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 안에 있는 세상 강성희(리디아)
언제인가 휴대폰의 전원 버튼을 켜니 “<앞산 연가>의 더 많은 정보를 원하세요?”하는 메시지가 화면에 떠 있다. ‘앞산 연가? 내가 오늘 다녀왔던 식당이름인데?’ 하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또 어느 날인가는 ”<만다린 옛날 손짜장> 맛집 정보를 알고 싶으세요?“ 하는 메시지가 와 있다. ”아니, 얘가? 내가 만다린 중국집에 다녀온 걸 어떻게 알고?“ 하는 의문이 생긴다. 어제 남편과 함께 둔산동 옻골 최씨네 마을 뒷산을 가는 길에 점심으로 만다린 중국집에서 굴짬뽕을 먹었다.
해마다 한 번, 복숭아꽃이 많이 필 무렵이면 복숭아꽃도 보고 쑥도 캐는 봄나들이로 옻골을 찾았다. 만다린 중국집은 그때 마다 들르는 식당 이름이다. 그런데 내 휴대폰이 내가 그 곳에서 점심 먹은 걸 어떻게 알고 이런 메시지를 보내나? 그런 생각을 하니 오싹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앞산 연가 식당의 메시지가 온 것도 우연은 아닌 것 같았다. 또 지금은 ”녹음 파일을 쉽게 찾는 방법은?.“하는 메시지가 와 있다. 며칠 전 내가 통화 녹음을 하고 난 후 파일은 어디서 찾는지 여기 저기 들여다 본 후인 것 같다. 무서움을 넘어서 소름이 끼친다. 누군가가 저 높은 곳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는 것만 같다. 마치 조지 오웰의 소설에 나오는 빅 브라더처럼 내 인생에 들어와 나를 감시하는 휴대폰의 존재, 마음이 개운치가 않다. 마음 속으로는 '이제 거짓말도 함부로 못하겠네, 얘가 무서워서.' 하고 쓴 입맛을 다셨다.
스마트폰이 나오며 휴대폰은 단순한 통신수단이 아닌지가 이미 오래 되었다. 폰의 기능보다 부가 기능이 더 커져 버렸다. 내가 컴퓨터 하나를 들고 다닌다는 생각이 무리는 아니다. 컴퓨터가 할 수 있는 모든 프로그램에다 사진기, 녹음기, 건강관리프로그램 등 스마트폰이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다. 앱만 내려 받으면 은행이 통째로 내 손으로 들어온다. 세상의 모든 학문, 모든 소식, 모든 비하인드 스토리가 내 손 바닥 위 스마트폰에 담겨져 있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알라딘의 마술램프에 나오는 거인, 지니 같은 비서를 한 명 쯤 데리고 다니는 듯 든든하다. 궁금한 것이 있거나 모르는 것이 있으면 언제 어디서라도 내가 원하는 답을 초 단위로 찾아내서 알려 준다. 내가 뭘 궁금해 하는지, 뭘 모르는지 몰라서 질문을 할 수가 없을 뿐이지 나에게 제시할 무궁무진한 답들이 스마트폰 안에는 내재되어 있다.
심한 방향치, 길치인 나는 낯선 길을 갈 때는 남편에게 동행해 줄 것을 부탁하곤 했었다. 그러나 요즘은 남편 도움 없이도 길을 잘 찾는다. 스마트폰의 카카오 지도나 카카오 네비는 나를 정확하게 목적지까지 데려다 준다. 처음엔 남편은 귀찮지 않아서 잘되었다고 하더니, 내가 조금 독립적으로 변한다 싶으니 서운한 감이 드는지 이제는 ”내가 미스김 한테 밀려 났네“하며 웃는다. 길을 나서도 운전할 일이 겁 나지 길을 못찾을까 하는 걱정은 되지 않는다. 스마트폰 네비의 미스김 덕분이다.
단톡방이라는 기능은 각종 모임의 회장이나 총무의 역할을 엄청나게 수월하게 해 주었다. 모임 약속 날짜를 정하려면 모든 회원들에게 전화하고 또 조정하며 수도 없이 통화해야 할 일을 한 방에 모여 회의하듯이 동시에 이야기를 주고 받을 수 있으니 여간 편리한 게 아니다. 멀리 떨어진 가족들과의 안부도, 집안 대소사를 의논해야 할 때 집안들끼리의 대화도 사진이나 동영상까지 보여 주며 이야기 할 수 있어서 좋다.
종이 신문을 보지 않는다. T.V보다 빠른 뉴스들이, 그것도 온갖 언론사의 모든 뉴스들을 실시간으로 스마트폰이 전해 주니 굳이 종이 신문을 읽을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앱만 깔아두면 휴대폰에 일기도 쓰고, 메모도 하고, 달력의 일정표도 만들 수 있다. 이런 친절하고 다재다능한 비서가 따로 없다. ”주인님, 오늘 몇시에 약속이 있습니다.“ 하고 알람으로, 문자로, 고운 목소리로 알려주는, 그야말로 못하는 게 없는 팔방미인 비서다.
지난 달, 미세 먼지가 한참 심할 때는 아들에게 공기청정기를 약한 단계로 켜두고 출근하라고 전화를 했더니, 회사에서 퇴근하기 직전에 스마트폰으로 집에 있는 공기청정기를 켜면 된다고 한다. ”그런 것도 있었구나. 스마트폰이 리모콘이네? 엄마는 아날로그 세대라 그런 거 있는 것도 몰랐네.“ 하고 대답했지만 아날로그 세대가 따로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아날로그 시대에도 살았지만 지금은 최첨단 디지털의 시대를 살고 있는 내가 아닌가? 아날로그의 여유와 멋을 지키면서도 디지털 기기가 꼭 내 삶에 필요하다면 디지털 문명을 익혀가야 하지 않을까? 점점 더 고도로 디지털화 되어 가는 세상에서 아직 몇 십년을 더 살아야 한다면 한시라도 더 빨리 적응하는 것이 현명할 것 같다.
작년 연말 쯤, 역시 스마트폰에서 본 <스마트폰 없이 1년 살기>라는 미국발 기사가 생각난다. 미국의 한 유명회사에서는 밀레니얼 세대(1980~2000년생)중 일부를 선정해 <스마트폰 없이 1년 살기>이벤트를 기획한다고 했다. 타인과의 소통은 필요하니 1996년산 폴더폰은 제공하고 데스크 탑 컴퓨터는 사용이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스마트폰과 태블릿 PC는 일절 사용할 수 없으며 친구나 가족의 것을 잠시 빌려 사용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1년 후, 실제 스마트 폰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버틴 젊은이들에게는 거짓말 탐지기를 거쳐 10만달러 , 우리 돈으로 일억 이천만원을 상금으로 준다고 하니 한 번 도전해보고 싶은 유혹도 있었을 것이다. 기사대로라면 지금도 진행되고 있을 <스마트 폰 없이 1년 살기>에서 과연 몇 명이 상을 받을지는 의문이다. 갤럽 조사에서는 밀레니얼 세대의 80%가 스마트폰으로 업무를 처리하고 온라인 컨텐츠를 즐긴다고 했다. 또 올해초 미국의 유명 엔지니어링 설계회사에서 2000명의 미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43%가 20분에 한 번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는 대답이 나왔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보면 1년을 스마트 폰 없이 산다는 건 그들에게는 심한 고문이 아닐 수 없을 것 같다.
위의 기사를 보면서 ‘정말 스마트폰이 우리 생활에 깊이 들어와 많은 편리와 즐거움을 주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한다. 반면 스마트폰이 주는 반작용과 폐해도 우려스럽다. 스마트폰의 말초적이고 폭력적인 게임에 빠진 청소년이나 스마트폰에 중독되어 은둔형 인간이 되어가는 젊은이들이 늘어간다는 소식은 우울하기만 하다. 모든 걸 스마트폰에 맡겨 버리고 스마트폰이 시키는 대로만 따라 가는 나는 아닌가? 스스로 기억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필요할 때 마다 폰에게 묻고, 폰이 시키는 대로 따라하는 나를 보며, 내가 주인인가? 폰이 주인인가? 하는 자문을 해본다. 어느 날 이 폰을 잃어버리게 된다면 내가 기억하는 전화번호는 몇 개나 될까? 남편, 두 아들, 그리고 내 번호. 내가 외우고 있는 전화 번호는 고작 우리 가족, 네 개의 번호 뿐이다. 폰에 저장되어 있는 집안의 각종 기념일과 친척들 주소, 비밀번호나 아이디도 폰을 잃어버리면 다 사라져 버릴 것이다. 필요하면 가르쳐 주는 폰이 있으니 무엇이든 기록하는 일에도 기억하는 일에도 예전처럼 부지런하지 못하다. 이 세상에서 스마트 폰이 사라진다면 우리의 삶도 많이 달라질 것 같다. 형제 자매들, 가장 친한 친구의 전화 번호 조차 외우고 있지 못한 나를 돌아보며 이래도 될까? 반성하는 마음이 든다.
또 스마트폰의 세상이 두렵기도 하다. 나의 모든 생각, 행동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스캔되어 휴대폰에 저장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나쁘다. 내가 하는 생각들은 검색어로 흔적을 남기고 다른 이들로 하여금 내 생각을 유추할 수 있게 할 것이다. 범죄인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인터넷에 남긴 검색어가 범인을 잡는 단초가 되는 경우를 자주 보았다. 범죄일리는 없겠지만 누군가가 나의 생각을 들여다본다는 일이 그다지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그리고 내가 다니는 장소의 흔적들이 남아 나의 동선이 부처님 손바닥처럼 누군가에게 읽혀진다는 사실도 불쾌하다.
그러나 해 보다는 익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스마트폰이기에, 그기에 경제원리를 앞세운 상술이 더해져 스마트폰의 기술은 더 개선되고 발달하면 했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스마트폰이 가지고 있는 기능의 대부분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내가 손해를 보고 있는 것 같다. 시대에 뒤떨어진 것 같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처럼, 스마트폰과 좀 더 친해질 수 있는, 스마트폰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아야겠다. (끝) 2019.04.25.
첫댓글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엔 어떻게 살아왔는지 지금은 스마트폰 없는 사람이 없을 정도지요. 스마트폰의 병폐를 알면서도 그것을 손에서 떼어 놓을 수 없지요. 언제 전화가 올지 모르니 더욱 더.
미사 강론 시간에도 벨은 울리거든요. 신부님 표정을 보며 신자들이 웃는것도 스마트폰 덕이 아닐까요
저는 하반기에 스마트폰을 배울 계획입니다.
스마트폰이 많은 이점이 있지만 폐단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 생활에서 반드시 배워야 합니다. 전문가로부터 스마트폰 교육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스마트폰이 더욱 스마트해 질수록 인간은 더 바보가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갑자기 스마트폰이 손에서 떠난다면 아마도 한 밤중 정전과 같은 느낌일 것 같습니다. 폰에 대한 다양한 견해와 효용 병폐를 심도있게 쓰신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외울 수 있는 전화번호가 겨우 한 쪽 손가락 수만큼 이어서, 어디 갈 때는 폰부터 챙기는 일상이 되었습니다.
때론 아내의 전화번호도 깜박 깜박...., 집에 들어올 때도 카드가 없으면 수첩을 뒤져 그걸보고 문을 열고 겨우 집에 들어노는 나를 보면서 갑작스레 어쩐 일이 일어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섭니다. 세상이 바뀌면서 기억해야 할 것은 점점 많아지지만 내 머리는 그렇지 못하니 걱정이 앞섭니다. 잘 읽었습니다.
스마트 폰이 우리생활에 엄창난 변화를 주고있어요. 저의 스마트폰 따라잡기는 아직도 진행 중이네요~ 기술의 속도를 저의 스마트폰 습득력이 따라가질 못하고 있어요. 폰의존도가 너무 높이지면서 한편으론 두렵기도합니다.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기계치라 하셨는데 리디아님은 스마트하시고 휴대폰에 대한 지식과 정보도 풍부하게 알고 계시며 생활 속에서 잘 활용하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디지털 치매만은 저도 피했으면 합니다만 점점 폰 의존도가 커져만 갑니다. 잘 읽었습니다.
스마트폰의 다양한 기능들. 글을 읽다보니 마치 스마트폰 특강을 듣는 것 같습니다. 정말 스마트폰은 또 하나의 분신. 그것도 손바닥 안에 넣고 다닐 수 있는 편리한 기구. 그 속에서 또 하나의 세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스마트 폰이 세상을 지배하는 듯 합니다. 스마트 폰의 편리함은 당연하지만 폰으로 인해 뒤안 길로 사라지는 것들이 하나 둘이 아닌것 같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손목시계, 휴대용 라디오, 사진기 등. 저는 스마트 폰으로 인하여 기억력을 빼앗겼습니다. 심지어 가족의 전화번호도 잊고사니말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외출중 휴대폰을 잊고 나오면 도로 집으로 돌아갈 만큼 일상에 없으면 안될 수족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보이피싱으로
인해 크게 손실을 당할번한 저는 처음에는 폰이 울릴때 가슴이 덜커덛 했습니다. 아직도 기기를 많이 사용할 줄 모르는
저는 기본만 알고 있기에 많이 배워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