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임당 공식 초상화.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은 우리나라 최고액 화폐 오만원권의 인물로 선정되면서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평가를 절하하는 논조가 크게 일어났던 기억이 납니다. 이들 말대로 그녀가 전근대적 현모양처의 표상일 뿐이라는 이야기가 전혀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닌듯 합니다. 당시 조선 사회에서는 사대부들의 지탄을 받는 적지 않은 악녀(?)들이 있었으니, 연산군의 총희로 궁중을 농단한 장록수, 중종의 계비로 정권을 좌지우지하며 다시 불교를 끌어들인 문정왕후 그리고 여러 사내들을 유혹한 탕녀(?)의 혐의를 받았던 황진이 등등.. 따라서 남성들의 입맛에 맞는 착하고 헌신적인 여인상이 필요했는데, 이에 걸맞는 여인이었다는 거지요. 그러나 이의 진위여부를 막론하고 신사임당은 우리나라 성리학의 큰 별 율곡 이이를 키운 어머니인 것 만해도 칭송받아 마땅할 뿐만 아니라, 그림과 붓글씨 솜씨가 뛰어났고 한시에 조예가 깊었던 큰 예술가지요.
친정 어머니를 그리며
慈親鶴髮在臨瀛(자친학발재임영) 머리 하얀 어머니를 강릉에 두고
身向長安獨去情(신향장안독거정) 이 몸 서울을 향해 홀로 가는 마음
回首北村時一望(회수북촌시일망) 고개 돌려 때때로 북촌을 바라보니
白雲飛下暮山靑(백운비하모산청) 흰구름 날아 내리는 저물녁 뫼는 푸르기만
'대관령을 넘으며 친정집을 바라보고(踰大關嶺望親庭)' 란 제하의 시로 '눈물로 어머니를 이별하고(泣別慈母)'란 별칭이 붙어 있습니다. 신사임당은 친정에서 살면서 율곡을 낳고 키웁니다. 6살 나이의 율곡 손을 잡고 대관령을 넘어 시댁으로 가면서 읊은 절창이지요.
이후 시집살이를 하면서도 강릉에 홀로 남은 친정 어머니를 그리며 밤마다 눈물지었다고 합니다. 夜夜祈向月 願得見生前(밤마다 달을 향해 기도하며, 생전에 뵐 수 있기를 바란다)는 시를 지어 놓은 걸 보았다고 율곡의 저서에도 전합니다. 파주 시댁에 지낼 때 어머니를 그리며 지은 시(思親),
千里家山萬疊峰(천리가산만첩봉) 천리 고향산천 수많은 봉우리 겹겹
歸心長在夢魂中(귀심장재몽혼중) 오랜 꿈속에서도 돌아가고픈 마음
寒松亭畔孤輪月(한송정반고륜월) 寒松亭 물가에는 외로운 둥근달이
鏡浦臺前一陣風(경포대전일진풍) 鏡浦臺 앞에는 한줄기 바람이
沙上白鷺恒聚散(사상백로항취산) 모래 위에는 백로가 모였다 흩어졌다
波頭漁艇各西 東(파두어정각서동) 파도 위에는 고기잡이 배 서쪽로 동쪽으로
何時重踏臨瀛路(하시중답임영로) 언제나 강릉길을 거듭 밟아
更着斑衣膝下縫(갱착반의슬하봉) 다시 색동옷 입고 어머니 슬하에서 바느질할꼬
신사임당의 힘찬 초서(草書) 필치
사임당의 멋드러진 글씨가 강릉 오죽헌 율곡기념관에 '6폭초서병풍'으로 남아있기에, 한시 원문을 우리말 새김과 함께 소개합니다(다만 새김은 필자의 자의에 의한 해석이 다소 있으니 양해해 주시길..).
1폭(오른쪽) - 贈李唐山人 (이당산인에게 줌) / 당나라 대숙윤(戴叔倫,732~789) 시
此意靜無事(차의정무사) 내 마음 고요하고 일 없음에
閉門風景遲(폐문풍경지) 문 닫고 있으니 봄날조차 더디가네
柳條將白髮(유조장백발) 버들가지 버들솜으로 하얗게 되어
相對共垂絲(상대공수사) 마주하며 함께 실타래를 드리울테지
2폭(왼쪽) - 戱留顧命府 (장난삼아 고명부에게) / 당나라 대숙윤(戴叔倫) 시
江南雨初歇(강남우초헐) 강은 환하고 비는 막 개었지만
山暗雲猶濕(산암운유습) 산은 컴컴하고 구름은 아직 젖어
未可動歸橈(미가동귀요) 배를 타고 돌아가지 못할 거 같네
前溪風正急(전계풍정급) 앞 길에 풍랑이 거센 걸 보니
(오기 : 첫구 南→明, 4째구 溪→程, 正→浪 )
3폭(오른쪽) - 金陵*懷古 (금릉회고) / 당나라 사공서(司空曙, 720?~790)의 시
輦路江楓暗(연로강풍암) 임금님 행차길 강가엔 단풍만 우거지고
宮潮野草春(궁조야초춘) 궁궐 뜰에는 봄 잡초만이 (오기 : 潮 →庭)
傷心庾開府(상심유개부) 庾信*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
老作北朝臣(노작북조신) 늙어 北朝의 신하가 되다니
*金陵 : 난징(南京)의 옛이름으로 위진남진북조 시대 동진(東晉), 송(宋), 양(梁) 등의 왕도
*庾信 : 南朝의 梁에서 벼슬을 하였나 西魏에 사신으로 갔다가 억류, 西魏와 北周에서 두루 벼슬을 하였으며 관직이 驃騎大將軍과 開府儀同三司에까지 이르렀기에 ‘庾開府’라 부름
4폭(왼쪽) - 送張十八歸桐廬 (장씨 열여덟째가 桐廬로 돌아감을 전송하며) / 당나라 유장경(劉長卿)의 시
歸人乘野艇(귀인승야정) 돌아가는 사람 거룻배에 올라
帶月過江村(대월과강촌) 달빛 띠고 강마을을 지나네
正落寒潮水(정락한조수) 바로 조수가 들어오는 때라서
相隨夜到門(상수야도문) 따라가면 밤중에 문앞에 닿겠지
5폭(오른쪽) - 別東林寺僧 (동림사 스님과 헤어지며) / 당나라 이백(李白, 701~760)의 시
東林送客處(동림송객처) 동림사 손님을 전송하던 곳
月出白猿啼(월출백원제) 달뜨니 흰 잔나비 울고
笑別廬山遠(소별여산원) 웃으며 헤어짐에 여산은 먼데
何須過虎溪(하수과호계) 하필 호계(虎溪)*를 지나쳐 버렸나
*虎溪(三笑) : 중국 삼국시대 다음인 진(晉)나라 때, 불교 고승 혜원(慧遠,334~416)이 여산이 잘 보이는 산자락에 東林寺를 짓고 밖으로 한발짝도 나가지 않기로 합니다. 그런데 절친 도연명(陶淵明, 유교)과 육수정(陸修靜, 도교)가 찾아왔다 혜어지면서도 정신없이 이야기 하며 걷다 마지노선인 호계를 지나쳤답니다. 그러자 산속에서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려 호계를 지나쳤음을 알고 함께 웃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6폭(왼쪽) - 送王翁信還剡中舊居 (왕옹신이 옛 거처 섬중으로 돌아감을 송별하며) / 唐 황보효상(皇甫孝常)의 시
海岸畊殘雪(해안경잔설) 바닷가 언덕에서 남은 눈을 갈고
溪沙釣夕陽(사계조석양) 시내 모래밭에서 저녁 해를 낚지요
家貧何所有(가빈하소유) 집이 가난하여 가진 게 뭐 있겠오
春草漸看長(춘초점간장) 봄 풀 자라는 것이나 보고 있지요
신사임당 그림 몇점
첫댓글 사임당 글씨가 배꼽 만
이제는 보이슈?
@박영우 오랫만에 들어와 보니 아주 잘 보입니다.
땡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