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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에스겔 44장1~31절
제목 : 제사장 규례
사독의 후손 레위 사람을 회복될 성전을 섬길 제사장으로 세우시고, 그들이 지켜 행할 규례와 직무를 말씀해주십니다.
1. 닫힌 동쪽 문(1~3절)
1) 성소의 동쪽 문이 닫혀있습니다(1절)
“[1] 그가 나를 데리고 성소의 동쪽을 향한 바깥 문에 돌아오시니 그 문이 닫혔더라 ”
성전 출입의 자격과 성전 봉사자들의 자격 및 성전 봉사시의 유의 사항이 45:8까지 세부적으로 기술됩니다.
그 문이 닫혔더라. - 여기서 '닫혔더라'(사가르)는 문자적으로 '닫아 잠그다', '밀폐시키다'란 뜻으로 완전한 '닫아 잠그다', '밀폐시키다'란 뜻으로 완전한 봉쇄를 가리킵니다.
이는 문법상 미완료형으로 그 문의 계속적인 봉쇄를 가리키는 2절의 '닫고'(사고르 이헤예)와 최종적으로 그 문의 영원한 봉쇄를 의미하는 '다시 열지 못 할지라'란 표현과 함께 상붕적으로 반복 강조됨으로써 완전한 봉세의 의미를 더욱 가중시킵니다.
2) 하나님만이 그리로 들어왔습니다(2절)
“[2]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 문은 닫고 다시 열지 못할지니 아무도 그리로 들어오지 못할 것은 이스라엘 하나님 나 여호와가 그리로 들어왔음이라 그러므로 닫아 둘지니라 ”
나 여호와가 그리로 들어왔음이라. - 동문의 봉쇄 이유입니다.
곧 성전에 있어 동문이 가장 중요한 출입구인데도 그 문이 봉쇄된 것은 여호와의 영광이 들어온 곳이기에(43:4) 사람들로 하여금 그 문을 더럽히지 않게 하기 위함이며, 동시에 새 성전에 임재하신 하나님께서 다시는 이전 성전에서처럼 떠나는 일없이 그곳을 영원한 거처로 삼아 그 백성들과 함께 계시겠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43:7).
3) 예외적으노 왕은 현관으로 들어와서 여호와 앞에서 음식을 먹고 그 길로 나갑니다(3절)
“[3] 왕은 왕인 까닭에 안 길로 이 문 현관으로 들어와서 거기에 앉아서 나 여호와 앞에서 음식을 먹고 그 길로 나갈 것이니라”
왕은 예외적으로 현관의 출입이 가능했으나 동문이 닫혀있는 관계로 일반인들과 같이 남쪽이나 북쪽 문을 통해 전의 현관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나 여호와 앞에서 음식을 먹고. - 왕은 백성의 대표자로서 제사를 수행한 뒤 그 음식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45:17).
이처럼 왕이 그러한 특권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과거의 타락한 왕들과는 달리 새로운 질서 속에서 하나님과 백성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 거룩한 직무를 맡은 자였기 때문입니다.
2. 이스라엘이 행한 가증한 일(4~8절)
1) 도입부(4~5절)
“[4]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을 통하여 성전 앞에 이르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한지라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니 [5]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전심으로 주목하여 내가 네게 말하는바 여호와의 성전의 모든 규례와 모든 율례를 귀로 듣고 또 성전의 입구와 성소의 출구를 전심으로 주목하고”
성전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 자에 대한 규정이 9절까지 이어집니다(시 15:1-5; 24:3-6).
그들은 새 성전에 합당한 언약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없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제규정은 새로 회복될 이스라엘에서 그 백성들의 성결을 지속적으로 유지시키기 위한 것이며 학개(학 2:14), 에스라(스 4:1-3;10:10-44), 느헤미야(느 13:1-9) 등에 의해 계승된 사상이기도 합니다.
북문을 통하여. - 혹자는 이를 성벽에 위치한 바깥 북문으로 이해하나(Kliefoth) 3:5에서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한 곳이 안뜰로 제시된 점과 안 북문이 바깥 북문보다 약 4철이 더 높았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선지자가 직접 그 영광의 현현을 목격할 수 있는 곳은 바로 안쪽 북문임이 분명합니다(Delitzsch, Schroder, Hitzig).
한편 이처럼 여호와의 영과의 현현을 재삼 언급한 것은 이하 전개될 내용에 비추어 함부로 근접할 수 없는 새 성전의 거룩함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Delitzsch).
너는 전심으로 주목하여 내가 네게 말하는바 여호와의 성전의 모든 규례와 모든 율례를 귀로 듣고. - 이는 40:4;43:11,12과 동일한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성전의 입구와 성소의 출구를 전심으로 주목하고. - 성전의 모든 규례와 함께 특별히 성전의 모든 문들에 대한 각별한 주의가 언급된 것은 본절의 내용이 성전 출입자의 자격을 말하는 것이란 점에서 전의 출입에 합당하지 않은 모든 부정한 것의 출입을 철저하게 방지함으로써 성전의 거룩과 백성들의 성결을 수호하기 위함입니다.
2) 이스라엘 족속에 대한 책망(6~8절)
(1) 반역하는 자 이스라엘 족속(6절)
“[6] 너는 반역하는 자 곧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의 모든 가증한 일이 족하니라 ”
반역하는 자 곧 이스라엘 족속. - 과거 하나님 심판 당시에 모든 종교적, 도덕적 범죄를 일삼던 이스라엘을 지칭하나(2:5, 7) 여기서는 특별히 성전의 거룩과 성결을 훼파한 사실을(7, 8절) 지적합니다.
이러한 과거의 죄악상이 새삼 본문에 언급된 것은 새 성전의 거룩과 성결에 대한 역설적인 강조를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너희의 모든 가증한 일이 족하니라. - 본 구절은 '너희의 가증한 죄악이 너무나 크다'로 해석할 수 있는데, 그 죄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이제는 그것을 제하여야 한다는(벧전 4:3) 역설적 표현입니다(Schroder).
(2) 제사장들의 직무 유기를 진술합니다(7절)
“[7] 너희가 마음과 몸에 할례 받지 아니한 이방인을 데려오고 내 떡과 기름과 피를 드릴 때에 그들로 내 성소 안에 있게 하여 내 성전을 더럽히므로 너희의 모든 가증한 일 외에 그들이 내 언약을 위반하게 하는 것이 되었으며”
본절은 특별히 이전 성전에서의 제사장들의 직무 유기를 진술합니다.
제사장들은 이스라엘 중에 이방적 요소의 침입을 막아야 할 의무가 있었습니다(출 12:43, 44;레 17:10, 12;민 15:13 이하;왕상 8:41 이하)
마음과 몸에 할례 받지 아니한 이방인을 데려오고. - 특별히 '마음의 할례'가 언급된 점에 비추어 본 구절이 성전 출입의 부적격자로 순수한 이방인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사실 이전 성전에 있어서도 소수 이방인들의 제의 참여가 허용된 바 있습니다(레 17:8, 9;민 15:14-16).
따라서 본 구절의 이방인은 육신의 할례를 받지 않음은 물론이고 그 마음에 경건함과 여호와 경외의 신앙이 없는 이방인들을 가리킵니다(Delitzsch).
혹자는 이를 '우상 숭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Raschi), 10절과 관련하여 '하나님을 떠나 이방의 제의를 수용한 레위인들'(Havernick), '제사용 제물이나 향료 등을 파는 자들로서 상업적 목적에서 성소의 출입이 허락된 자들'(Hitzig) 등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새 성전에 대한 성결의 유지를 역설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본절에 이들이 언급되었다는 것은 상징적으로 이들이 유대인과 이방인이라는 혈통적 구분을 벗어나 메시아 시대의 영적 이스라엘 백성과 구별되는 영적 이방인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슥 14:21;롬 2:25-29;빌 3:3).
(3) '성물의 직분'은 성전 제사에 관계된 모든 직책을 가리킵니다(8절).
“[8] 너희가 내 성물의 직분을 지키지 아니하고 내 성소에 사람을 두어 너희 직분을 대신 지키게 하였느니라”
이방인들에게 그러한 직분을 대신 지키게 하였다는 것은 성전에서 경건치 못한 이방인들에게 제사를 수행하게 했다는 의미로 거룩한 성전에 우상 숭배와 같은 이방적 요소가 횡행했었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22:9).
3. 그릇된 일을 행한 레위인들(9~14절)
1) 이방인과 관련한 말씀(9절)
“[9]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이스라엘 족속 중에 있는 이방인 중에 마음과 몸에 할례를 받지 아니한 이방인은 내 성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7절 주석을 참조하라.
2) 레위인의 직무(10~14절)
(1) 레위 사람도 그릇행하여 우상을 따라 나를 멀리 떠났다(10절)
“[10]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 행하여 나를 떠날 때에 레위 사람도 그릇 행하여 그 우상을 따라 나를 멀리 떠났으니 그 죄악을 담당하리라 ”
새 성전에서의 레위인들의 직무가 그들의 이전 행위에 대한 책망과 함께 기술됩니다.
레위 사람도 그릇 행하여 그 우상을 따라 나를 멀리 떠났으니 그 죄악을 담당하리라. - 레위 사람들은 우상 숭배에 앞장섰던 죄악(렘 2:8)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 직분을 박탈당하고 대신 더 천한 봉사직으로 격하되었습니다(11, 13, 14절).
한편 여기서 책망 대상이 된 레위인은 성전의 모든 잡일을 처리하는 일반 레위인이 아니라 제사 수행의 직책을 맡았던 제사장들을 가리키는 듯합니다.
이는 그 제사 직분이 사독의 자손에게 이임된 사실에서 입증됩니다(15절;43:19).
(2) 레위인들의 범죄 결과 직분이 격하 됩니다(11절)
“[11] 그러나 그들이 내 성소에서 수종들어 성전 문을 맡을 것이며 성전에서 수종들어 백성의 번제의 희생물과 다른 희생물을 잡아 백성 앞에 서서 수종들게 되리라”
10절에서 언급된 그 죄의 결과가 구체적으로 기술된다. 본절은 문장 초두의 '그러나'가 암시하듯 레위인들의 범죄 결과가 그들의 완전한 파멸이 아닌 직분의 격하에 국한된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에 대한 지속적인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드러내줍니다(딤전 1:12 비교).
백성 앞에 서서 수종들게 되리라. - 이러한 직무는 민 16:9에서도 언급된 바 있듯이 일반 레위인들의 직무였습니다(대상23:2-5,24-32;26:20-28;대하 29:34).
(3) 하나님의 필연적인 형벌을 강조합니다(12절)
“ [12] 그들이 전에 백성을 위하여 그 우상 앞에서 수종들어 이스라엘 족속이 죄악에 걸려 넘어지게 하였으므로 내가 내 손을 들어 쳐서 그들이 그 죄악을 담당하였느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내 손을 들어 쳐서(나사티 야디) - 이는 문자적으로 '내 손을 들다'란 뜻입니다.
'손을 드는' 행위는 맹세나 서약의 표시로 손을 드는 히브리의 관용적 용례(20:5, 6)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특별하게 죄에 대한 하나님의 필연적
인 형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4) 지성물에 가까이 가지 못하게 합니다(13절)
“[13] 그들이 내게 가까이 나아와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지 못하며 또 내 성물 곧 지성물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그들이 자기의 수치와 그 행한 바 가증한 일을 담당하리라”
곧 지성물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 '지성물'(카드쉐 하카다쉼)은 문자적으로 '거룩한 것들 중에 거룩한 것들'로 번역되며 '가장 거룩한 성물'이란 뜻입니다.
이는 희생 제사시 여호와께 바쳐지는 거룩한 부분을 가리킵니다(민 4:19).
이 지성물에 가까이 가지 못한다는 것은 곧 그들이 제사의 직분을 수행하지 못하게 됨을 시사합니다(Delitzsch).
(5) 죄의 결과로 격하된 레위인들의 직무입니다(14절)
“[14] 그러나 내가 그들을 세워 성전을 지키게 하고 성전에 모든 수종드는 일과 그 가운데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맡기리라”
그 죄의 결과로 격하된 레위인들의 직무가 11절과 동일하게 반복되고 있습니다.
4. 인정받은 사독의 자손들(15~31절)
1) 사독 제사장의 직무(15~16절)
“[15]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 행하여 나를 떠날 때에 사독의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들은 내 성소의 직분을 지켰은즉 그들은 내게 가까이 나아와 수종을 들되 내 앞에 서서 기름과 피를 내게 드릴지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6] 그들이 내 성소에 들어오며 또 내 상에 가까이 나아와 내게 수종들어 내가 맡긴 직분을 지키되”
새 성전에서 제사장직을 담당할 사독계 제사장들의 의무가 27절까지 기술됩니다.
사독의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들은 내 성소의 직분을 지켰은즉 그들은 내게 가까이 나아와 수종을 들되. - 사독은 아론의 자손으로서(대상 6:50-53) 다윗 왕 당시에 아비아달과 함께 제사장직을 수행했었습니다(삼하8:17;15:24이하).
압살롬 반역 사건 때는 다윗에게 충성을 다했으며(삼하 15:24 이하) 그 후 아비아달이 아도니야를 지지한 데 반해 사독은 다윗이 후계자로 지목한 솔로몬을 후원함으로써(왕상 1:7, 26, 32 이하) 결과적으로 왕이 된 솔로몬에 의해 유일한 대제사장으로 발탁되었습니다(왕상 2:26, 27, 35).
이처럼 사독 계통은 대제사장직을 안티오커스 4세가 베냐민 지파의 메넬라우스(Menelaus)에서 넘겨 줄 때(B.C. 171)까지 독점하였습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그 후 쿰란 공동체에 소속되었던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 사독 계열의 제사장직의 회복을 원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암시하듯 사독 계통의 제사장 직분이 본서에 특별하게 다시 예시되고 있는 것은 그들의 신실함과 동시에 사독이 다윗 왕에 의해 발탁되었다는 점에서 다윗의 왕권을 가진 한 목자에 대한 약속과 잘 부합됩니다(34,:23, 24).
다시 말해서 새 성전에서 제사장직을 수행할 사독의 자손들은 다윗의 왕권을 승계할 메시야 기대에 그 영적 제사를 수행할 자를 상징합니다(Fairbairn, Delitzsch).
내 상에 가까이 나아와. - 여기서 '상'(슐하니)은 성소 안에 있는 '향단'을 가리킨다. 따라서 그 향단에 가까이 나아간다는 것은 곧 거룩한 성소 안에서 제사장직을 수행하게 될 것이란 의미입니다.
2) 제사장의 의복(17~19절)
(1) 양털 옷을 입지 말고 가는 베 옷을 입을 입습니다(17~18절)
“[17]그들이 안뜰 문에 들어올 때에나 안뜰 문과 성전 안에서 수종들 때에는 양털 옷을 입지 말고 가는 베 옷을 입을 것이니 [18]가는 베 관을 머리에 쓰며 가는 베 바지를 입고 땀이 나게 하는 것으로 허리를 동이지 말 것이며 [19]그들이 바깥뜰 백성에게로 나갈 때에는 수종드는 옷을 벗어 거룩한 방에 두고 다른 옷을 입을지니 이는 그 옷으로 백성을 거룩하게 할까 함이라 [20]그들은 또 머리털을 밀지도 말며 머리털을 길게 자라게도 말고 그 머리털을 깎기만 할 것이며”
사독계 제사장들이 지켜야 할 구체적인 규례의 시작입니다.
양털 옷을 입지 말고 가는 베 옷을 입을 것. - 베옷을 입는 것은 모세 율법에도 명시된 바 있습니다(출 28:39 이하;39:28;레 16:4, 23).
한편 '양털 옷'(체메르)은 '털이 많다'란 뜻의 어근에서 파생된 말로서 일종의 '털 옷'을 가리킵니다.
이의 착용 금지 규정은 두터운 방한용 의복을 가리키는 '땀나게 하는 것'(예차, 18절)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곧 담은 제의상 부정하고 불경한 것으로 취급되었으며 그렇게 땀을 내게 하는 두터운 의복들은 거룩한 제의상 합당치 않은 것이었습니다(Delitzsch, Schroder).
실로 이러한 옷에 관한 규례는 거룩한 제사를 수행하는 제사장들의 영적, 육적 정결의 유지를 암시합니다(롬 6:13).
(2) 제사장의 옷은 거룩함으로 거룩한 방에 두었습니다(19절)
“[19]그들이 바깥뜰 백성에게로 나갈 때에는 수종드는 옷을 벗어 거룩한 방에 두고 다른 옷을 입을지니 이는 그 옷으로 백성을 거룩하게 할까 함이라”
본절에 대해서는 42:14 주석을 참조하라.
제사장들이 제사시의 예복과 평상복을 엄격하게 구분해야 함을 지시하는 구절로, 그들의 직무의 거룩성을 보여줍니다.
제사장은 평상복을 입고 제사를 드릴 수 없듯이 제사 예복을 입고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없기 때문에 제사 직분을 마친 후 이 '거룩한 방'에서 이 예복을 벗어 보관시키고 평복으로 갈아입은 후에야 바깥 뜰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한편 여기서 '성소에 들어갔다가'의 '들어갔다가'(베보암)는 제사장들이 제사를 집행하기 위해 제단이나 성소에 오는 것을 가리킵니다(Delitzsch).
3) 제사장의 머리 모양(20절)
“[20]그들은 또 머리털을 밀지도 말며 머리털을 길게 자라게도 말고 그 머리털을 깎기만 할 것이며 ”
머리털을 밀지도 말며 머리털을 길게 자라게도 말고. - 이러한 머리에 대한 금지 규례는 이미 율법에 명시된 바 있습니다.
곧 전자의 행위는 죽은 자에 대한 애통을 표현하는 이방적 풍습인 까닭에 금지된 바 있으며(레 21:5), '길게 자라게'(예쉴레후)는 원어상 '느슨하게 하다', '풀어 헤치다'란 뜻으로 그 금지 규례는 레 10:6에 기술된 것처럼 그 머리를 제멋대로 자라게 놔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머리털을 깎기만 할 것이며. - 곧 창조자의 창조 의도에 따라 지극히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상태를 유지하라는 의미로서(고전 11:14) 이는 그 창조자 되신 하나님께 백성을 대표해서 거룩한 제사를 드릴 제사장들의 합당한 자세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Schroder).
4) 포도주 금지(21절)
“[21] 아무 제사장이든지 안뜰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를 마시지 말 것이며”
포도주를 마시지 말 것이며. - 이미 레 10:9에 명시된 바 있는 이 규례는 나실인의 경우와 같이 세상과의 단절이나 완전한 헌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거룩한 안뜰에 들어가는 자로서의 그 영혼의 성결과 하나님의 거룩을 대하는 신앙 정신을 가지게 하기 위함입니다(Schroder).
5) 제사장의 결혼(22절)
“[22] 과부나 이혼한 여인에게 장가 들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족속의 처녀나 혹시 제사장의 과부에게 장가 들 것이며 ”
제사장의 아내 선택에 관한 규례이며 이러한 규례는 특별하게 구별되어 성전의 거룩한 직무를 수행하는 제사장들에게 있어 그들의 결혼 생활 또한 무흠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모세 율법에서는 제사장에 있어 부정한 여인과 이혼한 여자와의 결혼 금지를(레 21:7), 대제사장은 이에 더하여 과부와의 결혼 금지와 처녀와의 결혼 규례를(레 21:14) 구별하여 명시했었으나 여기서는 그것을 모든 제사장들에게 포괄적으로 적용시키고 있으며 특별하게 제사장의 과부와의 결혼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6) 제사장의 직무(23~24절)
“[23] 내 백성에게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별을 가르치며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분별하게 할 것이며 [24] 송사하는 일을 재판하되 내 규례대로 재판할 것이며 내 모든 정한 절기에는 내 법도와 율례를 지킬 것이며 또 내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며”
23절과 24절은 제사 업무를 제외한 제사장들의 일반적인 직무를 기술합니다.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별을 가르치며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분별하게 할 것이며. - '가르치며'(야라)는 '겨누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다'란 문자적 의미로 어떤 사실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가리키기 위해 손가락을 뻗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분별하게'(야다)는 '알다', '깨닫다'란 문자적 의미를 가지는 바, 본 구절은 제사장들이 백성들에게 그들이 준행해야 할 하나님의 규례와 교훈들을 정확하고 올바르게 가르치고 깨닫게 함으로써(22:26 비교;레 10:10;신 17:10-12;33:10) 그들로 하여금 바른 영적 안목과 영적 분멸력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성결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사실을 지시하는 것입니다(말 2:7).
송사하는 일을 재판하되 내 규례대로 재판할 것이며. - 이는 이스라엘의 신앙 공동체적 특성을 보여주는 구절로 신정 체제 하에서 제사장의 직무가 종교적 관할권 외에 교육(23절), 사법권(신 17:8 이하;19:17)에까지 포괄적으로 적용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한편 그 재판의 준거가 하나님의 정하신 규례라는 점에서 종교적 성결과 더불어 사회 정의의 실현 또한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의 필수적인 요소임을 암시합니다.
모든 정한 절기에는 내 법도와 율례를 지킬 것이며 또 내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며 - 이는 레 23장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7) 제사장의 정결(25~27절)
(1) 시체를 가까이 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마라(25절)
“[25] 시체를 가까이 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못할 것이로되 부모나 자녀나 형제나 시집 가지 아니한 자매를 위하여는 더럽힐 수 있으며 ”
죽은 자로 인한 부정의 발생과 그 부정에서 정결케 되는 규례가 27절까지 이어진다.
시체를 가까이 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못할 것이로되. - 율법에 있어 시체는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었는데(레 21:1-4;민 6:6, 7;19:11-19), 이는 죽음이 곧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단절시킨 죄의 결과로 주어진 형벌이기 때문입니다(창 3:19).
제사장은 그러한 부정한 시체로부터 자신의 성결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부모나 자녀나 형제나 시집 가지 아니한 자매를 위하여는 더럽힐 수 있으며. - 모세 율법에서는 이러한 근친의 시체라 할지라도 대제사장만은 그 부정의 허용에서 제외되었습니다(레 21:11).
그러나 본서에서는 모든 규례들이 그러한 구분 없이 제사장에 적용되고 있습니다.
(2) 시체를 만져 부정하게 된 자가 정결하게 되는 기한은 7일입니다(26절)
“[26] 이런 자는 스스로 정결하게 한 후에 칠 일을 더 지낼 것이요 ”
모세 율법보다 한층 더 강화된 정결 규례가 주어집니다.
율법에 있어서 시체를 만져 부정하게 된 자가 정결하게 되는 기한을 칠 일이었습니다(민 19:11 이하).
따라서 본 구절은 그 정결례 기간이 지난 후 칠 일의 기한을 더 설정함으로써 새 성전에서의 거룩과 성결을 특별하게 강조합니다(Delitzsch).
(3) 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속죄제를 드려야 합니다(27절)
“[27] 성소에서 수종들기 위해 안뜰과 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속죄제를 드릴지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속죄제를 드릴지니라. - 새 성전의 제사장들은 그 부정에 대한 정결의 기한이 끝났을지라도 그들의 제사 직분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속죄제(레 4:3-12)를 드려야 했습니다.
8) 제사장의 몫(28~31절)
(1) 산업을 주지 말라(28절)
“[28] 그들에게는 기업이 있으리니 내가 곧 그 기업이라 너희는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그들에게 산업을 주지 말라 내가 그 산업이 됨이라 ”
새 성전에서 제사장들이 준수해야 할 규례의 진술에 이어 본절부터는 그들이 그렇게 봉사한 대가로 주어질 분깃을 말합니다.
한편 본절에서 기업(나할라)은 이스라엘 각 지파가 하나님께로부터 약속받고 분배 받은 토지를, 산업(아후자)은 각 사람의 생계유지에 필요한 소유물들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본절은 새 성전의 제사장들 또한 이전과 같이 아무런 토지나 재산을 분배받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민 18:20;신 10:9;18:1).
그러나 그 제사장들에게 하나님이 직접 그들의 분깃이 되시리라는 말씀을 통해 제사장들의 탁월한 위상을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Schroder).
(2) 그들은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제물을 먹습니다(29절)
“[29] 그들은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제물을 먹을지니 이스라엘 중에서 구별하여 드리는 물건을 다 그들에게 돌리며 ”
본절과 30절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분깃이 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진술합니다.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제물을 먹을지니. - 이러한 제사의 제물들은 모두 제사장들의 응식(應食)으로 돌려질 것입니다(레 10:12-15;민 18:8-10;신 18:8 참조).
한편 '번제'는 희생 제물을 완전히 불태워 드리는 제사인 점에서, '화목제'는 그 제물을 제사장뿐 아니라 모든 가족들이 함께 먹는 것이란 점에서 각각 제사장의 응식이 되는 제사가 아니었습니다.
구별하여 드리는 물건 - 여기서 '구별하여'(헤렘)는 원어상 '격리하다', '성별하다'란 뜻의 '하람'에서 유래된 말이므로 본 구절은 백성들이 자신의 소산 중에서 성별하여 하나님께 바친 모든 예물들을 가리킵니다(레 27:28).
(3) 제사장들의 분깃들입니다(30절)
“[30]또 각종 처음 익은 열매와 너희 모든 예물 중에 각종 거제 제물을 다 제사장에게 돌리고 너희가 또 첫 밀가루를 제사장에게 주어 그들에게 네 집에 복이 내리도록 하게 하라 ”
거제 제물을 다 제사장에게 돌리고 - '거제'(테루마)는 제사장이 그 예물을 제단 위에서 높이 들었다가 내려놓는 제사로 하나님께 바쳐진 것을 다시 제사장이 하나님께로 부터 받는 것을 상징합니다(출29:28;레7:14, 32;민 15:19-21).
밀가루(아리사) - 이는 문자적으로 '빻은 가루', '가루 반죽'이란 뜻입니다.
혹자는 이를 '껍질을 벗긴 곡식'(Gesenius)이나 그냥 '곡식'(Meier)으로 이해하
나 그보다는 '첫'이란 말과 함께 제사 때 거제의 제물로 드려진 '처음 익은 곡식의 가루 떡'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민 15:20, 21).
네 집에 복이 임하도록 하게 하라. - 본 구절이 '네'를 포함해 28절부터 지시된 2인칭 대명사는 제사장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예물을 드림으로써 제사장들이 그 분깃을 받도록 해야 할 책무가 있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킵니다(말 3:10 참조).
(4) 제사장이 머지 말 것입니다(31절)
“[31]새나 가축이 저절로 죽은 것이나 찢겨서 죽은 것은 다 제사장이 먹지 말 것이니라”
레 22:8의 반복입니다.
여기서 죽은 것(네벧라)은 문자적으로 '시체'를 뜻하며 자연사한 시체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찢긴 것(테레파)은 '동물들에 의해 물려진 찢긴 시체'를 가리킵니다(4:14;출 22:31).
이는 율법에서 일반 이스라엘 백성이나 타국인이 먹었을지라도 부정한 것으로 언급되었습니다(레 17:15).
그러므로 거룩한 성결을 유지해야 하는 제사장들에게 있어서는 더욱 삼가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또한 제사장들이 여호와께 드려진 예물을 그들의 분깃으로 받는다는 점에서 그러한 부정한 것들이 결코 여호와께 드려지는 예물이 될 수 없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Ewald).
묵상 Point
1) 하나님께서 머무시는 성전
에스겔 선지자는 성전 동쪽 외곽문이 잠긴 것을 보았다.
하나님이 이 문을 통해 들어가셨으니 아무도 그 길로 들어가지 말고 문은 당아두라는 명령을 듣는다.
하나님이 이제 이곳을 떠나지 않으시겠다는 뜻이다.
그분이 거하시는 성전은 거룩하니 하나님이 밟으신 문지방을 사람이 밟아서는 안 된다고 하신다.
성전인 성도 안에, 교회 안에 주께서 영원히 거하시겠다는 이 약속이 얼마나 감사한가.
어떻게 하면 그분의 거룩하심에 어울리는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인격과 삶의 변화는 없고 형식적인 종교 의식만 남은 성전은 여전히 인정하시지 않을 것이다.
말씀을 듣고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는 거룩한 영적 레위인들이 예배하는 곳만 여호와께서 임재하시는 성전이 될 것이다.
2) 예외 없는 거룩함
전에 이스라엘은 언약을 어기고 성전 백성으로서 해서는 안되는 가증한 일을 서슴지 않았다.
마음과 몸에 할례를 행하지 않은 이방인들을 제사장만 들어올 수 있는 성전에 들어오게 했고 성물을 맡는 직분까지 말겼다.
레위 제사장들은 백성을 올바른 길로 인도할 책무를 저버리고 우상 앞에서 수종들었다.
이제 하나님은 그들의 권한을 빼앗아 사독 가문의 제사장만 허용하신다.
레위인에게도 성전에서 시중드는 일만은 허락하신 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귀천이 있을 수 없다.
교회 안팎의 구분도 없다.
오직 거룩한지 그렇지 않은지, 순종하는지 그렇지 않은지의 구분만 있을 뿐이다.
3) 구별된 삶을 요구받는 제사장
제사장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고,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입어서는 안 되는 것도 있고, 먹어서는 안 되는 것도 있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을 구분하는 것은 자시의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서다.
제사장의 세 가지 중요한 사역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법을 가르치고, 하나님의 규례대로 재판하며, 스스로 율법과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다.
이것은 공동체의 거룩함을 유지하기 위한 사역이다.
그렇게 살기만 하면 하나님은 산업이 없어도 그들이 살 수 있도록 책임져주신다.
평생 복을 비는 자로 살게 하신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제 세상 앞에 제사장이 되어 스스로 거룩하게 지키고 세상을 거룩하게 해야 한다.
평생 복을 비는 자로 살아도 주님께서 먹여 살려주실 것을 믿으며 살아야 한다.
말씀 가이드
에스겔에게 보여주신 성전의 목적은 결국 예배의 회복이다.
성전 안에서 드려지는 예배가 부정 물들었기 때문에 성전이 무너졌다.
성전이 회복되려면 그 안에서 드려지는 예배가 회복되어야 한다.
성전 앞에서 에스겔에게 주셨던 말씀들을 통해 우리 예배의 기초들을 점검해보자.
들어오신 흔적. - 하나님의 영광이 들어온 성전의 동쪽 문은 항상 닫아둬야 한다.
출입이 통제된 문을 보며 무엇을 떠올려야 할까.
하나님이 내 삶에 들어오신 흔적, 그 리고 다시는 떠나지 않으시겠다는 단단한 약속이다.
예배란 에스겔 성전의 동쪽 문을 묵상하는 일이다.
엎드림과 주목. - 하나님의 영광에 압도된 에스겔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다.
하지만 그가 고개를 들어 “주목하여”(5절) 성전을 통해 전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들을 지켜 행해야 한다.
눈을 감고 예배에 취해야 할 때가 있고 눈을 들어 예배를 몸으로 구현해내야 할 때가 있다.
사독 제사장처럼. - 레위 지파 중 유일하게 정절을 지켜 제사장으로임명되는 사독 가문은 우상숭배의 머리 스타일을 해서는 안 되고, 복잡한 예배 과정을 정확히 수행할 수 있도록 술을 멀리해야 한다.
엄청난 사명을 맡은 이들에게 주어진 의무는 작고 촘촘하단 사실을 기억하자.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니 마음껏 그분의 임재에 잠기고 또한 마음 다해 그분이 하시는 일에 동참하자.
무심코 휩쓰린 세상의 일과 습관들이 하나님이 맡기신 성전을 어지럽힐 수 있음을 잊지 말자.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5절 성전 동쪽 문을 하나님의 거룩한 문으로 지정하시고 닫아두라고 명하십니다.
왕조차 안 길을 통해 이 문 안쪽으로 들어와 거기서 먹고 다시 안 길을 통해 나가야 합니다.
에덴의 선악과를 창조주와 피조물의 정체성을 기억하는 장치로 두셨던 것처럼, 성전의 지성소와 동문을 기억의 장치로 삼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막힌 담을 허시고(엡 2:14) 우리에게 친밀한 아버지로 다가오셨지만, 여전히 우리에게는 기억하고 지켜야 할 정체성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행위가 하나님의 거룩을 훼손하지 않도록 조심합시다.
6-14절 제사장 직무를 잘못 수행했던 레위 사람들에게 책임을 지우십니다.
그들이 이방인에게 성전 직무를 맡김으로 성전을 더럽히고, 우상 앞에서 수종 들어 백성을 걸려 넘어지게 한 책임을 물어 그들의 제사장 직분을 박탈하십니다.
나는 주님이 맡기신 직무를 어떻게 감당하고 있습니까?
혹시 제 일을 소홀히 해서 다른 사람의 짐을 무겁게 하지는 않습니까?
15-31절 사독의 후손 레위 사람에게 제사장 직분을 맡기십니다.
이들은 백성이 그릇 행하여 하나님을 떠날 때에도, 레위 제사장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도 묵묵히 성소에서 맡은 직분을 수행한 자들입니다.
이들은 약속을 따라 다윗과 함께했고, 권력의 암투 속에서도 솔로몬에게 충성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일들을 기억해주십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마 25:26)은 직분을 박탈당할 것이나, ‘착하고 충성된 종’(마 25:21)은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게 될 것이니, 우리에게 맡기신 일에 충성합시다.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5-31절 제사장이 지켜야 할 규례와 직무, 기업은 뭇 백성과 구별되었습니다. 그들의 복장, 머리 모양, 음식, 결혼, 정결 행동까지 규정 안에 제한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수종들고, 백성을 가르치고 재판하는 그들의 직무 때문에 엄격한 규정을 따라 살았습니다.
지금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이런 규정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제사장적 소명을 따라 세상을 위해, 그리고 믿음이 약한 자들을 위해 스스로 삶의 모양을 단정하게 꾸려갈 책임이 있습니다(참조. 고전 8장).
[기도]
공동체-하나님을 수종 들고, 백성을 섬기는 그리스도인의 직무를 성실히 감당하게 하소서.
열방-캐나다 성공회의 교세가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2040년에는 소멸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교회와 교인들이 구령의 열정을 회복하여 캐나다 성공회 교회가 부흥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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