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도 의사도 못믿는 세상 / 조영안
아침 일찍 가깝게 지내는 동생이 전화했다. 이른 시간에 걸려 오는 전화는 예감이 좋지 않다. 나는 시골에 연로하신 친정 부모님이 계시기에 항상 전화에 신경쓰는 편이다. 자다가도 무음으로 해 놓은 전화를 수시로 점검한다.
불길한 예감은 맞았다. 가까운 지인의 소식이다. 우려 했던 대로 췌장암이란다. 이미 간에까지 전이가 되어 수술도 못 한단다. 순간 온갖 생각들이 스친다. 어쩌지? 독거노인 인데.
그는 호주로 이민갔다가 30년 전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처자식을 그곳에 남겨 둔 채 홀연히 고향을 택했다. 어쩌면 그때부터 기구한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는지도 모른다.
그는 박 대통령 시해 사건 전 부마 항쟁 때 중부 조종관으로 부산에서 근무했다. 사건 이후 오도 가도 못하고 있던 중 상부의 부름을 받고 귀경했다. 직속 상관인 정보부 부장은 체포된 상태였다. 이미 전두환 체제로 전환되는 시점이었다. 얼마 전 본 '서울의 봄'에서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느낄 수 있었다.
남산에서 대공 부문 수사 반장이던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체포하라는 뜻밖의 지시를 받는다. 수사관을 대동하고 갔다. 상황을 설명하고 정중하게 모셨다. 그에 따르면 같은 전라도 출신이었고, 평소 존경했던 분이었다고 했다. 체포는 했지만 지하에서 수사도 하지 않고 있었다. 전두환이 위에서 지켜보며 "저 새끼는 뭐 하는 거야? 뭐라도 캐내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닦달했다. 서슬 퍼런 독설이었다. 이 증언은 전두환이 사망한 직후 모 방송국에서 바로 뉴스로 내보냈던 그의 인터뷰 내용이다.
체포 소식을 듣고, 광주 민주화 운동(당시는 5·18 사태)이 터졌다. 그는 바로 사표를 냈다. 더 이상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 높은 직책을 준다는 끈질긴 구애도 있었지만, 가족과 함께 호주로 이민을 택했다.
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그의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그리고 돌아온 후 펴낸 '비하인 스토리 남산'에서도 그때 상황이 전해졌다. 정부 기관의 제지도 있었지만, 이미 봄날이 된 우리나라 민주화에 서서히 묻혔다고 들었다. 제2편은 다시 내지 않은 조건이었지만, 집필이 되어 있어 후대에 낼 계획이라고 한다.
그는 우리 가게의 단골손님이다. 나와 대화가 통하기도 하는 데다, 고향 깨복쟁이 친구들과의 만남의 장소로 자주 오는 터라 친해졌다. 항상 건강에는 자신했다. 그리고 주치의가 있어 책임지고 있다며, 걱정도 않는단다. 그런데 며칠 전 혈당 수치가 400이 넘었다. 동네병원 주치의는 며칠간 기다려 보자고 했다. 그런데 내려가지 않고 계속 300 이상이 나왔다. 의사는 초음파 결과를 보고, 소견서를 끊어주며 종합병원에 가라고 권했다.
30년 지기 절친한 동생이 보호자가 되어 입원했다. 그의 성격을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은 그 동생밖에 없어서다. 그는 성격이 대쪽이다. 허튼소리나 농담 같은 것은 하지 않지만, 잘잘못은 정확하게 가리고 잘한 일은 아낌없이 칭찬한다. 항상 꼿꼿한 자세로 음식을 먹고, 반찬은 김치와 깍두기를 좋아한다. 동생이 보호자 겸 간병인 역할을 하지만, 그 역시 환자다. 옆에서 볼 때 불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딸 둘 중 큰딸이 서울에 산다. 호주에서 대학을 나와 지금은 신소재 재생 사업으로 우리나라와 사우디와의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한다. 왕세자와 친구로 지내기에 순풍에 돛을 단 듯 사업이 순조롭단다. 딸은 아버지를 서울로 옮겨 치료를 받으려고 하지만 지금은 의사들 파업으로 어렵단다. 과연 누가 옳은지 모르겠다. 환자의 목숨을 담보로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지만, 결국 피해는 우리 몫임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아침 일찍 전화한 동생은 동네 병원을 원망했다. 나와 생각이 똑같다. 그는 주기적으로 기본 검사를 했다. 자칭 주치의로서 할 도리는 했을까 의문스럽다. 건강에 이상 없다고 호언장담 했기에. 그 역시 의사만 믿었다. 이젠 동네 의원도 못 믿겠다. 아침 아홉 시가 되기 전부터 노인들이 줄을 선다. 문 여는 것과 동시에 환자가 밀려들어 와글와글한다. 아프다면 진통제만 듬뿍 처방한다. 그런 병원이 내가 사는 읍에 세 곳이나 된다며 동생은 울분을 토한다.
역사의 산증인이었던 그는 병상에 앉아 무얼 생각할까? 나는 그의 표정이 궁금했다. 굳은 표정의 빨개진 얼굴로 천정만 쳐다보더란다.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서울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면 좋겠다. 회복하여 당당했던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따뜻한 봄날이 찾아오듯.
첫댓글 와, 파란만장한 인생을 사셨네요.
회복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같이 시절에는 아프면 안되겠어요.
전공의도, 가르치는 교수까지 파업한다고 하니 나라가 어찌 돌아가는지 불안하기만 합니다.
이번 주제를 쓴 글에 안타까운 일이 많네요. 답답합니다.
하루라도 빨리 큰 병원에서 제대로 진단도 받고 치료하고 싶을 텐데, 이런 상황이니 더 안타깝네요.
아이고, 빨리 치료를 받으셔야 할 텐데 안타깝네요.
정부도 의사도 다 밉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