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아의 출퇴근시간이 멀고 지치기도 하고 나도 농사일에서 벗어나야했다. 우리는 깡촌을 뒤로한 채, 아름다운 정경들을 뒤로한 채 홍천 시내로 이사가기로 했다.시내에서는 일터가 더욱 가깝고 시간을 쪼개어 쓰지 않아도 시간이 널널했기 때문
이었다. 소피아의 운전실력이 남달랐다. 핸들 잡는 것도 버거워하던 사람이 이젠한 손으로 운전을 한다. ㅎ역시 사람은 몸으로 익힌 것은 절대 잊지 않는 법이다. 아내 자랑스러웠고 나도 분발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홍천노인요양원에 면접을 보고 서류를 띄어다 줬다이틀 있다가 출근했다. 기본 230만원에 2년마다 월급이오른댄다. 사대보험, 퇴직금다 있고 나도 좋아서 열심히
다녔다. 평생 뱃일과 노가다로 농부로, 구두지개질로, 식당의 주방장으로 살았던 예전의 내모습이 아님에 스스로 행복했다. 소피아는 방지거의 집에서 사회복지사로 도약했고 나는 요양보호사로 지냈다. 나의 근무는야간,야간,낮,낮,휴무,휴무였다. 정신과 약을 먹는 나로서는 그것도 힘이 들었다.
이틀 밤새 일하고 낮에 자려니 잠이 오질 않았다. 이 얼마나 피곤한가! 아내는 승용차로 10분거리에 다니고 나는 매일 아침마다 오는 요양원 출퇴근 버스를 이용했다.내가 원래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려했던 것은 엄마처럼 생각하며 할머니 어르신
들을 모시기 위함이었다. 엄마는 돌아가셨지만 대리로어르신들에게 엄마한테 하는 것처럼 효도하려는 마음이 있어서이다. 예전에 자격증이 없던 시절에 요양원에서 일하는 6,70대 할머니들이 요양보호를 하고 있었다.나는 정식으로 시험을 치르
고 실습하고 들어갔지만 아직도 그분들이 남아서 어르신들을 케어하고 있었다. 난그들의 대화를 주시했고 어떻게 근무일지를 쓰는지도 보았다. 한 마디로 실망이었다. 요양원에 있어야 할 분이 요양보호를 하고 있었다.
하루에 세번에서 네번은 기저귀를 가는데, 매번 기저귀를 확인해야했다. 신참인 나에게 똥만지는 일을 내어 맡겼다. 똥싼 기저귀를 돌돌말아 치우고 항문과 항문주위를 물수건으로 깨끗이 닦아드렸다. 내손에 똥이 묻어 새 기저귀를 갈을 땐 팔꿈
치로 어르신의 엉덩이와 허리를 돌리며 기저귀를 중앙에 오게끔 맞추어 찍찍이를붙인다. 아줌마요양보호사들은 "젊은 선생, 잘하시네?그말이 좋게 들리지 않았다.경관식을 하시는 어르신이 일곱분이나 되었다. 다른 분들보다 식사시간에 먼저 링
거를 이용해 물을 드리고 뉴케어를 드리고 식사 후 다시물을 투입한다. 그리고 식후약을 곱게 빠서 물통에 넣고
계속 흔들어 알갱이가 없게한 후 링거에 투입한다. 일반 사람이 식사전 물 미시고밥 먹고 다시 물 마시고 약
을 먹는 것과 같은 이치다.한 어르신은 천주교 신자셨다. 당신의 머리맡에 십자고상을 두시고 묵주도 목에 걸고 계셨다. '송영민'어르신을지금도 잊을 수없다. 89세이지만 정신은 또렷하셨다.어르신을 접할 때... 기저귀를 갈아드릴 때... 난 속으로
늘 기도했다. '좋으신 주님, 부디 저희를 당신의 자비로 영생복락하게 하소서. 아버지 하느님, 당신을 사랑하며의지합니다. 이 어르신의 영을 당신의 지비와 사랑으로 지켜주소서.'~ 난 그때부터 그 어르신과 친해졌고 아침마다 바늘침으로 손가락을 톡 쏘며 혈당을 체크했다. 아줌마요양보호사들이 그런나를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그들은 수기로 근무일지를 쓰던 버릇만 있어서 원장이 지시한 컴퓨터로 근무일지를 작성하는 법을 모른다.
나도 컴맹인데 나에게 자기들의 근무일지를 써달라고 부탁한다. 난 독수리 타법으로 그 아줌마들의 일지를 오
전부터 써댔고 그대신에 그들은 내가 갈던 기저귀를 갈고 일반찬,다진찬,죽,을 식당에서 구르마로 실고와 어
르신들께 드린다. 아줌마들이나 나나 똑같은 컴맹인데조금 젊다고 나에게 맡긴 것이다. 몸은 편했지만 독수리
타법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홍천군노인요양병원은 홍천군에서 제일 크다. 산속에 자리잡았고 공기도 아주 좋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목욕을 시켜드리는 날이다. 월요일은 4층, 수요일은 2층, 금요일은 3층 이런식이었다. 웃기는건 이 큰 요양원에 딸린 건물이 하나 있다는 것이다. 식구들이 버리거나 노숙자를 들이거나 그 건물엔 어르신들이 돌아가시면 들어올 사람들이 넘
친다는 것이다. 침대에 눕힐어르신들이 요이땅! 하고 대기하는 모습이다. 난 생각했다. '아~요양원도 그 어떤 병원도 사람 장사를 하는구나'...! 한 어르신은 장애를 가디셨고 팔이 꼬여 굳었으며 다리가 기억자로 굳어져살과 살이 붙은 자리에 쿠션
을 넣어드려야했다. 안그러면 살과 살이 굳어져 맏닿은곳에 욕창이 생기기 마련이다. 욕창은 무서운 것이다. 다른 어르신의 꼬리뼤를 봤는데 손바닥만한 욕창이 있었다. 살을 파고들어 뼈가 드러나서 다 보인다. 끔찍하다. 아줌마 요양보호사들이
자세변경을 안해서이다. 여름엔 40분에 한 번씩 바람에 세이도록 자세변경을 해드려야한다. 예를들어 침대에 누워계신 어르신의 오른쪽 손과 다리를 붕대를 이용하여 묶어놓아 반자세가 되게 하고 40분 후엔 다시 반대로 왼쪽 손과 다리를 반자
세로 묶어 놓아 바람이 통ㅎ게 해야한다. 저멀리 아줌마요양보호사란 사람들이 조잘조잘 신랑 험담하고 지네들키리 주접만 떤다. 그 시간에 어르신들 한 번 더 둘러보면 안될가? 물론 내 생가일뿐이다. 그 아줌마들은퇴근하기 전에 어르신들에게 저녁식사를 드리고 약을투약하게 하는데, 약을 국에타서 숫가락으로 강제로 먹게한다. 또 어르신이 말을 듣기도 어려우시지만 말을 안듣는다며 어르신의 머리를 손가닥으로 친다. '헠!!!'난 그모습이 너무 끔찍했다.
여름엔 에어콘도 안틀었고,겨울엔 히터도 안틀었다. '이 요양원은 요양원이 아니라 지옥이구나, 나라면 차라
리 집에서 죽고싶을만큼 서비스가 엉망이었다. 월급을받는 아줌마들 하며 요양원에 보내면 한 숨 놓겠다하는
아들 딸내미들하며... 부모님을 입원시켜놓고 나몰라라 지들끼리 웃고자빠졌을자식들 하며... 괘씸했다. 오
아버지! 이게 어느 자식의 효도란 말인지요?...! 내가 매일같이 담소 나누던 어르신이 식사를 며칠째 안하신
다. 나는 그날 아침도 기저귀를 획인하며 변체크를 한다. 아침 모임에 간호사에게전달마여야 하고 변을 4일
간 못 본 어르신은 관장을 해야하기때문이다. 어느날어르신께 기족이 면회를 왔단다. 갑자기 한 아줌마가 그 어르신을 머리를 빗기우고 더러운 옷을 새옷으로 갈아 입히고 휠체어에 태워 엘리베이터 문앞에 떡허니 자리를 잡았다. 5분 후에 어르
신의 자식들이 올라왔다. "아버지~"하며 울어대는데못봐두겠다. 짜증이 났다. '요양보호사 아줌마도, 자식
도 쇼를 하고 있구나...' 정말그자리에 있는 날 원망했다.1년 7개월 근무하고 그 꼬라지 보기싫어 그만 두었다.내
가 우리 신자분들께 조언합니다. 요양원은 대규모보다 8~13분 모시는 소규모 요양원이 가족처럼 서비스가 좋습니다. 집에서 마지막 임종하는 것이 최고이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소규모로 모셔드리세요♡제가 장담합니다. 일을 그만두고 월급받고
퇴직금 받고 근로장여금도받았다. 소피아가 열일하는와중에 하루라도 놀순 없었다. 다음날 요양보호사 사무
실로 찾아가 방문목욕이나 방문요양을 신청했고 바로일이 있대서 다음날 차를 몰고 출근했다. 홍천에서 춘천
사이에 있는 펜션을 운영하는 사장님이다. 오른쬐 편마비이다. 사모님이 나더러 우리 어저씨 잘 부탁드려요~
내 임무는 그 사장을 옆좌석에 태우고 오른쪽 팔을 차 손잡이에 묶고 홍천 수영장에 데리고가 목욕을 시키고
안마를 해주고 오른쪽 팔 다리를 안마해주고 수영장 안에서 부력으로 걷기 운동을시키는 것이었다. 다시 목욕
을 시키고 옷을 벗기고 입히고... 홍천 사회복지관으로 가서 식판에 식사를 받아오고 같이 밥을 먹는다. 사장
은 왼손으로 밥을 먹는다.우린 친해져서 돈많은 사장은 나보고 먹고싶은것 없냐면서 이것저것 사주었다. 사
장이 카드를 내밀면서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좀 찾아달랜다. 사장의 불구로 내가손과 발이 되어주는 것이다.
돈을 찾는데 잔액이 3000만원이 넘는걸 보고 깜짝 놀랐다. '와...' 사장한테 물어보니 한달에 한 번씩 집 사람이 넣어주는 용돈이란
다. 문제는 홍천과 춘천사이가 너무 멀어 차 기름값이 월급빼면 얼마 되지 않는 것이다. 그 형님과 사모님에게
다른 사람을 소개해드리고 그만두었다. 하루라도 놀수없어 바로 홍천 요양보호사사무실을 갔는데 홍천에서
20분거리에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사시는데 할아버지가 치매란다. 그분을 방문하여 목욕시켜드리고 옷을 갈
아입히고 교회에 모셔다드리고 귀가시켜 드리는 것이다. 첫 출근하여 할머니를 만나 인사를 하고 할머니 말
도 안듣는다며 내게 할아버지를 맡겼다. 할아버지는 손발톡이 독수리 발톱처럼 아주 길었고 갈퀴같았다. 수염
도 장군같이 덥수룩했다. 전혀 말을 알아듣질 못한다. 난. 속으로 '이또한 만만치 않겠군...' 그래도 나에겐 사
명감이란 것이 늘 존재했다.하느님이 주신 달런트라 믿어의심치 않았다. 일단 할아버지의 손을 잡으며 눈을 계
속 마주쳤다. 이렇게 7일이 지나서야 조금씩 할아버지가 조금씩 반가움을 표시한다. '이때가 기회다' 할아버
지의 웃옷을 벗기고 바지를내리고 팬티를 벗길 때 할머니는 보일러 목욕을 누르신다. 할머니와 나와 꿍짝이 잘 맞았다. 어르신의 팔을 부축하며 샤워실로 이동했다. 먼저 물의 온도를 내손으로 체크한다음 어르신의 몸에 물을 조금씩 끼얻는다.
갑자기 어르신이 맹물로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하신다. 이때다싶어 나는 샴푸를 잽싸게 짜서 어르신의 머리를 감겨드렸다. 그때까지만해도 괜찮았는데 면도기로 면도를 하려니까 주먹으로 손톱으로 나를 때리고 할퀴었다. 내 얼굴에 피가 흘러내
렸다. 누군가의 손이 당신의몸에 닿는 것을 제일 싫어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할머니를 통해 알았다. 내가 이 어르신을 맡기전에 수많은요양보호사가 학을 띠고 그만 두었단다. 결국 어르신은한쪽만 수염이 달린 채 목욕탕을 나오셨고 바지와 웃옷
을 동그랗게 입기좋게 바닥에 놓으면 그대로 양팔을 끼워 옷을 입고 바지도 동그렇게 놓으면 다리만 껴서 올리
기만 하게 놓아서 입는다. '휴~' 아, 사람이 진정 사람을 상대한다는 것이 이리도어려운 일이던가..?.' 할머니
가 할아버지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우리 할배는 서울에서 유명그룹회사를 45년 근무했던 사람인데 어느날 갑
자기 치매가 걸렸댄다. 그래서 강원도에 공기좋은데로 와서 시신댄다. '돈도 많고할머니는 독실한 기독교고'
홍천 교회에 가실 때도 내가 모셔다드리고 장날에도 모셔드린다. 시간이 나에겐 돈이기도 하니까... 시간제 일
당을 받는 나는 방문요양보호사다. 핸드폰으로 출퇴근을 어르신네 현관문에 달린어르신 돌봄 센서에 찍으면
자동으로 사무실의 컴퓨터에 입력된다. 소피아와 나 마티아는 저녁마다 묵주기도 5단을 바치고 돌아가신 어르신이 있으면 그분을 위한 기도를 바쳤다. 다음날도그 어르신을 만나 기쁘게 인사드리고 웃통을 벗기고 팬티까지 벗긴 후 목욕탕으로 갔다. 어제보단 말을 잘들었다. 눈에 익혀져서인지..? 머리를 감기고 타울로 온 몸을 닥아드리고 면도도 깨끗하게 하였다. 오늘은 주먹질
을 안해서 감사했다. 샤워가 끝나고 할머니가 할아버지 손발톱좀 깎아달래셨다. 너무 길고 두컵고 갈고리같아
엄두가 나질 않았다. 일단 연장통에서 니빠를 찾아 뭉툭하고 날가로운 손발톱을잘라냈다. 그런데 할아버지
가 몸부림친다. '아...땀난다결국 두시간 가까이 손발톱을 말끔히 잘라냈다. 줄로 매끈하게 갈고 로션을 발라
드렸다. '휴'~ 어르신이 갑쟈기 밖으로 나가신다. 창문너머로 뭘 하시려나 봤더니 내 차안에 들어가 핸들을 조작
하는 것이다. 할머니 왈"저양반은 평생 차를 몰고다녀서 차문을 꼭 잠궈야 한단다
'아차! 차문을 안잠궜다.' 기어라도 내리면 그냥 굴러가는데...! 얼른 쫓아가 어르
신을 껴안아 내리게 하고 차문을 잠궜다. 집에 먼저 와 있을 소피아가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