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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변증법 스터디 자료입니다. 이 가운데 일부 발췌하여 읽을 예정입니다. 이미 올린 피히테에 대한 소개도 참조하시면 좋겠습니다.
E. 일리옌코프: [인간의 사고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우기동/이병수 역, 책갈피 2019.
4-1장 논리학의 구조적 원리(이원론 혹은 일원론): 피히테
칸트는 자신의 사고이론에 관해 피히테가 제안했던 개선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피히테는 칸트가 불가능하다고 언명했고 내적 모순에 의해 소멸됐다고 규정했던 하나의 통일된 형이상학을 다시 창출하기 위해 이런 개선책이 직접적으로 요구된다고 봤다. 사실 피히테 이전에 인간생활의 중요한 원리를 제공하는 개념체계가 그 모습을 어렴풋이 드러내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비록 선험적(칸트 특유의 의미에서)인 것이지만 여전히 단 하나의 무모순적 개념체계인 것처럼 보였다. 변증법은 변증법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세계의 가장 중요한 것들에 관계하는 진정한 이론은 오직 하나만 존재할 뿐이다. “이 체계의 창시자는 오직 하나의 수학이 존재하듯이 오직 하나의 철학이 존재하고, 이런 하나의 철학이 발견되고 인정될 때에는 어떤 새로운 철학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며, 나아가서 지금까지 철학이라고 불리던 모든 것을 하나의 시도나 준비 작업쯤으로 확신하고^ 있다.”(인간113-114)
칸트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이 유일한 체계는 여전히 자신과 일치하지 않는 다른 체계를 타파해야 한다. 이 때문에 이런 체계는 모든 측면에서 ‘더욱 합리적’이어야 할 것이다. 바꿔 말하면 다른 체계를 설명하고 해석할 수 있어야 하고, 그래서 다른 체계보다 더 포괄적이어야 할 것이다.(인간114)
피히테의 입장에서 볼 때, 칸트가 영원히 극복할 수 없는 것으로 파악했던 입장, 즉 둘 다 참이면서 동시에 둘 다 거짓인 이론들이 존재한다고 파악했던 칸트의 입장은 통일된 하나의 체계개념(세계관)에 의해 극복되고 해소돼야만 하는 정신문화의 일시적이고 과도기적인 상태일 뿐이었다. 따라서 피히테는 칸트가 모든 과학적 지식의 영역에서 인식했던 변증법을 변증법과 반대되는 원리를 포함하고 있는 단일한 과학적 체계로 통합하고자 했다. 이 과학적 체계는 여태까지의 변증법을 일종의 유행으로 해석하며 그리고 변증법을 자신의 부분적이고 파생적인 원리로 전환시켰다.(인간114)
유일한 세계개념을 이전처럼 선험적이라고 해 보자. 즉 세계 자체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 주는 바는 없지만, 정상적으로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고 필연적으로 보편적이며 이런 의미에서 절대적으로 객관적인 세계개념을 상정해 보자. 칸트가 영원히 극복할 수 없는 정신문화의 특징으로 단언했던 이원론은 혁명적 기질을 지닌 피히테에게는, 사고가 자신의 원리를 일관되게 실현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졌을 뿐이다. 논리학은 상호 배타적인 두 체계를 동시에 정당화할 수 없다. 그럼에도 논리학이 그것을 정당화한다면, 논리학은 전혀 체계화돼 있지 못한 것이다.(인간114)
피히테는 칸트가 모든 개념 구성의 토대로 의식적으로 제안했던^ ‘물자체’ 개념 때문에 칸트의 사고이론이 근본적 부정합성을 지니게 됐다고 이해했다. 사물들에 기인하는 모든 범주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물자체라는 개념에 이미 언어도단적 모순이 도사리고 있다. 요컨대 물자체 개념은 모든 분석적 진술의 최상의 근본원리인 모순율을 위배하고 있다. 그래서 이 개념은 논리적으로 전개된 체계이론 내에서 정합적이지 못하다. ‘어떤 가능한 경험 이전에 그리고 외부에 존재하는 어떤 것’이라는 개념에는 실제로 칸트가 주목하지 못했던 약간의 난센스가 포함돼 있다. 자아가 ‘의식 밖의’(의식 안에 들어오지 않는) 사물을 ‘의식’한다고 말하는 것은 호주머니 밖의 호주머니에 돈이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인간114-115)
‘물자체’가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하는 것은 여기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피히테는 그 개념이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런 토대 위에 개념체계를 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모순이라는 결함이 칸트의 이론적 구성이 근거하고 있는 그 토대를 바로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다.(인간115)
물자체를 생각하는 것은 모순율에 입각해 볼 때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고, 따라서 분석적 진술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견지돼야 할 최상의 근본원리를 위배하는 것이라는 피히테의 결론은 나무랄 데가 없다. 피히테는 칸트가 논리학 체계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논리학 자체의 규칙들을 왜곡하는 나쁜 선례를 남기고 있다고 비난한다.(인간115)
피히테는 다음과 같이 문제를 제기했다. 논리학 자체도 하나의 과학이라면 올바른 사고를 위해 절대적이고 보편적으로 확립돼 있는 동일한 원리들을 따라야만 하는가? 아니면 논리학은 그런 원리들을 무시할 자격이 있는가? 논리학은 다른 여러 과학들 가운데 하나의^ 과학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오히려 스스로는 구속받지 않으면서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는 법을 지키도록 명령하는 고집스러운 어린 군주에 비유돼야 하는가? 이 물음은 순전히 수사학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칸트에 따르면, 관찰에 의해 주어진 사물들(모든 특수과학의 영역)은 어떤 규칙(진리에 관한 논리학의 규칙)에 따라 사고하고, 또 사고 속에 주어진 사물들은 그와는 다른 규칙(선험적 변증론)에 따라 사고하는 것이 결국 올바른 것이다. 이율배반의 모순과 결함이 오성과 이성 사이는 물론 이성 자체 내에서도 나타났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인간115-116)
그러나 이 경우 사고작용⋅인식주관⋅자아의 개념은 처음부터 무의미하게 됐고 자기모순적인 것이 됐다. 논리학의 모든 기본 범주들은 차이가 날 뿐 아니라 정반대가 되는 사고의 대상들을 나타내는 개념들이 돼 버렸다. 그 결과 우리는 사고하는 모든 개인에게는 서로 끊임없이 논쟁하는 두 가지 다른 자아가 있다는 입장을 가지게 됐다. 그 가운데 한 자아는 세계를 관찰하고, 다른 자아는 사고한다. 이에 상응해서 관찰되는 세계와 사고되는 세계라는 서로 다른 두 세계(직접적 경험과 실제 생활에서는 하나로 통합돼 있다 할지라도)가 존재하는 셈이 된다.(인간116)
일반적으로 칸트는 사고주관인 자아 자체를 ‘물자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 때문에 이런 자아에 관한 모든 규정체계, 즉 사고의 논리적 매개변수에 관한 체계인 논리학을 창출하고자 할 때, 이 체계는 철저히 모순적이고 자기 파괴적이다. 그 결과 우리가 칸트를 따른다면, 논리학을 하나의 과학으로서 구성하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하게 된다. 또한 논리학을 구성할 때, 다른 모든 과학에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것으로 적용되는 규칙을 발견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나아가서 여러 과학들에 적용되는 동일한 능력을 지닌 사고 일반이란 존재하지 않고, 오히려 기본적으로 이질적이면서도 동일한 이름으로 불리는 두 개의 다른 주관, 즉 두 개의 다른 자아(이들 각각은 서로 무관하게 고찰되지 않으면 안 된다)가 존재하게 된다.(인간116-117)
이런 칸트의 입장은 피히테가 볼 때 개념의 혼란(칸트 자신은 자아 중 하나를 현상으로, 다른 하나를 본체로 불러야만 했다)을 초래했을 뿐 아니라 과학으로서의 논리학의 이념을 의미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왜냐하면 피히테는 ‘물자체’ 혹은 본체로서의 ‘사고’에 관한 사고의 고찰로부터 끌어낸 모든 결론을 관찰과 표상에 주어진 사물에 관한 사고와는 전혀 무관한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칸트의 주장을 따른다면 논리학(사고에 관한 사고)의 모든 명제는 사물에 관한 사고, 예컨대 자연과학자들의 사고에 대해 아무런 구속력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인간117)
그리하여 피히테 철학의 중심 이념인 보편적 지식학의 이념, 말하자면 칸트의 논리학과는 달리 사고의 모든 적용에 대해 실질적 의미를 갖는 원리들로부터 출발하는 이론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보편적 지식학은 사고에 관한 사고와 사물에 관한 사고를 동등하게 결합하는 법칙과 규칙에서 출발하고 있다. 사고에 관한 사고인 논리학은 그 밖의 과학 일반을 위해 관찰에 적용시킬 수 있는 사고의 원리(지식학의 원리)의 모델과 사례를 제공해야만 한다. 이런 원리는 사고가 수학⋅물리학⋅인류학 등의 현상을 대상으로 삼을 때와 사고가 개념, 즉 사고 자체를 대상으로 삼을 때 모두 동일하게 적용돼야만 한다.(인간117)
하나의 개념은 다른 대상과 마찬가지로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기 때문에 어떤 대상이 다른 방식이 아니라 바로 개념으로 표현되는^ 한 우리는 그 대상을 그만큼 더 과학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개념을 정의하는 것과 대상을 규정하는 것이 절대로 동일한 표현임을 의미하는 것이다.(인간117-118)
따라서 피히테의 과학의 과학(지식학)에 관한 최초의 원리는 사물과 의식, 대상과 그 개념의 대비나 대립이 아니라, 자아 자체 내의 대립이었다. 서로 전혀 무관하면서 이원론적으로 분리된 두 가지 다른 원리에서는 하나의 통합된 체계가 창출될 수 없다. 필요한 것은 이원론이 아니라 일원론이고, 최초의 두 원리가 아니라 오직 하나의 원리다. 왜냐하면 최초의 두 원리가 서로 다름에 따라 하나로 통합될 수 없는 별개의 두 과학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인간118)
따라서 피히테는 대상과 그 개념을 동일한 자아의 두 가지 다른 존재양식, 즉 자아가 그 내부에서 자기 분화된 결과로 해석했다. 칸트에게 대상 혹은 ‘물자체’(개념과 대상)로 나타났던 것은 실제로 무의식적이고 무반성적인 자아활동의 산물이었다. 왜냐하면 자아의 활동이 그 상상의 힘으로 감각적으로 관찰된 사물의 상(像)을 산출하기 때문이다. 개념도 동일한 자아활동의 산물이지만, 자아활동 자체의 과정과 의미에 관한 의식과 더불어 발생한다.(인간118)
따라서 개념과 대상 사이의 최초의 동일성, 다시 말해 감각적으로 관찰된 세계를 구성하는 법칙과 사고나 개념의 세계를 확립하는 법칙 사이의 최초의 동일성은 양자가 유래하는 원천인 주관의 동일성 속에 이미 포함돼 있다. 자아는 먼저 상상의 힘으로 어떤 산물을 창출하고, 그런 다음 그것을 자신과 구별되는 어떤 것, 즉 개념의 대상, 비자아로 간주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실제로 자아는 비자아의 형태를 취하면서도 이전처럼 오로지 자기자신에만 관계하고, 마치 자기자신을 거울에서처럼 자기 외부에 있는 대상으로 간주한다.(인간118)
그래서 사고 자체의 과제는 관찰된 상을 창출하는 자신의 활동을 이해할 뿐 아니라 자신의 활동을 분명하게 설명하는 것 없이 이전에 무의식적으로 산출했던 것을 의식적으로 재산출하는 자신의 활동을 이해하는 것이다. 사실 추론적 사고작용(의식적으로 규칙에 따르는 사고작용)에 관한 법칙이나 규칙은 직관적 사고작용에 대한(논리적 도식으로 표현된) 의식적 법칙과 꼭 마찬가지다. 여기서 직관적 사고작용은 인식주관인 자아의 창조적 활동으로서, 관찰에 의해 관찰된 상(像)의 세계를 만들어 내는 것을 의미한다.(인간118-119)
오직 이런 관점으로부터 개념과 그 대상을 비교하는 작업이 합리적 의미를 획득한다. 피히테는 칸트가 물자체와 그 개념 사이의 아무런 매개 없는 대립을 설정함으로써 개념 자체 내에서뿐 아니라 개념들의 체계 내에서조차 완전한 이원론에 빠지게 됐음을 보여 줬다. 피히테는 자신의 관점으로부터 논리학이나 논리적 사고의 제1원리인 대상과 개념의 동일성의 원리를 부정하는 것은 논리적 전제이자 논리적 사고의 보편적 형식인 동일율을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아주 일관되게 보여 주고 있다. 달리 표현하면, 만약 과학으로서의 논리학이 동일률과 모순율(모순율은 단지 동일률을 부정적으로 표현한 것일 뿐이다)을 올바른 사고작용을 위해 절대로 필요한 조건으로 생각한다면, 논리학은 그런 원리들을 사고작용 자체를 이해하는 데는 물론 특수한 대상이나 개념을 규정하는 데도 적용해야만 한다.(인간119)
사실 논리학에서 개념은 또한 탐구대상이기도 하다. 즉, 논리학은 개념의 개념을 분석해야 한다. 논리학에서는 모든 과학의 개념이 개념적으로 분석된다. 그리고 어떤 대상이라도 이미 개념으로 전환되고 개념으로 표현되는 한에서만 논리학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논리학에서 개념과 그 대상은 완전히 동의어다. 왜냐하면 논리학은 감각적으로 관찰되거나 직관된 사물들에 직접 관계하지 않기 때문이다.(인간119-120)
그러므로 사고의 규정들에 관한 과학적 체계인 논리학에서 ‘물자체’나 ‘개념으로 표현되기 이전의 대상’과 같은 표현 등은 들어설 여지도 없고 들어설 수도 없다. 논리학은 일반적으로 그런 대상들에 관해 언급할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그런 대상들은 논리학의 표현 가능성이나 권한을 넘어서 있는 초월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이성을 초월한 이해나 신념, 비합리적 직관 그리고 그 밖의 다른 인식능력들은 논리학의 한계를 넘어서 있다. 이 능력들은 과학 내에서는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리고 피히테는 적어도 자신의 지식학이 이런 이성 초월적이고 비합리적인 인식능력들과 관련 맺기를 원치 않았다.(인간120)
하나의 논리학을 창출하려 했던 칸트의 시도에 대한 피히테의 비판은 본질적으로 주관적 관념론의 입장에서 가해진 것이고, 또한 ‘우파’의 이원론 비판의 일관성 있는 고전적 모델이었다. 현대의 모든 신실증주의자들이 피히테의 말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그들은 피히테와 유사한 방법으로 외적 대상에 대한 개념의 관계문제를 폐기시키고, 그것을 개념에 대한 외적 대상의 관계문제로 대체시켜 버렸다. 후자의 관계는 당연히 ‘기호’(‘개념’을 대신하는 용어)와 지시체의 동일성으로 규정된다. 이때 동일률(따라서 모순율)은 결국 동일한 기호는 동일한 사물을 지시해야만 하고, 동일한 의미를 지녀야만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인간120)
다시 피히테로 돌아가 보자. 그는 세계에 대한 논리체계와 논리적 전형을 축조하려 함으로써 당연히 그의 스승 칸트의 생각과 충돌하^게 됐다. 칸트는 피히테의 모험을 직접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는 다음과 같이 단언한다. 즉 나는 피히테의 지식학을 전혀 지지할 수 없는 체계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순수지식학은 순수논리학처럼 원리적으로 지식의 소재를 획득하지 못하고 지식의 내용을 추상화하는 벌거벗은 논리학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논리학으로부터 실재 대상을 이끌어 내는 것은 공허한 일이고, 그래서 지금까지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선험철학이 문제가 될 때, 논리학은 필연적으로 형이상학으로 변모돼 버리고 만다.”(인간120-121)
칸트는 처음부터 형이상학을 창출하려는 시도를 거부했다. 형이상학이 물자체의 세계를 서술해야만 하기 때문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율배반의 돌풍에 의해서도 부서지지 않는 유일한 개념체계의 수립, 즉 모든 과학의 가장 중요한 결론과 일반화를 그 자체 내에서 종합할 수 있는 체계의 수립을 보증하는 논리학을 창출하려는 시도(피히테)는 칸트가 보기에는 실현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체계가 객관적으로(유물론적으로) 해석되거나 아니면 주관적으로(선험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성립 불가능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칸트가 ‘하나의 체계를 창출하지 못하고’, 오로지 과제만을 제시하고 과학을 체계로 구성하기 위해 필요한 가장 중요한 원리(그것도 완전히 일관되게 성취하지는 못했다)를 갖추도록 했을 뿐이라는 자신에 대한 비판을 전혀 근거 없는 비난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주 당연하다. “철학 자체의 체계가 아니라 선험철학에 대한 예비학을 제시하는 것이 나의 의도라고 생각하는 것을 나는 이해할 수 없다.”(인간121)
피히테는 칸트의 철학적 개념체계는 하나의 체계가 아니라 단지 체계를 구성하기 위해 필요한 원리나 견해, 더구나 일관되지 못한 원^리나 견해를 결합시켜 놓은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논의는 새로운 수준으로 이행했다. 즉, 체계란 무엇인가? 과학적 개념체계를, 각각은 참일지 모르지만 다른 판단들과 연관 정도가 꼭같지 않은 일련의 판단들로부터 구별 짓는 원리와 기준은 무엇인가?(인간121-122)
‘체계’라는 개념을 설명할 때 피히테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정식화하고 있다. 즉 “모든 과학적 설명이 그러듯이 나의 설명도 가장 무규정적인 것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이것은 독자들이 보는 앞에서는 다시 규정된다. 따라서 설명 과정에서, 원래 대상에 결합돼 있던 술어와는 아주 다른 술어들이 그 대상과 결합될 것이다. 나아가서 나의 설명은 나중에 논박할 명제들을 빈번하게 제시하고 전개할 것이며 이런 방법으로 반(反)을 통해 합(合)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런 방법을 통해 최종적으로 규정된 참된 결과가 마침내 발견된다. 물론 여러분은 이런 결과만을 추구한다. 말하자면 여러분은 그 결과가 발견되는 방법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므로 피히테에 따르면 체계는 모순들이 제거된 결과다. 그리고 모순들은 체계 외부에서 매개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고, 모순들 자체는 서로를 부정한다. 그러므로 칸트에게는 체계란 없고, 다만 발전에 의해 매개되지 않은 명제들만 있다. 칸트는 기존의 매개되지 않은 명제들을 받아들여서 형식적으로 서로 결합시키려는 헛된 노력을 기울였으나 그런 명제들이 이미 서로를 부정하기 때문에 실현이 불가능했다. 피히테에게서 전체는 오직 부분들의 성공적 통일에 의해서만 발생한다.(인간122)
피히테는 칸트의 입장에 반대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보편성은 결코 단일성을 통해 다수성을 이해함으로써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단번에 포착된 단일성으로부터 무한한 다수성을 이끌어냄으로써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분화되는 최초의 보편성은 무엇보^다도 먼저 과학적 체계로 확립돼야만 한다.(인간122-123)
그러나 칸트가 그리고 있는 체계 전체의 모습도 그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특수한 것들, 즉 부분들로부터 설명된다. 이제 칸트 이후의 과제는 전체로부터 특수한 것들을 끌어내 비판적 검증과 재검증 과정을 거침으로써 불필요하고 우연적인 것들을 모두 전체 체계로부터 제거하고 전체를 구성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다양한 정의들만을 그 체계에 보존하는 데 있다. 그리하여 전체(보편성)는 특수한 것들을 선택하는 기준이 된다. 이제 유일한 원리로부터 출발해 특수한 것들의 전체 체계를 점차 체계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그럴 경우 우리는 과학, 즉 하나의 체계를 획득할 것이다.(인간123)
다시 말해서 칸트철학을 분석하는 피히테의 논리학은 순수 이성 비판의 ‘선험적 변증론’에 나타나 있는 문제들, 다시 말해 개념들과 판단들을 단 하나의 이론체계 내에 절대적으로 종합하는 문제들에 집중적 관심을 보이고 있다. 여기서 논리학의 ‘출발점’이 발견될 수 있다. 피히테는 사고에 대한 새로운 탐구영역을 ‘지식학’(과학적 규정체계를 발전시키는 보편적 형식과 법칙에 관한 과학)이라고 부를 것을 제안했다. 물론 과학적 체계 내의 규정들은 수학⋅생리학⋅천문학⋅인류학 등과 같은 모든 특수과학에 대해 불변적인 것이어야 한다. 이런 규정들이 모든 대상에 적용돼야 한다는 것은 과학적 탐구가 가능한 모든 대상과 그 논리적 ‘매개변수’에 대한 보편적 규정체계로 나타나야만 하는 것을 의미한다.(인간123)
결국 과학은 자기활동의 근거를 분명하게 제시해야 하고, 자기의식을 성취해야 한다. 그리고 과학은 경험에 주어지는 모든 대상을 이해하도록 만드는 동일한 범주들을 통해 자신의 자기의식을 표현해야만 한다. 사실 ‘과학의 과학’은 가능한 모든 대상을 개괄하는 규^정체계이자 동시에 모든 대상을 구성하는 주관의 구조인 것이다. 그리고 ‘과학의 과학’의 논리적 형식은 이성적 의식일반의 체계를 추상적으로 표현하고 확립시키는 형식이다. 여기서 이성적 의식일반이란 여러 개인들의 경험적 의식이 아니라 사고를 소유하고 있는 모든 존재의 활동에 대한 필연적⋅보편적 형식(도식)을 의미한다.(인간123-124)
우리가 흔히 ‘논리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가능한 모든 대상을 구성하는 의식의 보편적 활동에 관한 추상적 도식일 뿐이다. 피히테는 특히 지식학과 ‘논리학’의 관계를 탐구하고 그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피력했다. 피히테는 논리학을 지식학에서 수행되는 의식활동에 관한 추상적 도식일 뿐이라고 봤다. 따라서 피히테가 언급하고 있는 지식학은 논리적으로 논증될 수 없고 지식학에 대해 어떤 논리적 명제, 심지어 모순율을 전제하는 것조차도 불가능하다. 반대로 모든 논리적 명제나 논리학은 지식학으로부터 연역돼야만 한다. 따라서 논리학은 그 의미를 지식학에서 획득하지만, 그 역은 성립되지 않는다.(인간124)
사실 이론적 ‘도식화’(논리적 규칙과 명제의 지배를 받는 활동)는 결코 필연적이고 자연적인 전제를 결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본질적으로 모순적이고 대립하는 규정들을 결합시키는 어떤 변화에 직면해 사고작용이 일어날 때, 그 전제에 대한 분석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칸트는 변화란 “대립하는 두 규정을 지닌 동일한 주관의 존재를 전제하고” 있다는 사실과 동일한 것이 다른 시간 계기에 어떤 술어 A를 가질 수 있고 그 후에는 그것을 상실하고 not-A를 가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주 잘 이해했는데, 피히테는 칸트와 전혀 다르지 않다. 그러나 하나의 사물이 자기동일성을 유지하면서 술어 A를 상실하고 다른 어떤 것(또 다른 개념의 대상)으로 변형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칸트는 소멸하는 술어 A는 그 사물의 개념에 속하지 않으^며, 또한 필연적이고 보편적인 규정들 가운데 하나도 아니라고 이해했다. 경험적으로 보편적인 표상과 대비해서 개념은 절대적으로 변하지 않는 그 사물의 특징만을 표현한다. 이론이 변화와 무관하다는 견해는 또한 칸트를 사로잡고 있었던 오래된 편견이기도 했다. 모든 변화는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경험적 관점의 문제라는 것이다. 논리학의 규칙에 따라 구성된 이론은, 말하자면 시간의 힘이 거세되고 난 다음의 대상을 취급해야 한다. 이론은 시간의 진행에 따라 하나의 사물로부터 제거돼 버린 규정들을 개념의 정의 안에 포함시킬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개념은 언제나 모순율의 보호막 아래에 들어 있다.(인간124-125)
만약 이론적으로(논리학의 규칙에 따라 구성된 이론적 도식의 형태로) 표현된 대상을 절대로 변화하지 않는 것으로 이해하지 않고 피히테처럼 의식 내에서만 생성되는 어떤 것으로 이해한다면, 어떤 사태가 발생할 것인가? 다시 말해 만약 논리적 도식이 의식 내에서 이뤄지는 변화 과정(사물의 시원과 생성)만을 취급해야 하는 것이라면, 의식은 모순율과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가? 논리학 자체는 독자들의 눈에 대상을 구성하는 추상적 도식, 즉 더욱 새로운 술어들로 최초의 개념을 계속해서 풍부하게 하는 추상적 도식으로 비칠 것이다. 만약 논리학이 이처럼 처음에 A, 그다음에는 B(A가 아닌 not-A로 이해될 수 있는)가 필연적으로 발생하고 그리하여 C, D, E, …Z까지 발생하는 과정으로 이해된다면, 논리학이 설 땅이 있는가? 왜냐하면 A와 B의 단순한 결합마저도 A와 not-A의 결합이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면 B를 A로 봐야 할 것인가?(인간125)
피히테의 결론은 다음의 두 명제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이다. (1) 모순율은 절대적이다(이때 어떤 종합도 불가능하고, 서로 다^른 규정들 사이의 결합도 불가능하다). (2) 개념의 규정들에는 발전도 있고 종합도 있다(이 개념규정들은 모순율이라는 절대적 전제를 따르지 않는다).(인간125-126)
피히테는 또 다른 제3의 길을 따랐다. 즉, 그는 개념으로 나타낼 수 없는 상호 배타적인 규정들의 결합과 종합은 관찰이나 직관(사물의 상을 구성하는 활동)에서 언제나 발생한다는 관점으로부터 출발했다. 그래서 유명한 제논(Zenon)의 역설을 분석해 그 어떤 유한한 길이라도 무한히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줌으로써 피히테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즉 “그러므로 여러분은 개념에서는 불가능하고 모순적인 것이 공간의 직관에서는 현실적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인간126)
그러므로 논리적 표현에서 모순에 부딪힌다 하더라도, 그 사물이 존재할 수 없다고 서둘러 단언해서는 안 되고 형식논리학보다 고차적인 권리를 지닌 직관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직관활동을 분석해 보면 하나의 규정에서 필연적으로 그 규정에 대립하는 또 다른 규정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 즉 A는 필연적으로 not-A로 전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모순율의 요구를 희생시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결과 모순율은 논박할 수 없는 진리의 척도로 간주될 수 없게 돼 버린다.(인간126)
피히테는 이와 같은 변증법을, 자아의 활동에 의해 비아(非我: Non-Ego)를 정립하는 의식의 근원적 활동을 예로 들거나 인간을 사고주체로서의 인간과 사고대상으로서의 인간으로 구별함으로써 논증했다. 한 개인이 그 자신의 의식적 구성 활동을 인식할 가능성이 있는가? 분명히 인식할 수 있다. 그는 대상을 사고할 뿐 아니라, 자신의 사고작용에 대해서도 사고한다. 그리하여 사고작용 자체를^ 하나의 대상으로 바꾼다. 이런 훈련이 언제나 논리라고 불린다.(인간126-127)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 경우에 출발점은 자아 자체와 구별되는 어떤 결과를 산출하는 활동주체로 이해되는 자아일 수밖에 없다. 자아는 처음에 자기자신과 동일하고(자아=자아) 능동적⋅창조적이며 자기자신이 비아로 전환할 필연성을 이미 자신 속에 포함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자기 성찰을 통해 직접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왜냐하면 의식일반은 자신 이외의 어떤 것에 대한 표상, 예컨대 비아⋅대상⋅사물 등에 대한 표상이 의식 내에서 발생할 때에만 자각된다. 어떤 것에 의해 충만되지 않은 공허한 의식이란 있을 수 없다.(인간127)
자아가 비아로 전환하는 것은 물론 논리학의 규칙에 대한 탐구에 앞서 그런 탐구와 완전히 무관하게 발생한다. 이런 전환은 자연적(원초적) 사고의 문제로서, 논리적이고 반성적인 사고작용의 원형이다. 논리적이고 반성적인 사고작용은 산물의 상을 구성하는 자신의 활동 내에서 합법칙적 필연성을 발견하고 난 다음부터는 수많은 규칙과 논리의 형태로 합법칙적 필연성을 표현하게 되는데, 그 결과 의식적으로(자유롭게) 그런 규칙과 논리를 따를 수 있게 된다.(인간127)
그러므로 모든 논리적 규칙들은 현실적 사고작용의 분석을 통해 연역되고 도출돼야만 한다. 바꿔 말하면 논리적 규칙들은 그것들이 비교되고 대비될 수 있는 어떤 원형을 가지고 있다. 이런 접근방법은 칸트의 입장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칸트의 입장에 따르면, 모든 기본적인 논리적 원리와 범주는 자신의 술어가 모순을 포함하지 않도록 자기 일관성을 유지해야만 한다. 따라서 칸트는 논리학의 법칙과 범주를 전제하고 있는 반면, 피히테는 논리학의 법칙과 범주가 연역될 것을 요구하고, 또 보편적 필연성에 의해 논증될 것을 요구하고 있다.(인간127)
피히테 역시 칸트와 마찬가지로 논리적 형식과 법칙의 실질적 내용을 침해하지 않았다. 반대로 그는 칸트 이전의 논리학과 칸트의 논리학에서 알려진 모든 논리적 도식을 적용할 때 더욱 엄격한 조건을 제시함으로써 그 도식의 정당성을 논증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는 논리적 도식의 정당성을 논증하는 과정에서 논리적 도식을 제한했다. 예컨대 그는 모순율이 하나의 규정과 관련해서는 충분한 근거를 지니지만 발전 체계에서는 무시해도 좋다는 견해를 표방했다. 왜냐하면 뒤에 나타나는 모든 규정은 앞선 규정을 개별적으로 그리고 절대적으로 부정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인간128)
피히테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논리적 공리와 범주를 보편적 도식으로 여길 수 있도록 그 도식과 범주에 대한 전체 체계를 연역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는 경험적 자료를 개념 산출의 단계로까지 끌어올려 종합하고 아직 분화되지 않은 최초의 개념을 수많은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술어 규정들로 구체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여기서 피히테가 왜 논리적 범주의 전 체계를 연역하고자 했던 그의 계획을 성취하지 못했는지, 그리고 왜 논리학을 엄밀한 과학적 체계로 전환시키지 못했는지를 설명할 필요는 없다. 이 경우에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중요하다.(인간128)
주지하다시피 피히테 이후의 피히테 비판은 그의 실패 이유를 분명히 설명해 주고 있다. 피히테에 대한 비판은, 논리학을 개혁해 현실적 사고작용의 탐구로부터 논리학의 전체 내용을 연역하고자 한 피히테의 생각을 방해했던 전제들을 분석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리고 이런 비판은 칸트가 이율배반적이어서 결합될 수 없고 무모순적인 하나의 체계 내에 포함될 수 없는 것으로 여겼던 범주들, 즉 서로 직접적인 부정(형식적 모순)의 관계에 있는 범주들을 하^나의 동일한 체계 내에 결합시키고자 한 피히테의 생각을 방해했던 전제들에 대해 분석하는 것이기도 했다.(인간128-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