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씨시 산다미아노의 집 가는길
2024. 4. 16.
사무엘하권 1장~5장까지!
(2사무 5, 23)
다윗이 주님께 여쭈어
보자, 주님께서 이렇게
이르셨다.
“바로 올라가지 말고,
그들 뒤로 돌아 발삼
향나무 숲 맞은쪽에서
그들에게 다가가거라.
묵상ㅡ
다윗의 성품이, 아니
데찬 성깔이 두군데서
등장한다. 아말렉장수가
사울의 부탁을 받아
죽여준 다음 왕관을
다윗에게 전하다가
예상치 못한 대가를
치른다. 기름부음
받은 존귀한 사울을
죽인 죄목이다.
잘한달까봐 주제넘은
행동을 한것이 되었다.
오지랍자락이 한폭이다.
두번째 비슷한 사건,
누군가 이스보셋의 목을
쳐서 다윗에게 진상하니
역시 시키지도 않은
살인을 한 것이라며
그들의 목숨을 치는
것으로 생명값을 퉁쳤다.
이 두 사건에서 다윗은
인간의 행실이 어떻든
주님의 부름받은 이의
목숨을 함부로 끊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없다. 뭐 그런식의
박애정신을 발휘하며,
그의 성품을 증명했다.
알다가도 모를 인물,
다윗을 알아가는
사무엘하권이 될것 같다.
오늘의 묵상 포인트는
다윗이 임금이 되어
필리스티아인들을
치러 가는 과정이다.
주님께 지금 치러가도
될지, 그들을 자신의
손에 넘겨주시렵니까?
라고 흥정아닌 흥정을
하는데 주님께서는
바로 올라가지 말고
그들 뒤로 돌아서
맞은편으로 가라며
제법 구체적으로
안내하신다.
그러시고는 다시,
"발삼 향나무 꼭대기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거든,
그때 습격하여라.
주님이 앞장서 나가
필리스티아인들의
군대를 칠 것이다.”
(2사무 5,24)
라고 말씀하시며,
장소뿐 아니라
정확한 공격의 시점까지
알려주신다.
발걸음 소리가 들리거든!
와, 인간의 속성상
특히 힘있는 장수
다윗이 적진을 가까이
둔 상태에서는,
전세의 흐름에 실려
막 공격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힐수도
있을진데, 주님은
이렇게 속삭이듯이
"얘야 바로 가지말고,
발걸음소리가 들리거든
습격하란 말야. 그게
전략이여"라고 하신다.
그 전쟁통에 다윗은
이렇듯이 멈춰서 주님의
속삭임을 들었다는거고
습격의 때를 기다리며
청각을 열어놓고
발걸음소리를 들었단
말이지. 웬만한
장수였다면 글쎄!
항상 주님의 영에
온마음을 열고
집중하며 소통해온
다윗의 섬세함과
신중함과 조심성이
여기서도 나타난게다.
거룩한 장수이자
시인인 다윗의 매력이
이렇게 촘촘한 장면들
안에서 발휘되고 있는 거다.
나 역시 어떤 결정을
하거나 정해진 시간안에
전쟁을 치루듯, 뭔가를
해내야 할일이 생겼을때,
한번 가속도가 붙으면,
지금 꼭 이걸 하고야
말것이다. 나는 기필코
이일을 성사시키며
매듭을 짓고 말거다
라는 신념들이 자극되면
달리던 자동차의 속도를
줄이는것도 어렵거니와
브레이크를 잡는 건
더욱 어렵게 되더라니..
이럴때 비로소 주님뜻이냐
내뜻이냐의 갈림길에서
헤매게 되고, 결국
에라 모르겄다. 주님도
이해해주시겄지 라고
합리화를 하면서
잘한달까봐 사울을 죽이고
그의 아들 이스보셋을
죽여 목을 가져온 이들처럼
주님이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해맑게도 저지르며
잘했다는 말 듣고 싶어
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영적인 존재로서
한가지 처세술을
더 배운것 같은 대목이었다.
이것이 내겐 보석같은
자원이 될것 같아서
다윗에게 고맙고,
오지랍떨다 죽어간
두사건의 사람들이
감사하다.
이래저래 성경통독은
내게 빛과 어두움의
실체들을 비춰주면서
악도 선용하시는
주님의 섭리에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자기를 그토록 저주하고
질투하며 괴롭힌 사울의
죽음을 기뻐해도
괜찮을만큼의 고통을
받았건만 이렇게 목놓아
울면서 추억을 소환하고
그리워하는 다윗의
모습에서 참다운
인간의 면모와 박애정신
그리고 연민과 정스러움을
느꼈다. 따스함의 정취에도
젖어볼수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기대가 된다.
아씨시의 야경
첫댓글 박지현 요셉피나님
묵상 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