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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s://metalrecordlist.wordpress.com/koreanmetal-2/
한국 메탈·하드코어펑크 역사 2부: 메탈·펑크 출현
이 글은 한국 익스트림 음악 역사를 기록한 3부작 기사 중 2부이다.
1부는 여기에서 읽을 수 있다.
1980년대 중반—검열의 시대—에 한국에는 최초 헤비메탈 밴드들, 1985년에 결성한 부활, 1986년에 결성한 시나위, 1986년에 결성한 백두산이 있었다. 당시 권위주의적 대통령 전두환은 문제가 있는 수단으로 자기 자리를 지켰고, 많은 한국 대중을 불만을 갖고 분개하게 했다. 시민은 시위를 벌이고 학생은 집회를 열고 그 동안 로큰롤과 헤비메탈이 일제히 번창했다.
시나위는 한국에서 결성된 최초 헤비메탈 밴드로 인정받는다. 시나위는 신중현의 아들 신대철이 결성한 밴드다. 초기 헤비메탈 밴드들은 ‘신조류 영국 헤비메탈(New Wave of British Heavy Metal)’을 따라했다. 블랙홀(Black Hole)은 1986년에 멜로디에 비애를 담은 파워메탈 밴드로 등장했다. 원조 메탈 밴드들은 어떤 경우에는 음반을 수십만 장 팔며 제정적으로도 잘해 나갔다.
고트포멧의 장재원은 “그렇지만, 록 장르는 결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유교의 강한 영향으로 1980년대 로커들은 흡연과 음주를 즐기기만 하는 장발을 한 말썽꾸러기로 받아들여졌다. 음악, 특히 헤비메탈을 비롯한 다른 록 장르에 완전히 빠지는 것은 사람들 대부분의 목표가 일류 대학 중 한 곳을 졸업한 후 직장을 구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문화에서는 위험한 일이었다.”라고 설명했다.
화장실 유머 그라인드 악단 컨틀피시(Cunttlefish)의 이유영은 “메탈은 1980년대 한국에서 유명한 음악이었다. 아주 많은 친구들이 스래시, 헤비메탈, 헤어메탈에 흥미를 갖었다. 그때 주류 공영 라디오와 텔레비전에 펑크가 나왔다. 우리는 더 깊이 파고들었고 나는 마침내 다른 사람들이 디비트, 블랙, 스래시, 둠에 흥미를 가질 때 고어그라인드계를 발견했다.”라고 말했다.
코리아 블로그(http://blog.korea.net)에서 일하는 사진가이자 작가 존 던바(Jon Dunbar)에 따르면, “1975년 무렵부터 1990년대 초까지 한국인들은 외국 음악을 접하지 못했다. 문민 정부가 선출되어 그런 금지가 풀리면서 한국인은 열린 온라인에서 자신들이 원하고 발견한 어떤 음악도 들을 수 있었다.” 던바는 얼마 전부터 한국 펑크계 일원이었다. “내 첫 무대는 2003년 12월에 있었다. 그 당시에 한국 펑크계는 아주 작고 서로 이어져 있었다. 만 원에 열네 밴드를 볼 수 있었다. 그 무대는 가장 큰 펑크 음반사 스컹크(Skunk)와 가장 큰 하드코어 음반사 지엠시(GMC)가 준비한 것이었다.”라고 말했다.
새로운 음악이 이어지지 않는 역사는 반복되지 않았다. 외부 세계에서 온 현재 음악계는 그 음악을 처음으로 들은 한국인을 위해 점진적으로 뼈대를 갖추지 않았다. 음악을 들어 줄 세대와 귀는 당장 얻을 수 있었다. 한국인은 앞다투어 새로운 사운드를 받아들이고 한국인으로서 개성을 잃지 않았다.
음반사 아바돈(Avaddon, https://avaddon.bandcamp.com/)을 운영하고 망나니 멤버이기도 한 이환호는 “몇몇 밴드는 외국 아티스트와—좋은 의미에서—비슷했고 몇몇 밴드는 자기 사운드에 한국 취향을 더했다. 몇 가지 예로 도깨비(한국어 가사로 부르는 데스메탈), 고스트윈드(Gostwind, 한국 포크메탈의 멋진 예), 밤섬해적단(한국 쟁점과 유머가 있는 그라인드코어), 투견(한국 분위기가 나는 슬러지메탈)이 있다.”라고 말했다.
1990년대에 2세대 메탈이 형성되었다. 외국 데스와 스래시메탈 밴드들한테 영향을 받은 크로스오버 밴드 크래시(Crash, 1989)와 브루틀데스메탈 밴드 시드(Seed, 1996) 같은 밴드들을 포함한다. 블랙홀한테 주목을 받은 새로운 둠메탈 사운드를 소개한 새드레전드(Sad Legend)가 1996년에 등장했다.
장재원은 “1990년대는 한국 헤비메탈계의 성숙기였다. 신림동 메탈리카(Metallica)와 홍대 드럭(Drug) 같은 많은 콘서트홀이 지어졌고 게다가 더 대중적인 신촌 롤링스톤(Rolling Stone)도 있었다. 록 음악에 대한 인식은 1980년대와 1990년대보다 더욱 긍정적이게 되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록 음악을 직업이라기보다 취미로 보았다.”라고 말했다.
펑크록계도 이 기간에 노에프엑스(NOFX) 같은 밴드와 비슷한 악풍을 보이는 크라잉넛(Crying Nut, 1995)과 노브레인(No Brain, 1997)과 함께 뿌리를 내렸다. 럭스(Rux, 1996)는 한국 최초 스트리트펑크 밴드였다. 어떤 그룹은 다른 장르와 한국 펑크를 구별하려고 자신들을 ‘조선’ 펑크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조선은 1392년부터 1897년까지 있던 나라이다. 럭스는 나중에 장기자랑 무대에서 연주하다가 동료 밴드 멤버가 관중한테 성기를 노출한 이후 함께 퇴출되었다.
장재원은 “익스트림메탈은 1990년대에 인기를 얻게 되었고 데스메탈과 블랙메탈 밴드들을 접하게 했다. 그 밴드들의 공연은 외국 밴드들만큼이나 풍부했다. 예를 들어, 블랙메탈 밴드 칼파(Kalpa)는 시체 분장을 하고 십자가를 거꾸로 목에 걸고 스칸디나비아 메탈 밴드들처럼 대못을 박았다.”라고 말했다.
나중에 멜로딕데스메탈을 실험한 크래시는 원래 크리에이터(Kreator)와 에스오디(S.O.D.)한테 영향을 받았다. 크래시는 젊은 사람들한테 더 알려지고 국제적인 팬을 찾으며 적당한 유명세를 경험했다. 크래시는 카르카스(Carcass), 볼트스로어(Bolt Thrower), 카니발콥스(Cannibal Corpse)를 제작한 콜린 리차드슨(Colin Richardson)과 작업하고 헌정 앨범 <<We Don’t Need Society>>를 위해 디알아이(D.R.I.)의 “Acid Rain”을 녹음했다.
솔로 아티스트 이현석은 프로그레시브록/메탈을 녹음하기 시작했는데, 잉베이 말름스틴(Yngwie Malmsteen)의 고전 악풍부터 믹 바(Mick Barr)의 전위 사운드에 이르는 재능과 활기를 발전시켰다.
이유영은 “[한국에서] 시끄러운 음악은 모터헤드(Motorhad), 베놈(Venom), 블라스페미(Blasphemy), 블랙사바스(Black Sabbath) 같은 서양 밴드에 기초를 둔다. 우리는 우리 음악에 전통 한국적인 걸 더하는 것에 자부심이 없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다른 밴드를 모방하려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나는 모든 밴드는 그냥 자신들이 정말 좋아하는 걸 연주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장재원은 “1980년대 말에 데뷔해서 아직도 활동하는 블랙홀은 자기 노래에 한국 특성과 가사로 채운 원조 한국풍 메탈 밴드다. 한국 설화에 나오는 귀신에서 이름을 따온 도깨비는 조선 왕조에서 유래한 점성술, 주술, 민간 신앙 같은 주제를 쓴다. 블랙메탈계에는 강한 민족주의도 있는데, 오딘(Oathean)과 새드레전드(Sad Legend) 같은 밴드는 한국 위안부의 고통과 죽음에 관한 노래를 쓰고 새로운 사운드를 창출하기 위해 한국 전통 악기, 선율, 음계를 사용한다.”라고 자세히 설명했다.
1993년 서울에서 결성된 오딘은 원래 오딘(Odin)이라는 이름으로 데스메탈을 연주했다. 오딘은 크레이들오브필스와 헤커티인스론(Hecate Enthroned)한테서 차용한 오페라 요소를 넣은 디프레시브/멜로딕블랙메탈을 연주한다.
1999년에 하드코어펑크 밴드 긱스(The Geeks)—2014년 <<Still Not in This Alone>>이라는 새 앨범을 발매한 밴드—는 한국 사회 구조가 과음 문화를 부추길 시절에 결성되어 뉴욕에 기원을 둔 유스크루라는 하위 장르와 한국 언더그라운드에서 아주 드문 스트레이트에지라는 하위 문화를 소개했다. 싱즈위세이(Things We Say)는 유스크루 사운드를 받아들이고 스래시라는 크로스오버 요소를 더했다.
많은 로블랙과 엠비언트블랙 밴드들은 인터넷에서 활동하고 공연을 삼갔다. 이 은밀한 블랙메탈 밴드 중 많은 밴드가 자기 정체를 숨기기 위해 다른 이름으로 음악을 발표한다. 더욱이, 이 밴드 중 많은 밴드가 1인 프로젝트다. 무신 치우는 애퍼리션(Apparition, 1999)이라는 이름으로 데모 <<In the Name of Chiu>>를 발매했는데, 크래프트(Craft)의 초기 앨범과 비슷한 사운드였다. 애퍼리션은 2014년에 이름을 태카우리(Taekaury)로 바꾸었다. 블러디램(Bloody Lamb)은 뮤틸레이션(Mütiilation)풍 로파이 보컬과 불협화음 리프를 연주한다. 2010년 서울에서 결성된 녹터널댐네이션(Nocturnal Damnation)은 탁월한 후두음 보컬로 블랙메탈을 연주한다. 멤버들은 베스티얼데시크레이터 오브 섹슈얼퍼너케이션스 앤 거우에틱리추얼(Bestial Desecrator of Sexual Fornications and Goetic Ritual)과 피(P)라는 이름으로 통한다. 연극조 심포닉블랙메탈 밴드 다크미러오브트래저디(Dark Mirror ov Tragedy, 2003)도 서울에서 결성되어 가사를 우울한 내용에 집중한 <<The Lunatic Chapters of Heavenly Creatures>>를 발표했다.
화장실 유머를 주제로 삼는 고어그라인드 밴드 컨틀피시(Cunttlefish)는 2011년에 서울에서 결성되었다. 컨틀피시는 팬도 별로 없는데, 그라인드는 한반도에 존재하는 인기 없는 장르 중 하나이다. 보컬리스트 이유영은 서울 출신 멜로딕데스메탈 밴드 테러마이트(Terrormight)로 가지를 쳤고, 반면 다른 멤버들은 계속해서 미드템포 그라인드에 영향을 받은 데스메탈 밴드 설사를 결성했다.
2000년대 초 대구 출신 액스큐터(Axcutor)와 우즈오브이프르(Woods of Ypres) 드러머 데이비드 골드(David Gold, 1980-2011)가 영어 교사로 일하는 동안 활동한 서울 출신 네크라미스(Necramyth) 같은 더 많은 데스메탈 그룹이 출현했다. 메탈 밴드들은 적극적인 팬이 있는 장소를 찾기 위해 주로 서울이나 부산—한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에 가야 했다. 부산에는 과메기 보컬리스트 배진수가 운영하는 클럽 리얼라이즈(Realize)가 있다.
음반사 드럭(Drug)과 스컹크가 1990년대 말 설립되어 서울 펑크계를 알리는 걸 도왔다. 더블에이 스튜디오(Double A Studios)와 클럽 드럭은 펑크 공연을 벌인 첫 현장이었다. 나중에 클럽 스팟(Spot)이 설립되었다.
이유영은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에는 서울 홍대에 메탈이나 펑크나 인디록을 홍보하는 곳이 별로 없었지만, 메가데스(Megadeth), 슬레이어(Slayer), 드림시어터(Dream Theatre) 같은 대형 밴드는 큰 올림픽 경기장에서 연주했다.”라고 말했다.
2000년대 초는 하드코어와 메탈 공연을 위한 새로운 장소를 제공했다. 장소를 빌려야 했고 기획자들은 손해를 봤지만, 스컹크헬이라는 새로운 장소가 2004년에 문을 열어 점점 더 공연을 수용하기 쉬워졌다.
대개 2002년 피파 월드컵 당시에 한국 축구팀 주제가를 녹음한 크라잉넛 같은 라디오 친화적 펑크록 밴드 앨범이 아니라면 한국에서 언더그라운드 앨범은 음반점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메탈과 하드코어 밴드들은 보통 앨범 발매 공연을 개최하면 음악을 내려받을 수 있게 온라인에 올리거나 밴드캠프(Bandcamp) 같은 웹사이트에 무료로 게시하고 그 이후로는 음반을 더 찍지 않았다.
그렇지만, 록과 (메탈과 하드코어를 비롯한) 그 하위 장르와 분파는 한국에서 대중 음악의 주요 형식이 되지 못했다.
1990년대 초에 한류가 퍼져나가 어디서나 만날 수 있게 되었는데, 단순한 팝 멜로디와 조명, 안무, 립싱크, 성형을 비롯한 미학적 이상으로 대중의 취향을 사로잡았다. 2000년대 중반 무렵, 케이팝은 더 많은 해외 청중한테 퍼져나갔고 최근에는 한국에서 가장 수익성 높은 수출품으로 세입을 수십억 달러 발생시켰다.
케이팝은 한국에서 생활의 모든 측면에 빠르게 스며들며 독특한 산업이 되었는데, 유명한 케이팝 스타들은 간접 광고를 하기 위해 텔레비전 쇼와 영화에 등장해 기술에 밝고 돈이 넉넉한 신세대한테 효과적으로 광고했다. 다른 음악에 대한 요구는 방치되었다. 펑크·메탈계는 발전하다가 케이팝이 널리 퍼지자 시들해졌고 사회적 제약이 가중되면서 많은 유망한 악단들이 해체했다.
클린트 스타마토비치(Clint Stamatovich), “A History of South Korean Metal and Hardcore Punk Part 2”, Invisible Oranges, http://www.invisibleoranges.com,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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