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홍(老紅)의 시간"
아직도 더운 피 맑은 바람
구름을 푸른빛으로 물들이면서
무등산 서석을 날아가는 새
역사가 이름인 뫼의
가슴은 넓은 바다가 되어
수평선 멀리 일어서는 태양을 기다린다
가난하여도 눈물을 믿지 않았다
슬프고 괴로운 시간은 어제의 일
길고 어두운 터널 속에서 꿈을 키웠다
비바람에 No를 모르는 뜨거운 나무
호흡보다 Yes가 더 편한 일상들
그늘 속에 더욱 싱싱한 풀
그렇게 살기 때문에 내일을 믿고
그렇게 살기 때문에 사랑을 믿고
그렇게 살기 때문에 사람을 믿는다
하늘과 땅과 그사이 사람과 짐승과
더불어 자연이 주인인 사상을 같이
즈믄 가람이 맑은 바람을 구하고 있다.
2014 갑오년 들어 이 세상을 등지는 이들이 왜 이리도 많을까. 세월호 침몰참사로 깊은 슬픔과 큰 아픔에 잠겨있는 이때, 광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원로시인 한 분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났다. 갑자기 가슴이 칼로 도려내는 것처럼 콕콕 찌른다. '죽음과 죽임이 너무 많은 시대', 그 시인은 어떤 강을 건넜을까.
우리는 지금 어떤 강을 건너고 있을까. 죽음과 죽임, 그 검은 리본을 가슴에 파도처럼 빼곡히 매단 강을 건너면 저만치 새로운 삶, 빛나는 희망이 넘쳐나는 세상을 거머쥘 수 있을까. 그 컴컴한 강을 건너더라도 또 다시 죽음과 죽임만이 흐르는 더 넓고 긴 강이 우리들 앞을 가로 막고 있을까.
광주를 지키던 큰 산이 무너졌다. '무등산 시인', '아름다운 가난의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원로시인 범대순 선생이 21일(수) 이 세상을 떠났다. "가난하여도 눈물을 믿지 않았"고, "슬프고 괴로운 시간은 어제의 일"이라며 "길고 어두운 터널 속에서 꿈을 키웠다"는 시인 범대순.
광주에서 태어나 무등산처럼 우뚝 서서 "비바람에 No를 모르는 뜨거운 나무"였던 시인 범대순. "그늘 속에 더욱 싱싱한 풀"이었던 시인 범대순 선생은 그가 쓴 시처럼 "아직도 더운 피 맑은 바람 / 구름을 푸른빛으로 물들이면서 / 무등산 서석을 날아가는 새"가 되었다. 향년 85세.
"그릇"
내게 시는 무등산입니다
자를 가지고 있으면 재고 싶고
되를 가지고 있으면 담고 싶듯이
마음을 먹고 있으면 갖고 싶듯이
손이 손을 만나면 쥐고 싶듯이
시도 담을 그릇을 가지고 있으면
무엇이고 가득 채우고 싶어진다
살아 있는 곡식으로도 채우고 싶고
금 같은 아이들로도 채우고 싶어진다
그러나 시의 그릇 안에 담는 으뜸은
바람같이 담지 않고 가득한 느낌
담지 않고 때로 더러 담고
때로 빈 그대로 다만 가득 담는 것
나도 그런 그릇이 하나 있긴 하지만
너무 큰 그릇이라 반 차기가 힘들다
대대로 써서 많이 닳아 버렸지마는
스스로 들어 알몸으로 살고 싶다.
"내게 시는 무등산입니다." 가까이 있기도 하고 멀리 있기도 하지요. 더러는 높고 깊으며 낮고 웅혼하기도 합니다. 거기에는 춘하추동이 있고, 인생의 처음과 끝이 있고, 나와 나의 문학이 있기도 합니다. 시가 죽음에 이르는 병인 것처럼 무등산을 오르는 것도 죽음에 이르는 과정과 다르지 않습니다. 기승전결 가운데 결이며 끝입니다." - 2014년 2월호 <예향>(220호) 인터뷰에서
광주에서 태어난 시인 범대순(1930년 6월 16일~2014년 5월 21일). 시인은 1958년 <문학예술>에 시 '승무'로 널리 알려진 조지훈 선생 추천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광주광역시에서 주로 활동했던 시인은 올 1월 무등산에 대한 사랑을 담은 시집 <무등산>으로 제12회 영랑시문학상을 받았다.
지난 2월에는 60여 년 동안 살아왔던 계림동 자택을 스스로 이름을 딴 '범대순 시문학관'으로 꾸며 눈길을 끌기도 했다. 시인은 폐암과 싸우면서도 이 시문학관을 열기 위해 있는 힘을 다 쏟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시문학관은 82㎡ 규모로 서재인 시림(詩林)과 명상실, 음악실로 나뉘어져 있다.
시림(詩林)에는 1만여 권에 이르는 시집이 보관되어 있다. 문을 연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주인을 잃어버린 문학관은 가족들이 꾸리기로 했다. 피아니스트인 큰 딸 영숙(51) 씨는 "한 달 전 전남대 병원에 입원하면서도 컴퓨터를 옮겨달라고 말씀 하실 정도로 시 쓰기에 매달렸다"며 울먹였다.
고인은 무등산을 평생 동안 1,100여 번에 걸쳐 올랐다. 선생에게 시는 무등산이고 무등산은 시였던 셈이다. 소설가 문순태는 "범대순 시인처럼 무등산을 사랑하는 시인이 드물지 않나 싶다"며 "젊은 문인들의 존경도 받은 원로 시인으로 광주 문단에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고 몹시 안타까워 했다.
광주전남작가회의는 '시인 범대순 선생 문인장'을 22일 저녁 7시 화순 전남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치렀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옥영 씨와 아들 희승(전남대 의대 교수), 영숙(피아니스트), 은경(신가지구 중앙아동병원장), 경화(동화작가) 씨가 있다. 빈소는 화순 전대병원장례식장 특실 1호, 발인은 23일 아침 8시, 장지는 광주 영락공원(061-379-7444) 이었다.
시인 범대순은 누구인가?
- '씨름판' 몇 토막... -
뒤부터 먼저 굴에 드는 짐승같이
나의 씨름판은 뒤씨름이 먼저다.
결판을 내고 처음부터 다시 붙인다.
상씨름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다.
씨름판 뒤에는 꼭 싸움이 난다.
그리고 흥분하고 아쉽고 즐거웁다.
나의 시는 때가 없이 서는 씨름판
모래 밖에서 언제나 나는 장사이다.
시인 범대순은 1930년 6월 16일 광주시 북구 생용동에서 태어나 고려대 영문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마쳤다. 그가 쓰는 시는 "기계와 문명과 사회에 대한 관심으로 충일되어 있으며, 가녀린 서정시가 아니라 강렬한 사회시(社會詩)의 경향을 띠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불도쟈', '방송탑', '기계는 외국어', '핵분열', '사건에 부치는 서시', '신지구론', '기계를 주제로 한 연작 3⁃2' 등은 기계문명을 내세운 시다. '흑인고수 루이의 북', '산불', '호므런', '4.19', '4월에 우리가 기대하였던 것은' '6.25', '자유를 주제로 울다', '한국 저항사서'(抵抗史序), '민주주의' 등은 사회시다.
시집으로 <흑인고수 루이의 북> <연가ⅠⅡ기타> <이방에서 노자를 읽다> <기승전결> <백의 세계를 보는 하나의 눈> <아름다운 가난> <세기말 길들이기> <북창서재> <파안대소> <나는 디오니소스의 거시기氣다> <산하> <가난에 대하여> 등이 있다.
시론집 <백지와 기계의 시학> <트임의 미학>, 에세이집 <눈이 내리면 산에 간다>, <범대순 전집>, 연구서 <1930년대 영시연구> <W.H. 오든>(공저), 번역서 <현대 영미 시론> <스티븐 스펜더 시집> <W.H. 오든 시집> 등이 있다.
1971년 제2시집 <연가Ⅰ Ⅱ, 기타>를 펴내 전남도문화상을 받았다. ‘60년대사화집’ 동인과 ‘원탁시’(圓卓詩) 동인활동을 했다. 광주일고 교사를 거쳐 전남대 영문학과 교수를 맡았으며, 전남대 명예교수를 맡고 있었다. 국민훈장 동백장(1994), 광주예술부문 시민대상(1996), 문예한국 대상(2002), 영랑시문학상(2014) 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