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기 15
류인혜
* 피렌체에서 보내는 편지-긴긴 하루입니다
이곳 피렌체는 플로렌스라고 눈과 귀에 익숙해진 도시입니다. 여행 안내서에는 ‘꽃의 도시 피렌체’라고 써두었습니다. 그 꽃이란 글자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대단하다는 느낌만이 머리를 강하게 지배하고 있습니다. 예술품의 가장 높은 경지를 대하듯 훌륭한 작품들과 건축물을 보았습니다.
도시의 모든 곳에 잠겨있는 고대와 중세와 문화혁명의 시대인 르네상스의 흔적, 또 그것을 보존하려는 근대의 고심을 찾아다니며 현대에 살아가는 사람은 고단합니다. 어릴 적부터 몸에 익은 문화가 아니라 머리로만 받아들이던 서양의 문물을 이제 눈으로 직접보고 그것을 느껴야 하는 부담은 생각보다 복잡하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눈에 보이는 것만 보자’라는 결심을 했지만 보이는 것에 대한 궁금증은 날마다 늘어나서 이제는 더 새로운 무엇을 본다는 것이 복잡할 만큼 머릿속이 포화 되어 있습니다.
하루하루 그날에 일어난 모든 문화의 충격을 완전히 기록하여 내 것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면 조금씩은 해결이 되겠지만 일정을 따라가느라고 급히 적어둔 메모는 몇 시간이 지나면 해독하기 어려운 암호로 변해버립니다. 그리고 시대의 흐름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니 그 시대가 계속 뒤섞여서 더욱 정신을 못 차리게 하고 있습니다.
유럽여행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절실합니다. 문화의 보고인 이곳에서 건성으로 듣는 가이드의 말만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오리무중입니다. 그저 단편적인 설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궁금했던 많은 것들을 실제로 대하며 깊이 감동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배울 때, 초대 임금님의 이름부터 외워나가며 그의 치적을 중심으로 시대에 따라 내려가도록 훈련이 되었습니다. 특히 조선 시대에 와서는 ‘태정태세문단세’라는 약자로 왕들의 순서를 외우지 않았습니까! 그들의 행한 일이 바로 우리의 역사가 되었고, 정치와 경제의 흐름이 되었지요.
이곳은 왕들이 순차적으로 내려가면서 무엇을 이루어 낸 것이 아니라 메디치라는 한 가문의 역할을 교황과 주변 도시 국가들과의 연관성을 가지고 습득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독교라는 거대한 문화의 중심을 이해하지 않는다면 도저히 알아챌 수 없을 정도로 모든 예술품이 그 사상을 밑그림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MUSED(두오모 성당 박물관/델 오페라 박물관)에서 만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La Pieta)는 물론이고, 도나텔로(Donatello)의 막달라 마리아(Maddalena)상,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에 달린 모습과 여러 제자의 조각품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우피치 미술관을 구경하고, 시뇨리다 광장의 다비드상을 바라보며 뛰는 가슴을 진정하기 어려웠습니다.
특히 세례당의 단순하면서도 우아한 모습은 앞에 마주 보고 있는 크고 아름다운 성당을 능가하는 건축물입니다. 물론 크기에서는 도저히 비교도 할 수 없지만, 성당 안으로 들어가 볼 생각은 하지 않고 계단에 앉아서 세례당만 바라보았습니다. 이 모든 것을 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 오늘 하루가 무척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그리고 정말 긴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