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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들내음농원 원문보기 글쓴이: 들내음
무천년적 입장에서
제1장 / 요한계시록은 어떤 책인가?
개혁주의 신학자 칼빈이 주석을 기록하지 않은 유일한 책이 바로 요한계시록이다. 이는 그 내용의 난해함의 이유도 있겠지만 당시의 요한계시록은 중세천주교회가 백성들을 우민화하는데 이용해먹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자들은 이들의 이러한 처사에 분노하였고, 종교개혁자들 중에 그 주축을 이루고 있는 루터나 쯔빙글리같은 이들은 요한계시록의 정경성마저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의 소지가 있는 책을 굳이 주석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기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요한계시록은 1세기 교회의 지도자들에 의해서 정경성이 의문이 제기 되었으며, 2세기 초대교부들의 글이나 설교에도 거의 인용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통 기독교회의 주변에 있던 비정통 분파들이 계시록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그들 나름대로의 요한계시록 해석의 뼈대를 세워나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교회는 이러한 광신자들이 요한계시록에 의해서 생겨난다고 생각을 했고, 더욱 요한계시록은 정경성에 대해서 의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요한계시록이 어떤 문제점이 있는 책이기 때문이 아니고, 단지 그 표현에 있어서 묵시문학적이며 동시에 사실적인 표현이 복잡하게 전개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오해와 곡해가 생겨나 이들을 정치적으로 배격하기 위해서 생겨진 정치적 의구심임을 알아야 한다.
요한계시록은 분명 교회를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성경인 정경이다. 이는 성경자체가 증거하고 있으며, 바르게 해석만 한다면 말할 수 없이 유익한 영적인 책이 바로 요한계시록인 것이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의 이러한 묵시문학적인 신비표현으로 인해서 많은 이단들이 요한계시록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교리를 만들어 사람들을 미혹하기에 여기에 현혹되기 쉬운 특성이 있다.
이단들은 언제나 자신들의 교주를 계시록의 특별한 인물로 부각을 시키고(예: 두 감람나무, 두 증인, 네 생물, 24장로, 어린양), 자신들의 단체를 특별한 단체로 주장하며(예: 144,000명의 무리, 어린양의 신부, 순교자의 무리들, 흰옷입은 수많은 무리들... 등등), 자신들의 처한 장소를 말세에 피난처로 말한다(광야, 여인, 독수리 날개, 성전측량의 안쪽...등등). 그래서 말세에는 말세복음이 있어서 자신들의 교주를 따라야 하며, 자신들의 무리에 들어야 하며, 자신들의 처소로 들어와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한번 이에 현혹이 되면 좀처럼 빠져나오기 힘든 것이다. 그러므로 불행하게도 요한계시록은 이단들의 사람을 현혹하는 상투적인 도구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요한계시록에 대해서 확고부동한 입장을 정하지 못해서 그러한 잘못된 교리에 대해서 정확하게 성도를 가르쳐서 굳게 서도록 하지 못하고, 단지 가지말라고만 함으로 소극적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말세에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귀한 계시의 말씀이며, 이는 하나님의 교회가 이 세상과 오는 세상의 영적인 실상을 알아 세상에서는 비록 고난이 있고, 환란과 핍박이 있다할찌라도 믿음으로 무장하여 모든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도록 힘과 격려를 주시는 말씀인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그 지경에 있는가? 없다면 어떻게, 이 싸움에 없는 것을 회개하고(계의 회개가 아닌) 시작해야 한다.
이 말씀을 어떤 한 시대(보통 말세지말)에 이루어질 신비스러운 드라마로 생각을 해서는 않된다. - 이 가정이 사실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요한계시록을 하나의 비밀스토리로서 해석을 하는 것인데, 어떻게 해석을 하더라도 이 책을 통해서 다가오는 이단들의 정체를 간파하고 그 유혹을 온전히 물리치기는 힘들것이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의 내용과 구조와 묘사자체가 그렇다.
예) 계21:9-22:5의 내용은 어린양의 아내를 묘사한 것이다. 어린양의 아내는 누구인가? 바로 그리스도의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묘사는 영원히 승리한 교회, 완성된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과 영원한 천국과 원리적으로 연결되는 부분은 있으나 그 본질은 교회가 지금은 환란과 핍박을 당하지만 이렇게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승리하고 완성될 것을 묵시문학적 표현을 빌어서 계시해주신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계시를 받았다. 천국을 다녀왔다고 하면서 이 장면을 그대로 말하는 자들이 있는데, 이러므로 계시록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이런 종류의 미혹에서 벗어나기 힘든 것이다.- 히11장의 거룩한 도시는 그럼 교회였나? 교회의 계시는 바울에게...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의 생각을 다 내려놓아야 한다. 전천년이니, 세대주의적 전천년이니, 후천년이니, 무천년이니 하는 선입견들을 다 잊어버리고 지금 처음으로 계시록을 배운다고 생각을 하고 함께 임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정말 무천년의 선입견에서 벗어났는가? 그것이 없이는 이번 공부가 혼란스럽기만하고 결코 유익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럴수만 있다면 이번 공부는 말할 수 없는 유익이 될 것이다.
요한계시록의 주체는 하나님이시고, 주인공은 교회이다. 그리고 사단과 세상과 천사들이 조연으로 나온다. 특별히 교회는 지금 현재 세상에 존재하는 지상교회와 동시에 천상에 존재하는 천상교회와 그 지상교회와 천상교회가 하나가 되어서 완성된 교회로서 새예루살렘을 보여준다.-이 지상, 천상교회의 구조가 성경에 있나? 벌써 어거스틴의 사상이 있지 않나? 그리고 이 교회의 완성을 방해하고 공격하고 깨뜨리려고 발버둥을 치는 사단과 세상과 거짓선지자들의 모습이 반복적으로 등장을 하나 결국은 이 교회를 박해하는 세력은 망하게 되고, 하나님의 교회는 영원히 영광스러워지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 영적인 그림과 싸움을 그린 것이 바로 요한계시록인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은 말세의 어느 한 때에 이루어질 사건이 아니요, - 한 이레의 사상을 먼저 증거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과 성령의 강림으로 세워진 교회가 영원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재림과 심판과 종말과 회복의 때까지 겪게 되어질 영적인 싸움을 그린 것이다. 그 싸움은 비슷한 원리와 모습으로 반복되어지고 심화되어지며, 결국에 가서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승리한 것을 계시하심으로서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는 하나님의 교회가 용기를 가지고 영적인 싸움을 잘 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위로하고 힘을 주시기 위해서 기록된 책이 바로 요한계시록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에 앞으로 언젠가 이루어질 영화같은 스토리가 아니요, 교회가 세워진 이후 각 시대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교회가 겪고 있는 영적인 지도요 싸움이요, 그 승리의 길을 가르쳐주고 있는 책이 바로 요한계시록인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을 읽으면서 이 일이 “언제 일어날 것이냐?” “어디에서 일어날 것이냐?”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느냐?”... 등등의 관심은 백해무익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요한계시록 전체의 사건은 이미 일어난 일이며,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사건이며, 앞으로 완성되어질 계시인 것이다.
구약의 종말에 관한 계시의 책의 대표적인 책은 다니엘서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책을 계시해 주신 이후 하나님께서는 “이 책을 마지막 때까지 봉함하라(단12:4,9)”고 하셨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이 책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이는 때가 가까움이라(계22:10)”고 하셨다.- 이 인봉하지 말라는 것을 인봉한 것이 아닌가? 이는 요한계시록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책이 아니요, 초대교회당시에 이미 열려진 책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당시의 아시아 7교회에서 돌려 읽으면서 큰 위로를 받았던 것이다.
만일 요한계시록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어떤 사건들을 말하고 있다면, 다니엘서는 예수그리스도의 교회가 탄생하기 약 530년 전에 기록되었는데, 530년후에 이루어질 일을 인봉하라고 했다면 거의 2000년 전에 기록된 요한계시록을 인봉하지 말라고 하실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교회의 탄생부터 재림과 심판 그리고 하나님나라가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 적용되는 말씀이기에 인봉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은 현재의 교회의 영적인 상황에 관한 말씀이요, 이미 이루어진 말씀이요, 계시록 안에 이미 완성을 품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특별히 우리는 계시록을 통해서 하나님의 모든 관심은 교회에 있으며, 하나님의 비밀도 교회에 있으며, 세상과 사단이 교회를 얼마나 미워하여 핍박을 하며, 그러나 하나님이 그 교회를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결국은 승리케하시고 영화롭게 완성하심을 보여주는 책이 요한계시록인 것이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될 당시는 도미티안황제와 네로황제의 통치시기이므로- 가톨릭과 같은 기록시기를 잡고 있다. 신비인 그 여인은 누구인가? 엄청난 핍박이 교회에 가해지는 그러한 시기였다. 그 때에 교회를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며, 영적인 실상을 보여주심을 통해서 소망중에 용기를 가지고 승리할 수 있도록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요한계시록을 알면 이 책은 더 이상 두려움의 책이 아니요, 용기를 주는 책이며, 절망의 책이 아니요, 소망의 책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이 영적인 전투에 처해있는 교회가 어떻게 영적인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이제 한구절 한구절의 자구적인 해석보다 그 전부를 해석할 수 있는 영적인 안목과 요한계시록의 문학적 표현양식, 그리고 구조적이고, 신학적인 특징과 영적인 실상에 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묵시문학적인 표현양식으로 기록된 요한계시록을 자구적으로 해석을 시도한다는 것은 그 해석이 영적인 해석이 되든지 물리적인 해석이 되든지, 이미 지난 역사로 보든지 앞으로 이루어질 역사로 보든지 그 자체로서 이미 모순 속에 빠져있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을 통합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하고, 같은 원리가 반복적으로 계속이어지고, 그러면서도 점진적으로 심화되어 그 중요한 것들을 강력하게 표현하고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요한계시록의 어떤 시간도 한두부분을 제외하고는 물리적인 시간이 아니며, 어떤 숫자도 물리적인 숫자가 아니며, 어떤 장소도 물리적인 공간을 말하지 않는다. 요한계시록의 모든 표현은 영적이며 상징적인 것으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것을 철저하게 알아야 한다.-영적인, 상징적인 것도 자구적으로 할 수 밖에 없다.
예) 별 1/3이 떨어지고, 해가 총담같이 검어졌다. / 이것을 물리적으로 해석한다면 이것으로 물리적인 역사는 끝나야 한다. -왜? 미래의 사건이라면 물리적인 역사는 오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계속해서 그 비슷한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순교자의 피가 제단 앞에서 호소하고 있는가하면 그들은 어느새 흰옷을 입고 주님을 찬양하고 있다. 교회에 주시는 권면의 말씀을 하시는가 했더니, 그교회는 어느새 천상에서 찬양을 하고 있고, 그리고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어서 완성된 모습으로 하늘로 �아 강림하고 있다. 교회는 여자도 되고, 아이도 되고, 성도 되고, 지상에서 핍박을 받기도 하며, 천상을 올라 세상을 호령하며 통치하기도 한다.
이는 지금 현재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주님의 교회의 영적실상을 묵시문학적인 표현을 가지고 묘사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혼란스러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모든 것이 명확하고 분명하다. 세상이 권세가 강한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의 품 안에 있는 교회를 감히 건드릴 수도 없는 미미한 세력일 뿐임을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깨닫게 된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교회사랑하심과 영적인 전투에서 승리케하심과 교회를 향해서 이루실 뜻을 반드시 그리고 속히 그리고 영원히 완성하심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할렐루야!- 이런 말을 하면서 지옥의 문들이 교회를 이기지 못한 다는 마16장을 한 번도 거론 안 하다니
제2장 / 요한계시록의 구조
묵시문학적 표현양식으로 기록된 영적인 책인 요한계시록의 구조를 가장 유익되게, 그리고 적합하게 분석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작업이다. 그러나 여러학자들의 분석작업을 종합해서 가장 정확하고 유익된 구조를 그려볼 수 있다.
<표.#1> 계시록의 나선형 구조 분석표
지상교회 (1-3장) | 1) 1:1-8 / 머리말 2) 1:9-3:22 /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1장의 나머지 부분을 왜 따로 구분하지 안? | ||
A. 4-5장 | 서론적 환상 | ||
1) 4장 /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천상교회의 모습)-엡2의 우리가 이미 하늘에 있다 좋다. 짐승? 2) 5장 / 일곱 인으로 봉인된 책을 취하시는 어린양. | |||
B. 6-7장 | 첫 여섯 인들 | ||
1) 6:1-8 / 첫 네개의 인들 2) 6:9-11 / 다섯 번째 인 3) 6:12-17 / 여섯 번째 인 | |||
<삽경> 7장 / 땅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 하늘의 순교자들 | |||
C. 8-22장 | 일곱 번째 인과 나팔들 | ||
A'. 8:1-6 | 서론 | ||
1) 8:1 / 일곱번째 인 2) 8:2 / 일곱 나팔들을 받는 천사들 3) 8:3-5 / 하늘에 있는 성도들의 기도 4) 8:6 / 나팔들을 불기 위해 준비하는 천사들 | |||
B'. 8:7-11:14 | 첫 여섯 나팔들 | ||
1) 8:7-12 / 첫 네 개의 나팔들 2) 8:13 / 독수리의 부르짖음: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화를 선포 3) 9:1-11 / 첫 번째 화가 지나감: 두 개가 아직 남아 있음 4) 9:13-21 / 여섯번째 나팔 | |||
<삽경> 10:1-11:13 / 작은 책과 두 증인 | |||
5) 11:14 / 두번째 화가 지나감: 세번째가 아직 남아 있음. | |||
C'. 11:15-22:5 | 일곱 번째 나팔과 대접들 | ||
A''. 11:15-16:1 | 서론 | ||
1) 11:15-19 / 일곱 번째 나팔 | |||
<삽경> 12장 / 여인과 아이와 용(사단) 13장 / 두 짐승 이야기 14장 / 세 개의 환상 | |||
2) 15:1 / 일곱 재앙을 가진 천사들 3) 15:2-4 / 이긴 자들의 노래 4) 15:5-8 / 일곱 대접을 받은 천사들 5) 16:1 / 대접들을 쏟기 위하여 명령 받은 천사들 | |||
B''. 16:2-16 | 첫 여섯 대접들 | ||
1) 16:2-9 / 첫 네 개의 대접들 2) 16:10-11 / 다섯 번째 대접 3) 16:12-16 / 여섯 번째 대접 | |||
C''. 16:17-22:5 | 일곱 번째 대접과 완성 | ||
1) 16:17-19:10 / 바벨론(세상, 사단) 2) 19:11-20:15 / 마지막 심판 3) 21:1-22:5 / 새 예루살렘(신부, 교회) | |||
지상교회 | 22:6-21 / 지상교회에 주시는 영적전투의 격려와 필승과 영원한 소망의 위로 |
먼저 기억할 것은 요한계시록의 모든 사건은 일직선상의 사건이 아니요, 나선형(반복적, 점진적)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나선형이라는 것은 비슷한 이야기들을 반복해서 하는데, 하면 할수록 더욱 깊이 들어가고 확실해 지는 것으로 반복적이며, 점진적인 영적인 실상을 그림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본 표에서 보듯이 뒤의 내용들이 앞의 내용들보다 더욱 심화되어서 표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악도 심화되고, 하나님의 영광과 승리도 심화되어서 나타난다.
예) 보좌의 모습과 인, 나팔, 대접 심판에 나타난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표현들을 보면 비슷한 표현인데 점진적으로 강하게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세한 것은 나중에 심판들을 다루는 장에서 살펴보도록 하자.
<표.#2> 하나님의 심판의 강도가 점점 강하게 표현됨.
구 절 | 표 현 | 상 황 |
4:5 | 번개가 치고, 소리들과 천둥 | 보좌의 모습 |
8:5 | 천둥과 소리들과 번개와 지진 | 일곱 인 심판 |
11:19 | 번개가 치고, 소리들과 천둥소리가 나고, 지진과 큰 우박 | 일곱 나팔 심판 |
16:18-21 | 번개가 치고, 소리들이, 천둥이 울리고, 큰 지진... 큰 우박 | 일곱 대접 심판 |
그리고 이 하나님의 보좌의 모습은 바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보여주셨던 그 하나님의 보좌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의 모든 환상들의 표현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거의 모든 묘사가 구약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들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
<출 19:16> 제 삼일 아침에 우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심히 크니 진중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자 이표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세사건을 인 심판이 끝나면 나팔 심판이 오고, 나팔 심판이 끝나면 대접심판이 온다고 물리적인 시간의 순서대로 생각해서는 않된다. 이 3가지는 삼중적인 의미의 심판이고 항상 섞여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단지 묵시문학적인 표현양식으로 인해서... “이 일후에 내가 보니...” 하고 표현한 것이다. 실제로 요한은 그렇게 순서대로 보았지만 그것은 요한이 환상을 본 순서이지 그 사건이 발생하는 순서는 아닌 것을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중간 중간에 나오는 삽경은 이야기의 흐름을 깨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앞뒤의 연결을 자연스럽게 도와주며, 지루하지 않도록 조미료와 같은 역할을 해준다. 내용의 활력을 제공하고 핵심적인 신학적인 답변까지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삽경은 아주 중요한 역활을 하는 하는 것이다.
자 이제 요한계시록의 중심내용인 세 개의 일곱심판 시리즈에 관한 중요한 구조적인 배경을 살펴보도록 하자.
1. 심판의 근원지 / 천상의 하나님의 보좌에서 시작된다. (3개의 일곱심판이 다 그렇다.) 그것이 어떤 일이 되었든지 지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의 근원이 바로 천상에서 시작됨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2. 심판의 실행 / 성도의 기도로 직접적인 심판이 전개된다. 그러므로 성도의 기도야말로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는 도구인 것이다.
8:1 / 일곱번째 인을 떼실 때, 반시동안 하늘이 고요함.
8:3-4 / 하나님이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심.
8:5 /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심의 응답으로 심판이 실행됨.
8:6 / 일곱 나팔 심판의 시작
3. 삽경들 / 2개의 일곱심판 시리즈-인은 심판으로 보지 않나? 와 두개의 삽입의 관계를 생각해보자. 이 삽경들은 항상 인심판이 주는 어떤 문제제기에 대해서 답을 주면서 한걸음 더 나가서 더욱 풍성하고 확고한 하나님의 승리를 선포하고 있다.
삽경1(6번째 인과 7번째 인 사이) / 극심한 환란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백성의 온전한 숫자가 보호를 받고 구원을 받는다는 내용으로서 6:17에서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라고 문제제기를 할 때, 이 삽경은 오직 교회는 능히 설 수 있음을 선언하고 있다.
7장 1절은 사방의 바람(환란)을 불지 못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시고 구원하시는 놀라운 능력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완전한 구원의 숫자 144,000이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 숫자는 12(구약 열두지파)×12(신약의 12사도)×1,000(무한수)- 근거는? 만만이요 천천이라?를 의미한다. 그래서 이 숫자의 해석은 이어서 나오는 흰 옷을 입은 셀 수 없는 큰 무리인 것이다.
삽경2(6번째 나팔과 7번째 나팔 사이) / 불신 세상에서 교회가 복음을 증거하는 내용으로서 9:20-21에 제기된 ‘하나님의 심판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회개치 않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교회의 선지적 사명인 복음증거를 통해서 되어질 수 있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그 증거로 11:13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계 11:13 > “그 시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여기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부분이 바로 회개하고 변화되어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강퍅한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교회의 복음 증거의 사역뿐임을 기억하라. 세상이 악해질수록 교회의 할 일은 오직 복음을 증거하는 일 뿐이다.
예) 거지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부자의 형제들이 구원을 얻는 방법은 오직 땅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교회의 증거를 받는 길 뿐이다.
4. 사자인 어린양과 신부인 교회 / 7:9-14의 어린양을 따르는 성도의 승리에 대한 환상은 5:5-6의 승리하신 예수님의 모습과 병행을 이룬다.
5:5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5: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여기서 인봉을 떼도록 승리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유대지파의 사자라고 묘사되어 있고,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으로 표현했다. 전자는 강하고 능력있는 모습이요, 후자는 너무나도 약한 모습이다. 그리스도는 어린양처럼 죽임을 당하셨지만 부활하셔서 사자처럼 승리하시고 왕권을 쟁취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교회도 동일하다. 어린양처럼 아무 저항도 못하고 죽임을 당할만큼 연약하지만 부활로 승리하는 것이다. 7:9-14이 이를 보여준다.
7: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7:14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여기서 어린 양을 따르는 자들(=교회)에게는 영광스런 승리가 주어지는데(7:9), 이는 복음전도와 순교적인 정신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7:14) 그래서 교회의 고난의 기간인 42달(11:2-3)과 교회의 복음증거의 기간인 1,260일과 한때 두때 반때(12:6,14,13:5)라는 기간은 동일한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전체의 기간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환란에서 교회를 보호하시는 기간 역시 1,260일이다. 그러므로 기간을 다른 표현으로 한 것은 묵시문학적인 표현일 뿐 그 기간은 동일한 기간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 기간은 사단이 결박을 당한 1,000년과도 같은 기간이다. 두 증인이 죽임을 당하고 부활한 기간인 3일 반(11:9-11)역시 교회가 고난을 당하고 승리하는 동일한 기간인 것이다.-42 숫자는 마의 족보와 광야 정착지와 같다. 그러나 1,260..1000년은 영적적용이 없다. 좀 전에 1,000이 무한 수라면서 어찌 한 정된 기간으로 생각하는가?
이 모든 기간에 관한 숫자들이 바로 신약시대 전체를 상징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무작위로 그러한 것은 아니다. 다 경우에 따라서 은혜스러운 의미가 부여된다. 예를 들어서 전체적인 핍박의 기간은 42달이다. 그리고 극심한 핍박의 기간은 3일 반이다. 가능하면 작은 숫자로서 표현했다. 그러나 보호의 기간은 구체적인 숫자인 1,260일이다. 그리고 증거의 기간도 1,260일이다. 이는 날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보호하시고 그 능력을 힙입어 복음 증거의 사역을 할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핍박의 기간이 따로 있고, 영화의 기간이 따로 있고, 승리의 기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주님의 초림부터 재림까지의 교회기간동안에 늘 환란이 있고, 늘 보호가 있으며, 때로는 죽기도 하고, 때로는 부활로 승리하기도 하며, 언제나 복음증거의 사명을 감당하는 기간인 것이다. 이 기간은 사단이 결박을 당하여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는 기간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악의 세력이 창궐하여 교회를 핍박하기도 하는 것이다. - 맞다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결박하지 않고는, 이 세상의 임금 등등을 연구 증거해야 한다. 모순처럼 보여 아직 설득력이 없다. 이 모든 것이 이 기간 안에 일어나는 일들이고, 그 일들을 묵시문학적인 표현으로 계시해주신 것이 바로 요한계시록인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어떤 기간 중에서라도 순교적인 자세를 가져야 하며, 기도하기와 복음전파의 사명을 쉬지 않으며, 외적으로는 핍박을 받지만 실상 사단은 결박당하여 아무 권세도 없음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날개 그늘아래 보호받고 있음을 인해서 감사하고 찬양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그 뒤를 기꺼이 따라야 하는 것이다. 아멘!
제3장 / 요한계시록 어떻게 읽을 것인가?(1:1-8)
시를 읽으면서 과학책을 읽는 것처럼 읽어서는 않될 것이다. 또한 과학서적을 읽으면서 소설을 읽듯이 읽어서는 제대로 그 내용을 파악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성경도 동일하다. 성경은 역사서도 있고, 율법서도 있고, 시가서도 있고, 서신도 있으며, 묵시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글도 있는 것이다. 각 권의 책을 그 기록목적과 형태에 맞게 읽고 연구해야 가장 유익되게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그리스도께서 직접 계시를 하신 것이기에 우리는 이 책을 대할 때, 이 책에는 다른 어떤 성경에서도 느낄 수 없는 어떤 신비로운 기운이 감돌고 있다고 생각을 한다. 다시 말해서 요한계시록은 여타 성경과는 다른 책으로서 특별한 사람이 계시로 기록한 것이고, 그렇기에 계시를 받거나 성령에 완전히 감동된 특별한 사람만이 이를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신비적인 해석으로 기울어지려고 하는 경향이 너무나도 짙다. 바로 이러한 자세가 지금까지 성도의 시야를 흐리게 하여 요한계시록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신비적으로 흐르게 한 것이다.
요한계시록도 여타 성경처럼 우리에게 읽고 은혜를 받고, 그 말씀대로 살라고 주신 성경임을 주지해야 한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은 해석을 할수도 분석을 할 수도 적용할 수도 있는 책인 것이다. 오히려 특별하게 해석하려고 하면 이상한 것을 만들 수 있는 책인 것이다. 그러면 요한계시록은 어떤 책인가 그 주된 특징을 몇가지 살펴보도록 하자.
1. 요한계시록은 그 이름처럼 계시의 책이다. / 계시라는 말은 성경 원어인 헬라어로 ‘아포칼립시스’라는 단어인데, 이는 당시 사회에서 유행하던 묵시문학적인 형태를 띠었음을 의미한다. - 계시와 묵시는 다르다 여기부터 혼용하면 해석에서 다르게 나타난다 당시에 유행하던(누구든지 익숙하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형태라는 의미) 묵시문학의 특징은 서사적인 골격을 가진 이야기체로 되어있고, 그러나 그 이야기 속에는 물리적인 세상과는 초월적인 스토리가 또 다시 담겨 있는 것이다.
요한계시록도 그러하다. 요한계시록은 분명히 외적인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어떠 이들은 이 이야기를 실제의 물리적인 역사에 적용을 해서 나름대로 드라마를 꾸며낼 수 있을 만큼 분명하고 구체적인 스토리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는 초월성이 있다. 현재와 장래의 사건이 동일하게 이야기 속에 존재하는 시간적인 초월성과 세상에서의 교회와 천상에서의 교회가 함께 공존하는 공간적인 초월성이 있다. 이미 지난 일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올 일들이 한 자리에서 묘사되는 사건적인 초월성이 또한 함께 공존한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계시록은 이를 이 초월성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해석하기가 어렵지만 이 초월성을 이해하고 나면 얼마든지 기존의 성경과 동일한 선상에서 이해하고 분석하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의 묵시적 표현은 결코 추상적이고 관념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대단히 영적이며 실천적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의 이 묵시문학적인 형태의 기록은 당시 교회가 당한 극심한 핍박과 환란(로마의 네로황제의 핍박)을 이길 수 있는 지극히 효과적인 형태의 기록방법이었다. 그리고 로마의 찬란한 문화와 쾌락과 건축물들이 얼마나 허구적인 것인가를 하나님나라를 보여줌으로서 알게 하신 것이다.-우리의 문화사역과는 어떤가? 그리고 그 것들의 배후에는 그것을 움직여 교회를 넘어뜨리려고 하는 사단이 도사리고 있다는 실체를 보여주는 스토리가 바로 요한계시록인 것이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세상에 있는 교회가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도록 격려하기에 충만한 묵시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당시 뿐아니라 지금도 교회가 당하고 있는 영적인 도전과 환란과 유혹과 고난에 있어서(인본주의, 물질만능주의, 권력의 박해) 그것의 본질과 그 배후에 있는 악의 영들의 실체와 그것들을 능히 이길 수 있는 힘을 주는 스토리가 바로 요한계시록인 것이다.
2. 요한계시록은 ‘예언의 말씀’이다. / ‘예언’이라고 할 때, 우리는 쉽게 앞날에 되어질 일을 생각한다. 물론 예언에는 앞날의 일을 포함하고 있지만 다른 선지자들이 했던 예언과 계시록의 예언은 다르지 않다. 예언은 과거에 행하신 하나님의 사역과 그 분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와 그 것이 어떻게 현재 하나님의 백성에게 해당이 되는 일인지를 선포하며, 그 선포된 말씀을 순종하느냐 불순종하느냐에 따라서 앞으로 되어질 복과 화를 선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단순하게 일방적인 미래의 일을 점쟁이처럼 말하는 것이 아니요, 철저하게 되어진 과거의 일을 기초로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하고 현재의 순종여부에 따라서 장래의 일을 선언하는 것이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출애굽을 근거로 하여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구원하실 것을 예언하였다면 이제 요한은 그리스도의 구속사건과 부활과 승천을 근거로 해서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현재에 경험되고 미래에 완성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구속사건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의 예언은 철저하게 그리스도 중심이요, 그 분이 이루어가는 사역이며, 교회의 모습은 바로 그 분의 모든 성취하신 사역에 기초를 두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을 풀어가는 열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임을 알 수 있으며,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그의 신부된 교회임을 보여준다.
1장 / 메시야로서 엄위하신 모습의 그리스도로...
2-3장 / 일곱교회를 다스리는 자요, 메시지의 선포자로...
5장 / 인봉한 일곱인을 떼시기에 합당하신 자로...
6-16장 / 심판과 하나님의 왕권을 드러내는 데 주도권을 갖는 분으로...
17-19장 / 세상나라 바벨론을 완전히 멸하시는 분으로...
21-22장 / 영원한 신부된 교회를 취하는 신랑으로...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은 예수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어떤 해석도 불가능하다. 이 말은 다른 어떤 존재(예를 들어 이단의 교주나 영물인 어떤 존재들)도 요한계시록의 주체가 될 수 없다.
3. 요한계시록은 서신이다. / 서신은 수신자가 읽으라고 보내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일반 회중이 능히 들어서 알 수 있고 은혜를 받을 수 있으며, 힘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 이는 바로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그러하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읽어서 알 수 있고, 위로와 용기를 얻을 수 있는 그리고 현재의 처한 상황에서 지혜를 얻을 수 있는 편지글인 것이다.
<1:4-5>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이는 고대 사회의 서신 인사말의 전형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다. 독특한 점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한 분 한 분 언급하고 그 분들이 이 편지의 원발송자 되심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① 성부 하나님: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현재 오고 계시는 이)
② 성령 하나님: 보좌 앞에 일곱 영(참고: 스가랴 4:2, 4-5, 10, 11-14)
③ 성자 하나님: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은 영원에 머물러 계시지 아니하시고, 영원한 복음을 가지고 현재로 오시는 분이시며, 성령님은 온세상을 살피시고 다스리시되 특별히 교회를 돌아보시는 분이시며, 예수님은 죽임을 당하시고 부활하심으로 만왕의 왕권을 소유하신 분임을 선언하고 있다.
이처럼 교회는 아무리 어려워도 성자 예수님의 본을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죽기까지 증거하는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 요한계시록을 교회에 보내는 주된 목적인 것이다.
사단은 땅의 어리석은 왕들을 미혹하여 교회를 박해하는데, 하나님은 전도라는 미련한 방법을 통해서 세상을 부르시고 구원하신다. 그 증거가 마칠 때에 교회는 세상의 권세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게 되는데, 그리스도의 순교적 증거의 사역에 동참함으로 다시 둘째부활(예수님의 부활이 첫째 부활)에 동참하는 특권을 갖는 것이다. -근거 없다. 첫째부활이다.
자 편지는 수신자가 있게 마련인데, 요한계시록의 수신자는 누구인가? 바로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교회이다. 이 중에 어떤 교회는 칭찬만 듣는 교회도 있고, 책망만 받는 교회도 있다. 그리고 칭찬과 책망을 동시에 받는 교회도 있다. 이처럼 아시아 일곱교회는 다 하나님의 위로와 권면, 예언의 말씀이 필요한 교회이며, 그들이 처한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능히 서기 위해서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들이 처한 가장 중요한 문제의 핵심은 그들이 영적인 전투중이며, 이 전투에서 이겨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싸우고자 할때에 승리를 약속해주신다. 이들이 싸우는 영적인 전투는 두가지 방향으로 온다. 먼저는 외적인 악한 세력의 핍박으로 온다. 그 대표적인 모습이 로마의 박해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평안과 안녕을 보장하는 세상적 평안으로 온다. 주님께서 “모든 사람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때에 그 날이 덫과 같이 임할 것”이라고 하신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외적인 핍박이든지 내적인 평안의 덫이든지 오직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순교적 신앙정신으로만이 이길 수 있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의 승리는 순교임을 기억하라.
그리고 이 일곱교회는 신약시대의 모든 교회를 대표하는 교회이다. 바로 오늘 우리 교회, 바로 나 자신의 영적인 승리의 삶을 위해서 주신 서신임을 기억하도록 하자.
팁> 중요한 것은 요한계시록을 물리적 시간적 순서로 이해해서는 결코 않된다는 것이다. 공간적이고, 시간적인 초월과 중복성을 이해하고 요한계시록을 읽어야 한다. 또한 요한계시록의 어떤 비유적인 사건이나 개념이나 인물을 역사상 실존하는 어떤 한 인물이나 사건에 그대로 국한시켜서는 않된다. 그렇게 되면 요한계시록은 모든 시대 모든 교회에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제4장 / 예수 그리스도(1:9-20)와 일곱 교회에 보내는 메시지(2-3장)
일곱교회에 보내는 편지는 단순하게 일곱교회에 주시는 교훈이 아니요,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의 메시지와 맥락을 같이 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향해 선포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메시지인 것이다.
2-3장에 편지로 메시지를 보내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1:9-20의 예수님의 모습과 일치한다. 단지 전체적인 그리스도의 모습이 부분적으로 강조되어서 각 교회에 나타나시는 것이다.
그리고 1:11에서 ‘책을 써서... 보내라’고 하신 것은 이것이 단순하게 2-3장의 내용을 말하는 것이 아니요, 요한계시록 전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1:12-20은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데, 13절의 ‘인자같은 이’는 단7:13의 ‘인자 같은 이’를 반영하고, ‘발에 끌리는 옷’과 ‘가슴에 있는 금띠’는 출28:4의 대제사장의 옷을 반영하고, 털의 희기가 양털같고 눈 같은 머리와 불꽃같은 눈과 풀무에 단련된 빛난 주석과 같은 발과 많은 물 소리같은 음성(14-15절)은 단7:9의 하나님에 대한 묘사를 사용하고 있다. 요한은 단 7:9-14의 하나님과 메시야적 인물에 대한 묘사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통합적으로 적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구약의 메시야적 인물에 대한 기대는 그리스도안에서 성취되었고, 그러므로 이제 더이상 다윗왕과 같은 또다른 메시야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또한 구약의 이스라엘나라의 회복에 대한 기대는 신약에서 교회를 통하여 그 성취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롬9-11장을 부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메시야이신 그리스도는 그 회복된 나라인 교회에 그의 왕권을 가지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는 1:16에서 그의 오른 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계시며, 1:12에서 보았던 ‘일곱 금 촛대’사이를 다니신다. 일곱이라는 숫자는 완전수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이 일곱 수를 통해서 회복되어진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를 주장하시는 분으로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 분은 1:17-18에서 ‘처음이요, 나중’이 되신 분으로서 사망과 음부의 열쇄를 지니신 분인 것이다.
또한 요한계시록은 일곱 교회에 따로 따로 주시는 독립된 서신이 아니요, 온 교회에 주시는 전체적인 말씀인 것이다. 마치 구약의 선지자들이 온 백성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양식을 따라서 선지자 요한은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시공을 초월한 신약의 온 교회에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 편지가 구약적인 선포의 유형을 따르는 방식을 살펴보면...>
1.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 이는 구약의 선지자들이 선포하는 예언의 서두를 연상케 하는 표현으로서 ‘이스라엘아 들으라’ 혹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참고: 아모스5:4, 호세아4:1, 예레미야 2:1-2, 아모스1:6) -천사의 역할을 약화시킨다.
2. 심판과 회개의 촉구 메시지이다 /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죄의 지적과 회개의 촉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자리로 이끌기 위한 사랑의 동기와 회복의 목적이다.
3. 일곱 메시지 모두 종말론적 약속들이 있다. / 구약의 선지자들은 언제나 그들의 메시지에서 그들의 상황에 주시는 종말론적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었다. 요한계시록 역시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종말론적 약속을 포함하고 있다.
<이제 요한계시록의 구성상의 특징을 살펴보면....>
1. 서신의 특징인 서두와 결론을 생략하고 있다. / 단도직입적으로 메시지를 선언하고 있다.
2. 각 메시지는 이기는 자들에 대한 약속과 성취로 끝을 맺고 있다. / 이는 종말론적 극치로서 2-3장과 21-22장에서 더욱 극대화 된다.
①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를 약속(2:7)-> 성취(22:3, 14, 19)
②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음(2:11)-> 20:6, 21:4
③ 새 이름을 주심(2:17)-> 19:12, 22:4
④ 새벽 별(2:28)-> 22:16
⑤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 하나님의 이름과 새예루살렘의 이름(3:12)-> 21:2, 10, 22, 22:4
⑥ 흰 옷(3:5)-> 22:3
=> 그리고 21:7은 이 모든 약속의 성취를 전체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약속에 참여치 못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한 결과로 이기는 자가 되지 못한 자들의 특징을 묘사하고 있다.
① 겁쟁이들(2:10, 13)
② 믿지 아니하는 자들(2:10, 13)
③ 행음하는 자들(2:14, 20)
④ 우상숭배자들(2:14, 20)
⑤ 거짓말하는 자들(2:2, 9, 20, 3:9)
=> 그리고 전체적으로 2-3장에서는 회개할 기회가 주어지지만 21-22장에서는 그 기회가 더 이상 주어지지 않는다.
3. 추상적인 교회에 전함이 아니요, 지상에 존재하는 구체적인 교회에 전하고 있다. / 아시아 일곱교회의 현실에 닥친 문제에 대한 메시지를 주시는 것처럼 교회가 처해있는 현실의 문제에 대한 총체적인 메시지가 됨을 선언할 수 있는 것이다.
4. 각 교회에 주신 메시지는 모든 교회가 공유하게 되어있다. / 이는 소아시아 7교회뿐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교회(지역적 초월), 그리고 모든 시대의 교회에 주시는 일반적이고 총체적인 메시지인 것이다.
5. 요한계시록의 주된 관심은 교회에 있음을 보여준다. / 이기는 자들에 대한 약속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현재 우주적이며 영적인 전쟁에 처해있음을 깨닫게 하고, 이 전쟁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승리할 것을 명하고 있다. 이 싸움은 이미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승리했으나 이제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승리의 극치를 이루며,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게 될 것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교회를 결코 떠나지도 버리지도 아니하시고 반드시 승리케 하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작정하신 섭리적 선포가 함께 있는 것이다.
<표.#3> 이제 각 교회에 주신 구체적인 메시지를 분석해보도록 하자.
교회 | 그리스도의 모습 | 칭찬 | 책망/경고/격려 | 이기는 자에게 약속 |
에베소교회 | 오른 손에 일곱 별을 잡으시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분(2:1) | 수고, 인내, 순결(2:2,3,6) | 처음 사랑을 잃었다. 처음 행위를 회복하라. 회개치 않으면 촛대를 옮길 것이다.(2:4-5) |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게 할 것(2:7) |
서머나교회 |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다시 사신 분(2:8) | 환란과 가난한 가운데 있지만 부요함(2:9) | 고난받는 것을 두려워말라, 죽도록 충성하라(2:10) | 생명의 면류관(2:10), 둘째 사망이 해하지 못함(2:11) |
버가모교회 |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분(2:12) | 사단의 위가 있는 곳에 거주, 그리스도의이름을 굳게 잡고, 안디바가 순교할 때 믿음을 저버리지 않음(2:13) | 발람과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 회개치 않으면 속히 임하여 검으로 그들과 싸우심(2:14-16) | 감취었던 만나와 아무도 모르는 이름을 기록된 흰 돌(2:17) |
두아디라교회 |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 같으며,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2:18) |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2:19) | 자칭 선지자이며 행음하게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하는 이세벨을 용납, 회개할 기회를 주었지만 회개치 않음, 회개치 않으면 환란에 던질 것이다(2:22) |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을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고, 새벽별을 주심(2:26-28) |
사데교회 |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3:1) | 사데에서 몇 사람만이 그들의 옷을 더럽히지 않았다. 그들은 나와 함께 걸을 것이고 흰 옷을 입을 것이다.(3:4) | 하나님 앞에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함, 하나님의 관점에서 완전하지 않다. 받은 것과 들은 것을 기억하고 순종하고 회개하라. 회개치 않으면 내가 도적같이 올 것이다.(3:2-3) | 흰 옷을 입을 것, 생명책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 아버지아 그의 천사들 앞에서 너의 이름을 시인할 것(3:5) |
빌라델피아교회 | 열면 아무도 닫을 수 없고 닫으면 열자가 없는 다윗의 열쇄를 가지고 있는 거룩하며 참된 분(3:7) | 아무도 닫을 수 없는 열린 문을 주심, 적은 힘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인하지 않음(3:8), 유대인들로 성도 앞에서 절하게 하고 하나님께서 성도를 사랑하심을 보여주심(3:9), 인내의 말씀을 지켰기 때문에 땅의 거민을 테스트하기 위해 온 세상에 오는 시험의 순간에서 지키심(3:10) | 곧 오리라, 아무도 너의 면류관을 취하지 않도록 가지고 있는 것을 꼭 붙들어라.(3:11) | 하나님의 성전에서 기둥이 될 것임, 하나님의이름과 하늘로부터 하나님께로서 내려오는 새예루살렘의 이름을 그에게 기록(3:12) |
라오디게아교회 | 신실하고 진실된 증인, 하나님의 창조의 시초(3:14) |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음(3:15), 부요하다고 착각(3:17-19), 나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라(3:20) | 나의 보좌에서 나와 함께 앉게 하여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게 앉은 것같이 하리라(3:21) |
편지의 공통점은 그리스도의 모습이 각기 다르며 그 교회를 향한 메시지와 일치한다는 것이고, 또한 이긴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주신 메시지를 받아들여 회개하고 그들의 삶을 바꾸어 나가는 것이 바로 이기는 것일 것이다. 이것이 유일한 교회의 승리의 비결이다. 다른 승리의 길은 없다. 아멘!
제5장 / 하늘의 성전 환상(4-5장)
4-5장의 하늘의 성전에 대한 환상은 2-3장의 일곱 교회에 주시는 일곱 메시지와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전자는 하늘에 존재하는 교회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후자는 교회의 지상적 존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리고 천상의 교회와 지상의 교회의 연결성은 바로 하나님의 보좌의 모습으로 연결된다. 특별히 지상적 교회에 상응하는 천상적인 교회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그 어떤 영적인 전투와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서도 교회는 능히 살아남을 수 있다는 교회의 안전성을 보여준다.
또한 4-5장은 하늘에 존재하는 교회를 소개함으로써 21:2에서 하늘로서 내려오는 그리스도의 신부, 새예루살렘에 의해서 상징되는 교회의 위치를 구체적으로 설정해주는 것이다. 교회를 상징하는 새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온다면 이는 교회가 완전한 모습으로 하늘에 존재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4-5장은 앞으로는 2-3장의 지상교회와 뒤로는 21-22장의 완성된 천상의 교회를 밀접하게 연결시켜주는 전체로서의 교회의 위치와 모습과 권한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확실한 계시가 되는 것이다. 4-5장이 다 천상의 교회를 상징하는데, 그 중에서도 4장은 창조주 하나님을 강조하고, 5장은 구속주 예수 그리스도를 강조한다.
팁> 세대주의적 전천년론자들은 3장과 4장 사이에서 휴거(들림받음)가 일어났기에 이제 천상의 장면이 연출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에서 언급하지 않은 것을 임의대로 해석하는 것은 합당치 않은 것이고, 그러한 성경의 해석은 쉽게 오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는 전혀 비성경적인 상상에 불과한 것이다.
<하늘의 보좌 / 4장>
벽옥(파랑색)같고, 홍보석(홍색)같고, 무지개가 둘렸는데 녹보석(아롱거림) 같다. / 이는 가장 깨끗하고 고귀하며 맑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를 상징하는 말로서 실제의 보석이 아니요, 그 영적인 실상을 물질적인 것에 비할 수 없으나 세상에서 그것과 비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보석이므로 그렇게 묘사하고 설명한 것이다. 이 하나 하나의 의미를 해석하는 크게 의미가 있지 않다. 단지 무지개가 둘렸다는 것은 하나님은 빛이시요, 하나님의 긍휼과 구원의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는 하나님을 상징한다.
보좌로부터 음성과 뇌성이 난다. / 이는 하나님의 권능을 상징한다. 특별히 세상을 다스리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음성과 권세를 의미한다. 이 음성은 나중에 나오겠지만 하나님의 심판이 계속되면서 더욱 강열한 모습으로 점점 강하게 표현되어 나타난다. 이 음성은 창조의 음성이요, 심판의 음성이요, 새 창조의 음성이다. 세상의 심판이 하나님의 보좌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표현은 점점 강해지는 것이다.
4:5 / 보좌에 머물러 있는 번개와 음성과 뇌성
8:5, 11:19, 16:18 / 하늘에서 발생하여 땅으로 쏟아진다.(점점 강해지는 표현을 볼 수 있다.)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 / 바다는 하늘의 바닥으로서 세상을 상징하는데, 수정과 같은 유리바다는 온 세상이 하나님의 목전에 유리처럼 맑게 드러남을 의미한다. - 유리는 상징이 아니다. 같은 이라는 말이 여긴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심판과 하나님의 구원의 뜻이 확실하게 이루어질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15:2에 보면 그 유리바닷가에는 세상의 모든 악한 세력, 짐승과 그 형상을 정복하고 이긴 자들이 서서 거문고를 타며 찬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홍해에 수몰된 애굽의 병사들을 바라보면서 소고를 치며 춤을 추어 찬양했던 모습을 연상케 한다. 바로 하나님의 영광과 승리 앞에 서 있는 그 백성의 찬양을 상징하는 것이다.
보좌 주위에 24장로들 / 금 면류관을 쓰고, 흰 옷을 입고, 24개의 보좌에 각각 앉아있고(4:4) / 이들은 구약의 12지파, 신약의 12사도로 대표지어지는 신구약의 모든 성도의 대표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신구약의 모든 하나님의 교회가 천상에도 동시에 존재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상의 예배는 바로 천상의 예배와 연결되어지고, 지상의 기도는 천상의 기도와 동일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지상에 존재하면서 동시에 하늘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들이 승리를 상징하는 면류관을 쓰고 흰옷을 입고, 보좌에 앉아 있음은 바로 승리한 교회를 의미한다.
혹자는 이 24장로가 천사가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으나, 전체적으로 조명해 볼 때, 이는 불가하다. 왜냐하면...
① 성경 어디에도 천사들이 면류관을 쓰고 보좌에 앉았다는 구절은 없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다.
② 24장로는 대상24:1-19 에서 제사장들을 24반열로 나누어 제사의 직무를 담당케 한 것을 배경으로 한다. 이처럼 이 24장로의 직무는 바로 제사적 직무를 담당하며, 면류관을 쓰고, 보좌에 앉음으로 또한 왕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다. 이는 왕같은 제사장을 삼으사 하나님의 가계를 이어 받는 ‘하나님의 백성’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벧전2:9)
③ 24라는 숫자는 12(구약 12지파)+12(신약 12사도)를 합해서 만들어진 숫자로서 장로들은 성도의 대표이니 신구약을 통틀어 하나님의 백성(교회)을 상징하는 것이다. 계21:12-14에서 12문(족장의 이름)과 12기둥(사도들의 이름)이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 있음은 바로 이것을 보여준다.
④ 5:8에서 24장로들은 거문고와 향로를 들고 있는데, 이는 기도와 중보의 제사장적 직무를 감당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서 금대접에 가득한 향을 들고 있는데, 이는 성도들의 기도라고 했다. 이제는 그리스도의 승리로 인해서 우리의 기도가 천사의 중보의 손을 거칠 필요가 없이 바로 교회에 의해서 하나님께 상달됨을 보여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24장로는 바로 지상의 교회에 상응하는 연출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24장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지상의 모든 교회의 천상적 대응의 모습으로서 연출되어진 것이다. 이 땅에서 교회공동체가 드리는 모든 예배는 24장로가 하늘에서 찬양과 경배를 드리는 그것과 일치하는 것이다.
이는 신약성경도 이것을 동일하게 증거하고 있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2:5-6)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골3:1-4)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히12:22-23)
이 모든 성경이 바로 하늘에서의 교회의 모습이 지상과 동시에 존재함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일곱 영 / 성령을 의미하는 하나님의 전지하신 일곱 영(4:5)이다. 타오르는 일곱 등불로서 예배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고, 또한 5:6에서 일곱 뿔과 일곱 눈으로 묘사되는 일곱 영은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능력과 완전한 진리를 소유하고 계신 분임을 보여주는데, 이는 삼위일체적인 표현으로서 때로는 성부께, 때로는 성령께, 때로는 성자께 동일한 표현이 되어짐을 주의해야 한다.
보좌 가운데와 주위에 네 생물 / 하나님의 피조세계의 총체적인 상징(사람:사람, 소:천사(일군), 사자:땅, 독수리:하늘)으로서(4:8-9) 특별히 모든 피조세계가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따라서 그의 용사가 되어 하나님의 심판을 수행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들의 주위에 눈이 가득한 것은 온 세상 어디에도 하나님의 감찰하시는 눈을 피할 수 없음을 가리킨다. 때로는 땅이 입을 벌리며, 때로는 바다가 요동하며, 때로는 바람이 세상의 모퉁이를 치며, 때로는 영적인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그 심판을 공정하게 수행하는 것이다. -증거가 하나도 없다 제시하는 성경구절도 없다
예) 땅이 입을 벌려 고라와 아간을 삼킴, 애굽의 열 재앙, 홍해를 가르심
특별히 이 네 생물은 완전한 모습으로 새롭게 된 피조세계를 대표하는 인격체로 연출되었다. 그래서 이미 천상에서 타락한 피조세계의 새로운 회복과 창조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일곱 인으로 봉한 책>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 손의 책 / 안팎으로 기록되어 있고 일곱 인으로 봉해져 있다. 아주 자세히 기록이 되어 있고, 권한이 없이는 열 수 없는 책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합당한 권한이 있는 자만이 이 책을 열 수가 있다. 그래서 요한이 이 책을 열만한 사람이 있는가 하늘과 땅과 땅 아래를 찾아도 아무도 없기에 요한은 크게 울고 만다. 이 책이 무엇이관대 이 책을 열 자가 없기에 요한은 울음을 터뜨렸는가?
이 책은 세상의 심판과 교회의 구원의 승리, 그리고 어린양의 신부로서 또 완성된 교회로서의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성취를 이루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이 열린다는 것은 단순하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니요, 이 책의 내용을 성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엡1
한마디로 말해서 이 책의 내용은 성경을 의미한다. 성경의 약속의 성취를 이루기 위해서는 누군가 그 언약을 이루어야 하는데, 천상천하에 아무도 그 자격자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슬피 우는 것이다.
팁> 혹시라도 이 책이 어떤 다른 계시된 책이라고 생각을 해서 다른 책을 찾아야 한다거나, 이미 이 책이 무슨 이단 교파의 경전이라든가 하는 소리는 전혀 성경적인 소리가 아니다. 오직 성경 외에는 다른 계시가 없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책을 여는 연출을 한 것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생명과 구원의 말씀인 성경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이를 이룰 수 있는 합당한 자가 있어야 하는데, 이 세상에 아담의 자손 중 그 어느 누구도 있을 수 없고, 그 분은 오직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뿐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말씀이다. 성경외에 다른 책이 필요없고, 예수외에 다른 자가 필요없음을 확실하게 하라.
인을 떼시는 자격자 예수 그리스도 / 그는 유다 지파의 사자이다. 그가 이기셨다. 사자라는 것은 동물의 왕이다. 다시 말해서 그는 승리자이다. 그런데 6절에는 그는 일찍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시다. 사자와 어린양은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두 짐승인데 예수그리스도가 이 두가지 모습으로 설명되어 진다. 이는 그리스도의 사자같은 승리는 바로 어린양으로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이루어진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피흘려 죽으심을 통해서 모든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속하도록 하고, 저희를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삼아 왕노릇하게 만드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승리는 죽으심으로 승리하신 것이요, 결코 쉽지 않은 싸움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승리로 인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열려지고, 그 말씀 안에서 참된 구원을 얻은 것이다. 기억하라 이 계시록의 연출은 성경의 모든 예언을 이 땅에 이루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임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연출인 것이다. (히브리서 10장 참조)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중보도 한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예수그리스도이시다.” (딤전2:5)
“내가 곧 길, 진리, 생명이나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14:6)
“천하 인간에게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4:12)
히10:7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시니라”
온 우주의 찬양과 경배(5:8-14) / 보좌(권세를 말함), 생물들(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을 말함.), 장로들(신구약의 모든 성도들을 말함), 그리고 둘러선 모든 천만 천사의 무리들이 찬양을 한다. 모든 피조물이 찬양을 하는 것은 바로 앞으로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 새롭게 된 우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찬양의 한 가운데 어린양 그리스도가 계신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이는 오직 하나님께만 돌리는 찬양과 경배이다. 여기서 우리는 비록 죽임을 당하실만큼 연약하셨지만 그 분은 하나님의 본체이심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는 마땅히 찬양할 분이시다.
5:8에서 24장로들은 향이 가득한 금대접을 가졌는데, 그 향은 성도들의 기도이다. 이들의 제사적 행위에는 기도 외에 다른 것이 없다. 제사에는 제물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직 제물은 기도의 향으로 대치되었다. 또한 아무런 중보자 없이 직접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이루어 놓으신 승리가 구속이 영원한 제물이 되사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된 신분을 회복시키셨기에 그리스도외에 더 이상의 어떠한 중보도 제물도 필요치 않은 것이다. 그 분은 모든 것을 다 이루신 것이다. 그래서 교회를 세우시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며 교회가 하나님의 보좌앞에 나아가는데 아무런 거치는 장애도 없이 생명나무의 길을 여신 분이신 것이다.
이미, 그리고 아직 / 자 이제 4-5장에서 보여주는 하늘의 성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3가지의 모습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① 하늘의 성전에는 하나님의 백성 전체로서의 교회가 존재하며,
② 종말적인 심판의 현상들의 근원이 존재하고,
③ 새창조의 실재가 존재하고 있다.
이 3가지는 사실상 시간적으로 미래에 일어날 일이지만 지금 현재 그 완성품이 하늘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가능하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유다지파의 사자이며 동시에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 반드시 시간적 초월성과 공간적 초월성을 이해해야만 한다. 이 초월성을 이해하지 않고는 어떻게 해석하여도 요한계시록의 완전한 해석은 없으며, 잘 못 해석하고 적용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시간적 초월과 공간적 초월을 언제나 생각하라 그러면 요한계시록을 이해하기가 너무나도 쉬울 것이다.
당시에 유행했던 묵시문학의 형태가 바로 그러하다. 무엇인가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그것은 가상적인 이야기의 구성이나, 그것은 실재의 상황에 대한 반영을 담고 있는 것이다. 바로 요한계시록이 이와같은 형태를 띠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주님의 계시는 분명하나 그것은 하나하나 수학적이고 물리적인 형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교회와 악의 세력의 실체, 그리고 현재의 상황과 그것이 동시에 하나님의 보좌 앞에 어떻게 존재하는가, 그리고 앞으로 이루어질 새로운 세상의 모습 등등의 모든 것들을 요한계시록이라는 묵시문학적 표현의 계시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을 쓴 목적이 바로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고 있는 하나님의 교회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승리의 방법을 제시하고 영원한 승리의 약속과 소망을 주기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한계시록은 하나의 물리적인 스토리를 전개하는 것이 아니요, 외적인 세상과 교회의 상황과 그것의 영적인 실상과 그리고 결국에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보여주기 위한 것임을 알 때,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쓸 데 없는 오해나 곡해, 혹은 두려움이나 신비한 어떤 감취어진 일들이 있을 것이라는 공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제6장 / 일곱 심판 시리즈(6-16장)
심판의 최종 목표물은 사람이 아니요, 온 세상을 미혹하고 악을 조장하는 사단인 것이다. 그러므로 일곱 인과 일곱 나팔 시리즈에서는 자연계와 사람에 대한 심판에 집중되었다고 한다면, 대접 심판 시리즈에서는 하나님의 심판이 사단에게 집중되어 주어진다.
간단하게 7심판 시리즈의 구조를 살펴보면...
* 일곱 인들(6:1-8:1, 8:3-5) / 숫자배열(4+1+1+삽입+1)
* 일곱 나팔들(8:2,8:6-11:19) / 숫자배열(4+1+1+삽입+1)
* 악과 충돌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 이야기(12:1-14:20, 15:2-4)
* 일곱 대접들(15:1, 15:5-16:21) / 숫자배열(4+3, 삽입없음)
<표.#4> 3가지 일곱 심판 시리즈 비교
일곱 인 심판 시리즈 | 일곱 나팔 심판 시리즈 | 일곱 대접 심판 시리즈 | |||||||||||||||
첫번째 | (네 생물 중 하나가 ‘오라’고 말함) 흰 말을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함(6:1-2) |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서 땅에 쏟아지매 땅의 삼분의 일과 수목의 삼분의 일과 각종 수목의 삼분의 일과 각종 푸른 풀도 타 버림(8:7) | (대접을 땅에 쏟음) 악하고 독한 헌데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남(16:2) | ||||||||||||||
두번째 | (둘째 생물이 ‘오라’고 말함) 붉음 말이 나와 땅에서 화평을 제하고 서로 죽이게 하고 큰 칼을 받음(6:3-4) | 불 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지워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깨어짐(8:8-9) | (대접을 바다에 쏟음) 바다가 곧 죽은 자의 피같이 되니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음(16:3) | ||||||||||||||
세번째 | (셋째 생물이 ‘오라’고 말함) 그 손에 저울을 가진 검은 말이 나옴: 음성이 말하기를 ‘한 데나리온에 밀 한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고 함(6:5-6) | 횃불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 샘에 떨어져 물들의 삼분의 일이 쓰게 되어 많은 사람이 죽게 됨(8:10-11) | (대접을 강과 물 근원에 쏟음) 강과 물의 근원이 피가 됨(16:4) 물을 차지한 천사의 응답: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저희가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저희의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다고 함(16:5-6) | ||||||||||||||
네번째 | (넷째 생물이 ‘오라’고 말함) 청황색 말이 나옴: 그 탄자의 이름은 사망, 음부가 그 뒤를 따름,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 사람들을 죽임(6:7-8) |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침을 받아 그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니 낮 삼분의 일은 비췸이 없고 밤도 그러하게 됨(8:12) | (대접을 해에 쏟음)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을 태우니 사람들이 크게 태움을 입게 됨(16:8) | ||||||||||||||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 소리로 화, 화, 화가 있으리로다(8:13) |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며 또 회개하여 영광을 주께 돌리지 아니함(16:9) | ||||||||||||||||
다섯번째 |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음. 그들의 신원을 위한 탄식의 기도: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의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렵니까? (6:9-10) | 무저갱의 열쇠로 무저갱을 여니 무저갱에서 황충이 나와서 땅에 있는 전갈의 권세를 가지고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지 않은 사람들을 해하도록 하되 그들을 죽이지는 않고 다섯 달동안 전갈이 쏘는 것 같은 고통이 임하고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죽지 못함(9:1-11): 첫째 화가 지나가고 두개의 화가 이를 것(9:12) | (대접을 짐승의 보좌에 쏟음) 그 나라가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16:10), 아픈 것과 종기로 인해서 하늘의 하나님을 훼방하고 저희 행위를 회개치 아니함(16:11) | ||||||||||||||
여섯번재 | 큰 지진이 나고 해가 총담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가 대풍에 흔들려 떨어지는 것처럼 땅에 떨어질 것이며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기우게 될 것이다.(6:12-17) | 유브라데 강에서 결박된 네 천사가 놓임을 받는데 그들은 그 년 일 시에 이르러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기로 예비한 자들이다. 말들과 그 탄 자들이 있는데 그들의 입에서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와 사람 삼분의 일이 죽임을 당함(9:13-19) | (대접을 강 유브라데에 쏟음)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을 예비함: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는데 저들은 귀신의 영이요 천하 임금들을 모아서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준비함(16:12-14) | ||||||||||||||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 틈에 숨어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낮에서와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르 ㄹ가리우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6:15-17) |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그 손으로 행하는 일을 회개치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적질을 회개치 아니함.(9:20-21) |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다.(16:15) | |||||||||||||||
삽입 | 7:1-17 / 땅에 있는 144,000과 하늘에 있는 셀 수 없는 무리들. | 10:1-11:13 / 작은 책과 두 증인 | 없음. | ||||||||||||||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11:13) | |||||||||||||||||
둘째 화가 지나가고 셋째 화가 속히 이를 것이라(11:14) | |||||||||||||||||
일곱번째 | 하늘이 반시 동안쯤 고요하더니...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들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8:1-4) | 하늘의 큰 음성: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시리로다: 이십사 장로: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노릇 하시도다....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11:15-18) | (대접을 공기에 쏟음)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가로되 ‘이루었도다’ 하심(16:17, 21:6참조)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럭하신 바 되어 그의명렬한 진노� 포도주 잔을 받으매...” (16:19) | ||||||||||||||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단 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8:5) |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11:19) | 이 때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이 있고 또 큰 지진이 일어남: 이같은 큰 지진이 이 세상에 없었다... 또 중수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내리매...(16:18-21) |
<인 심판 시리즈>
인 심판에서는 첫 네개와 나머지 세개가 구별되고 있다. 처음 4개의 인을 떼는 시작이 바로 5:8에서 책의 인을 떼시기에 합당하신 분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했던 네 생물들에 의해서 도입되고 있다. 이 4생물은 우리가 이미 살펴본대로 하나님의 전 피조세계를 대표하는 상징이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이 피조세계와 관련하여 이루어 질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피조세계의 파괴를 초래하고 말 것을 보여준다. 전쟁과 기근을 통해서 이러한 피조세상의 파괴가 부분적으로 이루어질 것을 계시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 4개의 인 심판에 등장하는 네 마리의 말들과 그 기수는 스가랴1:8-11의 홍마, 백마, 자마를 탄 네명의 기수와 스가랴 6:1-8의 네 병거에 대한 기록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네 병거들은 하늘의 성전에서 나와 땅을 살피기 위해서 각기 다른 방향으로 두루 다니도록 부름을 받은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고 행하는 전달자(메신저)들이다. 이들의 파송은 곧 세상의 심판을 의미하고 멸망을 경고하는 것이다.
첫번째 인과 백마 / 빈활과 백마, 그리고 면류관을 가졌고 이기고 또 이기려 함. / 이는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의 출현을 상징하는 것이다. 주님께서도 말세에 가장 먼저 조심할 것을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신 것을 기억한다. 이 첫번째 말과 기수는 나중에 백마를 타고 나오시는 진정한 승리자 충신과 진실이라는 이름의 예수그리스도를 모방한 것이다. 그는 빈 활을 가졌고(쏠 수 있는 화살이 없다), 승리와 순결을 상징하는 백마를 탔다. 그리고 면류관을 쓴것처럼 나름대로 세력을 얻을 것이다. 그래서 마치 자신의 세상이 되는 것과같이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할 것이다. 때로는 정치적 세력을 업고, 때로는 신비한 사단의 힘(하늘에서 불을 내리는 기적을 보이기까지 할 것이다.)을 빌어서 세상을 장악하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영적으로 심히 혼란스럽게 되어 어느것이 참 진리인가를 분간치 못하게 될 것이다.
두번째 인과 붉은 말 / 땅에서 화평을 제하고 전쟁을 일으켜 서로 죽이게 한다. 전쟁이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된 것은 구약시대부터 있던 일이다. 그러므로 이 역시 새로운 것은 아니다. 단지 그 전쟁이 더욱 극심해진다는 것이다. 지금도 전쟁은 지구상에서 끊임 없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오해치 말아야 할 것은 사람들은 가만히 있는데, 하나님이 부러 전쟁을 일으키신다는 의미가 아니요, 사람들이 극심한 전쟁야욕을 불러일으켜 저들이 전쟁을 하게 될 것을 의미한다. 이 때 영적으로는 화평이 사라지고, 어미와 딸이, 시어미와 며느리가 서로 분쟁을 하고 자기 가족을 가족이 죽는데 내어주는 극심한 인간성의 파탄이 올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이미 주님께서 직접 경고하신 내용이다.
세번째 인과 검은 말 / 이는 기근을 의미한다. 심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을 보여준다. 처처에 가뭄과 기근과 흉년이 들어서 먹을 것을 제대로 구할 수 없고, 그것이 보통 때보다 훨씬 더 비쌀 것을 보여준다.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인데 “한 데나리온에 밀 한되요, 보리 석되”라는 것은 대단히 극심한 기근 중에 있음을 보여준다. 전쟁이후에 기근이 오는 것은 마땅한 이치이다. 포도주와 감람유는 해치 말라는 것은 이미 사람들이 곡식을 얻기 위해서 포도원을 갈아 엎어버리고 밀이나 보리를 심었기에 그것들을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실제로 AD 92년 도미티안 황제가 칙령을 내려서 포도원의 반을 철거하고 곡식을 기경하도록 분부한 적이 있다.)
포도주와 감람유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데 꼭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의 진정한 의미는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을 쉬지 말고, 하나님께 드리는 일을 중단하지 말 것을 권고하시는 것으로 받으면 되겠다.
네번째 인과 청황색 말 / 사망과 음부이다. 땅의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서 칼과 흉년과 사망(역병)과 땅의 짐승으로서 사람을 죽이게 된다. 짐승에 의한 죽음이라는 것은 모든 피조물의 질서가 깨어지고 유익을 주어야 할 피조물이 이제는 고통을 주는 존재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재앙은 앞으 모든 것을 담은 재앙이다.
팁>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이 것들이 반드시 시간적인 순서대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흰말의 시대 다음에 붉은 말의 시대 다음에 검은 말, 청황색 말... 이렇게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단지 이 네 말과 기수는 항상 서로 얽히고 �여서 복합적인 모습으로 세상에 존재하게 된다. 단지 그 정도가 점점 더 심해지는 것이다. 시간적인 초월성을 언제나 기억해야 한다.
다섯번째 인과 순교자들의 탄원 / 이러한 4가지 극심한 환란과 고통 중에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증거를 인해서 죽임을 당한 순교자들이 하늘 성전의 제단에 엎드려서 호소를 하게 된다.(6:10) “우리의 피를 신원하여 주소서!”
의인들의 영혼은 이제 제단 아래 있다. 이는 가장 안전한 곳이요, 영광스러운 곳으로서 더 이상 어떤 위협도 미치지 못하는 곳이다.
하나님의 응답은 흰옷을 주며(흰 옷은 승리의 상징이다.) 아직 동무 종들이 더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있으라고 하신다. 여기서 잘 못 생각하면 순교자들의 수가 정해져 있어서 그들의 숫자(희생의 공로나 댓가)로서 하나님의 뜻을 움직이는 조건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 부분을 지나치게 물리적인 것으로 이해를 해서 그렇다. 이 부분은 단순하게 아직도 고난과 핍박의 때가 더 남아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천상의 교회의 모습은 지금 현재 세상에서 영적인 싸움을 싸우며, 고난을 받고 있는 교회의 상응하는 영적인 실체라고 했다. 그러므로 이는 지금 현재도 세상에서 환란과 고난을 받으며 죽음을 무릎쓰고 기도하는 경건한 성도들의 기도와 성실함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러한 자들의 기도를 통해서 그 뜻을 이루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면서도 굴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나가는 순교적인 성도들에게는 이미 승리한 흰 옷이 주어지며, 하나님의 위로와 안전한 보호가 주어지는 것이다.
여섯번째 인과 천재지변 / 이제 6번째 인을 뗄 때에 그 심판의 영역은 땅과 우주로 확대된다. 큰 지진이 나고, 해가 총담같아 검어지며, 달이 피같이 붉어지며, 별들이 무화과나무실과가 대풍에 떨어지듯이 떨어지게 될 것이다. 이는 글자 그대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고, 우주의 질서에 균형이 깨어질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단순하게 영적으로만 해석해도 않될 것이고, 또 100% 액면 그대로 물리적으로 해석한다면 성경은 비과학적인 책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해가 검어진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지구상에서 어떤 생명체도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장면은 자연계의 파괴와 우주의 질서의 변화로 인해서 사람들이 마지막 때가 왔음을 암시적으로 느낄 정도로 혹독한 파괴가 올 것을 의미한다. 이들은 이러한 엄청난 재난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묵시적으로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 심판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그 심판을 모면하기 위해서 산과 바위가 자신들 위에 떨어질 것을 구한다.
팁> 노아의 언약 / 창세기 8:22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이는 마지막 구원이 이루어질 때까지 이 세상의 물리적인 질서를 보존하시겠다는 보존의 언약인데, 이것이 흔들린다는 것은 이제 그 보존의 약속의 기간이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구원의 시기가 이제 종료되어가고 있음을 우주의 재난을 통해서 보여주시는 것이다.
자 이와같은 재난의 상황에서 세상에 권세가 있다고 하는 자들까지도 그 심판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그 진노 앞에서 가리워지기를 구한다. (15-17절)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 틈에 숨어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자 이쯤 되면 궁금한 것이 있다. 6:17의 “누가 능히 서리요?”라는 질문은 그 맹렬한 하나님의 심판 중에는 아무도 설 수 없다는 것인데, 바로 이러한 재난의 날에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 백성은 어떻게 되는가?”하는 것일 것이다.
<삽경>
바로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주고 있는 것이 바로 7:1-17의 삽경부분이다.
인맞은 144,000명의 무리와 흰 옷을 입은 셀 수 없는 무리들이 하나님 앞에 서서 찬양을 드리는 장면이 이어진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삽경만을 언급할 때, 자세하게 다루도록 하겠지만 한마디로 144,000과 셀 수 없는 무리는 동일한 무리이다. 그리고 이는 이 땅에서 고난을 받고 있는, 신구약을 통틀어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숫자를 말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교회를 말하는데, 그 교회는 하나님의 보호가운데 그 앞에 여전히 찬양과 경배를 드리고 있음은 아무도 설 수 없는 환란중이지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교회는 해치 못하도록 사방의 바람을 붙잡으시고, 그 교회가 하나님 앞에 서서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 자리에 있도록 지키신다는 것이다.
큰 환란 가운데서도 지키사 믿음으로 승리한 성도들의 찬양을 본다. 이는 교회의 진정한 승리는 바로 환란과 고난 중에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증거를 지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교회의 승리는 세상적인 물리적인 힘의 승리가 아니요, 믿음의 순교를 통한 승리인 것이다. 이는 어린양이 일찍 죽임을 당했지만 승리자가 되신 것처럼 교회도 역시 죽음으로 사는 권세를 지닌 것임을 알아야 한다. 어떤 초능력자가 나와서 교회를 지키고 원수를 멸하는 것이 아니다. 나를 위해서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주님의 말씀을 언제나 기억해야 한다. 십자가, 그것이 말세를 만난 교회의 유일한 승리의 길인 것이다.
이제 마지막 일곱째 인을 뗄 때에 하늘이 반시동안 하늘이 고요했다. / 왜 하늘이 반시동안 고요했을까? 이 고요함의 의미는 무엇일까? 하늘에서는 끊임없이 천사들과 구속받은 그 백성들의 찬양이 울려퍼지고 하나님의 권능을 상징하는 뇌성과 번개를 발했다. 그런데 이제 그 영광과 권능이 가득한 하늘이 반시동안 고요한 것이다. 이는 아주 엄숙한 시간이다. 온 하늘이 무엇인가 아주 중요하고 귀한 것에 집중하는 시간인 것이다.
이 반시는 제사적 시간을 가리키는데, 예루살렘성전에서 아침 제사르 드릴 때, 향을 사르는 시간이 약 반시간 걸린다고 한다. 이 향은 이미 우리가 살펴본대로 성도들의 기도이다. 다시 말해서 하늘이 반시동안 고요한 것은 이 고난과 환란중에서 교회가 드리는 기도에 집중하기 위해서 그 기도를 들으시기 위해서 고요한 것이다. 물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찬양소리로 인해서 기도를 듣지 못하는 분이 아니시다. 그러나 여기서 이 기도에 침묵하고 집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만큼 고난 중에 있는 성도의 기도에 집중을 하고 계시다는 사실이다.
또한 이 성도들의 기도의 향이 다른 제사의 의식과 함께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하나님의 제단에 드려진다는 것은 이제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제사로 인해서 더 이상의 제사와 제물이 필요치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직접 하나님의 보좌에 그 기도가 상달됨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기도에 다른 어떤 성인이나, 신부나, 교황이나, 목사나, 도를 통한 자의 중보가 필요치 않은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려지는 기도, 특별히 고난 중에서도 믿음을 지키는 교회의 기도는 하나님 앞에 바로 상달됨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기도의 응답으로서 하나님의 심판이 시행됨을 보여준다. 이는 오늘 성도들의 기도를 담은 그 향로에 하나님의 제단 앞에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을 때, 하나님의 심판이 강력하게 이루어지고 일곱천사가 나팔을 불려고 예비하는 장면이 연출됨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고난 중에 드리는 성도의 기도는 하나님의 응답을 이루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속히 이루어지게 하는 동인이 됨을 보여주는 것이다. 성도들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루게 하는 사역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또한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신 주기도의 내용과 동일한 것이다.
<나팔 심판 시리즈>
나팔 심판 시리즈는 인심판 시리즈가 완전히 끝난 후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요, 일곱째 인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나중에 대접심판 시리즈 역시 마찬가지이다. 일곱째 나팔 심판 안에 7대접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3가지 심판의 시리즈가 따로 언급되고 반복되어서 언급되지만 결국은 이 것은 일곱 인 속에 포함되어 있음을 말하는 것이고, 이 심판들은 일회성으로 끝나고 마무리 되는 것이 아니요, 교회가 이 세상에 존재하면서 영적인 싸움을 하는 동안에 계속해서 반복되고 심화되고, 또 반복되되 그리스도의 재림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되는 것임을 의미한다. 이것이 처음에 우리가 살펴본대로 요한계시록은 나선형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일곱인은 로마시대요, 일곱 나팔을 중세시대요, 일곱 대접은 말세지말에 이루어질 일이다.” 이런 식으로 해석하면 끝없는 오류에 빠져 스스로 분별하지 못하고 자신도 알지 못하는 것을 말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심판시리즈는 어느 시대를 지칭하고 어느 인물을 지칭하고 어느 단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단지 마지막 주님의 재림나팔이 불고 완전한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이 이루어질 때까지 교회가 이 세상에서 겪는 종말적인 환란의 모습을 반복해서 보여주면서 그 환란중에도 택하신 교회를 눈동자처럼 지키시고 승리케하시는 하나님의 보호를 선포하는 것이라는 사실에 서 있어야 한다.
바로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목적이 바로 말세에 환란 중에 있는 교회를 위로하고 그 영적인 실상을 보여줌으로서 힘을 내서 영적인 싸움에, 믿음의 싸움에 승리케하려고 기록한 서신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첫번째 나팔 /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서 땅에 쏟아지니 땅의 삼분의 일과 수목의 삼분의 일과 각종 풀도 타버리고 만다.(8:7)
두번째 나팔 /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지워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생명가진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깨어진다.(8:8-9)
세번째 나팔 / 횃불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 샘에 떨어져 물들이 삼분의 일이 쓰게 되어 많은 사람이 죽게 된다.(8:10-11)
네번째 나팔 /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파괴되어 밤과 낮의 삼분의 일이 비췸이 없게 된다.
다섯번째 나팔 / 무저갱에서 황충이 나와서 하나님의 인을 맞지 않은 자를 괴롭게 하되 죽이지는 않는다.(9:1-11) 이는 반대로 이마에 인맞은 하나님의 백성은 황충이 괴롭힐 수 없음을 의미한다.
무저갱은 구약성경에서 깊은, 스올, 음부와 같은 의미의 단어로서 타락한 천사들의 감옥과 같은 성격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무저갱에서 올라온 황충은 바로 사단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는 사단의 하수인들이다. 9:7-11에 묘사된 황충의 모습(말 같은 신체, 사람의 얼굴, 여자의 머리털, 사자의 이, 전갈과 같은 꼬리...)은 그것이 얼마나 가증스럽고 혼란스러운 존재인가를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 황충이 가져다 주는 재난은 마귀적인 악랄한 고통을 가져다 주어 사람들은 죽기를 구하여도 죽지못하는 참으로 극심한 고통 중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황충의 세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결코 하나님의 인맞은 백성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권한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의 성도에게 있어서 악의 권세는 종이 호랑이에 불과한 것이다.
여섯번째 나팔 / 유브라데 강가에 결박된 네 천사가 놓임을 받는데, 이들은 그 년, 월, 일, 시에 이르러 사람들 1/3을 죽이기로 작정된 자들이다. 2만만은 2억의 군사들이다. 이들은 전쟁을 위해서 예비된 자들이다. 이 장면을 가리켜서 흔히 마지막 지상의 전쟁 아마겟돈 전쟁이라고 부르나 그것은 그저 상상일 뿐이다. 사실은 이는 전쟁이 더욱 극심해져서 더 많은 사람들이 죽을 것을 보여주는 묵시적인 하나님의 연출인 것이다.
당시에 네로황제는 세력다툼에서 �겨났다. 그러나 로마사람들은 언제나 네로가 죽지 않고 살아서 당시에 유일하게 활을 쏘면서 흰말을 타고 전쟁에 용맹했던 수많은 파르티아 인들을 데리고 로마를 다시 정복하여 공포의 정치를 할 것이라는 두려움의 소문이 나돌았다. 그래서 당시의 사회에서는 언제든지 다시 전쟁이 시작될 것이고, 그 전쟁은 많은 사상자를 낼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바로 이러한 두려움의 정서를 이용해서 큰 군대에 관한 계시를 하신 것이다. -야 이건 정말 더 넌센스다. 이런 것을 교회에서 사용할 수 없다.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요, 계속해서 이 땅에 전쟁이 있을 것을 보여주며, 그로 인해서 1/3에 해당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재앙에 처하게 될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전쟁과 난리는 점점 더 큰 규모로 계속될 것을 보여준다.
이제 영적으로 의미를 부여하면, 이들이 타고 오는 말은 뱀같은 꼬리에 또 머리가 있어서 그 머리로 사람들을 해한다. 뱀은 ‘옛뱀’, ‘용’이라고도 하는 마귀적 형상 중에 하나이다. 재미 있는 것은 이들이 해하는 것은 역시 자기에게 속하여 자기를 섬기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사단은 언제나 자신을 섬기고 따르며, 자신에게 속한 자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요, 고통스럽게 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악인의 자비는 잔인인것처럼 사단은 그 모든 분노와 악을 자신을 섬기를 자를 향해서 쏟아 붓는다.
이것이 하나님과 정반대의 본질을 가지고 있는 사단의 본성인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에게 속한 자를 사랑하시고, 보호하시며, 그를 위해서 죽음도 마다하지 않고 지키시나, 사단은 그 정반대인 것이다.
<일곱나팔 시리즈에서 얻는 교훈>
더욱 강력해지고 광범위해진 심판 / 인 심판의 4번째에 가서 땅 사분의 일(1/4)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 죽임을 당하는데 반해서 나팔 심판은 일관성 있게 삼분의 일(1/3)이 그 심판의 결과에 영향을 받는다. 이는 숫자상으로 1/4보다 1/3은 더욱 강화되어진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1/3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나타낸다. 인간의 죄악으로 인해서 마땅히 남김없이 심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2/3를 남겨 놓으셨다는 것은 심판중에도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있으며, 그 긍휼하심의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 죄악을 깨닫고 회개하여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회개치 않는 사람들 / 4째 나팔이 지난 후에 3개의 화가 있을 것을 예고했고, 5째 나팔이 지났을 때, 2개의 화가 남았다고 했다. 그리고 여섯번째 나팔이 불려진 후에 마지막 화가 남았다고 그 심판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선포하지만 그것이 무엇인가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큰 심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세가지를 여전히 계속하고 있다.
① 금,은,동,목석으로 만든 우상을 숭배하고,
②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적질을 계속해서 행하며,
③ 그 모든 것을 회개치 않는다.
자신들을 고통스럽게 한 그 주체인 마귀를 섬기는 일을 계속하며, 그들의 쾌락을 따라서 사는 일을 중단하지 않고, 참된 구원과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는다. 이는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강퍅한가를 보여주는 부분이고, 이러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정당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삽경>
여섯번째 나팔 심판이 끝나고 일곱번째 나팔의 심판이 이어지기 전에 다시 한번 삽경이 등장한다. 이는 10:1-11:13에 기록된 작은 책과 두 증인에 관한 것이다. 이 역시 나중에 삽경을 다룰 때 자세히 할 것이므로 몇가지 간단한 언급만을 하도록 하자.
먼저 본장에 등장하는 천사의 손에 들려 있는 작은 책은 먼저 4-5장의 인봉된 책과 동일한 성경책임을 기억해야 한다. 단지 하나님의 말세에 섭리를-25페이지 1줄에서 도 말세하는데 스스로 모순에 빠져있다. 말세의 용어가 히브리서처럼 쓰고 있다고 변명할지 모르나 하나의 중심주제로 다루기 위해서 아팎으로 기록한 책이다. 작은 책이다. 하고 묘사한 것이다.
요한은 이 책을 먹고 온 세계에 나가서 예언의 사역을 감당해야 할 것을 명받았다. 이는 에스겔이 겔3:1-3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선지적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 나아갈 때, 경험한 것과 동일한 맥락이다. 다시 말해서 교회의 선지자적 사명을 감당할 것을 명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삽경이 있는 다음에 기록된 11:13이다.
“그 시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9:20-21에서는 이들이 극심한 황충과 마병대의 살륙가운데서도 회개치 않았으나 11:13에 와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이 말은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을 의지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을까?
바로 10장의 삽경, 작은 책을 먹고 예언하는 두 증인의 모습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이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했고,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동일한 환란중에 복음을 듣기 전에는 회개치 않았으나, 복음을 들은 이후에는 회개하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 것이다.
교회는 선지적 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언제나 환란과 핍박중에 있다고 할찌라도 결코 복음을 증거하는 선교적 사명, 전도적 사명,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사역을 잊어서는 않된다. 오직 이 강퍅한 세상을 변화시키는 길은 복음 증거의 길뿐이다. 다른 아무 길도 없다. 이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하나님이 세상을 한번 혼내주시면 되는 것이 아니다. 오직 교회의 복음사역에 의해서 복음을 듣는 길 뿐이다. 이들로 하여금 두렵고 떨리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고난과 아픔 속에서 죽을 각오를 가지고 순교자의 신앙의 뒤를 따라서 복음증거의 일을 하는 것이다. 악한 세상에 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복음전도요, 이들의 마음을 감동하여 하나님의 풍으로 안는 길이 바로 전도인 것이다. 말세에 이 악한 세상을 변화시키고 새롭게 하는 유일한 길이 바로 어리석어 보이는 전도의 방법인 것이다.
교회의 제사장적 사역인 기도와 선지적 사명인 복음 전도가 악한 세상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영광을 돌리도록 하는 것이다.
일곱번 째 나팔 / 이제 삽입부분이 끝나고 일곱번째 나팔이 울려퍼질 때, 하늘에서 큰 음성으로 선포하는 놀라운 소리가 들려온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하시리로다.(11:15)” 이는 삽입의 부분에서 죽음으로 복음을 증거한 두 증인으로 묵시화된 교회의 목숨을 건 복음 전도의 사역의 결과이다. 그리고 그 찬양은 지상교회의 천상적 대응인 24장로의 찬양으로 이어진다.
그 찬양에 보면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라는 내용이 나온다. 이는 역사를 주관하시고 지금도 그 교회를 붙드시고 지키시며,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시간적 초월성을 보여준다. 그래서 아직 심판이 다 종료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완성될 심판을 내다보고 열방을 심판하시고 복종케하시는 하나님의 통치를 찬양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19절에는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고 함으로 하나님의 언약이 그대로 성취되며, 그 심판은 하나님의 보좌에서 시작됨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팁> 이 부분을 무슨 하늘의 성전이 조금 열렸으므로 이를 어떤 신비적인 현상으로 생각해서는 않된다. 하나님의 성전은 이미 4-5장에서 보좌까지도 열려있는 상태요, 하나님의 언약의 신실함은 여전히 계속 그 교회를 지키심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심판은 보좌의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행하시는 것임을 다시 확인하고 보여주는 것이다.
<대접심판 시리즈 / 15:1-16:21>
성경은 이 대접 심판 시리즈를 마지막 재앙이라고 말한다. 이 심판으로서 하나님의 심판이 충분히 시행될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이 대접의 심판은 언제가 될 것이냐, 세계정세가 어떻게 되는 물리적인 상황을 말하느냐를 생각해서는 않된다. 논리상의 순서에 마지막 재앙인 것이다. 첫번째 인재앙, 두번째 나팔재앙, 세번째 대접재앙으로서 같은 종류의 재앙을 3번 반복하고 그 심판의 내용이 더 심화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은 반복적이 될 것과 그것이 종말의 때가 가까울수록 더욱 심화될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성경은 이 대접 심판 시리즈를 마지막 재앙이라고 말한다.
예) 불법이 성하므로 사랑이 식어지리라.(마24:12) / 이는 종말의 현상에 대한 주님의 지적이다. 여기서도 분명한 것은 이것은 단회적인 사건이 아니고 지속적으로 종말에 되어지는 현상을 말한다는 것이다. 단지 재림이 가까울수록 더욱 더 불법이 성하고 더욱 더 사랑이 식어지게 될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불법이 성한다는 것이 종말적인 현상이나 어떤 사건을 가리키지 않는다.
예)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마24:15-16) / 이 역시 어떤 한 두 사건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몇몇 사건이 있었지만 그러한 사건들을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종말이 가까워올수록 그러한 일들은 더욱 심화되고 넓어지고 자주 발생할 것이다.-이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사건들도 그와같이 이해해야만 한다. 대접심판은 마지막 심판이기에 이 심판의 때가 서기 2100년쯤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않되고, 대접 심판의 내용을 물리적이고 역사적인 어떤 사건에서 찾으려하면 않된다. 이는 마지막 때의 영적인 상황을 그렇게 묵시문학적인 표현기법으로 계시하신 것이다. 요는 준비하고 깨어 있는 자가 되라는 것이다.
불 섞인 유리바다 / 이 심판이 시행되는 배경을 본문은 불이 섞인 유리바닷가에 서서 짐승의 우상과 그 수를 이긴 성도들이 거문고를 들고 서서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불러 경배와 찬양을 드린다. 모세의 노래는 바로 홍해를 건넌 후에 하나님의 심판과 승리로 인해서 그 피로 물든 홍해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권능을 노래했던 그 성경의 사건에 기초한다.(출15:1-21)
그리고 그것은 곧 어린양의 노래가 된다. 왜냐하면 구약의 모든 사건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교회는 환란과 핍박과 극심한 고난 중에서도 어린양으로 인해서 승리했고, 이제 그 바다를 건너서 건너편 언덕인 하나님의 보좌에 이른 것이다. 이제 아무도 그들을 해할 자가 없고, 위협할 자도 없다. 세상과의 완전한 단절과 완전한 안전과 완전한 승리를 노래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찬양은 열국을 구속할 것을 바라보는 찬양으로 이어진다. 이것이 바로 승리한 교회의 노래가 되는 것은 교회는 만물 위에 만물을 충만케하시는 자의 충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노래의 내용은 하나님의 의와 권능과 만국의 경배를 명하는 것이 된다.(15:3-4)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가로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이어지는 환상은 대접심판의 특성을 보여준다. (15:5-8)
① 하늘성전에서 일곱대접 심판이 시작됨 / 승리한 성도들의 찬양과 더불어서 하늘 성전이 열리고 일곱대접의 재앙을 가진 천사가 하늘의 증거장막의 성전에서 나온다. (15:5) 이는 대접 심판이 하늘의 성전에서부터 발원하여 진행된다는 것을 좀 더 명확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② 그들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는 금띠를 띠고 있었다.(15:6) / 이들의 의복에는 이들이 하늘 군대로서의 장엄함과 고귀함을 보여주며, 금띠는 이들이 왕이신 하나님의 신하요, 그 왕의 분부를 받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하나님의 피조세계를 상징하는 네 생물중의 하나가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 대접 일곱을 일곱 천사에게 전달한다.(15:7) 이는 이 대접 심판이미치는 범위가 바로 전 피조세계에 미칠 것을 예시하여 주는 것이다.
③ 그리고 이 때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차서 아무도 성전에 들어갈 수 없다.(15:8) /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여서 아무도 성전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이 때는 성령이 다 떠나가셔서 믿을래야 믿을 수가 없다는 식으로 해석해서는 않된다. 오히려 모세가 성막을 짓고 낙성하였을 때, 그 영광이 성막에 가득해서 모세는 그 성막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출40:34-35) 또한 솔로몬이 성전을 짓고 봉헌하여 기도를 마칠 때,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제물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므로 제사장이 능히 들어가서 섬기지 못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대하7:1-3)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여 하나님께서 친히 강림하셨는데, 인간 제사장이 그 앞에서 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요, 들어갈 필요가 없었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직접 강림하셔서 그 백성과 말씀하시는데, 어떤 중보적 제사장이 필요하겠는가? 그러므로 이는 하나님이 직접 주장하시고 그 역사를 이루어가셔서 그 뜻을 강력하게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적극적인 통치를 상징하는 것이지 결코 환란이 극심하여서 아무도 예수를 믿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해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해석이다. 심판의 강도가 극한 만큼 그 구원의 사역 역시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행하시는 것이다.
④ 일곱천사가 받은 일곱 금대접에는 하나님의 진노로 가득 차 있었다.(15:7) / 원래 이 대접에는 성도들의 기도가 가득했었다. 그 기도가 하나님의 제단에 부어지고, 이제는 진노가 담겨서 세상에 부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증거를 지키기 위해서 고난을 받는 성도들이 간절히 기도하는 그 기도는 그들을 핍박하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은 결코 고난 받는 성도들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 모든 것을 기억하시고 공의로 값아주시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그들의 구원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기도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그들의 머리 위에 심판의 숯불을 쌓아 놓는 것이 되는 것이다. (롬12:20참조)
교회는 언제나 영적 전투에 노출되어 있고, 맹열한 사단의 공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교회의 승리는 어린양의 승리에 기초하고 그 방법을 좇는 것이다. 오직 순교적인 신앙으로만이 승리에 도달할 수 있기에 교회의 고난과 기도는 바로 하나님의 신원하심과 심판으로 이어지는 것이 합당한 것이다.
첫번째 대접 / 을 땅에 쏟았을 때, 짐승의 표를 받고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악하고 독한 헌데가 나기 시작한다.(16:2) 이는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맞은 다시 말해서 경건하게 믿음을 지키며 사는 성도에게는 일어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두번째 대접 / 을 바다에 쏟았는데, 바다가 죽은 자의 피같이 되어서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게 된다.(16:3)
세번째 대접 / 은 강과 물의 근원(샘)에 쏟아진다. 그리고 강과 물의 근원이 피가 되고 만다. (16:4) 그리고 물을 차지한 천사의 음성이 들린다. (16:5-6)
“내가 들으니 물을 차지한 천사가 가로되 전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저희가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저희로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니이다 하더라”
팁> 여기서 ‘장차 오실 이’라는 문구가 삭제 된 것은 지금 이시간에 역사하사 그 모든 것을 이루시는 시점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팁> ‘물을 차지한 천사’는 물을 다스리는 물들의 천사를 의미한다. 계시록에는 바람을 통제하는 천사(7:1), 불을 통제하는 천사(14:18), 그리고 본문에 물을 통제하는 천사(16:5)가 나오는데, 여기서 한가지 주의할 것이 있다. 모든 만물에는 각기 다스리는 천사가 있다는 생각으로 확대해석해서는 않된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그것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심에 그의 사역자요, 수종자인 천사들에게 맡겨진 어떤 영역들이 각기 있겠지만 성경은 그것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감에 있어서 전혀 필요치 않은 지식이기 때문이다. 단지 오늘 본문에 그것을 맡은 천사를 언급하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과 나라를 이루시는 사역에 직접적으로 연관지어져 있기 때문이다.
네번째 대접 / 해를 향하여 부어진다. 그러자 해가 권세를 받아서 불로 사람들을 태우게 된다. (16:8) 그러자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고 회개치 아니한다.(16:9) 지금까지는 해가 기능을 잃고 총담같이 검어짐을 언급했는데, 이제는 그 해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가 되어서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태우는 일을 감당한다. 모든 피조물은 네생물처럼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잘 훈련된 군대같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신속히 복종하는 것이다.
다섯번째 대접 / 이제 진노의 대접이 짐승의 권좌에 직접 쏟아진다. 이때 그 나라가 어두워지고 사람들은 아파서 자신의 혀를 깨문다.(16:10) 네번째와 달리 다섯번째 대접은 그 짐승의 권좌에 직접 쏟아진다. 지금까지는 피조물을 향한 간접적인 심판이었다면 이번 심판은 직접 짐승을 심판하고 고통에 던져 넣는 것이다. 그러므로 짐승은 또한 자기의 추종자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한다. 그런데 이 아픈 것과 종기를 인해서도 사람들은 하나님을 훼방하고 욕되게 하며, 자신의 행위를 회개치 않는다.
팁> 4번째와 5번째 재앙에 사람들이 회개치 않음을 언급한 이유는 ① 이 심판의 목적은 사람들로 회개케하기 위한 것임을 보여주며, ② 사람들은 그러한 고통 중에서도 회개치 않고 하나님을 훼방한 것은 자신들의 악함을 선명하게 드러내어 하나님의 심판이 의로우시고 정당한 것을 입증해주는 것이 된다.
여섯번째 대접 / 큰 간 유브라데에 쏟으니 강물이 말라서 동방으로부터 왕이 오는 길이 예비되었다. 그리고 개구리 같은 더러운 세 영이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와서 왕들을 충동하여 전쟁을 위해서 아마겟돈이라는 곳으로 군대를 모으게 한다. 이는 부분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던 세상의 모든 세력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을 대적할 것을 보여주는 것이요, 이들이 그렇게 하여 한꺼번에 패망할 것을 또한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여섯번째 천사의 나팔 소리와 함께 2만만(2억)의 군대가 놓여 세상의 사람 1/3을 죽이게 되는 재앙과 연결되어서 그것이 더욱 더 심화될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들은 이렇게 자기에게 미혹된 자들을 죽이고, 이제는 세상을 장악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군대를 모으는 것이다. 이들의 최종적인 목표는 바로 자신들의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팁> 아마겟돈 / (Armageddon)「므깃도의 구릉」계시 문학에서 악의 세력의 최종적 패배 장소를 가리켜 사용한 상징적 명칭이다(계 16:16). 므깃도의 평원과 그 부근의 구릉은 옛 전장으로써 유명한데(삿 4장, 5장, 7장, 삼상 31:8, 왕하 23:29, 대하 35:22) 거기서부터 발상(發想)하여 하나님과 악마의 종국적 전투와 하나님의 궁극적 승리를 묘사하는 상징으로 한 것이다.
이제 이러한 중에서 하나님은 요한을 통해서 교회에 강력한 경고를 하신다.(16:15)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자기 옷은 바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주신 의의 세마포요, 믿음의 옷을 말한다. 아무리 세상이 극심한 환란이 있더라도 그 믿음의 옷을 지키는 자가 진정으로 복이 있는 자라고 강력하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 경고는 3:17에서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시는 경고와 일맥상통한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라오디게아교회는 그들 자신의 게으름과 세상에 속한 교만과 불경건으로 인해서 영적인 전투에 패배할 위험에 처해있는 것이다. 이같은 위기의 상황에서 패배하는 교회(성도개인을 포함)가 없어야 할 것이기에 다시 이러한 강력한 권계가 주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사단이 준비하는 전쟁을 총과 칼로서 싸우는 물리적인 전쟁으로 이해해서는 않된다. 그렇게 해석을 하기 때문에 이것이 세계3차대전이니 4차대전이니 하는 식의 적용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한 말을 해서도 않되고, 그런 말에 현혹되어서도 않된다.
여기서의 전쟁은 이는 종말의 시점이 가까울수록 영적인 전쟁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어서 죽기 아니면 살기의 대 영적전쟁으로 심화될 것을 보여주는 말씀이다. 사단은 점점 자기의 때가 가까운 줄을 알아서 세상의 모든 권력과 유혹을 동원해서 성도와 교회를 넘어뜨리고 포로를 삼으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전쟁을 위한 성도의 준비는 깨어 성령 안에서 무시로 기도하며, 그 말씀을 따라 살고 말씀을 따라 죽되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증거를 지켜 순종하는 길을 걷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보면 때로는 순교의 고난이 주어질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굽히지 않고 믿음의 옷을 지킬 때, 육신은 고난을 당한다고 할찌라도 영적으로는 큰 승리의 개가를 올리는 것이다.
이제 이 영적 대전쟁의 결과가 바로 7번째 대접에서 이루어진다.
일곱번째 대접 / 이 대접을 쏟았을 때, 성전에서 소리가 나는데 그것은 ‘되었다’는 음성이었다. 이 되었다하는 음성은 헬라말로 ‘게고넨(γεγονεν)’이라는 단어인데, 이는 ‘다 이루었다’는 의미이다.(21:6 참조) 그 목적이 이룬 것을 말한다. 심판의 목적이 그 일이 성취되었음을 의미한다. 이제 이 일곱번째 대접으로 인해서 모든 악이 제거되고 하나님의 교회가 구원을 받으며, 새하늘과 새땅이 이루어질 것을 의미한다.
일곱번째 대접은 ‘공중’에 부어진다. 구체적인 대상이 없이 공중에 부었다는 것은 에베소서2:2에 기록된대로, ‘사단이 장악하고 있는 모든 영역’을 의미한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이미 다섯번째 대접에서 ‘짐승의 권좌’에 쏟아서 사단으로 하여금 치명적인 패배를 안겨주었고, 이제 사단의 영역인 ‘공중’에 쏟으므로 그가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을 완전히 제거한 것이다. 이제 악한 사단의 세력이 제거되었으므로 ‘되었다’고 하신 것이다. 이는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신 것을 근거로 한다. 이미 주님은 십자가에서 사단의 세력을 완전히 결박하시고 멸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어린양은 일찍 죽임을 당하심으로 승리하신 것이다.
그리고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이 있고 큰 지진이 일어났다.(16:18) 그리고 이 지진은 인류역사사 가장 큰 지진이 된다. 여기까지는 지금까지의 인과 나팔심판 시리즈와 같은 내용이나 여기에 한가지 중요한 사건이 전개된다. 그것은 바벨론의 멸망이다. 가장 큰 지진이라는 것은 세상의 나라, 땅에 속한 나라의 멸망을 암시해주는 것이다. (16:19-21절)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데없더라. 또 중수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사람들이 그 박재로 인하여 하나님을 훼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러라”
바벨론은 성도를 미혹하고 핍박하던 사단의 도구요, 사단의 영역인 세상나라를 의미한다. 이제 이 나라가 무너지되 3갈래로 갈라지면서 무너졌다. 이는 다시 회복할 수 없는 완전한 패망을 의미한다.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서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 / 여기서 기억하신 바 되었다는 것은 그들의 악, 특별히 교회를 박해하고 성도들을 박해한 모든 것들을 기억하신 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고난 중에서도 순교적인 신앙으로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 앞에 기도한 성도들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상달된 것을 알고 있다. 이 기도속에는 바로 큰 성 바벨론이 왜 멸망해야 하는가를 충분히 담고 있고, 하나님은 그것들을 기억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기억하심은 성도에게는 위로와 구원이 되지만, 세상 악인들에게는 심판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바벨론이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는다. / 지금까지 바벨론은 사람들에게 음행의 포도주를 먹이고 죄악의 포도주를 먹이었으며, 성도들의 피에 취해 있었다.(14:8, 14:10) 그러므로 이제는 하나님께서 그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바벨론에 먹인 것이다. 이는 완전한 공의의 심판을 의미한다. 그 진노의 포도주잔을 받자, 큰 섬도 큰 산악도 간데 없이 사라졌다. 이는 이제 세상의 기초를 흔들어 다시는 바벨론이 세움을 입지 못하도록 하신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대접의 심판은 앞의 인과 나팔심판보다 최종적이고 완료적인 심판을 보여주고 있다.
팁> 아직도 대접심판 특별히 7번째 대접이 부어질 때가 언제인가를 이 세상 시간에서 찾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지금까지 공부를 잘 못한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이 반복적이며 점강적으로 점점 강해지고 광범위해지되 결국에는 완전한 심판으로 결말지어질 것을 보여주는 나선형구조의 심판의 묵시인 것이다.
이 모든 재앙과 큰 우박의 재앙으로 이제 남은 사람들이 더욱 하나님을 훼방한다. / 이는 앞으로 최종적인 심판의 과정이 남아 있음을 묵시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아마도 백보좌 대심판으로서 모든 의인과 악인이 부활하여 그 보좌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될 그 심판이 남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3종류의 심판 시리즈 비교분석>
이제 3가지 심판 시리즈를 함께 분석하고 공통점과 차이점을 간단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기억할 것은 3개의 심판 시리즈는 구약, 출애굽기의 배경과 모델을 따르고 있는데, 그것은 애굽의 10재앙시리즈이다. 그것들이 더욱 광범위해지고 심화되고 추가된 재앙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표.#5> 애굽의 재앙과 나팔과 대접 심판 비교
애굽의 재앙들 | 나팔심판 시리즈 | 대접심판 시리즈 |
일곱 번째 재앙 / 출9:13-25 | 첫 번째(8:6-7) / 우박, 불, 피 | 일곱 번째(16:17-21) / 뇌성, 우박 |
첫 번째 / 출7:14-25 | 두 번째(8:8-9) / 바다가 피로 변함. | 두 번째(16:3) / 바다가 피로 변함. |
첫 번째 / 출7:14-25 | 세 번째(8:10-11) / 쓴 물. | 세 번째(16:4-7) / 물의 근원이 피가 됨. |
아홉 번째 / 출10:21-23 | 네 번째(8:12) / 어둠. | 다섯 번째(16:10-11) / 어두움. |
여덟 번째 / 출10:12-20 여섯 번째 / 출9:8-12(독종) 두 번째 / 출8:2-6 | 다섯 번째(9:1-11) / 황충. | 첫 번째(16:2) / 독한 헌데. 여섯 번째(16:12-16) / 개구리들. |
여섯 번째(9:13-21) / 유브라데스강. | 여섯 번째(16:12-16) / 유브라데스 | |
일곱 번째(11:15-19) / 하늘에서의 예배 | 네 번째(16:8-9) / 태우는 불. |
<표.#6> 3가지 심판 시리즈 비교
인 심판 시리즈 | 나팔 심판 시리즈 | 대접 심판 시리즈 | |
1 | 네 생물 중 하나 / 흰 말 | 피 섞인 우박이 땅에 떨어짐 | 대접을 땅에 쏟음 |
2 | 둘째 생물 / 붉은 말 | 불 붙는 큰 산이 바다에 던지워짐 | 대접을 바다에 쏟음 |
3 | 셋째 생물 / 검은 말 | 큰 별이 강과 물 샘에 떨어짐 | 대접을 강과 물 근원에 쏟음 |
4 | 넷째 생물 / 청황색 말 | 해, 달, 별 각각 1/3이 침을 받아 어두워짐 | 대접을 해에 쏟음 |
5 | 순교자들의 기도 | 황충이 무저갱에서 나옴 | 대접을 짐승의 권좌에 쏟음 |
6 | 큰 지진 |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 |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음 |
삽경 | 삽경 | 없음 | |
7 | 하늘에서의 침묵 / 성도들의 기도가 하늘에 상달 | 하늘에서의 찬양 | 대접을 공기에 쏟음 |
위의 도표에서 보듯이 심판의 모습은 아주 일정한 원칙을 가지고 있다.
인 심판 시리즈에서는 하나님의 피조세계 전체를 대표하는 4생물에 의해서 심판이 이루어지고, 나팔 심판에서는 처음 4개가 땅, 바다, 강과 샘, 하늘(해)로서 자연계 전체를 대표하고 있다. 또한 대접 심판에서도 동일하게 처음 4개가 그러한 영역에 임하게 된다. 넷이라는 숫자는 성경에서 세상전체를 의미하는 숫자이다. 특별히 요한계시록에서는 자연계 전체를 상징하는 숫자로 사용되었다.(4:6-8, 7:1, 9:13-14, 20:8 참조)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전 우주계에 걸쳐서 완벽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나머지 3개의 심판은 앞의 네 개와는 좀 다른 양상으로 자유롭게 시행된다. 7이라는 숫자는 하나님의 완전을 상징하는 숫자이고, 넷은 전우주를 의미하는 숫자이다. 이것이 함께 어울러져서 하나님의 심판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은 완전하며, 그 심판의 대상으로부터 제외될 수 있는 가능성은 전혀 없음을 의미한다. 또한 이 하나님의 심판에 있어서 사단은 무력할 뿐 아무런 효과적인 저항을 하지 못함을 보여준다. 이는 하나님의 강권적인 주권에 의해서 이 세상이 다스려지고 특별히 하나님의 교회가 보호를 받으며, 결국에는 승리케 될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음 구절은 바로 이러한 사실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14:7)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요한계시록의 주제는 하나님의 교회이고, 이 3가지 심판 시리즈는 요한계시록의 몸통을 구성하고 있는데, 교회가 처한 영적인 싸움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교회를 구원하시고 세상을 심판하시는가를 보여준다. 이 과정을 3번이나 반복해서 강조해서 기록한 것은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단회적인 사건이 아니요,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계속되어질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심판의 결과로 바벨론의 멸망(17:1-19:10)과 새예루살렘의 찬란한 성취(21:9-22:5)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멘!
제7장 / 삽경들
<144,000과 셀 수 없는 무리들>
계시록 7장은 6:17에서 제기한 ‘누가 능히 서리요’라는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 출발한다. 7장은 1-8절과 9-17절, 두 부분으로 나뉜다. 1-8절에서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고 있는 네 천사에게 다른 천사가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올라와서 말하기를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고 한다.(7:3) 이에 인 맞은 자의 숫자를 요한이 들었는데, 그들의 숫자는 바로 144,000명이었다.
이는 민수기 1:19-46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것보다 전혀 높은 의미로 승화된 것이다. 민수기의 계수한 숫자는 603,550명이다. 그리고 각 지파마다 숫자가 다르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인맞은 자의 숫자는 144,000명이고, 각 지파마다 숫자가 동일(12,000명)하다. 그리고 민수기는 육체의 장자인 르우벤지파부터 시작했으나, 계시록은 영적인 메시야의 혈통인 유다지파로부터 시작했다. 이는 이것이 단순히 물리적인 숫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는 영적인 숫자로서 하나님이 묵시문학의 형태로 계시하신 것이다.
144,000은 12*12*1,000으로 분해할 수 있다. 이는 계시록에서 계속해서 언급되는 숫자이므로 타당하다. 예로서 열두기둥과 열두사도 열두문과 열두지파 24(12+12)장로 등등을 들 수 있다. 그러므로 이는 구약의 12지파와 신약의 12사도의 믿음의 기초를 따르는 각각 1,000명(무한하고 충만한 숫자)의 무리들이다. 그러므로 이는 신구약을 막론하고 이 땅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완전하고 충만한 숫자를 의미한다.
또한 이 144,000은 인친다는 의미에서 구약의 겔9:4-6을 그 배경으로 한다.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하시고, 나의 듣는데 또 그 남은 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그 뒤를 좇아 성읍 중에 순행하며 아껴 보지도 말며 긍휼을 베풀지도 말고 쳐서,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
이스라엘의 죄로 인해서 우는 자들의 이마에 인침의 표가 주어지고 이들은 환란(심판)에서 열외가 된다. 이는 육체적인 것보다는 하나님의 영적인 심판으로부터 보호받고, 정죄당하지 않으며, 최후의 승리를 보장해주신다는 것이다. 이들은 환란 중에서 고통을 당할 수도 있지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의지하고 승리할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증거를 지키기 위해서 순교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12:11) 그리고 이것은 동시에 사단의 세력을 이기는 것이 되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신부로 정결케 되며 단장하는 것이 된다.(19:7-8, 21:2)
또한 민수기 1장의 계수는 그 백성의 군대에 나갈 숫자를 계수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144,000은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로서 전투적인 교회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제 7:9-17은 이 교회의 존재를 전혀 다른 각도에서 조명하고 있다. 이 교회가 지상에서 전투적인 교회로 사단의 세력과 싸움을 하고 있지만 동시에 하늘에 속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으로 묘사한다. 9절에서 요한은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흰 옷을 입은 큰 무리’에 대해서 기록한다. 그것은 더 이상 채워질 수 없는 ‘충만성’과 조금도 부족하지 않은 ‘완전성’을 묘사한 것이다. 그러므로 ‘144,000의 인맞은 자들’과 ‘흰 옷을 입은 셀 수 없는 무리들’은 같은 존재이다. 전자는 지상에서 영적인 군사로서 전투하고 있는 교회를 의미하고 후자는 동시에 하늘에 속해서 승리한 하나님의 교회를 보여준다. 이 둘은 하나요, 그리스도의 교회는 바로 이러한 이중적인 존재인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들은 ‘흰 옷을 입고 손에는 종려가지를 꺽어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 있다.’ 흰 옷은 6:11에서 순교자들에게 주어진 ‘흰 두루마기 옷’을 연상케 하며, 이는 순교적 정신을 가지고 있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흰 옷’은 하늘에서의 승리자들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 (2:4-5,18, 6:11, 7:9, 19:8, 14 참조) 종려가지는 승리를 상징한다. 이를 들고 서서 찬양을 부르는 것은 바로 전쟁 후에 승리로 인해서 기뻐하며 노래하는 것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교회의 승리는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시며 동시에 유다지파의 사자이신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서 순교적인 신앙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이며, 그 순교는 동시에 완전한 승리를 의미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교회의 승리는 믿음과 그리스도의 증거를 지키기 위해서 순교를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7:13-14은 바로 이러한 부분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여기서 큰 환란은 3년 반의 대환란이라든지 하는 특정한 어떤 환란이 될 수 없다. 교회가 지상에 존재하는 동안에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증거를 지키기 위해서 사단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와 음녀의 세력으로부터 계속적으로 반복되고 지속되어지는 전체로서의 환란을 의미한다. 이 환란은 결코 작지 않다. 그것은 매우 큰 환란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는 만유보다 크신 하나님의 보호중에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어린 양의 피로서 씻어 희게 하였다.’는 대목이 있다. 이는 전쟁후의 정결예식으로 전쟁 후에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자들은 반드시 자신들의 의복을 빨아서 희게해야만 했다.(민31:19-20, 24 참조) 어린양의 보혈이 하나님의 교회 그리스도의 신부의 옷을 빨아서 희게 하신 것이다. 이는 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구속의 보혈의 은혜를 덧입고 통과해야만 할 것을 보여준다. 구원을 위해서 다른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의 샘에서 희게 씻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이 교회는 이제 하늘에 존재한다.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 앞에 있는 교회는 이제 천사들처럼 단순한 섬김이나 찬양을 드리기 위해서 서 있는 것이 아니다. 이 교회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7:15-17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이것은 하나님의 교회가 받을 수 있는 가장 뛰어난 복이요, 약속이며, 또한 이 구절은 단순히 먼 미래에 되어질 일이 아니요, 지금 이시간 하나님의 군대로서 지상에서 영적인 싸움을 싸우고 있는 교회에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요, 사랑이요, 보호하심인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지금 여기 존재하면서 동시에 지금 저기에 존재한다. 세상에 존재하지만 우주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교회의 초월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환란중에 있지만 위로가 동시에 주어지는 고난 중에 있지만 동시에 승리를 맛보고 있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교회인 것이다.
이들은 땅에서 구속을 받은 자들이며, 여인들과 더불어 자신을 더럽히지 않고 어린 양이 어디로 가든지 따르던 자들이다. 그들은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로서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다.(14:4-5) 그리고 이들은 13장에서의 짐승과 그의 숫자를 이기고 하나님 앞에 선 승리자인 것이다. 144,000(=셀 수 없는 큰 무리)에 대한 이러한 특징들은 그들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고, 지금도 사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작은 책 / 10장>
여기서 우리는 영광을 입고 내려오는 힘 센 천사의 모습과 그가 손에 들고 요한에게 준 작은 책의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천사의 모습은 그 얼굴이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으며,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며,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 오른발은 바다를 밟고 왼 발은 땅을 밟고 있다. 이는 이 천사가 그리스도의 영광과 권위를 입고 그 명령을 받들어 이 일을 행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를 확대해석하여 그리스도라고 해석해서는 않된다. 계시록에서 한번도 그리스도를 천사라고 해서 등장시킨 일이 없다. 단지 그 중요한 명령을 위임받아 행하기에 그 영광을 덧입고 내려온 것이다.
예) 모세의 얼굴의 빛, 스데반 집사의 얼굴이 천사처럼 빛났다.
그러면 이 천사가 가지고 내려운 작은 책은 무엇인가? 이 책은 요한에게 주어 먹게하려고 가져온 책이며, 이 책은 또한 펼쳐져 있다. 이 책은 7인으로 봉했던 바로 그 책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포괄적으로 성경의 모든 예언의 약속들인 것이다. 지금까지는 봉해져 있었지만 어린양의 손에 의해서 그 책이 열려졌고, 이제 천사의 손을 통해서 요한에게 주어 먹고 예언하게 하신 것이다. 천사가 크기에 상대적으로 작은 책이라고 표현될 수 있으며, 또한 하나님의 계시의 부분에서 요한이 전해야 할 부분이기에 작다고 표현했을 수도 있다.
또한 당시의 정황이나 느낌에 의해서 크다 작다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단지 이런 형용사를 인해서 이 책들이 또 다른 어떤 책이라고 생각해서는 않된다. 실제로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짐승에 관한 기록도 원문에는 ‘짐승’, ‘작은 짐승’으로 각각 묘사된 어떤 세부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성경은 모두 동일하게 ‘짐승’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삽경의 묵시적 계시의 모양은 구약의 에스겔서에 그 배경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그 당시의 악한 세대에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말씀을 선포하라고 명하셨고, 에스겔은 그것을 복종했다. 이처럼 요한에게 이 책을 주어 먹게 한 것은 요한 개인에게 주신 명령이 아니요, 교회에 주신 명령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제 교회는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에 대한 말씀을 전해야 한다. 듣든지 아니 듣든지, 전파해야 할 것이다. 입에는 다나 배에는 심히 쓴 것은 바로 이 말씀이 옳고도 합당한 말씀이나 그것을 전파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을 것, 즉 환란과 핍박이 있을 것을 예고하는 말쓰인 것이다. 악한 세대에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통치 앞에 굴복하고 복종할 것을 선포하는 것은 순교적인 각오를 갖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이다.
<표.#7> 에스겔이 먹은 책과 요한이 먹은 책
겔2:8-10 /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듣고 그 패역한 족속같이 패역하지 말고 네 입을 벌리고 내가 네게 주는 것을 먹으라 하시기로 내가 보니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그 손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 | 계5:1 /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
겔 3:1-3 /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받는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고하라 하시기로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내게 먹이시며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로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 | 계10:9-11 /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책을 달라 한즉 천사가 가로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같이 달리라. 하거늘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책을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저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
이 부분을 다니엘서의 말씀과 비교하여 살펴보면 더욱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단8:26 이미 말한 바 주야에 대한 이상이 확실하니 너는 그 이상을 간수(close up)하라 이는 여러 날 후의 일임이니라
단12:4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seal)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계22:10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위의 인용문에서 종말에 관한 계시의 말씀들은 다니엘에게는 봉함하라고 했으나 요한에게는 봉함하지 말라고 했다. 이는 이 모든 계시의 말씀이 그리스도의 오시기까지 열려지지 않은 천상적인 계시의 말씀이었지만 이제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구속을 이루시고 인봉된 책의 인봉을 떼시므로 다니엘과 그 밖에 구약과 신약의 모든 성경의 예언들이 이제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에 대해서 담대하게 전파하고 선포하며,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구원과 심판으로 이루어질 것을 예언해야 한다. 이 복음전파의 사역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고 완성될 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세세토록 살아 계신 자 곧 하늘과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이며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지체하지 아니하리니 일곱째 천사가 소리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10:6-7)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24:14)
<성전의 척량(11:1-2)과 두 증인(11:3-13)의 이야기>
요한은 복음전파를 위탁받은 후에 상징적인 행위를 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바로 성전측량이다. 이것은 대부분의 선지자들이 그렇게 했던 패턴을 그래도 따른 것이다.
지팡이 같은 갈대를 가지고 성전을 척량한다. 그런데 그 척량의 범위는 성전 안과 그 안에서 예배하는 자들이다. 성전 밖은 이방인에게 주어서 42달 동안 밟게 내버려 두었다. 외적으로 보면 모두가 환란중에 있지만 영적으로 보면 교회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보호 아래 거하고 있는 것이다. -벧전 영광의 영이 위에 있다 하나님은 미쁘사 감당치 못하는 시험당하는 것을 허락치 아니하시고 또한 시험당할 때에 피할 길을 주사 우리로 능히 감당케 하시는 것이다.
동시에 들리는 음성은 하나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어서 예언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셨는데, 그 기간이 1,260일이다. 1,260일과 42달은 동일한 기간이다. 다시 말해서 이방인들이 환란가운데 처하는 기간과 두 증인이 증거하는 기간은 동일한 기간인 것이다.
그러면 두 증인은 누구를 말하는가?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라고 했다. 우리가 이미 1:20에서 살펴본대로 촛대는 교회를 의미한다. 두 감람나무의 의미는 스가랴서 4:1-14에서 찾아야 한다. 스가랴은 환상을 보고 성전 좌우에 있는 두 감람나무를 본다. 그리고 그 의미가 무엇인가를 물었을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슥4:14 가로되 이는 기름 발리운 자 둘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셔 섰는 자니라 하더라”
성전 안에서 주를 모셔 선 두 사람이 누구이겠는가? 이는 바로 갈대로 척량한 하나님의 성소에서 예배하는 하나님의 교회를 상징한다. 둘은 전통적인 성경의 숫자로서 진실된 증인의 숫자이다.(민35:30, 신17:6, 19:15 등 참조) 그래서 재판을 할 때도 최소한 두 증인이 있어야 했고, 장로에 대한 송사는 두세증인이 없으면 받지말라고 하신 것이다. 또한 주님도 복음을 증거하러 보낼 때, 둘 씩 짝지워보낸 것이다.
굳이 두 촛대와 두 감람나무를 구별하라면 두 촛대는 전체로서의 복음증거의 사명을 받은 교회를 의미하며, 두 감람나무는 그 사명을 구체적으로 이루어가는 성도들의 증인된 삶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이 두 증인은 하나님으로부터 권능을 받았다. 이 권능은 복음증거를 위해서 필요한 권능인데, 그 모습은 바로 모세와 엘리야의 전례를 따르고 있다. (11:5-6)
“만일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할지니 누구든지 해하려 하면 반드시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저희가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 오지 못하게 하고(엘리야) 또 권세를 가지고 물을 변하여 피 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모세)”
이 모든 권능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교회에 주신 것이다. 그것이 사도행전 1:8에 기록된 것이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또한 이 권세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의 약속과도 일맥상통한다. “너희를 축복하는 자를 내가 축복하고 너희를 대적하는 자를 내가 대적하리라.”(창12:3)고 하신대로 두 증인의 사역에는 하나님의 전적인 개입이 있는 것이다. (11:5)
“만일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할지니 누구든지 해하려 하면 반드시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이처럼 두 증인으로 상징되는 교회는 증거의 사역을 감당하는 한 모세나 엘리야가 지녔던 신적인 제사장과 왕적인 통치자의 권위를 부여 받는 것이다. 복음으로 말미암은 천국열쇄가 교회에 있으며, 이를 저항하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것이다. 할렐루야!
증인의 죽음과 부활(11:7) /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 터인즉” 증거를 마치는 때는 1,260일의 증거의 기간이 종료된 후요, 42달의 환란의 기간이 지난 후이다. 그리고 이 시점은 천년이 차고 마귀가 잠시 놓이는 계시록 20장의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짐승과 동일한 사건으로 보아야 한다. 아무튼지 이 시점은 교회의 증거의 기간, 환란의 기간이 종료되는 시점에서 주님의 재림으로 인해서 완전한 심판과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기 직전의 상황이다.
복음증거의 기간동안(1,260일=1,000년/초시간적인 묵시를 잘 이해해야 한다.)에 묶여서 감히 대적하지 못하던 사단이 이제는 잠시 놓여서 교회를 대적하는 것을 허락받은 것이다.-시시때때로라고 말해 보라 묵인 때는 언제이고 풀린 때는 언제인가> 저자의 설명에도 없다. 그리고 일어나서 두 증인을 죽이고 그 시체를 3일 반동안 길거리에 놓고 사람들이 서로 축하하며 기뻐한다. 계시록은 이 성을 영적으로 소돔이요, 애굽이며, 주님께서 못박히신 곳이라고 정의한다. 이 곳은 의로운 롯이 극한 고민과 고통을 당했던 곳이요,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서 멸망했고,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성에서 빠져나와 도망해야 했던 성이었다.
그리스도도 고난을 당하셨은즉 그의 교회가 고난을 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온 세상 사람들, 다시 말해서 갈대로 척량받지 못한 성전 밖의 사람들은 이제 이들의 죽음을 기뻐하고 선물을 주고 받는다. 이는 복음 전파의 사역이 이들의 양심을 상당히 고통스럽게 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복음은 악인의 마음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다. 그 때 어떤 이는 성령의 뜻대로 그 고통을 받아들여 회개하고 구원을 얻는가 하면, 어떤 이는 더욱 악하게 귀를 막고 증인을 죽이려고 달려드는 것이다.
이들도 달려들어 두 증인을 죽이고 그 시체를 길거리에 그냥 놓았다. 이는 교회가 극심한 환란 중에 처할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 기간은 3일 반뿐이다. 교회가 복음을 증거하며 승리를 노래하는 영광스러운 기간을 3년 반으로 설정(3일 반에 비해서 월등하게 김)한 반면 고난과 수치의 기간은 3일 반으로서 상대적으로 아주 짧은 것은 고난을 무릅쓰고 복음전도의 사역을 감당하는 교회에게 무한한 위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3일 반의 짧은 고난의 시간 후에는 부활과 승천의 영광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제 3일 반 후에 하나님의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서 저희가 부활하고 구름을 타고 승천을 한다. 이 일을 바라보는 원수들은 이제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저희가 하나님께 속하였으며, 저희의 복음이 옳은 진리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회개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11:11-13)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가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저희가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그 시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9:20-21은 나팔 심판 이후에 사람들이 그 악함과 음행과 우상숭배를 회개치 않았다. 그러나 이제 두 증인의 사역(교회의 복음전파의 사역)후에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영광을 돌리는 회개를 이끌어 냈다.(11:13) 그러므로 이 악한 세상에서 교회가 승리하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는 길은 오직 복음전도의 사역뿐이다.
<하늘에서의 전쟁(12:1-17)>
본 장은 현재와 과거와 미래에 동시에 존재하는 교회의 광범위한 존재의 양식을 보여주며, 완전하고 강한 승리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이제 본 장에 등장하는 존재와 각 단어의 의미를 먼저 살펴보자.
여자 / 교회를 의미한다. 특별히 구약의 교회를 의미한다.
아이 /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한다.
용 / 사단의 세력을 상징한다.
미가엘과 그의 사자 / 천사장과 그 대원을 말한다.
용과 그의 사자 / 마귀의 그 추종하는 졸개들을 말한다.
옛 뱀, 마귀, 사단, 온 천하를 꾀는 자, 참소하던 자
여러 형제 /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 즉 교회를 말한다.
여자의 남은 자손 / 역시 교회를 의미하는데 특별히 신약의 교회를 의미한다.
독수리 / 하나님의 보호를 상징한다.
땅 / 네 생물처럼 자연이 하나님의 군사처럼 언제나 하나님의 일에 쓰임을 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광야 / 은밀한 하나님의 보호처이며 동시에 사단과의 전쟁터이다.
1,260일 / 성도의 증거의 기간이며, 교회의 환란의 기간이며, 하나님의 보호의 기간이다.
하늘에 이적이 있어... / 하늘에서 보이는 징조로서 표적을 의미한다. 요한에게 적어도 이 환상은 대단히 의미있는 환상이었고, 이는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시기 위한 귀한 묵시적 계시의 말씀임을 의미한다.
자 한 여인이 있는데... / 이 여인은 해를 옷입고, 그 발아래 달이 있고, 열 두 별(구약의 12지파, 신약의 12사도)의 면류관을 썼다. 이는 그리스도의 영광의 빛을 입은 영광스러운 교회를 상징한다. 성경에서 교회는 자주 그리스도의 신부로 비유된다. 특별히 이는 만위 위에 계시고 만위 안에 있어 만유를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인 교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여인이 낳은 아이가 있다. / 이 아이는 만국을 철장으로 다스릴 아이이다. 그는 시편의 예언대로 바로 예수그리스도이시다. 붉은 용은 이 여인이 이아를 낳으면 여자가 아이를 낳으면 바로 삼키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 용은 외적으로는 하늘의 별 1/3을 던질 정도로 대단한 힘이 있는 존재이다. 그러나 태어난 아이는 하나님의 보호가운데 안전하게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올려 가신다. 이는 아무리 핍박을 하려고 기다려도 하나님이 보호하시면 사단은 무력한 존재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용은 이제 아이를 놓쳐버리고 여자를 미워하여 여자를 핍박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독수리의 두 날개를 주셔서 여인으로 하여금 광야의 피난처로 데리고 가서 1,260일 동안을 양육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여자를 삼키려고 뱀(=용, 사단)은 물을 강물처럼 흘려보낸다. 그러나 땅이 입을 벌려 그 물을 다 삼켜버린다. 모든 피조물은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기 위해서 준비된 군사인 것이다.
하늘의 전쟁(12:7-9) / 하늘의 전쟁에서 용은 땅으로 내어 �긴다. 그의 이름은 옛 뱀이요, 마귀라고 하고 사단이라고 한다. 이 타락한 천사인 사단은 이제 자신을 추종하여 하나님을 배반한 악령의 무리와 함께 땅으로 추방되었다. 이 사단의 패배는 5절의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으로 인해서 되어진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사단은 자신의 입지를 세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우는 사자처럼 그 여인의 후손인 교회를 핍박하고 고통스럽게 훼방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할찌라도 그들의 핍바이나 공격이 교회에 온전히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이처럼 5절에서 그리스도는 하늘로 올리우심을 받으나, 사단은 내어�김을 당하는 것이다.
<두 짐승 이야기(13장)>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악의 세력을 살펴보면 용(사단), 짐승, 귀신들, 우상, 거짓선지자가 있다. 사단이 권세를 주어서 세상에서 활동하게 한 총체적인 세력(이것은 권력이 될 수도 있고, 종교적인 세력이 될 수도 있다.)을 가리켜서 짐승이라고 하고, 귀신들은 사단의 졸개들로서 함께 세상을 미혹하는데 동원된다. 또한 우상은 사단이 짐승을 통해서 세상을 장악하기 위해서 경배의 구체적인 대상으로 세우는 종교적인 경배대상을 말한다. 그리고 거짓선지자는 마귀의 미혹을 받아서 그것을 증거하는 마귀의 종이요, 앞잡이를 말한다. 이들은 밀접하게 연결되어서 활동을 하며, 하나님을 훼방하고 교회를 핍박하고, 세상을 미혹하여 멸망케하는 일을 한다.
바다에서 나오는 한 짐승(13:1-10) / 그의 외모는 열뿔과 일곱 머리를 가졌다. 또한 그 머리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으며, 표범과 비슷한데, 곰의 발과 같고, 사자의 입과 같다. 용이 자기의 보좌와 권세를 짐승에게 주고 그 입에는 큰 말과 참람된 말을 하는 입을 받아 42달 동안 일하는 권세를 받았다. 짐승은 큰 기적을 행하고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하며, 자칭 하나님이라고 하여 사람들을 미혹한다. 그리고 그의 머리 하나가 거의 죽게 되었으나 다시 살아나자 사람들은 그것을 기이해하고 짐승을 위해서 우상을 만들고 그 우상에 경배를 한다.
이 짐승의 모습은 아주 포학하고 잔인하게 물어뜯는 모습을 가지고 있다. 또한 권세를 상징하는 열뿔과 통치를 상징하는 일곱머리를 가지고 있다. 이는 이 짐승이 자신이 그리스도의 자리를 차지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그를 비슷하게 위장한 것이다. 바다는 세상의 권세를 총칭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 악한 세력은 아주 빠르고 교활하고 권위를 앞세우되 아주 잔인한 물어뜯는 모습을 하고 있다. 사단의 세력이 바로 이와같은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진리를 말씀하셨으나 짐승은 큰 말과 참람된 말을 한다.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에서 3일만에 부활하셨는데, 이 짐승은 죽은 것같아 보이지만 다시 기력을 회복하여서 마치 부활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 그러나 실제는 아니다. 하나님이 그 백성에게 경배를 받으시는 것처럼 짐승도 자신을 높여서 경배하게 했다. 그리스도께서 진정한 능력을 소유한 것처럼 짐승도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는 기적을 행하여 자신이 능력이 있는 존재임을 과시한다. 또한 용이 짐승에게 자신의 보좌를 약속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따르는 성도에게 자신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주신 것을 빗대어 한 것이다. 사단은 언제나 자신이 하나님인양 위장하고 사람들에게 그러한 경배를 받기 원하여 할 수만 있으면 믿는 자까지도 넘어뜨리려 하는 것이다.
이 짐승인 성도들을 박해하고 일할 권세는 42달이다. 이는 두 증인이 증거하는 기가이며, 교회가 광야에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동일한 기간이다. 여기서도 전토하는 교회, 핍박받는 교회, 승리하는 교회, 하늘에 거하는 교회가 한 교회 안에 존재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 마귀는 크게 상처가 나서 결박당하였으면서도 동시에 성도들의 권세를 깨뜨리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왕성하게 일하는 것이다. 1,000년 동안 결박을 당하였으나 잠시 놓여서 세상을 미혹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멸망으로 들어갈 존재임을 요한계시록은 선포하고 있다. (17:8)- 그리스도의 승천으로 사탄 결박됨. 영원히의 읨로 1000년 그러나 사실적으로는 아직의미라고 그는 영적으로 해석해어야 한다. 하지만 영적으로 이렇게라도 풀지 못했다
이러한 짐승의 양면성은 예수그리스도의 초림으로 말미암아 종말이 도래하고 그 권세가 깨어졌으나, 이제 그리스도의 재림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활동할 수 있는 허락을 받은 상태이다. 그러므로 교회를 해할 수 있는 아무런 능력도 없다는 의미에서는 결박당한 것이요, 죽게 된 것이나, 그러나 외적인 미혹을 행하고 기적을 행하여 자신의 세력을 과시한다는 면에서는 핍박의 권세를 받은 것이다. 그러나 이 사단의 세력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동시에 완전히 깨어져 멸망당할 것이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사단은 우는 사자처럼 보이나 사실은 종이 호랑이에 불과할 것이며, 그 권세는 위장된 것이다.
그러므로 동시에 교회 역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므로 권세 있는 왕과 같은 교회이나 또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본을 따르는 면에서 외적인 핍박을 당한다는 면에서는 환란을 당하는 교회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땅에 거하나 동시에 하늘에 거하며, 불안한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완전히 안전하여 해할 자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양면적인 특성을 이해할 때 요한계시록은 바로 이해될 수 있다. 이것을 단편적으로 또는 시간적인 이야기로 전개하려고 하면 요한계시록은 영원히 풀리지 않는 비밀이고, 한 편으로 치우치게 되는 것이다.
이 짐승을 경배하는 자는 바로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불신자들이다. 그리고 자신의 추종자들을 구별하기 위해서 짐승은 자신의 숫자 ‘666’을 인치듯이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준다. 그리고 그 표를 받지 않은 진실한 성도들에게는 매매도 하지 못하게 하고 핍박을 하며, 심지어는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는 이 때 믿음이 필요하고 인내가 필요한 것이다.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상급을 바라보고 승리해야 할 것이 교회에 요구되는 것이다.
여기서 숫자 ‘666’은 말이 많았던 숫자이다. 때로는 이것을 컴퓨터 칩의 숫자라고 하기도 하고, 때로는 이것을 비밀하게 지금도 사람들의 이마나 팔에 찍고 있다고 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역시 상징적인 숫자이다. 먼저 당시의 상황에서 666은 당시의 글자인 히브리어에는 각 알파벳에 숫자의 값을 주었다. 그런데 당시의 로마의 통치자 시저네로라는 이름의 알파벳의 값을 합산한 것이 바로 ‘666’이다. 다시 말해서 이는 세상의 권세의 숫자요, 세상의 부요의 숫자요, 하나님의 대적하고 교회를 핍박하는 대표적인 세력을 상징하는 숫자인 것이다.
또한 ‘6’은 ‘사람의 수’이다. ‘7’이 하나님의 완전수인데 비해서 ‘6’은 불완전한 사람의 수이다. 그러므로 ‘666’은 사람중심의 인본주의를 상징하기도 한다. 하나님이 없이 사람으로서 모든 것을 행하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불신앙, 인본주의, 우상숭배... 이 모든 것을 포함하여 상징하는 숫자가 바로 ‘666’인 것이다. 바로 여기에 물들지 않고 믿음을 지킨 사람들이 짐승과 그의 숫자를 이긴 자인 것이다. 그러나 이 사상에 물들어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사람들이 바로 이 짐승의 숫자의 표식을 받은 자들인 것이다.
땅에서 올라온 둘째 짐승(13:11-18) / 첫째 짐승이 바다에서 올라오고 이 짐승은 땅에서 올라왔다. 이는 세상의 모든 권세를 장악한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짐승의 역할은 첫째 짐승을 높이고 증거하고 첫째 짐승을 우상화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경배하게 하는 것이다. 이 짐승은 거짓선지자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 거짓 선지자는 새끼 양처럼 생겼고, 용처럼 말하며,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하는 이적을 행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째 짐승을 믿고 경배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사단을 상징하는 용은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우상으로 말하게 하여 사람들을 미혹하게 한다. 그리고 철저하게 짐승을 경배하는 표인 ‘666’을 받게 한다.
이 모든 것은 위장이다. 악의 세력이 하나님의 세력을 위장하는 것이고, 짐승이 그리스도인 것처럼 위장하는 것이다. 그 성도를 향한 인침이 바로 자신들이 주는 ‘666’표와 상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고전 11:13-15은 바로 이러한 사단의 세력이 자신의 본질을 숨기고 광명의 일군으로 가장을 하는 모습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바로 분별해야 한다. 기적을 좇으면 미혹될 것이고, 세상의 쾌락을 좇으면 미혹될 것이다. 오직 어떠한 환란과 미혹 중에서도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증거를 지키며, 이것을 떠나게 하는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을 때,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성도의 상급과 불신자의 심판(14:1-20) / 본 장에서는 몇 가지 교회와 악한 세력의 영적인 상태와 자세한 상황이 묘사되어 있다.
① 세상에서 이 용과 짐승의 유혹과 세력을 이기고 승리한 성도들(144,000)이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시온산에 서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으며, 이들이 어떻게 경건하게 살았는가를 묘사하고 있으며(14:1-5),
② 영원한 복음을 가지고 심판 전에 하나님을 경배할 것을 선포하는 천사의 모습(14:6-7). 특별히 경배해야 할 하나님을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로 묘사하고 있다.
③ 여러명의 천사가 등장하여 큰 성 바벨론의 멸망의 선포하고 그것이 마땅한 이유가 음행의 포도주를 자신도 먹고 다른 이도 먹이던 성이기에 마땅히 무너져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리고 만일 짐승에게 경배하고 그 표를 받는 사람은 세세토록 고통을 받을 것을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에는 승리를 약속하며 믿음을 권면하고 있다. (14:12-13)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④ 이제 마지막 심판과 함께 추수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여기도 여러천사가 등장을 하는데, 먼저 무르익은 곡식을 추수하여 하늘의 곡간에 들이는 역할을 하는 천사가 있는데 이 천사는 인자같은 이라고 표현할만큼 그리스도를 대행하는 천사이다. 우리는 이전에 작은 책을 손에 들고 얼굴이 해같이 힘있게 비취며, 무지개를 머리에 이고 나타났던 힘센 천사를 기억하고 있다. 그 역시 그리스도의 영광을 입었지만 그리스도는 아니였다. 단지 그 사역이 그리스도를 대신한 사역이기에 그 영광의 광채를 입은 것이다. 본절 역시 마찬가지로 너무나도 중요한 그리스도의 사역인 알곡 성도를 추수하는 사역이기에 그러한 영광스러운 모습을 덧입게 된 것이다.
본 장에서는 먼저 알곡의 추수가 되고, 다음에 짐승에 경배하고 그 표를 받은 악인들을 거두어서 포도주 틀에 던진다. 그리고 그 포도주틀이 성밖에서 밟힐 때, 피가 흘러 높이는 말굴레에 차고, 흘러 넘치는 것은 일천육백 스타디온에 퍼졌다. 이 심판과 추수의 순서는 바뀔 수도 있다. 먼저 쭉정이를 거두어 꺼지지 않는 불로 태우고 그 후에 알곡을 거두어 곡간에 들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인 먼저냐 하는 것이 아니요, 반드시 심판과 구원의 완성이 다 이루어지고, 동시에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심판의 추수때에 중요한 것은 “주 안에 있느냐 주 밖에 있느냐”이다. 내가 출세를 했느냐 그렇지 못했느냐가 아니요, “내가 성결을 지켰느냐, 세상과 음행에 빠졌느냐”이다. 죽더라도 주 안에서 죽는 자가 복이 있는 인생을 사는 자인 것이다. 이것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 (14:12-13)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말굴레는 말의 고삐를 매는 부분을 의미한다. 이는 굉장히 높은 깊이의 피가 강물처럼 흘러넘칠 것을 의미하며, 1,600스타디온은 1스타디온이 170m로서 272km의 길이를 말한다. 이는 끝이 보이지 않는 대단히 넓은 지역에 피가 강물처럼 흐르게 된 것을 보여준다. 이는 심판의 강도가 얼만 처절할 것인가를 보여준다.
1,600이라는 숫자를 분석해보면 (4*4*10*10)이다. 성경에서 ‘4’라는 숫자는 세상전체를 의미한다. (5:6의 네 생물, 7:1의 네 모퉁이, 네 바람 등등) 또한 ‘10’이라는 숫자는 권세로서 왕들과 관련이 있다.(17:12-14) 이를 두번씩 반복해서 곱한 숫자를 사용한 것은 강조의 의미가 있다. 다시 말해서 세상의 어떤 영역도 이 심판에 피할 수 없을 것이며, 세상의 어떤 왕들과 권세들도 피할 수 없을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과 그 왕들을 포도주 틀로 모아서 그 심판의 권능으로 포도주 틀을 밟게 된다. 그리고 악은 제거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서는 것이다.
제8장 / 바벨론의 멸망(17:1-19:10)과 최후의 심판(19:11-20:15)
<음녀의 받을 심판>
사단/짐승/거짓선지자/바벨론은 서로 유기적인 관계에 있어서 어느 하나가 손상되면 다른 것들도 치명적인 해를 입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이처럼 반복해서 악의 세력을 거론하고 그 멸망을 언급하는 것은 악의 세력에 대한 철저한 제거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17:1-19:10은 세상나라를 상징하는 바벨론에 대한 이야기아다. 이 본문은 17:1-18과 18:1-19:10의 두 단락으로 나누어진다. 전자는 바벨론에 대한 전체적인 묘사이고 후자는 바벨론의 멸망과 그 멸망에 따른 결과들이다. 이러한 바벨론의 멸망은 19:11-20:15에서 최후의 심판으로이어진다.
이는 16:12-21의 여섯째 대접과 일곱째 대접 심판에서 언급된 아마겟돈에서의 전쟁과 바벨론의 멸망을 좀 더 자세히 풀어서 설명한 내용인 것이다. 이것을 시간적으로 일직선상으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서두에 말한 것처럼 요한계시록의 구조는 나선형구조이다. 같은 내용이 반복되고 반복되면서 그 본질이 더욱 드러나고 깊어지고 강화되고 완성으로 향해서 나아가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순서를 배제하지 않으나 반드시 순서대로 기록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중복되고 강조되고 완성을 향해서 나아가는 책이 바로 요한계시록인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17:1을 통해서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이다.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바벨론의 심판을 말하고 있는 천사가 바로 일곱대접을 가지고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했던 천사중 하나임은 바로 이러한 연관성을 보여준다. 또한 여기서 바벨론은 당시의 로마를 상징하며, 전체적으로 하나님을 반역하는 세상나라를 의미하는 것으로 음녀로 묘사되고 있다. 바로 16장 19절의 일곱번째 대접을 쏟을 결과 17:1-19:10의 멸망이 주어진 것이다. 그 자세한 내용이 설명되고 있는 것이다.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16:19)
이제 17:2은 이 바벨론이 멸망을 받아야 할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여기서의 음행은 육적인 음행뿐 아니라 영적인 음행을 의미하며 하나님 외에 다른 우상을 경배하며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영적인 음행은 반드시 육적인 음행으로 이어진다. 음행의 포도주에 취한 자들이 ‘땅에 거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하늘에 거하는 자들’인 성도들과 구별되어서 사단에게 속한 자들을 의미한다. 이 말씀은 14:8의 말씀을 연상케 한다.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14:8)
세상나라의 권세를 상징하는 바벨론이 땅에 거하는 자에게 음행의 포도주를 마시웠고 그들은 함께 마셨다. 이는 그 음행의 책임이 바벨론과 그 땅에 거하는 모든 자들에게 함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제 이 음행의 포도주가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핵심의 내용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17:6이다.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내가 그 여자를 보고 기이히 여기고 크게 기이히 여기니”
바벨론이 용과 짐승을 충실하게 따르는 행위는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과 더불어서 하나님을 높이고 예수그리스도를 따르는 증인들을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박해하고 죽이고 능멸하는 것이다. (11:7-10 참조)
그러므로 이 짐승과 바벨론의 관계는 아주 밀접하다. 이러한 밀접한 관계는 17:3에 묘사되고 있다.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큰 음녀 바벨론인 이 여자가 타고 있는 것이 바로 짐승을 탔다. 그 짐승의 몸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아 열 뿔이 있다. 이는 13장에 소개되는 두 짐승중에 첫째 짐승인데, 음녀 바벨론이 짐승을 타고 있다는 것은 세상나라가 사단의 세력을 힘입어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7장에서 이 짐승에 관한 언급이 세 번 반복해서 나타난다.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17:8a)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기이히 여기리라”(17:8b)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어진 짐승은 여덟째 왕이니 일곱 중에 속한 자라 저가 멸망으로 들어가리라”(17:11)
이 세번의 언급은 모두 동일한 짐승을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그 짐승은 장차 멸망으로 들어갈 자이라는 것이다. 음녀 바벨론은 짐승을 타고 있기에 짐승과 음녀는 운명의 공동체이다. 고로 짐승의 멸망받을 운명은 바로 음녀 바벨론이 멸망받을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또한 이를 뒷받침해주는 부분이 있다. (17:9-12)
17:9 지혜 있는 뜻이 여기 있으니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17:10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이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깐 동안 계속하리라
17:11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어진 짐승은 여덟째 왕이니 일곱 중에 속한 자라 저가 멸망으로 들어가리라
17:12 네가 보던 열 뿔은 열 왕이니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으로 더불어 임금처럼 권세를 일시 동안 받으리라
여기서 일곱 산과 일곱 머리와 열 뿔은 동일하게 왕 다시 말해서 권세를 뜻한다. 세상의 권세를 타고 음녀가 자신의 음란의 포도주를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에게 먹일 것을 의미한다. 다섯 왕은 이미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이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잠깐 세력을 떨치다가 결국은 멸망으로 들어갈 것을 말씀하고 있다. 이 왕들을 세상의 어떤 왕국이나 왕조로 해석해서는 아무런 해석도 나오지 않고 혼란스러울 따름이다.
그러므로 이는 영적인 사단의 세력으로 해석하는 것이 합당하다. 사단의 세력이 간헐적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것처럼 강해지지만 그 때 끄 때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망할 것이며, 지금 있는 세력도 망할 것이고, 앞으로 세워질 세력(사단이 잠간 놓인다고 표현하신 그 세력을 말한다.)도 역시 멸망을 향해서 갈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열 뿔 역시 세상의 권력을 상징하는 숫자이다. 영적인 사단의 세력(짐승의 세력)과 세상적인 권력의 세력(바벨론의 세력)을 통합하여 묘사한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결국은 멸망할 것을 보여준다. 그것이 바로 17:15,18에 잘 묘사되어 있다.
“또 천사가 내게 말하되 네가 본 바 음녀의 앉은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
“또 내가 본 바 여자는 땅의 임금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 하더라”
또한 이들의 이러한 권력과 힘을 모아서 어린양과 그의 교회를 대적하지만 결코 이길 수 없음을 말씀하고 계신다.
“(17:14)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이는 주님의 교회를 세우실 때부터 선언하신 내용이다.
“(마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할렐루야!
그런데 그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은 참으로 아이러니 하면서도 악의 자멸성을 보여주는 구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네가 본 바 이 열 뿔과 짐승이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17:16)
서로 운명공동체인 짐승과 음녀의 찰떡궁합이 이제 깨어지게 된다. 짐승이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게 된다. 이 어떻게 된 일인가? 이것은 악의 세력의 본질을 보여주는 것이다. 악의 세력인 사단은 짐승을 동원하고 바벨론을 이용하지만 결국 목적하는 것은 이 모든 것을 멸망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그렇게 충성스럽게 따랐던 음녀인 바벨론을 잔혹하게 해하는 것이다. 이는 주님의 말씀대로이다.
“[요10:10]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하나님은 자신을 따르는 그 택하신 백성들을 철저하게 보호하시고 지키시고, 생명을 얻고 풍성한 삶으로 복된 나라로 인도하시지만 사단의 목적은 오직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다. 사단은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거짓의 아비가 되어 천하 만국을 미혹하였지만 이제 그 본질대로 자신을 따르는 음녀 바벨론을 처참하게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이다.
이제 18장은 본격적으로 바벨론의 멸망을 묘사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있다.
18:1-3을 통해서 천사가 바벨론의 멸망을 선포한다.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그리고 18:4-20의 내용은 하늘에서 들려오는 음성의 형식으로 이 바벨론의 사치와 영화와 쾌락의 탐닉과 왕들의 권세와 그 영향권 내에 있는 사람들과 그 바벨론의 일순간의 멸망을 보는 그들의 애통을 기록하고 있다.(18:9-11,15)
그리고 땅의 상인들이 바벨론에게 팔았던 상품의 목록을 기록하고 있다.(18:12-13)
“그 상품은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와 세마포와 자주 옷감과 비단과 붉은 옷감이요 각종 향목과 각종 상아 기명이요 값진 나무와 진유와 철과 옥석으로 만든 각종 기명이요, 계피와 향료와 향과 향유와 유향과 포도주와 감람유와 고운 밀가루와 밀과 소와 양과 말과 수레와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이라”
여기서 특별히 ‘사람의 영혼들’이라는 말은 이 모든 무역과 사치와 쾌락의 유혹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여준다. 사단이 짐승에게 세력을 주고 짐승은 음녀 바벨론으로 사치하게 하고 권세있게 한 목적이 바로 ‘사람의 영혼’을 노략질하기 위한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바벨론은 마땅히 멸망을 당해야 하고, 일순간에 무너져야 마땅한 것이다. 그리고 이 바벨론의 멸망은 하늘에 속한 성도들의 찬양과 감사와 즐거움과 경배의 제목이 되는 것이다. (18:20)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를 인하여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신원하시는 심판을 그에게 하셨음이라 하더라”
왜냐하면 이들은 성도들의 영혼들까지도 노략질하기 위해서 말할 수 없는 박해를 자행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땅위에 있는 성도들은 때로는 목숨을 걸고 그 신앙을 지켜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음녀 바벨론은 이제 마땅히 멸망을 당해야 하는 것이다. 18:24은 바로 이것을 보여준다.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이 성중에서 보였느니라 하더라”
그러므로 19장의 찬양의 내용들은 핵심적인 주제가 있다.
먼저는 바벨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아주 정당하고 진실하다는 것이다.(19:2)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
그러므로 바벨론의 멸망은 핍박당하는 교회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고, 순교자들의 피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의 보응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가리킨다.(19:6)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 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아서 가로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하나님의 통치하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십자가와 부활로 온 우주에 드러나고 선포되었다. 그래서 사단의 세력은 결박을 당한 것과 같은 것이다. 그 복음의 세월은 모든 믿는 택하신 자들을 구원하시기에 충분한 1,000년동안(충분, 무한의 수)의 기간이다. 그러나 아직 가시적으로 모든 자들에게 체험되고 성취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단의 활동을 부분적으로 허락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기간은 확고부동한 승리안에 환란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나라인 음녀 바벨론이 완전히 무너졌고 짐승이 멸망을 당했기에 완전한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세번째로는 어린양의 혼인잔치의 때가 왔다는 것이다.(19:7-9)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바벨론의 멸망 이후에 이루어지는 것이 바로 어린양의 혼인잔치(하나님의 나라)이다. 여기의 주인공은 자신의 정절을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증거를 지키며 자신의 옷을 지켜 벌거벗지 아니한 진실한 교회가 바로 어린양의 신부가 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교회가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준비하며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은 것은 신부의 친구요, 하객들로서 신부와 별개의 존재이지만 여기서는 한가지의 개념으로 사용된 것이다. 전체로서의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부(단수)로 말했고, 개개인의성도들을 가리켜서 청함을 받은 자들(복수)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이며 동시에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아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들으며 기뻐하는 신랑의 친구이며, 등불과 기름을 준비하여 결혼잔치에 참예한 신부의 친구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지금까지도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하나였지만 이제 흠도 없이 점도 없이 완전한 하나를 이루는 시점이 온 것이다. 계21:22의 말씀처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양이 성전이 되셔서 교회 가운데 완전한 하나됨을 이루게 될 것이다. 이것이 저희가 우리와 하나가 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셨던 요한복음 17장의 기도를 이루는 시점인 것이다.
“요17: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요17:21-22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것이 바벨론의 멸망과 더불어 되어지는 시점이 된 것이 당연한 것은 이제 바벨론과 짐승과 사단의 멸망으로 교회를 더럽힐 어떤 소지도 제거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벨론의 멸망이 교회의 찬양이 되는 것은 마땅한 것이다.
자 이제 심판을 주도하셔서 완전한 바벨론의 멸망과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이루는 주체가 있다. 그 분이 바로 신랑이신 그리스도 자신이시다. 이제 그 분은 충신과 진실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백마를 타고 공의로 심판하시며, 교회를 괴롭히는 모든 악한 세력과 싸우신다.(19:11) 그 분의 눈은 불꽃같고, 그 머리에는 많은 면류관이 있으며(19:12), 피 뿌린 옷을 입고 계시며, 그 이름이 ‘하나님의 말씀’이시며(19:13),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긋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고 있다.(19:14) 그 입에서 날카로운 검이 나오는데,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19:15), 그 옷과 그 다리에 기록된 이름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시다.(19:16)
그리고 그 심판의 결과 세상의 모든 왕들(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세력들을 의미)과 장수들은 다 죽임을 당하고 공중의 새의 먹이가 되고 만다. 이는 바벨론과 짐승의 완전한 패망을 가리킨다. 이 장면은 에스겔 39장 17-20절에 나타난 열국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장면을 연상시킨다. 그 것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모습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제 음녀 바벨론과, 세상의 세력 뿐 아니라, 그 심판으로서 이제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작은 짐승, 곧 거짓 선지자와 완전한 패배와 멸망에 던져진 것을 선포하고 있다. (19:19-21)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더라”
이제 이러한 맥락에서 20장을 자연스럽게 해석할 수 있다. 이 20장으로 인해서 기독교 역사에 여러 종말론의 학설(역사적 전천년, 세대주의적 전천년, 후천년, 무천년 등)이 등장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요한계시록을 공부한 것을 기초로 한다면 20장의 해석 또한 어렵지 않다.
20장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
1) 1-3절 / 용의 결박
2) 4-6절 / 천년동안 왕노릇 함
3) 7-10절 / 천년이 찰 때 일어날 일
4) 11-15절 / 최후의 심판
1) 1-3절 / 용의 결박 / 먼저 사단을 상징하는 용이 결박당하는 것을 문자적으로 물리적인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다시 말해서 천사가 가지고 내려와 용을 쇠사슬로 결박하고, 무저갱에 넣어서 열쇄로 잠그고, 천년동안 가두었다가 잠시 놓이는 것이 문자 그대로 물리적인 해석을 할 수 없는 것임을 먼저 전제로 한다.
서론에서 말한 것처럼 요한계시록을 푸는 열쇄는 초시간적이며, 초공간적이고, 나선형의 역사구조를 갖으므로 다중적인 의미가 함께 섞여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이 부분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용의 세력 사단의 세력이 거의 싸울 수 없을만큼 상처를 입어 무력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언제 그렇게 되었는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역으로 인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사단은 하늘에서 �겨났다. 그리고 이 천년의 기간은 바로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사이의 얼만큼이 될지 모르는 긴 시간인 것이다. 이 사단은 분명히 결박되어 무장해제가 되었으나 동시에 하나님의 섭리적인 허락중에 성도와 싸워이기고, 각 족속과 방언과 나라들을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받았다. 그러나 이것은 진정한 하나님의 교회에는 어떤 해도 미칠 수 없는 것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완전한 사단의 멸망하기 전까지는 이러한 이중적인 사단의 모습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천년이 찬 후에 잠깐 놓여서 왕성하게 활동을 한다는 것은 주님의 재림의 직전에 사단이 자신의 때가 이른 줄 알고 발악을 하고, 자신을 따르던 음녀를 완전히 능멸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충신과 진실이신 그리스도에 의해서 완전히 멸망을 당하게 된다.
2) 4-6절 / 천년동안 왕노릇 함 / 그리고 이 부분에서는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해서 목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바로 그리스도의 신부인 전체로서의 교회를 말한다.) 보좌에 앉아 그리스도와 함께 심판하는 권세를 받는다.(20:4) 그래서 천년동안 왕노릇을 한다. 이는 교회가 이 세상에 존속할 동안에 권능을 받아서 하나님나라의 증인의 사역을 감당할 때, 사단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고 복종할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먼 미래 언젠가에 이루어질 사건이 아니요, 지금 현재 진행되고 있는 통치이다. 이 통치의 기간을 천년이라고 언급한 것은 요한계시록이 보여주는 묵시문학적인 요소이다. 1,000은 영원을 상징한다. 다시 말해서 교회의 이 땅에서의 통치는 영원히 이어질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기간은 그리스도의 초림에서 재림 사이의 기간이다.
교회의 이 통치기간이 바로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것이요,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는 둘째 사망이 다스릴 권세가 없다.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난 생명을 얻는 것과 더이상 사망의 권세가 주장하지 못하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또한 첫째 부활이다. 첫째 사망이 육체의 죽음이라면 둘째 사망은 최후의 심판으로 말미암은 영원한 죽음의 형벌을 의미한다. 이 둘째 사망이 거듭난 성도, 세상을 이기고 다스리는 교회를 이기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두번 태어나고(육체, 영혼) 한 번 죽는다(육체).
팁> 천년, 3년 반, 42달, 1260일의 의미 / 이 모두는 동일한 기간으로서 그리스도의 초림에서 재림 사이의 기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절대로 이를 물리적인 시간으로 해석해서는 않된다. 해석 자체가 않될 뿐아니라, 무리한 해석이 반드시 따라오게 되고, 잘못하면 이단의 교리에 현혹될 수 있다. 하나님의 통치가 영원히 이어질 것을 나타낼 때는 천년, 환란의 기간은 3년 반, 악의 세력이 득세하여교회를 핍박하는 기간은 42달, 그리고 복음을 증거하고 보호를 받는 기간은 1260일로 묘사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교회가 영광스러운 통치를 할 것을 표현할 때는 1,000년을 사용하고, 핍박을 받을 때는 3년 반을 사용한 것이다. 3년 반은 4년이라는 충분수가 미치지 못하는 숫자이다. 그러므로 그 환란은 피할만한 견딜만한 환란이 될 것이며, 반드시 피할 길을 주사 능히 감당케 하시는 환란인 것이다.
“[고전10:13]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3) 7-10절 / 천년이 찰 때 일어날 일 / 사단이 잠시 옥에서 놓여서 곡과 마곡을 미혹하여 전쟁을 예비한다. 그런데 그들의 숫자가 바닷가의 모래와 같았다.(20:7-8) 여기서 등장하는 ‘곡과 마곡’은 에스겔 38-39장에 등장하는 곡과 마곡을 그 배경으로 하는데, 이는 회복된 새예루살렘의 안정성을 시험하기 위해서 등장을 한다.(겔36-37장) 그러나 그들은 패퇴당함으로 하나님께서 회복하신 새 예루살렘의 안전성이 입증된다.
이는 아마겟돈에 군대를 모으는 것과 짐승과 용과 거짓선지자의 입에서 나온 개구리같은 세 영이 무수한 세상의 왕들을 불러모으는 것과 같은 사건의 다른 맥락에서 조명하고 묵시적 계시를 한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등장시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회복된 하나님의 교회 새예루살렘을 요동시킬 아무것도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는 이제 아무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하고 안전하며 흠이 없는 영원한 공동체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짐승과 거짓선지자와 사단이 완전히 멸망을 받아 영원히 불타는 불못에 던져진다. 유혹과 죄악의 가능성을 완전한 제거이다.
4) 11-15절 / 최후의 심판 / 크고 흰 보좌는 하나님의 성결하시고, 거룩하시고 권능있으심을 나타내고 있다. (20:11) 그 보좌 앞에 물리적인 땅과 하늘은 간 곳이 없어졌다. 이는 이 심판의 백보좌가 열리는 순간이 바로 세상의 질서(시공간의 질서)가 완전히 사라진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미 죽은 자들과 산 자들이 함께 주님의 보좌 앞에서 함께 심판을 받는 것이다. 보좌 앞에는 두 종류의 책들이 펼쳐져있는데, 하나는 생명책이고, 하나는 행위록이다. 그래서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영원히 타는 불못에 던져지게 된다.(20:13,14,15) 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지웠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악의 세력이 머물 곳이 적어도 새로운 세상에서는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이것이 존재의 소멸은 아니라고 할찌라도 이제 영원히 새로운 세상에서는 없는 것과 같이 되어버린 것이다.
제9장 / 새 창조와 새 예루살렘(21:1-8)
새 하늘과 새 땅(1-8) /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이는 완전히 새로워진 세상을 의미한다. 이것은 처음의 물리적인 우주가 완전히 사라져버리고 다시 지었다는 뜻보다는 온전히 새로워진 우주가 시작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로마서에는 이같이 피조물도 다 썩어짐의 종노릇하는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아들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기를 원한다고 하신 것이다.
21-22장은 함께 읽으면서 진행을 하도록 하자.
<21장>
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21: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21:5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21: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21: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21:9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21:10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21:11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
21:12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21:13 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이니
21:14 그 성에 성곽은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 양의 십이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21:15 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척량하려고 금갈대를 가졌더라
21:16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은지라 그 갈대로 그 성을 척량하니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
21:17 그 성곽을 척량하매 일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척량 곧 천사의 척량이라
21:18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21:19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21:20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정이라
21:21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21:22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21: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21:24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21:25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21:26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22장>
22:1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22: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22: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22: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22: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22:6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결코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22:8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22:9 저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책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22:10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22:11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22:14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22:15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리라
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22:18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22:19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22:20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22: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정리 및 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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