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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경의 세계 - 3(지장기도 순서) 작성자 최영근 선생님작성시간20.07.27 안심정사. 지장경은 불교의 세계관을 참 잘 표현하고 있으며 그 세계관은 한 마디로 무한한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는 말을 사람들은 가끔 사용하는데, 이 말이 지장경의 세계관이다. 지장경에는 시간과 관련하여 자주 등장하는 말이 겁(劫)이란 말이다. 겁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참으로 긴 시간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사방 1 유순(약 40리)되는 성 안에 겨자씨를 가득 채우고 100년에 겨자씨 한 알씩을 꺼내서, 다 꺼내면 1겁이라고 한다.
그런데 지장경 곳곳에는 무량 아승지 겁이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항하사 겁이라고도 한다. 항하사는 10의 52제곱, 아승지는 10의 56제곱, 나유타는 10의 60제곱, 무량은 10의 68제곱이다. 1 겁만 해도 대단히 긴 시간인데 거기에 항하사나 아승지나 나유타란 수식어가 붙으니 상상하기 어렵다. 그래서 불가설(不可說), 불가사의(不可思議)란 말을 쓰기도 한다.
불교에서는 우주가 성(成 : 생성)겁, 주(住 : 유지)겁, 괴(壞 : 붕괴)겁, 공(空 : 텅빔)겁이 반복된다고 보는데, 성주괴공이 한번 순환하는 것을 대주겁이라고 한다. 이러한 순환이 끊임없이 일어난다고 보는 것이 불교의 시간관이다. 우주나 생명체가 종말을 맞이하는 경우는 결코 없다. 단지 한번 생성되었으면 한번 소멸되고 다시 생성되고 하는 것이 반복될 뿐이다.
공간적으로도 엄청난 규모의 우주관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경험적으로 느끼는 최대 범위를 세계(삼세 + 삼계)라고 부른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세계 즉, 지구를 생각하면 될 것이다. (4대주·태양·달·수미산·6욕천·범천(梵天)을 모두 포함하여 1세계로 친다) 이러한 세계가 천 개 모인 것을 소천세계라고 하고 소천세계가 다시 천 개 모인 것을 중천세계라고 하며, 중천세계가 다시 천 개 모인 것을 대천세계라고 해서 보통 삼천 대천 세계란 말로 표현한다. 구체적인 수로 나타내면 10억이 되니, 우주에는 적어도 지구와 같은 세계가 10억 개는 있다고 보는 것이다.
지장경 첫 부분인 ‘도리천궁신통품’ 은 이렇게 시작된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한때 부처님께서는 도리천에 계셔서, 어머니를 위해 설법을 하셨다. 그때 시방(팔방과 상하를 합쳐 十方이라하고 시방이라고 읽는다) 무량 세계의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모든 부처님과 대보살님들이 법회에 다 오셔서…”
여기에도 보면 무량한 세계란 말이 등장한다. 이는 삼천 대천 세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엄청난 수의 세계를 뜻하는 것이다. 한 생명체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일단 생겨난 생명체는 부처가 되기 전에는 끊임없는 윤회를 계속하게 된다. 죄업이 많으면 좋지 못한 인간의 모습이나 수라, 축생, 아귀, 지옥에 떨어진다. 차라리 멸망해버린다면 행․불행과 고락을 못 느끼므로 다행이지만, 멸망이란 없으므로 장구한 시간 동안 고통을 겪게 된다. 그래서 죄업을 다 갚으면 비로소 다른 모습으로 태어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윤회의 모습이 지장경에는 여러 가지로 설명되어 있다. 자기가 지은 업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으므로 한 순간 한 행동을 신중하게 그리고 착하게 하지 않을 수 없다.
불교의 내세관은 우리가 아는 다른 종교의 내세관과 비교하면 가장 합리적이다. 불교는 이미 앞에서 밝혔듯이 모든 생명체는 육도 윤회를 한다고 주장한다. 육도는 천상, 인간, 수라, 축생, 아귀, 지옥의 여섯 가지이다. 그리고 육도 각각에도 수많은 다른 길이 있다. 축생은 짐승으로 태어나는 것인데, 짐승도 종류가 여러 가지이다. 지옥도 각자의 업에 따라 대단히 다양한 지옥의 길이 있다. 천상 세계는 보통 28가지가 있다고 불경에는 적혀 있다.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 역시 빈부귀천과 수명의 장단 등 다양한 길이 있으니 자기가 쌓은 업에 따라 다음 생에 받게 되는 길이 대단히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은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선업이나 악업 정도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이생에서 짓는 업이 다양한데도 다른 종교에서는 오직 선과 악으로만 양분하여 하나는 좋은 곳으로, 다른 하나는 나쁜 곳으로 이렇게 간다고 한다면 누가 생각해도 이치에 맞는다고 할 수 없다. 이 말은 다른 말로 하면 보통 선행을 한 사람이나 아주 많은 선행을 한 사람이나 같다는 뜻이 되고, 또 심한 악행을 한 사람이나 조금 악행을 한 사람이나 같다는 뜻이 되니, 모순일 수 밖에 없다. * 팔상도 7번 째 그림(녹원전법상) : 왼쪽 아래 그림은 급고독장자가 기원정사 마당에 황금 공양을 올리고 있음.
지장경에 보면 지옥에 떨어져 고초를 당하는 중생들을 구원하기 위해 애쓰는 부처님이나 보살님, 그리고 많은 신들이 묘사되어 있다. 당연히 그래야 자비와 사랑의 세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예전부터 살아있다는 것이 고맙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다.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은 참 여러 가지로 내가 다른 사람을 비롯한 많은 생명으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다는 뜻이다. 오늘 아침 먹은 음식들을 생각해보자. 쌀, 우거지 국, 김치, 된장, 무말랭이, 김 등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따뜻한 방 안에서 불을 밝혀 놓고 맛있게 먹었다. 음식물 하나하나를 보면 모두 생명체들이 희생된 것이다. 어찌 보면 미안하고 참으로 고맙다. 그리고 그 음식들을 먹을 수 있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들었는가? 그리고 따뜻한 방과 밝은 불빛도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아침 식사 한 가지만 놓고 생각해도 이러한데 우리의 일생을 돌아보면 참으로 많은 사람과 생명체와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겨울 감 나뭇가지의 까마귀밥을 보면 우리 조상들의 어진 생명관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을 지장경을 읽으면 더욱 간절하게 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지장경을 읽은 뒤부터 한 가지 작은 변화가 생긴다. 식사 전에 감사의 기도를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육식을 가능한 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렇게 하고 나니 또 다른 변화가 생겼다. 음식이나 반찬이 맛이 없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된 것이다. 정말로 다 맛있고 고맙다. 그리고 가족을 말할 나위 없고 직장이나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감사하고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원효대사께서는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려있다고 하셨다. 세상은 누가 봐도 동일한 세상을 보는 것이지만 마음을 어떻게 가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사랑과 감사의 마음으로 보면 세상이 다 아름답고 고맙지만 반대로 불평과 미움의 마음으로 보면 세상이 또 그렇게 보인다. 그리고 그 결과로 나에게 오는 과보(果報)는 엄청나게 다르다. 전자는 행복을 주지만 후자는 아주 큰 불행을 주기 때문이다. 지장경은 천상과 지옥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것은 우리들 마음속에 누구나 똑 같이 갖추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단지 내가 어떤 곳에 들어가 살 것인가 하는 것만 결정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지장경은 대표적인 대승경전이다, 대승(大乘)의 핵심은 이타행(利他行)이다. 스스로 진리를 깨달아 고해로부터 벗어나며, 아울러 모든 중생들을 고해로부터 제도해 내는 것이 대승이다. 자기 해탈만을 추구하는 소승과는 다르다. 그런데 이러한 대승의 뜻을 구체적으로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 지장경이다.
지장경의 제1품인 ‘도리천궁신통품’ 에는 지장보살의 대서원이 실려 있다.
지장보살님은 아주 먼 과거 한때에 부자 집 아들이셨다. 어느 날 그 당시 부처님이셨던 사자분신구족만행여래님 앞에서 “저는 지금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겁의 육도 중생들을 위해 방편을 세워 모두 해탈케 하고 비로소 저도 성불하겠나이다.” 라는 큰 서원을 내셨다. 또 한 번은 브라만의 딸이셨다. 그때 그의 어머니가 지옥에 떨어졌다가 딸의 공양 덕분에 천상에서 태어나게 되었는데, 이때 지장보살님은 각화정자재왕여래 탑 앞에서 다음과 같은 서원을 세우셨다. “저는 미래 겁이 다하도록 방편을 널리 세워, 죄고 중생들을 해탈시키기를 원합니다.”
또, ‘염부제중생업감품’ 에 보면 지장보살님은 아주 오랜 과거 겁에 한 작은 나라의 왕이었는데, 친구인 이웃 나라의 왕과 함께 일체성취여래님 앞에서 서원을 세우셨는데 지장보살님의 서원은 다음과 같다.
“만약 먼저 이들의 죄고를 제도하여 편안케 하고 진리를 얻게 하지 않으면 저는 성불하지 않겠습니다.”
또 아주 오랜 과거 겁에 지장보살님은 광목이라는 여인이셨다. 그때 청정연화목여래님 앞에서 다음과 같은 서원을 세우셨다.
“만약 저의 어머니가 영원히 삼악도와 천한 신분과 여인의 몸을 받지 않는다면, 이후 수많은 지옥에 있는 삼악도의 모든 중생들을 맹세코 구해내어 지옥과 축생과 아귀 같은 악도를 영원히 벗어나게 하며, 이러한 죄보를 받는 중생들이 모두 성불한 후에 비로소 정각(正覺)을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지장경은 ‘자업자득’의 업보를 설명하고 지장기도를 하는 불자에게 서원 → 정진 → 참회의 순서를 권하면서 악업을 소멸해 가는 방법을 보여줍니다.
법안 스님께서는 서원과 목표(10대 소원표 작성) → 정진과 수행(지장경 독송) → 참회(회향과 감사 공양)으로 가르침을 주셨으며, 회향과 감사 공양이 지장보살이 되는 과정이라 하셨습니다.
한 가지의 선행이 만 가지로 답을 주기에 오늘도 보시바라밀의 실천 행으로 공덕을 쌓아 가시기를 발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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