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 론
트릭스터라는 인물 유형은 설화에 등장하는 인물 중 가장 오래된 인물 중에 하나이면서 어떠한 문화에서든지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인물이다. 트릭스터는 이야기꾼에게는 청중의 관심을 끌 수 있게 해주는 친구이고, 듣는 사람에게는 잠깐동안이라도 걱정과 근심을 잊고 웃을 수 있게 해주는 주인공이며, 학자에게는 인류학의 수수께끼를 푸는 데에 필요한 열쇠 중 하나다. 과연 트릭스터라는 인물은 어떻게 수 천년의 인간의 역사에서 우리를 매혹시켜왔을까? 학자들은 오랫동안 이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여 왔으나 그 대답은 단순하지 않고 트릭스터의 어느 한 측면이나 양상에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에서의 트릭스터 연구는 아직도 초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에서 한국 설화에 등장하는 트릭스터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지 이제 20년이 되었으나, 그 동안의 연구 성과는 그리 많지 않으며, '트릭스터'라는 용어 자체가 혼란을 초래하여 연구의 범위나 초점이 부적절한 방향으로 이루어진 측면도 없지 않다. 그래도 최근에 트릭스터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는 것 같고 2001년도에는 트릭스터를 주제로 한 박사학위논문이 처음으로 발표되기도 했다. 따라서 이번 학회를 계기로 하여 한국 트릭스터 연구를 점검하고,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고려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본고에서는 먼저 한국 트릭스터 연구의 현황을 살피고 거기에 나타난 문제점을 제기한 후, 그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자 한다.
2. 본 론 1. 한국 트릭스터 연구의 현황
한국 트릭스터 연구는 크게 트릭스터 인물의 양상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루고, 트릭스터담의 구조와 기능에 대한 연구도 함께 이루어졌다. 모든 연구에 있어서 트릭스터 인물의 양상으로 속임수가 공통적으로 논의되었으며, 그 이외의 양상에 대한 논의는 다음과 같다. 김열규는 트릭스터의 이중인격과 모순성에 대해 지적하면서, "<트릭스터>의 특성은 그가 二重人格의 인물이란 데에 있다. 그것도 等價的인 모순성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라"고 하였으며 조희웅은 중간적 존재라는 점을 들면서 "그 현저한 특징으로는 神과 인간; 자연과 문화; 창조와 파괴; 혼돈과 질서; 총명과 우둔 따위의 兩義性을 띠게 되어, 그는 자연 양자의 중간적 존재, 즉 매개자로서 활동한다"고 하였다. 이한길의 경우에는 "食의 상상력"과 "변신"이라는 측면도 살펴보았다. 이한길은 또한 아전담(衙煎談)의 검토를 통해 트릭스터담의 서사 구조를 속음과 속임의 서사구조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류정월은 <청구야담>을 중심으로 하여 트릭스터담의 문화기호학적 의미를 살펴보았고, 김기호는 호랑이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여 트릭스터담의 구조, 특히 트릭 이야기의 구조와 함께 트릭스터담의 기능을 논의했다. 한국 트릭스터로서 거론되고 있는 인물로는 김열규가 토끼를 대표적인 한국 트릭스터로 내세웠으며, 필자 역시 이에 동의하고 졸고에서 <토끼전>의 토끼를 중심으로 트릭스터에 대해 논의하였다. 조희웅은 여러 설화를 통해 한국의 트릭스터 인물들을 개관하였는데, 토끼 외에도 메추라기를 동물 트릭스터로 부각시켰으며 인간 트릭스터로는 정만서, 김선달, 방학중, 정수동, 오성과 한음 등을 언급했다. 또한 신화적 인물인 주몽, 석탈해, 석가, 토한 민담에 나타나는 도깨비가 트릭스터라는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김기호는 호랑이를 중심으로 하여 트릭스터담을 연구하였으며, 그 외에도 신화에 나타나는 주몽, 탈해, 석가와 민담에 나타나는 도깨비와 토끼, 전설에 나타나는 방학중, 정수동, 김선달 등을 트릭스터로 언급하였다. 한편, 외국의 연구에서는 한국 트릭스터로 호랑이에 대한 연구 논문이 발표된 바 있다 위의 연구들에 있어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특징은 트릭스터의 다양한 측면 중에서도 속임수에 초점을 맞추어왔다는 점이다. 김열규는 트릭스터의 특징이 이중인격의 인물이라는 점에 있다고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트릭스터에 관한 구체적 논의에 있어서는 "속임수의 名手들"이라는 제목 하에 속임수에 집중하였다. 조희웅 역시 트릭스터의 兩義性에 대하여 논의하면서도 주로 속임수가 중심이 되는 지략담을 살펴보았다. 이한길은 트릭스터의 식욕과 변신기술 등의 측면을 살펴보기도 했으나, 트릭스터 이야기의 구성을 트릭의 구조로 보았고, "속이고 속는 것은 트릭스터의 기본적인 특징"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류정월은 "트릭스터는 속임수를 통해서 서사의 여타 등장 인물과 다른 자신의 특징을 나타내는 인물이다. 그리고 트릭스터담은 트릭스터가 자신의 세계관을 드러낼 수 있는, 속임수라는 사건이 주된 모티프를 이루는 이야기 유형이다"라고 할 정도로 속임수를 중요시하고 있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하면, 한국의 트릭스터로 호랑이와 토끼를 비롯하여 다양한 인물이 거론되었으며, 트릭스터 연구는 주로 속임수에 초점이 맞추어 진행되어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속임수가 트릭스터의 중요한 특징인 것은 분명하나, 트릭스터의 다양한 성격 중에서 일부분만이 부각되는 것은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이제는 속임수의 중요성을 염두에 두면서 다른 양상에 대한 연구를 이루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에 트릭스터 연구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서 트릭스터라는 인물에 대해서 재고하고 여러 가지 질문과 제안을 제시하기로 한다.
2. 한국의 트릭스터
트릭스터라는 말이 처음부터 학문적인 용어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트릭스터라는 말은 18세기부터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속임수를 사용하는 자; 무뢰한(無賴漢); 협잡군; 악한(惡漢)"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었다. 이 용어가 문학적인 인물을 가리키기 시작한 것은 19세기말부터인데, 북미원주민 크리(Cree)족 설화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인 '위삭겟작(Wissaketjak)'이 '트릭스터', 혹은 '속이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 것을 보고 브린톤(Daniel Brinton)이 문학 용어로 처음 사용했다. 또한 20세기 중반에 라딘(Paul Radin)의 연구에서는 위느배고(Winnebago)족 설화의 '왁준카가(Wakdjunkaga)'라는 이름을 '트릭스터'로 번역한 바가 있다. 이렇게 해서 트릭스터라는 용어가 문학적인 용어로 자리잡게 되었고, 이후 100년이 넘도록 사용되어왔다.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단어를 문학적 인물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하는 것은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원래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단순하고 일면적인 이 단어는 복잡한 인물의 여러 성격 중에서 한 측면만 부각시킨다. 그래서 트릭스터에게 다른 측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트릭스터의 속임수와 관련된 측면이 가장 기본적이거나 중요한 점이라고 생각하기가 쉽다. 그러나 트릭스터에게는 속임수 외에도 여러 가지 성격이 나타나며, 속임수는 트릭스터의 다양한 측면 중 가장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성격일 뿐이다. 트릭스터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속임수가 아니라면 왜 "교활한 자" 혹은 "사기꾼"이라는 이름으로 불릴까? 그에 대한 대답은 다음과 같이 추론해 볼 수 있다. 위삭겟작이나 왁준카가라는 이름을 지은 자들은 학자가 아니라 이야기꾼이었다. 이야기꾼에게는 청중의 관심을 끌고 그들에게 이야기를 재미있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인물의 이면보다는 청중들이 쉽게 알아내고 이해할 수 있는 표면적인 특징을 선택해서 이름을 지었을 것이다. 물론 트릭스터에게는 복잡하고 다양한 성격이 있으며 이야기꾼들도 이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것이나, 가장 표면적으로 잘 드러나고 설명이 쉽게 되는 특징이 속임수의 관한 것이다. 그러나 가장 잘 드러나거나 설명이 가장 쉽게 되는 특징이 반드시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는 없다. 만약 속임수가 트릭스터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고 한다면 다음과 같은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첫째, 트릭스터담 중에는 속임수와 관련되지 않은 이야기도 상당수 있다. 사실 트릭스터담은 트릭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트릭스터에 대한 이야기이며, 트릭스터의 성격이 모두 속임수와 관련된 것이 아니듯이 트릭스터담도 모두 속임수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속임수와 관련되지 않은 트릭스터담으로 북미원주민 트릭스터담 중에 "서투른 주인"(Bungling Host)이라는 유형을 한 예로 들 수 있다. 이 이야기에서 트릭스터는 이웃집을 방문하여 대접을 받는데, 그 주인(host)이 신비로운 방법으로 음식을 획득하는 것을 보고 그 행동을 모방한다. 위느배고족 이야기에서는 이 삽화가 4번 반복되는데 사향쥐가 얼음으로 수련의 뿌리를 만드는 이야기, 도요새가 끈을 들고 물고기의 아가미를 통과하여 고기를 잡는 이야기, 딱따구리가 집의 기둥을 쪼아서 곰을 떨어지게 하는 이야기, 스컹크가 방귀를 뀌어서 사슴을 잡는 이야기 등이다. 트릭스터는 음식을 마음껏 먹고 다시 그 주인을 자기 집으로 초대한다. 그 다음날 이웃(주인)이 트릭스터 집에 방문하면 트릭스터는 그 이웃이 사용한 신비로운 방법을 모방해서 음식을 획득하려고 하지만 실패한다. 그래서 결국엔 이웃이 그 신비로운 방법을 다시 사용해서 음식을 마련해준다. 이 유형은 전혀 속임수와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다. 먹을 것을 얻기 위해서 이웃을 속이는 이야기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트릭스터는 처음부터 속일 의도가 없다. 그는 진심으로 이웃이 사용하는 신비로운 방법으로 자신도 음식을 얻을 수 있다고 믿으며 그 방법을 성실하게 시도한다. 또한 음식을 얻는 데 실패하면 정말 놀라면서 왜 자신은 성공하지 못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여기에서 속임수 외에 중요한 트릭스터의 측면이 드러나는데 이 측면에 대하여는 나중에 검토하기로 하겠다. 둘째, 속임수를 사용하는 인물이 모두 트릭스터인 것은 아니다. 속임수가 트릭스터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특징이라고 한다면 속임수를 사용하는 모든 인물이 트릭스터가 되겠지만, 이런 주장은 무리이다. 그 예로 <토끼전>에서는 두 주인공인 육지의 토끼와 수궁의 자라가 모두 뛰어난 기지로 속임수를 사용하지만, 그 둘 모두 트릭스터라고 할 수는 없다. 왜 그런지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속임수 외에 트릭스터의 다른 특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 자리에서 트릭스터에 대해 세세하게 논의할 수는 없지만, 우선 백년이 넘게 계속되어온 서양의 트릭스터 연구 성과를 간단하게 살펴봄으로써 여기서 제기한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을 수 있고, 또한 앞으로의 한국 트릭스터 연구의 바탕을 세우는 데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3. 서양에서의 트릭스터
서양에서 트릭스터가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말로, 크게 두 가지 이론이 있었는데, 그들 이론은 트릭스터의 聖과 俗의 이중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두 가지 특징 중에서 어느 것이 더 근본적인가에 대하여는 대립했다. 브린톤은 트릭스터가 원래 신성성을 가지고 있다가 미천한 모습으로 타락한 익살꾼으로 보았고, 보아스(Franz Boas)는 트릭스터가 본래 익살꾼이었으나 사회가 발달하면서 신성성을 지니게 되었다고 보았다.. 20세기 중반에 들어와서 클랩(Orrin Klapp)은 트릭스터 인물 중에서 "꾀 많은 영웅"을 부각시켰는데, 이는 약자의 대표로서 강자를 물리치는 영웅이라고 했다. 이 영웅의 기능은 한 마디로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이다. 레비스트로스(Claude L vi-Strauss)는 구조주의적 접근으로 트릭스터를 연구하면서 트릭스터의 이중성이나 兩義性에 주목하였으며, 트릭스터의 중개자로서의 역할을 부각시켰다는 데에 연구의 의의가 있다.
라딘은 트릭스터 연구를 한층 더 발전시켰으며 서양은 물론 한국 트릭스터 연구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 그는 트릭스터가 "고대적 정신의 거울"(archaic speculum mentis)로서 인간의 본성을 반영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위느배고족 트릭스터인 왁준카가 이야기를 검토하면서 트릭스터의 원형을 찾으려고 했는데, 흥미롭게도 그 원형의 세 가지 특징 중에 속임수는 없다. 라딘이 밝힌 트릭스터 원형의 특징은 바로 굶주림과 방랑벽, 性적인 것 등이다. 케렌니(Paul Ker nyi)는 어떠한 인물이라도 초월하는 트릭스터의 이데아 즉, 범주를 가정하여 트릭스터의 보편성을 강조했으며 트릭스터는 원시적 사회에서만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융(Carl Jung)은 정신분석학 접근을 통해 트릭스터가 인간의 미숙한 의식을 상징하며 이는 원시적 사회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60년대부터는 사회학적 접근을 통해 트릭스터를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터너(Victor Turner)가 liminality라는 중요한 개념을 도입함으로서 트릭스터 논의에 큰 기여를 하였다. Liminality의 어근은 limen인데 이는 라틴어로 "문지방"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liminality는 문지방과 같이 여기에 속하지도, 저기에 속하지도 않은 위치를 말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볼 때에 liminality를 지닌 인물은 사회적 규칙 즉, 율법이나 관례 등으로부터 자유가 있는 인물이다. 동시대의 더글라스(Mary Douglas)와 마카리우스(Laura Makarius) 등도 사회적 접근을 통해 트릭스터의 liminality를 인정하면서 각기 이론을 펼쳤다. 더글라스는 트릭스터가 장난꾼이며 금기를 위반하는 자와 다른 인물이며 그의 기능은 굳어진 사회적 관례를 흔들고 기존 사회체제에 도전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한편 마카리우스는 트릭스터가 실패하고 성공하는 것은 다 금기를 위반하기 때문이며 금기의 위반으로 인해 처벌을 받기도 하고, 금기를 위반함으로써 성스러운 힘을 얻게 되기도 한다고 했다. 두 이론은 서로 상치되는 점도 있으나, 기본적으로 트릭스터가 liminality를 지닌 인물로서 사회적 중개자의 기능을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밥콕아브라함스(Barbara Babcock-Abrahams)는 터너가 주장한 liminality를 인정하면서도 혼란을 피하기 위해 marginality('경계성' 혹은 '주변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그는 트릭스터의 특징으로 16가지 이중성을 열거했는데, 이러한 이중성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중의성과 역설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트릭스터는 자유를 추구하는 개인이면서도 사회제도를 필요로 하는 사회적 동물이라는 인간의 역설을 표현한다는 것이다. 리케츠(Mac Linscott Ricketts)는 트릭스터를 샤만과 비교하면서 트릭스터는 전형적인 인본주의자라고 한다. 샤만과 달리 트릭스터에게는 초인간적인 힘이 없으며 신의 도움 없이 살아갈 뿐만 아니라 신을 희롱하기까지 한다. 트릭스터는 인간의 지식과 힘에 대한 탐색과 인본주의적인 우주에 대한 인식을 상징한다고 하였다. 한편 80년대에는 기존의 트릭스터 연구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바이들맨(Thomas Beidelman)은 보편적인 트릭스터의 개념를 거부하였으며. 두에히(Anne Douehi)는 기존 트릭스터 연구의 "지배 담화"와 "문화적 진화론"을 비판하였다. 이들은 서양 중심적인 사고에 의해 진행되어온 이전의 연구에 대해 경고하면서, 토속문화에 외부의 이론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각 문화의 특수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었다.
90년대에 들어와서 하인스(William Hynes)와 도티(William Doty)는 보편성이나 특수성의 극단을 강조해온 기존의 이론을 반성하고, 보편성과 특수성이 균형을 이루는 연구를 하고자 하였다. 하인스는 트릭스터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트릭스터의 모호하고(혹은 중의적) 변칙적인 성격이며, 이러한 성격에 의해 트릭스터의 다른 특징들이 수반된다고 했다. 하인스는 또한 트릭스터의 사회적 기능에 대해서 논의하였는데 이는 오락적·교육적 기능, 사회적 좌절을 표출하는 기능, 신념체제를 재확인하는 기능, 인간의 본성을 반영하는 기능, 특정한 문화를 초월하는 창조의 기능, 질서에 도전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기능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해서 트릭스터 이론을 간략히 개관하였다. 물론 각각의 주장이 서로 다르고 상반되기도 하지만 그 논쟁 가운데에서도 잘 변하지 않은 주류를 찾을 수 있는데, 이는 바로 트릭스터의 이중성, 중의성, liminality, 경계성으로 표현되는 성격이다. 하인스가 말했듯이 이는 트릭스터의 모든 특징과 양상의 근원이다. 트릭스터는 확립된 질서나 체제 외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그 질서나 체제에 도전하면서도 그것을 재확인 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사실 때문에 <토끼전>의 트릭스터는 자라가 아니고 토끼이다. 자라는 양반을 상징하는 인물로서 봉건사회제도 속에 속하면서 군주인 용왕을 섬기는 것이다. 그러나 토끼는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으면서 사회 제도의 밖에 존재하는 인물이므로 트릭스터라고 할 수 있다. 한편, 트릭스터의 다른 특징으로 라딘이 말한 욕심과 융이 말한 미숙한 정신을 들 수 있는데, 앞에서 예로 소개했던 "서투른 주인" 유형에 잘 나타난다. 트릭스터는 식욕을 채우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지 못하고 남의 방식을 모방하는 것이다. 이는 정신의 미숙, 혹은 현실에 대한 인식의 부족 때문에 자신에게는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시도하다가 실패하는 것이다. 결국에는 속임수와 전혀 다른 트릭스터의 측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3. 결 론
한국 트릭스터 연구는 아직 초기에 있으며, 아직 연구해야할 과제가 많이 남아있다. 서양 연구의 100년 역사를 돌아보면서, 각 세대마다 학자들이 트릭스터에 대해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면서 기존의 연구를 토대로 해서 트릭스터를 재해석하고 새롭게 정의를 내려왔음을 알 수 있었다. 라딘은 트릭스터가 원시적인 정신을 번영한다고 했으나 융은 한 걸음 나아가 원시적 정신뿐 아니라 현대인에게서도 찾을 수 있는 정신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트릭스터 연구는 우리 자신을 연구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의의가 있고 시대에 적절한 것이다. 앞에서 서양 트릭스터 연구를 소개함으로서 한국 트릭스터 연구가 지향해야할 길을 찾는 데에 기여하기를 말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양 연구를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두에히가 주장하였듯이 외부에서 어떤 이론이나 사고방식을 강요하면 안 된다. 한국 문화가 다른 문화와 다른 것과 같이 한국 트릭스터도 다를 것이다. 본인의 연구에 따르면 위느배고족 트릭스터인 왁준카가와 <토끼전>의 토끼를 비교하였을 때, 유사점이 많았지만 차이점도 있었다. 왁준카가는 실패하여 웃음거리가 되는 경우가 많은 데 반해 토끼는 비록 처음에 자라에게 속았으나 이후에는 꾀를 내어 계속 성공한다는 점이나, 왁준카가는 실패하더라도 그 결과가 치명적이지 않으나 토끼는 죽을 위기에 처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결국 이러한 차이점은 사회 문화적 차이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위느배고 사회는 평등한 부족사회이므로 왁준카가가 맞서 싸워야할 강자도 없고 영웅으로서 대표할 만한 약자도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청중에게 재미를 선사하기 위해 왁준카가의 실패담이 주를 이루는 것이며, 실패의 결과 역시 재미의 차원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토끼전>이 정착되던 당시의 한국 사회는 엄격한 계층사회였으므로 강자와 약자가 뚜렷이 설정되어 있다. <토끼전>에 나타나는 인물들은 사회의 각 집단을 대표하는데, 용왕은 봉건사회 군주, 자라는 군주를 섬기는 귀족, 토끼는 불쌍한 서민을 위해서 싸우는 영웅이다. 그러므로 토끼는 약자를 대표하는 영웅으로서 절대 실패하면 안 되며, 강자에 맞서 싸워서 승리를 해야 한다. 이렇게 보면 토끼는 "전형적인" 북미원주민 설화의 트릭스터보다는 클랩이 언급한 "꾀 많은 영웅"에 더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는 문화 차이를 충분히 이해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물론 차이점에만 집중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문화간에 나타나는 트릭스터의 공통점도 있는데, 이는 문화나 사회를 초월하는 보편적 범주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범주는 케렌니의 이데아처럼 구체적인 트릭스터 인물들을 초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트릭스터 인물들의 집합이다. 따라서 연구에 임할 때에는 구체적인 한 인물에 대해서 연구하는지, 아니면 범주에 대해서 연구하는지 구별하고 두 양상의 균형을 잘 잡아야 할 것이다. 한국 트릭스터 연구는 그 동안 이룩되어 온 다양한 트릭스터 이론을 토대로 하여 한국 트릭스터의 이론을 확립하고, 트릭스터의 보편성과 함께 한국 트릭스터의 특수성을 밝혀나가는 데에 주력하여야 할 것이다. 한국 세계 트릭스터 연구 속에서 한국 트릭스터 연구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그리고 한국 트릭스터는 한국 사회와 문화에 있어서 어떤 의의가 있고, 현대인에게 무엇을 말해주는지를 밝혀내는 것이 한국 트릭스터 연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일 것이다.
아메리카 원주민 신화의 트릭스터- 코요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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