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寄附] 인생
홍 성 자
토론토에도 기부(寄附)바람이 불고 있다.
무궁화요양원 되찾기 모금운동이며,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운 가정 돕기 모금운동,
메도우베일에 가평전투비 세움에 모금운동 등, 고사리 손으로 넣은 돼지저금통장까지 털어서 동참하는 걸 보면 구경만 할 수는 없다.
유튜브에서 보았다. 한국의 전 신문기자 이수영씨, 현 광원산업 회장님은
“옷이요? 나는 10불짜리 이상은 안사요. 이 블라우스요? 옛날에 미국 갔을 때 10불 줬어요.
예쁘잖아요?” 당당하게 말씀하신다.
어떻게 이런 큰 거액을 기부하실 수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여러분도 아껴 쓰고 저축하며 살면 기부할 수 있어요. 간단합니다. 기부하고 나니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그녀에게 늦게 찾아온 또 다른 인생에 감사와 기쁨이 넘침을 본다.
한국과학기술원 (KAIST)에 766억이란 돈을 3번에 걸쳐 기부한 여걸이다.
“우리나라의 노벨수상자 배출과 과학발전을 위해서 써 달라고 기부했어요. 또 하려고 하는데.......”
카이스트에 기부한 사람 중 최고액을 기록함으로 여자의 뱃장치곤 역대-급이다.
이수영(1936년생)회장님은 2021년 현재 한국 나이로 86세이다. 그녀는 서울 출생, 서울 법대를 나와 첫 번째 사법시험에서 고배를 마신 뒤, 신문기자의 길을 걸었지만 1980년 정부가 서울경제신문을 강제폐간한 후, 언론에 대한 미련을 깨끗이 접고 사업가로 출발했다.
‘야전군사령관’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은, 여자 혼자서 소 두 마리로 시작한 축산사업이며, 사업가로 성장하기까지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이 가히 큰 부를 축적했기 때문이다.
기부여걸 이수영씨의 더 흥미진진한 일은 평생 비혼으로 살다가, 83세에 서울법대 동창생이자 첫사랑인 변호사 김창홍(1935년생)씨와 연지 곤지 찍고 정식으로 결혼했다는 일이다. 남편은 부인과 사별하고 재혼한 케이스지만.
방송 인터뷰 중 사회자의 질문에
“신혼여행은 다녀오셨어요?” 이수영회장님의 답변
“제주도로 갔다 왔죠.”
“어떻게 첫날밤은?” 남편이 만면에 웃음으로
“저 사람이 뭘 모르니까 내가 일러주면서, 우리가 궁합이 잘 맞았는지 일을 잘 치렀죠.”
와우! 우레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나 사랑 받고 있어요. 나는 사랑받으면 안 돼요?”
당연히 받으셔야죠. 받으실 자격이 있지요, 내 말이다.
“아침에 눈뜨면 남편이 사과 깎아줘요, 내가 암을 두 가지 앓았어요,
그래서 약을 보따리로 먹는데 남편이 물 갖다 주며 챙겨줘요”
이수영회장님께 꽃으로 찾아 온 황혼의 첫사랑에 필자는 목하 감동받고 있는 중이다.
이수영 회장님의 새 삶에 나의 촉이 꽂힌 그곳은
“기부하고 나니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거기다.
생각을 바꾸면 다른 세상이 보인단다. 기부란 또 다른 삶이며 기쁨과 행복임을 체험으로
진하게 느꼈기 때문이리라.
얼마나 기쁘실까? 얼마나 행복하실까? 감히 가늠이 안 된다.
참새가 어찌 봉황의 뜻을 알랴. 존경을 넘어 성인의 경지를 본다고 할까.
2021년 2월 현재, 한국의 담양에 김범수(55세) 카카오 이사장이 5조원을 기부,
한국 완도의 김봉진(45세) 배달의 민족 회장이 5천억을 기부, 통큰 기부들이 줄을 잇는다.
예전엔 상상도 못했던 일이며 대기업에서도 하지 못했던 일들이다.
기부문화가 한국사회에 한 획을 긋고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면서 많은 이들의 동참함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 온다.
요샛말로 기부인생을 살고 싶은 것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어렴풋한 꿈이었는데,
70이 넘어가면서 그 꿈을 조금씩이나마 이루어 가고 있다고 할까?
기부도 중독이란 말이 떠오른다. 해보면 그 맛을 알기 때문이다.
돈이 많고 적음은 문제가 아닌데....... 돈만이 기부는 아닌데.......
기부하려면 내가 써야할 돈을 줄이든가, 안 써야 할 수 있다고 본다.
내가 써야 할 것, 내가 꼭 하고 싶었던 것들을 다 하고 나면 돈은 항상 부족하게 되어있다.
기부란 내 것을 나누는 것이다.
나눔은 기쁨과 보람이며 또 다른 삶의 맛을 보게 되는 일이다.
( 202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