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그녀를 삼키는 소리
홍정현
그녀는 거실에 혼자 있다. 남편은 날이 밝기도 전에 출근했고 아이는 학교에 늦었다며 방금 급하게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그녀는 어디에도 갈 필요가 없다. 십오 년 동안 적을 두었던 직장을 삼 년 전에 그만두었기 때문이다.
퇴직 후 일 년 동안은 산더미 같은 업무와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에 취해 있었다. 그리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 뒷바라지에 나름 바쁘게 지냈다. 하지만 삼 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니 일상은 흐릿하게 초점을 잃어 갔다. 채도가 옅어진 공간 속에서 그녀는 무엇을 붙들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시간을 채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텅 비어 가벼워진 시간을 날려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그때마다 해야 할 중요한 숙제가 있는데 숙제 내용을 모르는 학생처럼 초조해졌다.
그녀는 아침 청소를 간단히 하고 에스프레소 커피 머신으로 커피를 내리며 습관적으로 휴대전화를 집어 든다. 문자도 채팅방도 조용하다. 그녀의 입술에서 옅은 한숨이 새어 나온다.
‘서걱, 서걱, 서걱….’ 그때, 서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마치 얇은 종이를 조심스럽게 구기는 듯한 소음이 불규칙적으로 그녀의 고막을 두드린다. 그녀는 오디오가 있는 곳으로 가 전원 버튼을 누른다. 가수 이문세의 <빗속에서>가 오디오에서 흘러나와 거실 공간을 가득 채운다. 하지만 이별을 아파하는 이문세의 노래가 방패처럼 그녀를 에워싸도 서걱거리는 소리는 노랫소리를 비집고 나와 여전히 그녀를 집요하게 따라다닌다.
잠시 서성이다 그녀는 커피잔을 들고 노트북이 놓인 책상에 앉는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노트북의 전원을 켠다. 윈도우 화면이 열리고 모니터에 커서가 나타나자마자 재빠르게 인터넷 익스플로러 아이콘을 클릭한다. 느리다. 오늘따라 인터넷 속도가 느리다. 초조함에 그녀가 다리를 떨자 주변 공기도 같이 흔들린다. 엄지손톱 끝을 앞니로 살짝 씹는다. 손톱에 발라진 하늘색 매니큐어가 조금 떨어져 나간다. 서서히 포털사이트 로고가 보이고 그 아래로 배너들과 메뉴 창이 뜬다. 그제야 그녀는 안심한다.
0과1의 이진법 언어로 구축된 세상, 그녀의 불안을 잠재워줄 사이버 공간, 곧 그녀는 그곳으로 풍덩 뛰어들 것이다. 그녀가 미간을 찌푸리고 모니터에 집중하자 그녀를 채우고 있던 어수선하고 지루한 상념들이 하나둘씩 숨어버린다. 서걱거리는 소리도 증발한다. 그녀의 시선에 의해 모니터의 이쪽과 저쪽 공간이 서로 밀착하고 그녀 뒤의 벽, 전등, 액자, 문 등이 화면 쪽으로 괴기스럽게 기울어진다.
이때, 모니터에서 투명한 무언가가 슬며시 나타났다 사라진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알아보지 못한다.
그녀는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기계적으로 입력하고 로그인을 클릭한다. 알림 메뉴가 뜬다. 인터넷 공간에 남긴 그녀의 흔적에 누군가 응답한 경우, 알림 메뉴의 숫자가 올라간다. 숫자는 아홉. 대부분 그녀가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에 달았던 댓글에 대한 답이다. 확인을 위해 알림 버튼을 클릭.
학부모 카페에서 연필깎이를 문의한 글에 답한 그녀의 댓글이 보인다. ‘자동 연필깎이는 편하기는 한데, 소리가 요란하고 건전지를 사용하는 경우엔 수명이 짧아요. 그리고 몇 달 사용하면 연필이 뾰족하게 깎이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전 그냥 수동 연필깎이를 쓰고 있어요. 고장도 덜 나고 자동보다 잘 깎여요.’ 원글(댓글이 달린 게시글) 작성자가 그녀의 댓글에 다시 질문을 달았다. ‘수동은 어느 제품이 좋을까요?’ 그녀는 다시 댓글의, 댓글의, 댓글을 입력한다. ‘샤파의 기차 모양 제품이요. 기차 모양도 등급이 몇 가지가 있는 것 같은데…. 자세히는 모르겠네요.’
이번엔 요리 블로그를 클릭한다. 블로그 주인장의 요리 사진에 단 그녀의 댓글이 보인다. ‘어머, 하얀 접시와 요리가 잘 어울리네요. 감각이 있으세요. 접시는 어디 제품인가요?’ 블로그 주인장이 올린 댓글이 보인다. ‘감사해요. 접시는 빌레로이앤보흐의 뉴웨이브예요.’ 빌레로이앤보흐(Villeroy&boch)라. 그녀는 빌레로이앤보흐 브랜드가 궁금해진다. 검색창을 열고 빌레로이앤보흐를 친다. 그리고 검색 버튼을 클릭.
이제 그녀의 사이버 여행은 본 궤도에 올라선다. 그녀는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카페며, 블로그며, 홈페이지 등을 방문할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원래의 목적은 상실하고 무언가에 홀린 듯 텍스트 숲을 이리저리 헤매고 다닐 것이다. 다른 이들의 사생활을 엿보고, 극히 주관적인 텍스트에 감탄하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출렁출렁 떠다닐 것이다. 5%의 필요한 정보를 구하고자 95%의 헛된 정보 속에서 춤을 출 것이다.
그때다. 화면 속에서 투명한 것이 다시 나타난 것은. ‘스윽’하고 그것이 고개를 든다. 그것은 인간의 불안이나 결핍 등의 냄새를 귀신같이 맡는다. 그녀처럼 일상의 허기를 채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착각으로 인터넷 세계를 떠도는 자들을 노린다. 그것이 서서히 그녀에게 스며든다. 그리고 그녀의 시간을 천천히 삼켜버린다. 그렇게 그녀는 ‘중독’의 포로가 된다.
《한국산문》, 2015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