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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불교 업과 윤회”-(조계사 종무행정지원단장 원지스님)불기 2070년 7월 교육법회 봉행!
삼보에 귀의 하옵고_()_
1. 법 회 개 요 |
⊛주 제: “미국불교 업과 윤회”
⊛일 시: 2026년 7월 10일(금)저녁7시00분
⊛장 소: 조계사 극락전
⊛법 사: 원지 스님(조계사 종무행정지원단장)
⊛사 회: 기획부장 월도 임병웅
⊛참석자: 대경 박수정 회장 외 62명 참석
⊛집 전: 신행부장 거연 강민구
2. 법 회 식순 |
▲개회사 ▲삼귀의 ▲우리말 반야심경 ▲인사말(대경 박수정 회장)▲음성공양(흔치않은 인연 / 고맙소)▲청법가 ▲입정 ▲법문(종무행
정지원단장 원지 스님) ▲발원문(포교부장 여실심 고정숙) ▲ 공지사항 ▲사홍서원 ▲산회가 ▲폐회사 ▲ 기념사진 촬영
백중(우란분절)을 앞둔 조계사 도량은 연꽃으로 아름답게 장엄되어 부처님의 자비와 청정한 마음을 느끼게 합니다. 만개한 연꽃 사이로 기
도와 수행의 발걸음이 이어지며, 도량은 불자들의 마음을 밝히는 아름다운 수행 공간이 되고 있습니다.
◆조계사불교대학 총동문회 53선지수 합창단 음성공양
◑곡명 : 흔치안은 인연/ 지휘 : 박경태교수 / 반주:삼조 정진경 /포교부장: 고정숙 여실심
3. 법 회 스케치 |
『리틀 붓다』를 통해 살펴본 불교의 업과 윤회
요즘 조계사 도량에는 연꽃 봉우리가 만발하여 찾는 이들에게 아름다운 쉼터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백중(우란분절)을 앞두고 극락구품도 인
경 공양 접수와 각종 기도 준비로 도량이 더욱 분주한 가운데, 지난 7월 10일 조계사 불교대학 총동문회는 종무행정지원단장 원지스님을 모
시고 교육법회를 봉행했습니다.
이날 법회에서는 총동문회 회장 인사말은 부회장 법연심 안영란 님의 대독으로 진행되었으며, 원지스님께서는 영화 『리틀 붓다(Little
Buddha)』를 통해 불교의 핵심 가르침인 업과 윤회에 대해 깊이 있는 법문을 전해주셨습니다.
회장 인사말을 통해 박수정 회장은 “우리 조계사 불교대학 총동문회가 많은 동문들의 원력과 봉사, 수행의 마음으로 창립 20주년이라는 뜻
깊은 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며, “지난 20년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며 함께 성장해 온 소중한 여정이었다”고 전했습니다.
또한 “창립 20주년 기념법회는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감사의 마음을 나누며 새로운 20년을 발원하는 자리”라며, 승보공양과 장학금 전달을
통해 나눔과 수행의 가치를 실천하는 동문회가 되어가기를 발원했습니다.
이어진 원지스님의 법문은 영화 『리틀 붓다』 속 장면을 중심으로 불교의 윤회관과 업의 의미를 살펴보는 시간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원지스님께서는 “불교의 윤회는 힌두교의 윤회와 다르며, 불교에서는 변하지 않는 고정된 자아나 영혼이 이동한다고 보지 않는다”고 설명했
습니다. 이어 “윤회란 어떤 존재가 그대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업과 마음의 흐름이 원인과 조건에 따라 이어지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
다. 또한 “업은 의도에서 비롯된다”며 “선한 의도로 행동하면 선업이 되고, 악한 의도로 행동하면 악업이 된다. 현재의 삶은 과거의 행위의
결과이며, 미래 역시 지금 우리의 생각과 행동으로 만들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불교의 핵심 가르침인 무아(無我)에 대해 설명하며, “우리가 ‘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부모, 환경, 경험과 관계 등 수많은 인연과 조건 속
에서 형성된 것이며, 고정된 나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것이 수행의 길”이라고 법문하셨습니다.
원지스님은 『법구경』의 “집 짓는 자여, 이제 그대는 다시 집을 짓지 못하리라”라는 오도송을 통해 갈애와 집착을 내려놓는 깨달음의 의미
를 전하며, “수행은 내가 좋아하고 집착하는 것을 하나씩 내려놓으며 마음을 자유롭게 하는 과정”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만나면 베풀고, 헤어지면 고요하다”는 가르침처럼 집착 없이 자비를 실천하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불법을 일상에서 실천
하는 것이 진정한 수행임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이날 법회에 참석한 동문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다시 되새기고, 업과 윤리에 대한 깊은 이해와 함께 앞으로의 신행 생활을 더욱 정진해 나
갈 것을 다짐하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글 정리 : 불교대학 총동문회 법연 이동엽 합장
4. 공 지 사 항 |
❏ 2026년 20주년 창립법회
⊛일 시 : 2026년 07월 24일 (금)저녁 7시
⊛장 소 : 조계사 대웅전
⊛법 사 : 조계사주지 담화(曇華) 원명 큰스님
⊛주 제 :
⊛행 사 : 승보공양, 장학금 수여, 축하공연, 화합의 시간
❏연꽃 play 워터파크
⊛일 시 : 2026년 07월 26일(일) 오전 09시 30분~16시:30분
⊛장 소 : 조계사
⊛대 상 : 유아5세~청소년까지 300명 (선착순)
❏하안거 선원대중공양
⊛일 시 : 2026년 07월 27일 06시 30분
⊛장 소 : 조계사 일주문 출발 (통도사)
❏2026년 백중 연화미 마지공양
⊛일 시 : 2026년 07월 24일(금) 09시:00
⊛장 소 : 조계사 대웅전
❏ 2026년 인경봉사
⊛일 시 : 2026년 06월29일~7월28일
⊛장 소 : 조계사앞 마당
❏ 연꽃 및 연등 모연
⊛일 시: 2026년 8월11일(화)~8월 14일(금) 오전 9시~오후4시
⊛장 소 : 조계사앞 마당
⊛문 의 : 총무부장 세정화 설민경 010-3789-8621
❏천수다라니기도법회
⊛일 시 : 2026년 08월 28일 저녁7시
⊛장 소 : 조계사 극락전
⊛문 의 : 신행부장 거연 강민구
❏ 7월 운영위원회의
⊛일 시: 2026년 08월 13일(목)요일 저녁 7시
⊛장 소 : 추후 공지 예정
⊛문 의 :총무부장 세정화 설민경 010-3789-8621
❏ 2026년 8월 교육법회
⊛일 시 : 2026년 08월 14일 (금)저녁 7시
⊛장 소 : 조계사 극락전
⊛법 사 : 종무행정지원단장 원지스님
⊛주 제 : 티벳불교, 중국의 티벳침공(쿤둔 1997)
❏2026년 동문회 임원모집
⊛자격: 2026년 졸업예정자 및 졸업 동문(신청서는 동문회 사무실에 비치)
⊛문의:총무부장 세정화 설민경 010-3789-8621
❏ 7월 만발봉사
⊛일 시 : 2026년 08월 01일 10시~14시
⊛장 소 : 만발공양간
⊛문 의 :봉사부장 반야월 강승희, 010-2292-3533
❏총동문회 합창단 모집 및 연습
⊛53선 지수합창단 상시 모집합니다. (즐겁게,아름답게,행복하게)
⊛조계사불교대학 동문이면 누구나 가입하여 음성공양 할 수 있습니다.
➪일 시:매 월 :1, 3, 4주(토)13시00분~2시 30분까지
두 번째주(금)오후5시~6시30분
➪장소:안심당 지하 합창단실
⊛문의:포교 부장 고정숙 여실심, 010-9983-5778
❏동문회비 및 정기법회 보시 계좌 안내
➪동문회비:연회비-5만원,평생 회비-50만원
⊛하나은행111-054579-03005.예금주 대한불교조계종 조계사
➪임원회비:회장(3백만원),감사,부회장(50만원),부장(30만원)
수석차장(15만원),차장(10만원)
⊛하나은행, 263-910588-27607,예금주:박수정(조계사 불교대학 총동문회)
⊛문의:재무부장 청정화 김애숙 010-8736-0372
❏장학기금 후원(조계사 불교대학 총동문회 장학회)
➪조계사 불교대학 동문이면 누구나 월1천 원 이상의 장학기금 후원 가능
➪장학회 정회원 조건:출자금10만 원 월1천 원 이상 후원하시는 분
⊛후원계좌:신한은행100-030-532200 (조계종 조계사 불대총동문회)
⊛문의:장학회 총무 세정화 설민경 010-3789-8621
❏어르신 배식 봉사
⊛일시: 8월 21일(금),10시~14시
⊛장 소: 종로노인종합복지관
⊛문의:봉사부장 반야월 강승희 010-2292-3533
❏어르신 배식 봉사
⊛일시: 7월 31일(금),10시~14시
⊛장 소: 종로노인종합복지관
⊛문의:봉사부장 반야월 강승희 010-2292-3533
❏총동문회 행복 나눔터
➪참기름(12,000원)들기름(13,000원)볶음참깨(6,000원), 약조청1kg(50,000원)
➪각버섯(10,000원), 버섯가루(10,000원)
⊛하나은행: 263-910588-28207,예금주 박수정(조계사 불교대학 총동문회)
⊛문의: TF팀 대덕행 이후남(010-2325-6719) 여해심 이성숙(010-3897-4568)
5. 인 사 말 | 회장 대경 박수정
안녕하세요?
무더운 날씨에도 교육법회에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먼저 지도법사이신 종무지원단장 원지스님께서 오늘도 부처님 가르침을 전달해 주시러 귀한 걸음 해 주셨습니다. 감사 인사드립니다.
우리 총동문회는 많은 동문들의 원력과 봉사, 그리고 수행의 마음이 모여 어느덧 창립 20주년이라는 뜻깊은 시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20년은 함께 배우고, 함께 실천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세상에 전하기 위해 걸어온 소중한 발걸음이었습니다.
24일 창립기념법회는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감사의 마음을 나누고, 앞으로의 20년을 새롭게 발원하는 자리입니다. 특히 승보공양과 장학금
전달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어가는 스님들과 미래 불교를 이끌어 갈 인재들에게 작은 보탬이 되고자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수행과 나눔이 함께하는 동문회의 참된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교육은 지식을 쌓는 것 만이 아니라 마음을 밝히고 삶을 변화시키는 수행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배운 불법을 일상에서 실천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화합할 때 동문회는 더욱 든든한 도반 공동체로 성장할 것입니다.
창립 20주년 기념법회가 원만히 회향될 수 있도록 동문 여러분의 적극적인 동참과 발원을 부탁드립니다. 모두가 함께 만들어 가는 뜻깊은
축제가 되기를 바라며 오늘의 부처님 가르침도 정진할 수 있는 귀한 등불이 되시길 서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불기 2570년 7월 10일
[조계사불교대학 총동문회 회장 대경 박수정 (부회장 법연심 안영란 대독)]
6. 발 원 문 |
발 원 문
거룩하신 부처님.
무명으로 인하여 탐하고 집착하여 나와 남을 괴롭게 하며 살아온 것을 참회합니다.
연꽃이 맑은 물 위에 아름답게 피어나듯, 저희의 마음에도 지혜와 자비의 연꽃이 활짝 피어나기를 발원합니다.
오늘 교육법회에 함께한 동문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배우고 실천하여, 나를 밝히고 이웃을 따뜻하게 하는 수행자가 되게 하소서.
서로를 존중하고 격려하며 화합으로 하나 되는 동문회가 되게 하시고, 배움의 인연이 포교의 원력이 되어 더 많은 이들에게 부처님의 자비
광명이 전해지게 하소서.
창립 20주년을 맞이하는 동문회가 초심을 잃지 않고, 승보를 공경하며, 불법을 호지하게 하소서.
오늘의 공덕을 모든 법우들과 가족들에게 회향하며, 이 땅에 평화가 가득하고 모든 중생이 몸과 마음의 고통에서 벗어나 참된 행복을 이루
기를 간절히 발원합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2026년 7월 10일
(조계사불교대학 총동문회 포교부장 여실심 고정숙 합장)
◆ 조계사불교대학 총동문회 53선지수 합창단 음성공양
◑곡명 : 고맙소/ 지휘 : 박경태교수 / 반주:삼조 정진경 /포교부장: 고정숙 여실심
7.. 법 문 |
"미국불교 업과 윤회" -조계사 종무행정지원단장 원지스님
[ 교재 ]
리틀붓다(2026.7.10.)
1.리틀붓다(Little Buddha), 1993년作
마지막 황제(1987)의 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이탈리아)의 작품.
2.키아누 리브스는 리처드 기어, 안젤리나 졸리 등과 더불어 헐리우드를 대표하는 불교신자로 손꼽혀 왔다. 영화 ‘리틀 붓다’의 주인공이었
다는 단순한 이유와는 상관없이 스스로 불교신자임을 누차 밝혔고 수행에 관한 자신의 소신을 피력하기도 했다. 특히 2008년 국내의 유력
영화 주간지가 보도한 영화 ‘지구가 멈추는 날’ 개봉 인터뷰에서도 “완벽한 세상, 유토피아, 그런 말 자체가 별로 와 닿지 않는다. 불교의 사
상처럼 인류에 대한 동정심과 애정, 그리고 함께 괴로움을 나눌 수 있는 마음가짐으로 모두가 행동한다면 그게 완벽한 세상이 아니겠나”라
고 밝혀 불교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실천을 느끼게 한 바 있었다.¹)
3.불교의 재생론²)은 힌두교의 재육화(再肉化)³) 전생관과 구별되어야 한다.⁴)
아상[我相, ātman-saṃjñā] - 브라만교 - 범아일여
인상[人相, pudgala-saṃjñā] - 독자부 - 윤회의 주체(윤회를 하게 하는 무언가)
중생상[衆生相, sattva-saṃjñā] - 인도전반 - 살아있는 모든 것(에 공통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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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1. 출처 : 법보신문(https://www.beopbo.com)
2. 재생은 영어 'rebirth'의 역어이다. 영어권에서는 rebirth가 빨리어의 jāti의 역어로 자리 잡고 있고, 또 남방전통에서는 12연기의 생노는
재생으로 호칭하게 이해하기 때문에 별 무리가 없다. 그러나 이 rebirth를 우리말로 재생 또는 '다시 태어남'이라 옮길 경우에는 다소 문제가
따른다. 불교 이외의 종교나 사상에서 이해하는 관념과는 다른 불교의 특징을 나타내기에 미흡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맥에 따라 윤회, 윤
회사상 또는 재생 등으로 옮겼다.
3. 재육화 : 영어는 reincarnation. 영혼전생 또는 환현전생(化現轉生)으로 볼 수 있겠다.
4. 『우리는 어떤 과정을 통하여 다시 태어나는가 - 재생에 대한 아비담마적 해석』, p.7, 구나라뜨나 지음, 유창모 옮김. 고요한소리, 법륜.
열셋
-1p-
존재)
수자상(壽者相, jiva-samjñā) - 자이나교 - 영원불멸의 ‘순수영혼’ 5)
윤회(Saṁsāra)란 무엇인가 - 존재들이 사는 이 물질세계를 윤회로 알아서는 안 된다. 계속하여 이어지는 존재 상속6)에서 연속하는 마음,
마음부수와 물질을 궁극적 의미에서 윤회라고 한다.7) 어제의 마음이 오늘의 마음에 영향을 미친다. 오늘의 마음이 내일의 마음에 영향을
미친다. 그것을 확장하면 전생, 현생, 내생이다. ‘과거의 인(因)을 알려면 현재의 과(果)를 보라. 미래의 과를 알려면 현재의 인을 보라.’ - 과
거현재인과경
4.고행
5.법구경 153
많은 생을 윤회하면서 나는 치달려왔고 보지 못하였다.
집짓는 자를 찾으면서 괴로운 생은 거듭되었다.
법구경 154
집 짓는 자여, [드디어] 그대는 보여졌구나.
그대 다시는 집을 짓지 못하리.
그대의 모든 골재들은 무너졌고
집의 서까래는 해체되었다.
[이제] 마음은 업 형성을 멈추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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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須菩提 若 菩薩 有 我相 人相 衆生相 壽者相 卽 非 菩薩」
6) 불교에서는 자아를 인정하지 않는다. 자아가 있어 그것이 윤회한다고 보지 않는다. 단지 지속해서 정신과 물질의 법이 조건 따라 생겨나
서 사라진다. 조건에 의해 생겨나서 사라지는 이 법들을 ‘존재 상속’이라 한다. 이를 떠난 개념이나 영혼은 없다.
7) 『아비담마 실천하기 - 마음을 통찰하고 나를 바꾸는 붓다의 가르침』, 아신 자나까비왕사 지음, 현암 옮김, p.15~16.
-2p-
갈애는 부서져버렸다.
법구경 153, 154게. 이 두 게송은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루신 직후 깨친 감회를 읊으신 것이다.
6.身口意 三業의 환생
7.모든 관념과 견해를 내려놓는다면, 진실은 바로 그대의 눈앞에 있다. 하늘은 푸르고, 나무는 초록빛이며, 설탕은 달고, 소금은 짜다. 개는
‘멍멍’ 짖고 있다. 수탉은 ‘꼬끼오’ 하고 울고 있다. 그때 그대는 배고프면 먹고, 피로하면 잔다. 배고픈 사람이 오면 먹을 것을 준다. 목마른
사람이 오면 마실 것을 준다. 그게 전부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것이 불교다. 아무것도 아니다.
오직 모를 뿐, 오직 할 뿐. 자비로운 마음, 만나면 베풀고 헤어지면 고요하라.
8.티베트 밀교 사원에 가면 남존(男尊)과 여존이 부둥켜 안고서 성교하는 모습의 불상이 합체존이 모셔져 있다. 합체존을 ‘얍윰(Yab
Yum)’이라고 부른다. 티베트어로 ‘얍’은 아버지, ‘움’은 어머니를 의미하기에 부모존이라고도 번역한다. 이는 인도의 힌두교와 티베트의 샤
머니즘인 본교(Bon敎)에서 유래하였다. 남존을 ‘자비방편’, 여존을 ‘반야지혜’를 상징한다고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고 성교의 오르가즘을 ‘깨
달음의 대락(大樂)’에 대비시킨다. 금강승은 불교 밖에서 유래한 종교의식이나 존상에 대해 불교적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수많은 수행법과
의례를 개발해 내었다.
-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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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교, 특히 후기의 탄트라 전통에서 이해되는 남녀의 성교는 단순한 육체적인 결합 이상이며, 우주와의 합일을 의미한다. 여성은 우주의
물질적인 근본원리인 프라크리티(prakriti)이며, 우주적 창조 에너지 샥띠(sakti)의 인격화이다. 남성은 대자재신(大自在神) 쉬바(Siva)와
동일시된다. 여성과의 성적인 결합은 우주적 여성 원리와의 합일을 의미하며, 합일은 곧 완성이다.)
9.무상은 허무가 아니다.
10.아라한의 유다수행과 사다수행.
유다수행, 자재를 획득한 아라한이 현재세에 목숨을 연장하는 것을 말한다.
사다수행, 유다수행의 반대로, 이를테면 불타는 120세, 혹은 100세까지 살 것을 80세로 단축한 것을 말한다.
-p4-
법 문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
불교대학 총동문회 20주년을 축하드리고요.
우리 사회법회 법우님들을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오늘은 『리틀 붓다(Little Buddha)』라는 영화 속에 나오는 장면들을 가지고 한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제가 맨 처음에 커리큘럼 같은 걸
나눠 드릴 때 '미국 불교, 업과 윤회'라고 잡았는데, 사실 오늘 볼 영화와 다음 달에 볼 영화 『쿤둔(Kundun)』은 다 티베트 불교를 다루고
있습니다.
달라이 라마를 다룬 『쿤둔』은 조금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환생한 아이를 찾는 것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단 말이에요.
혹시라도 못 보신 분들을 위해 말씀드리면, 『리틀 붓다』는 영화의 약 50분 정도까지는 키아누 리브스가 연기하는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
는 순간까지의 과정이 아주 흥미롭게 묘사되어 있고, 그 나머지는 이제 티베트 출신의 큰스님이 돌아가셔서 그 스님의 후신을 찾는 내용이
죠. 그런데 처음 나오는 인물이 미국 아이 제시(Jesse), 그다음에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Kathmandu)에 살고 있는 남자아이, 그리고 여자
아이 이렇게 셋이 있잖아요.
그런데 이 셋이 큰스님의 환생신으로 인정을 받아요. 한 사람이 돌아가셨는데 셋이 환생한 것으로 인정을 받는단 말이에요.
이런 내용의 이야기이면서, 마지막 장면에는 그 세 아이를 찾았던 스님이 등장합니다. 그러니까 스승이 돌아가시면 그 스승이 키운 제자가
스님의 후신을 찾는 역할을 하는 거고, 그 제자들은 다시 그 스님의 제자가 되어 수행하다가, 나중에는 또 서로의 후신을 찾아주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 스님은 몸이 좋지 않으셔서 마지막에는 열반하시는 장면까지 아주 감동적으로 나오게 됩니다. 아무튼 그 속에서 우선은 프린트물로 준비
한 이게 미국 불교 업과 윤회라는 제목이 여기 있는데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미국의 불교는 아주 세력이 약하지만 있긴 있습니다. 그런데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지고 신행 인구가 많은 불교는 티베트 불교입니다. 중국 선불교도 아니고 한국 불교도 아니고 티베트 불교예요.
전 세계적으로 그렇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도 티베트 불교가 가장 유명한데, 모든 불교가 다 들어가 있습니다. 중국 선불교도 들어가 있고, 우리나라 선불교도 들어가
있고, 그다음에는 미얀마와 태국을 중심으로 한 위빠사나 공동체도 들어가 있습니다.
아무튼 세력이 크지는 않지만 깊이 수행하는 사람들의 수준은 아주 높습니다. 그리고 꼭 말씀드려야 할 것이 존 카바진의 MBSR입니다. 미
국 불교를 이야기하면서 이것도 꼭 언급해야 합니다. 그다음에 여성 지도자들도 있고, 젊었을 때 단기 출가를 합니다. 단기 출가를 해서 스
스로 어떤 수준까지를 깨달음이라고 하면 깨달음이고, 어떤 수준까지의 이런 것들을 이제 성취를 하잖아요. 그다음에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다시 머리를 기르고 삽니다.
그러면서 이제 서양인들 특유의, 뭐라고 할까요, 실용적인 것을 바탕으로 "아, 불교 수행이 이런 것인데 이것을 우리들이 스트레스 관리하는
데 활용하면 굉장히 좋은 기법이 되겠다" 해서 만든 게 존 카바진 박사가 만든 MBSR이라는 굉장히 유명한 프로그램이 있어요.
그것과 더불어서 이제 많은 미국의 명상계를 지도하고 있는 남성·여성 지도자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아무튼 수는 적지만 아주 깊은 내용을
가지고 있는, 그래서 아직 가능성이 많은 그런 불교입니다.
그중에서 한국 불교 이야기를 잠깐만 해드리면, 한국 교포들이 많이 있잖아요. 그래서 절들은 대개 교회에서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데, 불
교 공동체도 있어요.
그래서 절을 지어 놓고 스님들이 오시기를 바라는 분들이 많이 있는데, 거기에 가면 우리는 주지 스님이 되면 이 절의 운영권을 스님들이 가
지고 있잖아요. 그런데 거기에는 공동체위원회 이사회가 운영권을 완전히 가지고 있습니다. 스님은 월급만 받는 그런 스님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한국과 그런 분위기가 좀 달라서 한국 스님들이 젊어서 들어가셨다가 아프시면, 거기는 의료 체계가 좋지 않으니까 한국으로
돌아오시면서 절이 비게 되는 그런 경우도 많이 있고, 그래서 요즘에는 제가 아는 어떤 스님이 법인을 가지고 계시는데, 이 스님의 법인으로
우리 절도 이 법인에 넣어 달라고 하면서 이런 얘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아무튼 한국의 절들도 있는데 비어 있는 곳이 있습니다.
그래서 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스님이 비어 있다는 게 아니고요. 스님이 없다. 미국 불교는 그런데 깊이 있는 사람들은 아주 깊습니다. 한번
얘기해 볼게요.
"나는 윤회를 믿습니다." "나는 윤회를 믿지 않습니다." 결정하셨죠? 아주 쉽죠. 아주 쉬워요. 다 드는 거예요. 안 드는 사람 없기예요.
"저는 윤회를 믿습니다." "저는 윤회를 믿지 않습니다." 의견을 존중하겠습니다. 3번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3번에 전문적인 영역을 다루고
있어 가지고 각주를 좀 달아놨습니다.
3번 보겠습니다.
“불교의 재생론, 불교의 윤회는 힌두교의 재육화(再肉化), 힌두교의 윤회관과 구별되어야 한다.” 불교의 윤회는 힌두교의 윤회와 다르다는
말이에요. 여기에 대해서 혹시 이제 생각하고 계신 것이 있습니까?
이 영화에서 한 사람이 돌아가셨는데 세 사람의 후신으로 인정을 받아요. 그렇죠. 이것은 힌두교에서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윤회를 생각하실 때 어떤 무언가가 전생에 염소도 됐다가, 사슴도 됐다가, 원숭이도 됐다가, 코끼리도 됐다가, 남자도 됐
다가, 여자도 됐다가, 어떤 한 놈이 계속 이렇게 돌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그거는 100% 힌두교 윤회예요.
불교의 윤회는 설명할 때 이렇게 설명합니다. 촛불의 불을 이어받잖아요. 빈 촛불들이 쭉 있고, 불이 없는 촛불들이 쭉 있어요. 이쪽에 촛불
하나가 있잖아요. 그러면 이 촛불이 옆에 촛불한테 옮겨가고, 그 옆에 촛불은 옆에 촛불한테 옮겨가고 불과 불이 윤회를 한다, 이런 식으로
설명을 해요.
어제 나의 생각이 오늘의 나에게 영향을 미칩니까? 미치죠. 그렇죠. 오늘 나의 생각이 내일의 나에게 영향을 미칠까요? 그렇죠.
이것을 일주일 상관으로 넓히고, 한 달 상관으로 넓히고, 1년 상관으로 넓히고, 10년 상관으로 넓히다가 이것을 전생·현생·내생으로 넓히면
이게 윤회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실체가 있어요, 없어요? 대부분 우리가 '나'라고 하는 존재가 나 자신, 나의 것, 나의 자아, 영혼 이런 것들이 돌고 도는, 나를
결국 구성하는 뭔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게 착각인데 중생들은 다 그렇게 생각해요. 그런데 불교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이제
굉장히 어려워지는 거예요. 굉장히 어려워지는데, 여기 우리는 불교대학 총동문회잖아요. 불교대학을 당당하게 졸업하셨기 때문에 이렇게
어려운 주제를 다루어도 끄떡없잖아요.
제가 바람을 확 불었어요.
그러면 이 바람의 실체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죠. 그런데 제가 세게 불었더니 저기서 촬영하고 계신 저 법우님에게도 바람이 전해질 수
있죠. 영향을 미쳤잖아요.
이런 거예요. 윤회라는 것, 불교에서 얘기하는 윤회라는 것은 영향을 미쳤잖아요.
그 영향이 전달됐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그러니까 나의 윤회는 이제 『세기경』에 보면 이 세상이 어떻게 시작되었느냐, 업의 풍, 업의 바람으로 시작되었다. 이렇게 돼요.
결국은 업과 윤회예요. 업을 이해해야 윤회도 이해가 되는 거예요. 업은 뭐예요? 내가 의도가 있어야 돼요. 의도를 가지고 선한 행동을 하면
선업이 되고, 이걸 우리는 복이라고 부르고, 내가 의도가 있는데 악한 의도를 가지고 악한 행동을 하면 이게 악업이 되는데, 이걸 우리는 화
라고 합니다. "화를 당했다."라고 할 때 그 화입니다. 복이 있고 화가 있어요.
이게 업의 논리이고, 불교에서는 내가 지은 업은 반드시 내가 받는다고 합니다.
법칙인가, 그거죠. 그거랑 비슷한 거예요. 내가 지어 놓은 것을 내가 받는 거예요. 그런데 내가 이번 생 동안 이렇게 업을 지어서 형성되어 온
압력 같은 게 있어요.
저는 이렇게 이해하고 있어요. 빈 주사기를 이렇게 압축해서 놀잖아요. 그렇게 압축했다가 나오면 그게 다음 생의 모습이 결정되는 거죠.
이번 생에 나의 선업으로 다음 생의 내 모습이 결정되는 거예요. 그런 식으로 나의 이번 생의 업이 다음 생에 전해지는 거죠.
그런데 중간에 자꾸 '나'라고 하는 게 끼잖아요. 그런데 그런 것은 없다고요. 그래서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까 생각해 보면 내 자식과 같은 거
예요.
다음 생에 내 자식이 거지로 살아도 상관이 없으면 여러분 흥청망청 살아도 돼요.
그런데 내 자식이 잘되길 바라면 내가 좀 지어 놔야죠.
여러분, 이 영화에서 왜 세 명이 나왔어요? 신구의 삼업이 각각 한 사람씩 나온 거예요.
신업이 남자아이로 나온 거고, 구업이 여자아이로 나온 거고, 의업이 제시, 미국 남자아이로 나온 거예요.
마지막에 누가 절에 살고 있어요? 신업을 가진 그 남자아이가 절에 남아서 결국 그 역할을 물려받는 역할로 나와요. 여자아이하고 미국 남
자아이 제시는 이 집에서 사는 것으로 나오잖아요. 신구의 삼업이 각각 이렇게 나오는 거라고요. 내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윤회가 이 윤회였
어요. 여러분, 뭔가 어떤 놈이 여기서 이렇게 다닌다고 생각하고 있었죠?
다 힌두교식으로 생각하고 있으셨을 거예요. 그런데 이게 좀 어려운 지도(指導)이다 보니까 스님들도 말하기 좀 껄끄럽고 그러다 보니까 한
참 설명해야 되고, 눈만 껌뻑껌뻑 이러고 있으니까 『금강경』 제3분에 보시면 “수보리, 약 보살 유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면 즉비보살
(須菩提 若菩薩 有我相 人相 衆生相 壽者相 卽非菩薩)”이니라.
여기 각주 5번에 있는데,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아상이 있고 인상이 있고 중생상이 있고 수자상이 있다면 이것은 곧 보살이 아니니라. 보
살이라 할 수 없느니라.”
여기서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요거를 이 산스크리트 원문을 몰랐을 때에는 ‘중생은 중생이라는 상’ 이런 식으로 설명을 했어요. 그 말도
맞아요. 그 말도 맞는데, 지금 우리는 팔리어를 알고 있고 산스크리트어를 알고 있기 때문에 인도 전반의 팔리어와 산스크리트어를 가지고
아상, 인상, 중생상을 해석하면 1페이지에 제가 해 놓았죠.
3번 밑에 첫째 줄은 ‘불교의 윤회와 힌두교의 윤회는 구별되어야 한다’는 내용이고요.
아뜨만 산냐(saññā), 뿌드갈라(Pudgala) 산냐, 그다음에 중생상은 싸뜨바 산냐, 그다음에 수자상은 지바 산냐. 여기서 아뜨만은 우리가 여
러분들이 지금까지 생각해 온 힌두교식 윤회의 주체예요.
어떤 놈이 돌고 돌 거 아니에요. 여기 아뜨만이라는 놈이 돌고 도는 거예요. 다들 공부해 보셨죠? 아시죠? 그렇지만 제가 다시 한 번 설명해
드릴게요. 지금 서양 기독교에서 여호와를 신으로 모시는 그쪽에서는 여호와도 있고 세상도 있죠. 여호와가 세상을 만들었죠. 여호와도 있
고 세상도 있는 거예요. 그런데 힌두교 인도의 세상 창조신은 브라흐마가 창조신이고, 그다음에 비슈누가 이 세상을 유지하는 신이고, 시바
신이 이 세상을 파괴하는 신이에요.
그러면 파괴됐으니까 다시 브라흐마가 창조하고, 다시 유지하고, 다시 부수고 이렇게 돌고 도는 거예요. 그래서 부자들은 이 세상이 유지되
기를 바라니까 비슈누를 믿고 가난한 사람이 이 세상에서 빨리 멸망해야 내가 이미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 시바 신을 믿고, 브라흐마
신은 이미 창조를 했고 역할이 끝났으니까 인기가 별로 없어요.
그런데 아무튼 이 브라흐마 신이 세상을 창조했을 때 어떻게 창조하냐면, 신이 변해서 세상이 된 거예요. 신 따로 있고 세상을 따로 이렇게
만든 게 아니고, 이 신 자체가 변해서 세상이 된 거예요.
그래서 인도 힌두교의 신관으로 보면 여기에도 신의 일부가 있고요. 신이 변해서 된 거니까 여기에도 신의 일부가 있고, 여기에도 신의 일부
가 있어요. 나에게도 신의 일부가 있겠죠. 그거를 아뜨만이라고 불러요.
이 아뜨만은 영혼 불멸이어서 이 육신이 무너져도 다음 육신으로 가요. 그런데 이 아뜨만은 그 하늘로 이렇게 올라가려고 하는데, 우리 육신
이 껌딱지처럼 붙어 있는 거예요. 아뜨만이요. 그래서 이 아뜨만이 올라가지 못해요.
아무튼 뭐 이런 식으로 이제 설명을 해요. 그래서 이 아뜨만, 그래서 금강경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아상이 없다. 이 이야기는 아뜨만이라고
하는 것은 없습니다, 이거예요.
힌두교에서 이야기하는 범아일여(梵我一如) 배워 보셨어요? 들어 보셨어요? 범은 브라만이잖아요. 창조신이잖아요. 아뜨만은 내 안에 있
는 신의 일부, 이게 합쳐지면 그걸 깨달음이라고 했어요.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고 공양하고 막 이러는 거예요. 그런데 아무튼 그런 아뜨만은 없습니다. 이게 불교 부처님의 말씀이에요. 그러면 인상
이란 뭐냐? 푸드갈라, 이것은 불교 후대에 오면 부파 불교가 생기면서 독자부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딱 여러분 같은 분들이에요.
불교는 불교인데, "야, 그래도 뭔가 돌고 도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 부처님이 무아라고 했으니까 부처님 가르침을 이렇게 반박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뭔가 어떤 놈이 작동해서 이렇게 윤회가 있는 것 아니야"라는 주장을 했어요.
이것이 독자부에서 나온 주장입니다.
그래서 그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푸드갈라라고 하는 게 있어서 이것이 윤회를 만들어낸다, 뭐 이런 식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런
데 그것도 없어요. 중생상 사뜨바는 인도 전반에 여러분, 우리나라 옛날에는 우리 아기들을 누가 점지해 주세요? 삼신할머니가 점지해 주시
잖아요. 그렇죠? 아이들은 다 삼신할머니가 점지해 주셔서 태어난 거예요.
그런 것 같은 거예요. 인도 전반에 그런, 우리 살아 있는 존재들이 태어나는 이런 것들은 우리말로는 삼신할머니가 다 점지해 주듯이 그런
것이 있었는데, 그런 것도 없어요.
금강경 가르침 굉장히 셉니다. 여러분, 솔직히 이거를 지금 종교에 대입시키면 여호와 하느님도 없어요. 알라신도 없어요. 제가 만약에 명동
한복판에서 “여호와도 없어요. 알라신도 없어요.” 그러면 제가 한 시간 이따 뭐로 발견될까요?
알 수가 없어요. 그렇죠? 그런 가르침을 금강경에서 하고 있는 거예요. 어마어마한 거예요, 이거 그런데 아무튼 마지막 수자상, 지바 요거는
지금도 있는 자이나교에서는 영혼 불멸의 순수 영혼이 있다고 합니다. 이 순수 영혼이라고 하는 것이 이렇게 돌고 돌고 돈다고 해요.
그런데 이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불교예요. 그래서 나중에 저기 금강경 뒤에 가면 금강경을 수지 독송하고 있는데 손가락질을 받고, 주먹을
받고, 핍박받는 그런 장면이 나와요.
금강경에서 이렇게 주장하는데, 그러면 안 듣는 게 맞겠어요? 무슨 얘기인지 아시겠어요?
아무튼 지금 우리는 윤회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런데 불교는요 윤회를 가르치는 종교가 아니에요. 아라한이 되면 윤회가 끊어진다. 다음
생이 더 이상 없다.
불교의 목표는 윤회를 끊는 것, 다음 생이 없는 것이 목표이지 불교는 윤회를 가르치는 종교가 아니에요. 그래서 명확한 부처님 가르침 속에
남아 있는 무언가는 없어요. 그런데 경전에 보면 전생담을 보면 부처님이 “나는 전생의 코끼리왕이었다. 전생의 사슴왕이었다. 전생의 원숭
이왕이었다.” 뭐 이렇게 얘기하시잖아요. 그렇죠? 그런 것들은 이런 흐름 속에서 봐야 된다는 거예요.
불교 신자들은 무아를 기준으로 윤회를 설명할 수 있어야 돼요. 불교의 핵심 가르침은 무아예요. 여러분, 그러면 우리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나’라는 건 뭐예요? 내가 있어요, 없어요? 존재하고 있죠? 그렇죠. 존재하고 있잖아요. 제가 지금 말하고 있잖아요. 생각하고 있고, 옳다 그
르다 하는 기준도 있고요.
그렇죠. 얘는 뭐예요? 연기예요. 그렇죠? 원인과 조건에 의해서 결과물로써 있는 거예요.
그런데 이 얘는 계속 변화하고 있는 거예요. 컵 뚜껑이 깨지지 않는 이상 변하지 않잖아요. 고정불변이에요. 여러분들은 ‘나’라고 하는 고정
불변된 무언가가 있다라고 생각하는데, 우리가 만약에 제가 쌍둥이가 있다고 쳐봐요. 그런데 그 쌍둥이가 아프리카 난민촌에서 그 아이는
살고, 저는 한국에서 이렇게 태어났고 지금 이 스님이 되어서 이렇게 살고 있어요.
우리가 만난들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게 있을까요? 똑같은 게 없어요. 왜냐하면 지금의 저는 지금까지 제가 살아온 부모님의 영향, 친구들
의 영향, 교육이라는 영향, 사회의 영향을 통해서 원인과 조건에 의해서 형성된 나로서 원지 스님이 있는 거죠.
만약에 늑대 아이 있잖아요. 늑대 무리 속에 아이가 컸어요. 그 아이는 어떻게 말해요? 으앙 하고 울 거 아니에요. 늑대처럼 울고 막 그럴 거
아니에요. 걔를 인간이라고 볼 수 있어요? 인간성이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우리는 이렇게 존재하고 있을 뿐이에요. 그럼 우리는 착하게 살아야 될까요, 못되게 살아야 될까요? 우리 아까 노래도 나왔잖아요. 우리 저
기 함께해서 행복해요. 얼마나 좋아요. 이렇게 함께하니까 얼마나 행복해요.
남을 괴롭히는 것보다 남을 도와주는 게 훨씬 더 행복해요.
그래서 우리는 행복하게 같이 남을 도와주면서 행복하게 사는 거예요.
내가 없다라고 그렇게 말씀을 해도 있다고 하기 때문에 착각하기 때문에, 그거를 없애는 게 불교 수행이고, 불교 수행을 통해서 마음을 길들
여 나가다 보면 그게 가능해져요.
일단 읽어 보겠습니다. 「윤회란 무엇인가」라는 또 다른 책에서 이렇게 딱 정의하고 있어 가지고, 미얀마 큰스님 말씀이에요.
“윤회라는 것은 존재들이 사는 이 물질 세계를 윤회로 알아서는 안 된다. 계속하여 이어지는 존재의 상속, 연속하는 마음과 마음부수(心所,
cetasika, 심소법).” 마음과 마음부수는 이게 뭐냐면, 마음은 왕이고 왕이 출타를 하시면 왕 옆에 신하들이 자동으로 가죠. 아무튼 내시든 비
서든 따라가잖아요. 마음부수는 그런 거예요. 제가 이 물을 딱 봤는데 이 물에 따라오는 마음들이 이렇게 착착 따라 나오잖아요. 그걸 이제
마음부수라고 하는데, 아무튼 그런 게 있어요.
아무튼 존재 상속, 연속하는 마음들, 그걸 윤회라고 합니다. 큰스님, 깨달음을 얻은 아라한 큰스님 말씀이에요.
어제의 마음이 오늘의 마음에… 이건 7번까지가 이제 같은 말씀이고, 뒤에 있는 건 제 말이에요. 어제의 마음이 오늘의 마음에 영향을 미치
고, 오늘의 마음이 내일의 마음에 영향을 미치는 것, 이게 윤회예요. 별게 없어요.
우리가 내가 지금 복이 요만큼밖에 안 되는지, 내가 지금 복이 요만큼 되는지 어떤 사람은 알기도 하는데, 대부분 모르죠.
그럼 우리는 현재 우리가 해야 될 일은 뭘까요? 복을, 선업을 끊임없이 짓고 살아가는 거예요. 복이 많은 사람도 끊임없이 선업을 짓고 살아
야 이 복이 도망가지 않고 더 커지고, 복이 적은 사람은 복이 적기 때문에 또 열심히 선업을 쌓고 살아야 되고, 우리는 복이 많든 복이 적든
상관없이 늘 선업을 짓고 살아야 되는 거예요.
그래야 나의 현생도 편안하고, 나의 다음 생도, 나의 아들 같은 나의 딸 같은 이런 애들도 편하게 살고, 내 이웃들도 편하게 사는 거네요.
그뿐이에요. “만나면 베풀고, 헤어지면 고요하다.”
제가 존경하는 큰스님이 자주 말씀하시는 건데요. 만나면 베푸세요. 도와주면 좋잖아요. 만나면 베풀어요. 헤어지면 고요해라.
내가 저 사람을 도와줬으니까 저 사람이 나를 한 번 도와주겠지. 내가 저 사람을 도와줬으니까 내가 저 사람 좋아하는 마음을 알아주겠지.
아니면 만남에서 오는 그 불편함, 화냄, 성냄, 욕망 이런 것을 가지고 혼자서 이렇게 부글부글하고 상상하고, 이 사람을 100번 죽였다 100
번 살렸다 이러는데, 그런 거 안 하고 헤어지면 고요하다.
만나면 베풀고 헤어지면 고요하다.
「과거 현재 인과경」이라는 경전에 “과거의 인을 알려면 현재의 과보를 보아라.” 왜냐하면 지금 내 모습이 과거 전생에 이어져 온 결과물
이니까. 나의 미래, 다음 생이 궁금하면 현생을 보면 돼요. 여러분의 전생이 궁금하면 현생을 보면 되고요. 여러분의 다음 생이 궁금하면 현
생을 보면 돼요.
내가 이 모양 이 꼴로 살고 있는 건 전생이 그 모양 그 꼴로 살았기 때문이고, 내가 이 모양 이 꼴로 살고 있으니까 다음 생에도 이 모양 이 꼴
로 살겠지, 그런 거예요. 다음 달에도 제가 이 윤회라는 주제를 가지고 좀 얘기를 할 겁니다. 이해가 잘 안 됐고, 제가 지금 30분을 떠들었는
데 여전히 모르시겠잖아요. 그렇죠? 눈이 그냥 “이게 도대체 이게 뭔 얘기인가” 하는 거예요.
불교의 무아를 지금 여러분들이 정확하게 이해를 못 하신 거예요. 불교는 무아부터 시작해야 되는데, 무상부터 시작해야 되는데, 삼법인부
터 시작하는 거 아니에요. 무상·고·무아, 무아를 지금 여러분들이 잘 모르시는 거예요.
내가 있다라고 생각하니까 자꾸 싸우는 거예요. 내가 없으니 싸울 필요가 뭐가 있어요? 아무튼 요거는 다음 달에 조금 더 얘기하기로 하고
요.
이제 그 영화 속에 보면 고행하는 사람들 나오죠. 여러분, 고행의 본래 뜻이 뭔지 아세요?
내가 좋아하는 것, 그래서 내가 집착하는 거잖아요. 그걸 하나씩 하나씩 안 하는 게 그게 고행이에요. 즉 어떤 사람 보니까 손톱을 이만큼 기
르고 있었죠. “어? 내가 손톱 깎는 걸 좋아하네.” 그러면 손톱을 안 깎는 거예요.
그럼 그게 고행인 거예요. 내가 밥을 하루에 세 끼 먹는 걸 좋아하네. 그러면 한 끼라도 줄이는 거죠. 그럼 그게 고행이 되는 거예요.
어떤 사람이 있었죠? 이건 뭘까요? 내가 팔 내리고 있는 것을 내가 좋아하고 있네.
내가 두 발로 서 있는 걸 좋아하네 하니까 한 발로 서 있잖아요. 그러잖아요. 그게 고행이에요. 그런데 그게 아주 낮은 단계의 고행부터 아주
높은 단계의 고행으로 가니까 말도 안 하고, 밥도 진짜 요만큼 먹고, 그런 모습으로 극심한 고통을 주는 그런 고행처럼 보이는데, 그 사람들
은 점점점점 해왔기 때문에 자기한테 맞는 수준의 고행을 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한테 바로 하라고 그러면 아무것도 못 하죠. 그런데 고행은 무조건 힘든 걸 참는 게 아니고,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집착하는 것을 하나
씩 끊어 나가는 것, 그것을 고행이라고 불렀어요. 그다음에 또 영화 속에 키아누 리브스가 이제 마지막에 마라 파순과 만나는 장면이 있는
데, “집 짓는 자여” 기억나세요?
그 “집 짓는 자여”가 『법구경』 153, 154 게송에 나오는데, 이 『법구경』의 이 게송은 부처님께서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고
나서 스스로를 읊으신 말씀이다라고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오도송이라고도 알려져 있어요.
이게 부처님의 오도송이에요. “많은 생을 윤회하면서 나는 시달려 왔고 보지 못했다.” 그러니까 치열하게 살아왔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걸
보지 못했다.
“집 짓는 자.” 우리 사성제에서 고통의 원인, 집성제를 이야기하면서 집성제가 곧 뭐예요?
탄하(Taṇhā), 갈애라고 불리는 탄하(Taṇhā), 갈애, 목마름을 갈애라고 해요.
그런데 그거를 우리는 흔히 그냥 집착이라고 얘기하죠. 그런데 그 “집 짓는 자” 여기서 갈애, 탄하. 윤회를 추동하는 회오리의 중심에 있는
그것, 집 짓는 자를 찾으면서 괴로운 생은 거듭되었다. 아직 못 찾았으니까.
그런데 154번 게송에서 “집 짓는 자여, 드디어 그대는 보여줬구나. 내가 너를 찾았다.” 이거예요. “그대 다시는 집을 짓지 못하리.”
그러니까 애들한테 할머니가 “선풍기 사이에 손가락 집어넣지 마라, 집어넣지 마라.” 하는데 기어이 손가락 집어넣어 보고 앵앵 운 다음에,
그다음부터는 안 집어넣었죠. 그게 봤다는 거예요. 그게 자기가 직접 경험을 했다는 거예요. 경험을 해야 아는 거예요.
“그대는 다시 집을 짓지 못하리. 그대의 모든 골재들은 무너졌고 집의 서까래는 해체되었다. 이제 마음은 업의 형성을 멈추었어요.”
그래서 이제 마쳐야 되는데, 7번은 이제 숭산 큰스님의 말씀이에요. 한번 읽어 볼게요. 자비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어 가지고,
“모든 관념과 견해를 내려놓는다면, 나라는 생각, 아상, 나라는 것을 내려놓는다면 진실은 바로 그대의 눈앞에 있다. 하늘은 푸르고 나무는
초록빛이며 설탕은 달고 소금은 짜다.”
이거뿐이에요. 여러분, 이거뿐이에요. 이렇게만 살면 돼요. 개는 멍멍…
사진 출처: 『리틀 붓다(Little Buddha)』 영화 장면 캡처
※ 본 이미지는 불교 교육 및 강의 자료로 활용되었습니다.
수탁은 꼬끼요. 그대가 배고프면 먹고 필요하면 잔다. 배고픈 사람이 오면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사람이 오면 마실 것을 준다. 그게 전부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것이 불교다. 이게 숭산 큰스님 말씀이에요. 이것밖에 없어요. 근데 우리는 뽕짝뽕짝 뽕짝뽕짝 하면서 막 이것도, 이
것도 이러면서 챙기면서 살잖아요. 그렇죠?
중생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불교를 공부하는 우리들은 내가 없다는 생각으로 베풀고, 내가 없다는 생각으로 보살행을 하고, 내가 없다
는 마음으로 수행을 해 나갈 때 우리는 근본 자리를 만날 수 있어요.
저도 아직 못 봤지만, 그 가는 과정이 굉장히 재미있어요. 고요하고 편안하고, 그 속에서 행복감이 싹 있는 이런 것들을 계속 경험하면서 나
아가는 거거든요. 굉장히 재미있어요. 이렇게 삶을 바꿔 주고요. 아무튼 8번도 읽어 보시면 알고요.
10번은 설명이 좀 필요한데, 아라한이 되면 유다 수행이라는 걸 할 수 있고 사다 수행이라는 걸 할 수 있대요.
유다 수행은 아라한이 목숨을 연장하는 거예요. 아난다 존자가 부처님 돌아가실 때 “부처님, 오래 살아 주세요.”라고 말을 했어야 된다라고
가섭 존자가 말하는데, 그러면 이제 아라한으로서 생명을 유지시켜 늘릴 수 있다라는 거예요.
반대로 생명을 줄이는 것. 그런데 부처님은 이렇게 하셨다고 해요. 부처님 원래 수명이 120세였는데, 그 40년의 복을 후세에 남겨 주기 위
해서 80세에 돌아가셨다, 이런 말을 하거든요.
저는 부처님 덕에 먹고살고 있어요. 그렇죠? 제가 뭐라고 여러분들이 저한테 법문을 청하고 이렇게 공양을 해 주시고 그러세요.
제가 여기서 제일 어릴 텐데… 아닌가? 그건 아니고, 그렇잖아요.
제가 부처님 제자라는 그 이유 하나로 저는 부처님 덕에 사는 거죠. 아무튼 그렇습니다.
오늘 주제는 이런 주제였습니다. 업이라는 주제가 우리는 무아를 늘 떠올리면서, 누가 나를 화나게 하면 무아를 떠올리세요.
내가 뭔가 궁시렁궁시렁, 내가 뭔가 복잡하면 무아를 떠올리세요.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홍보부의 촬영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우리의 마음 안에 이미 보석이 있다. "
그 보석은 욕심이 아니라 자비이고
미움이 아니라 사랑이며...
조급함이 아니라 평온함이다.
글 정리 : 조계사 불교대학 총동문회 자문위원 법연 이동엽 합장

첫댓글 이번 법회를 통해 업과 윤회를 체득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원지스님 감사드려요.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