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의 추위는 이제 가고 날씨는 봄이 왔지만 작년 겨울 우리 나라를 엄습해왔던 IMF의 한파로 인해 우리의 사회는 여전히 살얼음판을 걷듯 불안한 시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실업을 비롯한 여러가지 경제적 어려움 가운데서도 학부모님의 가정은 평안하신지요? 먼저 소개를 드리겠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사랑하는 아들과 딸을 맡아 중학교 2학년이라는 중요한 시기를 지도하게 된 정병오입니다. 아이를 통해서 어느 정도 이야기는 들었겠지만 저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민윤리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교직에 나온 이후 청운중학교라는 남학교에서 4년 반, 장충여중이라는 여학교에서 2년, 양화중학교에서 작년 한해 근무하여 올해로서 8년째 교직에 임하고 있습니다. 가정적으로는 6살, 4살, 2살 세 딸을 둔 가장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귀한 자녀를 학교에 보내놓고 교육을 위임한 상태에서 학급의 담임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지도할 지에 대해 궁금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1년 동안 제가 초점을 맞추고자 하는 학급 운영의 지침에 대해 몇 가지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먼저 아이들의 실력 향상에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잘 알고 계시겠지만 작년부터 고입 연합고사가 폐지되고 중학교 내신 성적만으로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중학교 내신 성적에는 1학년 성적은 들어가지 않지만 2학년 성적과 3학년 성적이 다 포함됩니다. 그러므로 2학년에서 보는 한 시험 한 시험이 다 고등학교 진학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 뿐 아니라 중·고등학교 시절이 공부라는 것이 어차피 계속 연결되는 것이므로 이 식에 충분한 기초를 쌓아두는 것이 이후 계속해서 공부를 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각 가정에서 부모님들이 잘 지도하고 계시리라 믿고 있지만 저로서는 아이들을 아침 8시 15분까지 등교하게 하여 아침에 1시간 정도 제가 직접 아침 자습을 지도할 계획입니다. 그러므로 학생이 아침에 지각하는 일이 없도록 철저하게 지도해 주실 것을 부탁하는 바입니다. 이뿐 아니라 아이들과 면담을 통해 그 아이의 상황에 맞는 공부 방법이나 더 노력해야할 부분을 지도할 계획이오니 학부모님들의 많은 협조가 있길 부탁드립니다.
둘째로 아이들과의 깊은 상담과 만남을 통해 아이들의 건전한 자아 형성과 올바른 가치관 형성을 도와주고 아이들이 겪고 있는 실제적인 고민을 해결해 주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싶습니다. 중학교 2학년 시기는 자기 인생의 방향을 결정해 가는 매우 중요한 시기이고 그러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나름대로의 고민이나 불안, 마음의 상처가 많은 시기입니다. 이러한 면에서 아이들이 자기의 인생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고 긍정하며 미래에 대한 꿈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며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훈련을 시키며, 아이들의 삶 속에서 함께 호흡하며 그들의 생활에 간섭하고 도와주는 역할을 감당하고자 합니다. 제가 비록 짧은 경험이지만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지도해보면 중학교 2학년 시기가 제일 중요합니다. 많은 아이들이 이 시기에 방황을 하고 사춘기를 격심하게 겪기도하고, 부모님이나 선생님께 반항하고 나쁜 길로 나가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반면 약간 방향이 잘못된 아이라도 이 시기에 바른 방향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님들도 이 부분에 세심한 주의를 가지고 아이들을 살펴주시고 무조건적으로 아이를 억누르지 말고 대화를 통해 아이들의 마음을 풀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아주 작은 부분까지 저와 의논하셔서 가정과 학교가 서로 연계하여 아이들을 지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셋째로 즐거운 학교 생활이 되도록 돕고자 합니다. 중학교 시절 아이들은 내부로부터 솟아나는 힘이 넘쳐나는데 학교는 이것들을 너무 가두어만 놓는 경향도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힘들게 생활하는 아이들에게 웃음을 주고 여유를 줄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많이 가지고자 합니다. 특별히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남녀 혼성학급이기 때문에 여기에 대한 고민도 있습니다. 아이들에 이성에 대해 지나치거나 잘못된 호기심을 갖지 못하도록 자연스런 어울림을 통해 이성에 대한 욕구를 해소하도록 하고 바른 예절, 태도를 갖도록 함께 지도해갈 예정입니다.
넷째로 독서 지도와 글쓰기 지도를 힘써 할 계획입니다. 이 부분은 제가 지금까지 쭉 해 왔던 학급 문고 운영과 조일기 쓰기 지도를 통해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아울러 몇 가지 당부를 드리고자 합니다. 우선 아이들의 기본 생활 습관에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앞에서 적었지만 아이들이 지각하지 않도록 아침에 챙겨주시는 것은 물론이고 교복은 제대로 입었는 지(깔끔하게 빨아 입었는 지를 포함), 도시락은 챙겨가는 지, 숙제는 제대로 해가는 지, 실내화는 빨아 신는 지(실제로 1년 내내 실내화를 빨지 않는 아이도 있습니다), 방과 후에는 어떤 아이들과 어울러 무엇을 하고 노는 지, 용돈 사용은 제대로 하고 있는 지(학교에서 어떤 명목으로 돈을 가져오라고 할 경우에도 약간이라도 이상하면 학교로 전화를 해서 확인하기 바랍니다), 술이나 담배를 하는 것은 아닌 지, 저녁에는 몇 시에 자는 지(혹 컴퓨터에 빠져 너무 늦게 자는 것은 아닌지), 혹 몸에 누구에게 무엇을 빼앗기거나 맞은 흔적은 없는 지(같이 목욕을 가보면 알 수 있겠죠) 등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지나치게 간섭을 해서는 안되겠죠. 하지만 부모로서 최소한 파악은 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 정도도 하지 않는 부모가 있겠느냐고 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이런 기본적인 부분이 챙겨지지가 않아서 아이가 학교에서 구박을 받거나 아니면 서서히 탈선의 길로 나가는 경우가 많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이 편지에 대한 답신을 부탁드립니다. 답신의 내용은 자녀에 대해 부모님이 알고 있는 정보를 저한테 주시는 것과 자녀 지도에 대해 당부하고자 하는 내용을 적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사실 담임을 해 보면 아이들을 파악하는데 거의 한 학기가 다 가 버립니다. 물론 이렇게 파악한 것도 피상적이기 그지없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이제 아이에 대해 알만 하다 싶으면 1년이 다 가 버리기 때문에 학생 지도가 늘 피상적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재 상태에서 자녀에 대해 가장 많이 그리고 제대로 알고 있는 분은 바로 부모님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녀에 대해서 소상히 적어서 보내 주시면 주실수록 제가 자녀를 제대로 지도할 수 있습니다. 힘드시겠지만 소상히 적어서 자녀를 통해서 혹 자녀에게 공개하기 곤란하면 우편으로 보내 주시면 자녀 지도에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셋째로 협조를 부탁드릴 것은 3월 중순이나 말경부터 가정 방문을 실시할 예정인데 이에 대해 미리 협조를 구합니다. 요즘 가정 방문이 없어진 지가 언제인데 가정 방문이냐고 하실 지 모르겠지만 제가 없는 시간을 쪼개어 가정 방문을 하고자 하는 이유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학생을 제대로 파악하고 실질적으로 지도하기 위함입니다. 제가 몇년전 담임을 하면서 몇 몇 문제를 일으킨 아이들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이 때마다 느끼는 것은 그 아이가 처해있는 상황이 피부로 다가오면서 "지금껏 내가 담임을 헛 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만큼 아이들이 사는 환경을 직접 보는 것이 아이들을 제대로 지도하는데 필수적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3년전부터 담임을 맡게되면 담임반 모든 아이들의 가정을 방문해 보고 부모님과 대화를 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고 학생 지도에 큰 도움을 얻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불필요한 오해가 없길 바래고, 약간 불편한 점이 있더라도 학생들의 생활 지도를 위해 적극 협조가 있기를 부탁드립니다.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날짜가 확정되는 대로 다시 연락을 드리겠지만 제가 각 가정에 어떠한 신세나 폐를 끼치지 않을 생각이므로 이 부분에 대해서 염려없이 편하게 맞이해 주면 좋겠습니다.
넷째로 이런 말도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지만 저는 일체의 촌지를 받지 않습니다. 이것은 제가 교직을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는 원칙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 대한 부담을 전혀 갖지 마시고 자녀에 관한 문제가 있을 때 전화 연락을 주시거나 학교로 자유롭게 방문해 주시면 좋겠습니다.(저의 연락처는 집 636-3082, 호출 012-1146-4572입니다)
다섯째로 학급 문고 마련에 협조를 구하고자 합니다. 아이들로 하여금 그 시기에 적절한 책을 읽게 하고 올바른 독서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좋은 학급 문고를 마련하는 일이 필수적으로 중요합니다. 이 일을 위해 저는 매년 아이들로 하여금 학급 문고를 마련을 위해 출자를 하게 하고 그 돈으로 책을 구입해서 1년 동안 같이 보고 나중에 학년이 끝나면 학생이 출자한 액수에 상응하는 책을 돌려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미 제가 가지고 있는 책이 100여권 있습니다. 여기에 학생들이 출자를 해 주면 신간 중심으로 책을 마련해 매우 풍성한 학급 문고 운영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은 할 수 없더라도 상황이 허락되시는 분은 1인당 5000원 에서 만원 정도씩(물론 형편이 되는 분은 그 이상도 좋겠습니다) 출자를 해 주시면 학급 문고 운영에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처음부터 너무 많은 내용을 적은 것이 아닌 지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자주 이러한 편지를 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1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시간이지만 저와 학부모님이 서로 잘 도와서 귀한 자녀들이 올바른 가치관을 갖고 바르게 자라도록 도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무엇을 많이 적었지만 사실 굉장히 부족한 사람입니다. 늘 순간 순간 마다 아이들을 어떻게 지도할까 고민하고 때로 두려워 떨기도 합니다. 학부모님들께서 늘 좋은 조언도 해주시고 틈나는 대로 부족한 담임을 위해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빠른 시간 내에 답신을 부탁드리며 이만 줄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