소가 그린 ‘카인, 아벨을 죽음으로 인도하다’. 카인과 아벨은 아담과 이브의 자식들로 동족상잔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1900년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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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아, LOL 하러 피씨방가자면서, 그 몽둥이는 뭐야?” 영국 화가 제임스 티소가 그린 ‘카인, 아벨을 죽음으로 인도하다’. 카인과 아벨은 아담과 이브의 자식들로 동족상잔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1900년 작품.
푸른발부비, 형제애를 잃다
여기, 푸른발부비가 있습니다. 갈라파고스 제도에 서식하는 새로, 갈매기와 닮은 귀여운 모습입니다.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 건 따로 있습니다. 발이 푸른색을 띠기 때문입니다. 마치 페인트를 칠한 듯한 발바닥은 그의 존재감을 부각하기에 충분합니다.
작디작은 새이지만 그의 인생은 거칠기 짝이 없습니다. 날 때부터 생존의 위협을 받기 때문입니다. 외부로부터가 아닌 ‘내부의 적’에 의해서입니다. 푸른발부비 암컷은 보통 알 두 개를 낳습니다. 한꺼번에는 아니고 5일 차 간격입니다. 형제간에 체격차가 발생한다는 의미입니다.
“엄마, 나간 거 알고 있지?” 푸른발부비. [사진출처=Hersfo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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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간 거 알고 있지?” 푸른발부비. [사진출처=Hersfold]
먼저 태어난 새끼는 동생을 보살피는 인자한 형이 아닙니다. 어미 새가 먹이를 찾아 둥지를 떠날 때면, 쉼 없이 동생 병아리를 쪼아댑니다. 동생이란 존재는 어미의 사랑과 먹이를 빼앗아 가는 ‘경쟁자’로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어미로부터 오는 식량이 적어질수록 형의 성격은 더욱 포악해집니다.
비극은 어미의 태도에서 극대화됩니다. 형제간의 갈등에서 어미는 대개 방관하고 맙니다. 형이 동생을 쪼아대는 모습을 보고서도 시큰둥한 표정입니다. 마치 어린 새끼의 죽음을 용인이라도 하는 듯이.
학자들은 푸른발부비의 어미가 새끼의 죽음을 용인하는 이유에 대해서 ‘보험 가설’로 설명합니다. 어미에게 둘째란 첫째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을 때를 대비한 일종의 ‘보험’적 존재라는 설명입니다. 첫째가 제대로 커나가고 있는데 둘째까지 공들여 키울 필요성을 못 느낀다는 해석이지요.
다만, 아직은 학계 모두가 인정한 가설은 아닙니다. 몸이 작고 약한 둘째에게 먹이를 더 살뜰히 챙겨주는 푸른발부비도 목격됐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원래 독고다이야.” [사진출처 =Gramar Ra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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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원래 독고다이야.” [사진출처 =Gramar Racher]
하이에나 형이 동생을 죽이는 이유
형제간의 치열한 다툼은 포유류에서도 발견됩니다. (다른 종에서도 많겠지만) 라이언킹에서 비열한 역할로 폄훼되는 ‘점박이 하이에나’가 대표적입니다. 녀석들에게 ‘형제애’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옆에 있는 녀석은 적’이라는 관념이 지배합니다. 태어나자마자 옆에 있는 서로를 공격합니다. 서로의 생존 본능 때문인지 새끼 때부터 눈을 뜨고 송곳니와 앞니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동생은 하늘나라에 있어요...제가 죽였거든요.”19세기 독일 화가 빌헬름 쿠네르트가 묘사한 점박이 하이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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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은 하늘나라에 있어요...제가 죽였거든요.”19세기 독일 화가 빌헬름 쿠네르트가 묘사한 점박이 하이에나.
육식 포유류 중에서는 거의 유일합니다. 특히 성별이 같은 형제끼리 공격성은 더욱 유별납니다. 이런 ‘동족상잔’으로 하이에나의 약 25%가 새끼 때 죽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살아남은 새끼들은 기꺼이 어미의 젖을 차지할 자격을 갖춥니다. 생존 새끼들은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점박이 하이에나의 젖은 단백질과 지방함량이 높기로 유명하기 때문입니다.
죽지 않을 정도의 고난은 성장의 계기가 됩니다. 하이에나가 그렇습니다. 하이에나는 태어난 지 2~3개월이 되면 제법 어른티를 내기 시작합니다. 8개월부터는 사냥 행동을 보이고, 1년이 지나면 이제 어엿한 사냥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합니다.
“엄마 나가면 보자, 하이에나 같은 새X” 하이에나 가족. [사진출처=Budgieki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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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가면 보자, 하이에나 같은 새X” 하이에나 가족. [사진출처=Budgiekiller]
뱃속에서부터 전쟁은 시작된다
태어나면서 서로를 공격한다는 건 이들에게 시시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미 배 속에서부터 서로를 공격하는 존재가 있기 때문입니다. 샌드타이거상어의 이야기입니다.
날카로운 이빨에, 냉혹한 눈동자를 가진 이들은 그야말로 포악하기 그지없습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상태에서도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시작됩니다. 새끼를 밴 암컷의 배 속을 들어가 봅니다.
“아기 상어 뚜뚜뚜뚜뚜 맛있는....” 샌드타이거 상어. [사진출처=Jlenc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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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상어 뚜뚜뚜뚜뚜 맛있는....” 샌드타이거 상어. [사진출처=Jlencion]
샌드타이거 상어는 난태생입니다. 알로 수정되지만, 태어나기 전 부화합니다. 어미 몸 속에서 나올 때는 알에서 깨어난 새끼 상태입니다. 샌드타이거 상어 암컷의 자궁은 특이하게 두 개입니다. 각 자궁에는 여러 수정체가 막 자리를 잡았습니다(수정체의 아비는 모두 다를 수 있습니다. 이 또한 자연의 신비).
비극은 성장 속도가 다른 데서 시작됩니다. 이미 한 녀석은 알을 깨고 나왔습니다. 새끼들이 모두 귀엽고 연약할 거라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녀석은 이미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상태로 먹을 것을 찾아 헤맵니다. 막 태어난 동생들을 바라보면서 군침을 흘립니다. 가장 영양가가 높은 음식이기 때문입니다. 전문용어로 아델포파지(Adelphophagy). 고대그리스어로 형제를 먹는다는 뜻입니다.
“저도 많이 낳고 싶었어요, 저출산은 제 탓이 아니에요.” [사진출처=Jeff Kub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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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많이 낳고 싶었어요, 저출산은 제 탓이 아니에요.” [사진출처=Jeff Kubina]
“내가 귀여워 보일지 모르겠지만, 내 삶은 전쟁의 연속이었지.” 배속에서 형제간 동족 포식이 일어나는 불도룡뇽. [사진출처=Didier Descou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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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귀여워 보일지 모르겠지만, 내 삶은 전쟁의 연속이었지.” 배속에서 형제간 동족 포식이 일어나는 불도룡뇽. [사진출처=Didier Descouens]
임신 기간 8~12개월이 지난 뒤 자궁에서 살아남는 건 결국 한 녀석입니다. 어미 배 속에 자리 잡은 모든 생명체를 잡아먹으면서 생긴 일입니다. 알을 깨고 나온 녀석들도, 알에서 잠자고 있던 녀석들도 모두 피해자입니다.
샌드타이거상어의 번식률이 지극히 낮은 이유기도 합니다. 불도룡뇽 역시 어미 배 속에서 비극적인 동족상잔이 벌어진다고 전해집니다.우리의 도덕으로는 도저히 판단이 불가능한 영역입니다. 섬찟하지만, 이 역시 자연이라는 거대한 모자이크의 한 조각입니다.
“큰 애 카인이가 동생 아벨을 죽였대요...” 윌리엄 아돌프 부게로의 ‘아벨의 죽음을 애도하는 아담과 이브’.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을 나와 처음 마주한 비극은 큰아들이 동생을 죽이는 동족상잔이었다. 1888년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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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애 카인이가 동생 아벨을 죽였대요...” 윌리엄 아돌프 부게로의 ‘아벨의 죽음을 애도하는 아담과 이브’.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을 나와 처음 마주한 비극은 큰아들이 동생을 죽이는 동족상잔이었다. 1888년 작품.
<세줄요약>
ㅇ형제간의 권력다툼은 인간만이 아니라 자연세계에서도 더욱 잔인한 모습으로 발견된다.
ㅇ특히 푸른발부비 새 같은 경우는 먹이를 독차지하기 위해 동생을 쪼아 죽이기도 하고, 샌드타이거상어는 한발짝 더 나아가 어미 배속에서부터 다른 배아를 잡아먹는다.
ㅇ그래도 형제끼리 사이좋게 지내자.
<참고문헌>
ㅇ더글러스 W.모크, 살아남은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산해, 2005년
생명(生)의 색(色)을 다루는 콘텐츠 생색(生色)입니다. 동물, 식물을 비롯한 생명의 성을 주제로 외설과 지식의 경계를 넘나듭니다. 가끔은 ‘낚시성 제목’으로 지식을 전합니다. 기자 페이지를 구독해주세요. 격주 주말마다 재미있는 생명과학 이야기로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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