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 나는 늘
‘지금 여기’라는 공간 속에 들어 있다.
거울 앞에서 명상을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나도, 거울도, 거울이 붙어 있는 방도 ‘지금 여기’라는 공간 속에 들어 있다.
‘지금 여기’는
내 육안의 시야에 들어오는 공간,
오감으로 인지되는 3차원 공간이다.
오감의 공간은
내가 몸을 벗어나면
환영으로 사라진다.
왜냐하면 오감은
몸에 붙어 있는 눈, 귀, 코, 피부를
통해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감의 공간 너머엔 뭐가 있는가?
육안에 보이는 이미지 너머엔?
아무 이미지도 보이지 않는다.
귀에 들리는 소리 너머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오감의 공감 너머엔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빔’뿐이다..
그렇다
오감의 공간은
바로 ‘지금 이 찰나’에만 존재한다.
이 찰나에만 존재하는 것을
싹 빼버리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감의 공간은
이 찰나에만 존재하는 환영이다.
반짝반짝 명멸하는 빛의 환영이다.
어디에 떠 있는 환영이가?
텅 빈 마음속의 환영이다.
내 몸도, 가족도, 집도, 지구도, 태양도, 무수한 별들도, 죄다 텅 빈 마음속에 떠 있는 환영이다.
나는 내 두뇌에
끊임없이 무의식적으로 입력되는
생각이 꾸면내는 환영을
육안을 통해 바라본다.
즉, 무의식에 억눌린 인격체들의
생각에 꾸며내는 환영을 보는 것이다.
생각엔 가로, 세로 높이가 없다.
생각은 입체가 아니다.
그렇다면 생각이 꾸며내는 사물이라는 환영은 입체일까?
생각은 입체가 아니므로 생각이 꾸면내는 사물도 역시 입체가 아니다.
사물은 명멸하는 빛이 환영이다.
빛의 환영이기 때문에
우리는 육안을 통해 사물의 정면(한쪽 면)만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사실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사물이 환영임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은 없을까?
육안은 내 몸 앞의 공간만 바라볼 수 있다.
그렇다면 거울을 이용하여
육안이 바라보지 못한
내 몸 뒤의 공간도 바라본다면?
육안이 아닌 마음의 눈이 열리게된다.
마음의 눈으로
오감의 공간 전체를 바라보게 된다.
내 몸은 정말 입체일까?
방 안의 사물들은 정말 입체일까?
‘지금 여기’라는 오감의 공간은 정말 입체들로 가득한 3차원의 공간일까?
만일 내 몸이 입체가 아닌 환영이라는 사실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된다면?
그동안 몸이 실제인 줄 착각해 몸에 투사됐던 수 많은 억눌린 감정들이
거품처럼 꺼져버릴 것이다.
그러면서 즉각적인 치유가 일어나고 현실도 즉각적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정말 그럴까?
<거울명상 하는 법 10가지>
1.
육안의 힘을 완전히 뺀 채,
어떤 사물에도 초점을 맞추지 않고
(멍한 눈으로, 육안은 그냥 유리창이라고 상상하며)
육안이 시야에 들어오는 내 몸 앞의 공간(거울이 붙어 있는 벽면 등)전체를 가만히 바라본다.
육안으로 초점을 맞취 바라보면 두뇌속에서 돌아가는 생각이 꾸며내는 환영(사물)들을 바라보게 된다.
2.
육안으로 바라볼 수 없는 내 몸 뒤쪽의 공간(내 몸 뒤의 벽과 사물 등)전체를 가만히 바라본다.
3.
육안은 내 몸 앞의 공간밖에 바라보지 못하지만,
거울을 이용하여 내 몸 앞의 공간과 내 몸 뒤의 공간 전체를 동시에 바라보는 순간 마음의 눈이 활짝 열린다.
나는 몸을 벗어나 ‘지금 여기’라는 3차원 공간 전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4.
‘지금 여기’라는 공간 속에 같혀 있는 내 몸과 사물들을 서로 분리된 것으로 인식한다.
즉, 가로, 세로, 높이가 있는 입체로 인식한다.
하지만 내가 몸을 벗어나 ‘지금 여기’라는 공간 전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내 몸 앞의 벽면과 내 몸 뒤의 벽면 사이에 거리가 존재하는가?
아니다.
두 벽면은 서로 분리된 게 아니라 붙어있다.
두 벽면 사이의 모든 사물들도 마치 한 장의 사진처럼 역시 서로 붙어 있는 한장의 이미지이다.
‘지금 여기’는
명멸하는 빛의 떨림으로 생기는 내 마음속의 이미지임을 알게 된다.
(거울명상이 깊어졌을 때 몸을 좌우로 슬며시 움직여 보아라.
거울 속의 벽과 사물들이 실제로 한 장의 종이처럼 몸과 함께 좌우로 움직이는 걸 직접 볼 수 있다)
5.
내 몸이 ‘지금 여기’라는 공간 속의 이미지임을 자각할수록 내 마음은 점점 텅 비어간다. 그러면서 나는 점점 텅 빈 마음(진공, 순수의식, 그원의 빛, 근원의 사랑, ‘원래의 나, 큰 나)과 하나가 된다.
실제로 돈재하는 건 텅빈 마음뿐임을 느껴보라.
6.
“지금 여기‘라는 공간이 내 마음속의 환영이라는 사실이 들통나면,
몸을 실제라고 착각해 몸에 달라붙어 있던 수많은 감정 인격체들은 어떻게 될까?
텅 빈 마음의 공간에 붕 뜨게 된다.
그리고 내가 그 인격체들을 인정해주기만 하면 즉각 사라진다.
즉 내가 텅 빈 마음으로 돌아가면 몸에 투사됐던 감정들은 갈 곳을 잃어 텅 빈 마음속으로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텅 빈 마음속에서 태어난 환영들이기 때문이다.
7.
몸을 벗어난 텅 빈 마음이 된 나는
관찰자의 눈으로 어떤 평가나 판단, 심판도 하지 않고 텅 빈 마음의 공간 솟에서 어떤 생각이나 감정이 떠오르는지 관찰한다.
그렇게 관찰자의 마음 상태를 유지하면서 그동안 억눌러놓았던 감정을 느껴가며 말로 표현해보라.
예컨데 “난 죽는 게 너무 두렵다”라과 반복해 말해보라.
ㄱ러면 인격화된 두려움이 점점 의식의 표면으로 올라오게 된다.
감정 인격체는 자신의 존재를 아무 평가 없이 있는 그대로 인정받고 이해받고 있다고 느낄 때,
자신의 존재를 잘 드러낸다.
두려움이 올라오면서 거울속의 내 얼굴이 마귀처럼 검게 변한다.
감정 인결체들이 느끼는 수많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얼굴들이 내 얼굴위에
투사돼어 나타나기도 한다.
감정 인격체들은 이처럼 내 몸을 통해 자신드를 표현한다. 그러므로
몸도 마음의 일부임을 알 수 있다.
나 자신의 근원의 마음과 하나가 되면서 몸 주위에선 아름다고 투명한 빛 물결, 이른바 오라가 보이기도 한다.
파랑은 정직과 지능,
초록은 안정과 휴식,
분홍은 포근한 사랑,
연보라나 하얀은 치유,
검정은 치유를 기다리는 마음을 나타낸다.
감정 에너지들이 몸을 빠져 나가면서 온갖 몸 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
몸 반응이 일어나는 동안에도 나는 모든 움직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인정해주는 관찰자임을 자각하라.
치유는 저절로 일어난다.
8.
몸 반응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면?
내가 아직 몸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즉 아직 감정 인격체들의 지배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럴 때 5번에서 설명한 것처럼
내 몸이 텅 빈 내 마음속의 환영임을 고요한 마음으로 되뇌어 본다.
또는,
몸속의 공간을 서서히 방 안 크기 건물 크기 지구 크기 우주 크기 무한대로 넓혀가면서 그 공산 속에서 어떤 생각과 감정들이 떠오르는지 가만히 살펴보아도 된다.
그럼 생각과 감정들이 사라지면서 몸에서 점점 벗어나 텅 빈 마음이 된다.
9.
거울 명상으로 생각과 감정이 사리질수록 육안에 보이는 색(컬러)이 사라지고 빛(라이트)만 남는다.
얼굴과 몸이 탈색된 이미지로 보이기도 한다.
마치 컬러 티비를 보다가
흑백 티비 화면을 보는 것과 흡사하다.
생각이 꾸며내는 환영을 두뇌에 붙어 있는 육안을 통해 바라볼 땐
생생한 컬러로 보이지만,
두뇌를 떠나 마음의 눈을 통해 바라볼 땐 흑백 화면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미 지나간 일들을 마음의 눈으로 되돌아볼 땐 컬러가 아닌 탈색된 이미지로 떠로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얼굴이나 몸이 아예 사라지기도 한다.
몸을 뻣어난 텅빈 마음인 관찰자는 모든 곳에서 볼 수 있고,
모든 곳에 존재하고, 모든 것을 아는 앎이고, 근원의 빛이나 근원이 사랑이다.
관찰자의 눈으로
거울속에 나를 남처럼 바라보며 말을 걸어 보라.
“인생살이가 너무 힘들지?
짊어진 짐이 너무 무겁지?
너무 외롭지?
맘껏 울고 싶지?
나는 근원이 사랑이란다.
모든 아픔을 맘 놓고 털어놓아 보렴.
두려움? 분노? 억울함? 미움? 수치심?”
예컨데 이런 식으로 억눌렷던 감정들을 하나씩 끌어올릴 때마다 감정 인격체들이 올라오면서
얼굴 빛깔이 검정등을 어두워짐과 동시에 몸 주위엔 하얀, 연보라등 치유의 빛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면서 치유된다.
10.
무의식 속의 감정 인결체들은
‘현실’이라는 인생영화를 통해 자신들의 감정을 표현하기 때문에,
내가 거울 명상 중 어떤 인격체의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그 인격체가 맨 처음 상처를 받았던 당시에 상영됬던 인생영화의 장면들이 시공을 초월해 생생하게 다시 떠오르기도 한다.
예컨데 태아나 유아기 때의 상처받은 경험이 영화 장면처럼 떠오를 수도 있다.
두려워하지 말고 텅 빈 관찰자의 마음으로 지켜보면 그 감정을 느껴주고 이해해주면 된다.
<심화>
거울명상이 어느정도 익숙해지면
다음과 같이 명상 과정을 단순화
시킬 수 있다.
(단순화된 거울명상)
1.
거울을 이용해
내 몸 앞뒤의 공간 전체를 한꺼번에 바라본다.
<마음의 눈이 활짝 열린다>
2.
텅 빈 공간 속의 모든 움직임
(생각, 감정, 몸 반응)들을
아무 평가, 판단, 심판없이 관찰한다.
3.
올라오는 감정을 느껴가며
인정해 주거나
말로 표현해주면 사라진다.
거울 명상으로
무의식의 정화될수록,
점점 거울이 없이도
‘지금 여기’ 라는
3차원 공간이 텅 빈 내 마음 속의
환영임을 작각하며 살아가게 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