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국립국악원 부설 국악사양성소 시절
국립국악원 부설 국악사양성소...열석자를
1963년 내 나이 만 열네 살적부터 되뇌이고 다녔던 것이 비록 학교 아닌 양성소라는 곳을 다니지만
나는 나라에서 운영하는 국립학교를 다닌다는 자부심을 합리화(?)시키고자 했는지는 마치 몰라도
여하튼 누가 물어 보면 국립, 국립 하면서 다닌 어린 시절이었는데...
국악중고등학교가 운이동에서 장충동으로(1968년), 또 1992년에는 포이동으로 이사 와서
현재에 이르는 것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거니와,
석관동에 소재하였다가 금천구 시흥동으로 이사한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와 국악고등학교의 교명이
거의 같기 때문에 혼동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또 요즘은 국립, 국립 하고 우리 학생들이 하고 다닙니다.
말하자면 국립국악고등학교라고 말이죠...
그렇다 해도 요즈음의 학생들이야 제가 다닐 적의 그 심정 알겠습니까?
지금 학생들은 어찌 되었든 혼동을 하거나 말거나 고등학교란 이름 아래 학교를 다니지만
60년대 그 시절만 해도 어린 마음에 중학이란 이름의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양성소라는 이름의 학교에 다니는 것이 창피할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것이....지금은 양성소 출신 중에 그 양성소란 이름을 감추기는커녕 양성소 졸업한 것을 자랑으로 여기며
여기 저기 들레어 보이려는 경향이기도 합니다. 그 커다란 이유 중 하나는...
어느 기자와 인터뷰에서도 제가 이야기한 바 있듯이 우리들은 말하자면
인간문화재에게 모든 기능을 전수받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린 선생님, 김천흥 선생님, 김종희 선생님, 이강덕 선생님 등 지금도 생존해 계신 분들 외에도,
故 김기수, 김성진, 김태섭, 봉해룡, 김영윤 선생님들 모두 그 면면이 이왕직 아악부 양성소 출신들로
국악계를 굳게 지켜 오셨던 분들이었습니다.
지금 국악중고에서 전공교사로 계신 분들에겐 죄송한 말씀일 수도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난.....하는게 하두 많아서....
그런데 뭐 하나라도 제대로 잘 하는게 없지요.
내 원래 전공은 피리(그래 이 홈페이지명도 piri.pe.kr)고,
가곡(우리 시조시에 얹어 노래하는 형식의 음악)도 겸하여 전공하고 있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피리 연주보다는 노래를 많이 부릅니다.
1975년 대학에 복학했을 당시 노래에 관심이 많아져 후배들이 교육과정상 필요에 의해
행하여지는 연주(가곡 반주를 많이 함) 시간마다 가곡을 불러 줄 적이 많았지요.
그때 장구를 누구 따로 시키지 않고 제가 직접 치면서 노래를 많이 불렀드랬습니다.
그래 그런지 그때 노래와 장구 실력이 제법 는 것 같아요.
대학 졸업하고 국악원에 있을 때 그리고 학교에 오게 되고 나서도 나에게 장구 반주 부탁하는 사람이 꽤 많아졌지요.
그 때 연주된 곡들의 녹음이 다 어디가 있는지는 거의 모르고(아마 방송국에도 꽤 있을 듯),
유일하게 시중에 나와 있는 것이 이화여대 황병기교수와 가야금 창작곡집<비단길> 취입한 거랍니다.
1997년 6월 3일에는 제가 피리독주회를 했더랬습니다.
곡목은 2부에서 연주한 피리 산조(박범훈류) 빼곤 모두 정악곡이었지요.
절화,길타령을 KBS 국악관현악단에 근무하는 박용호 김종식 선생과 함께 첫프로로 연주하고
국립국악원 지도위원이신 이동규 선생님이 죽지사를, KBS 국악관현악단에 근무하는 김영기 선생님이 춘면곡을,
그리고 국악고등학교에 근무하는 이승윤 선생님이 여창가곡 중 평롱을 노래하고
나는 그 곡에 맞추어 내 나름대로 가락을 엮어 세피리로 반주하는 그런 형태였지요...
끝곡으로 박범훈류 피리산조를 약25분 가량 장덕화씨의 장구에 맞춰 연주했는데
연주를 지켜 보는 많은 사람들이 마니 긴장했더랍니다.
서 빠질까 봐서? 중간에 딴데루 샐까봐서? 하여튼 이유는 잘 모르겠고...
피리라는 악기가 부는 모습이 무척 힘들게 보였던게지요.
그 해 5월 15일에 김헌 사진관에서 피리 독주회 프로그램에 낼 사진을 찍었는데,
사람들이 안 믿어요. 웬 십년전 사진이냐구... 기가 막혀서... 여기서 분명히 밝히지만 그거 제가 맞구만요.
사진 잘 나왔다구 하는건 욕이래는데...
피리독주회는 그렇게 치렀고,앞으로는 가곡 발표회를 하고 싶습니다.
가곡은 중고 시절에 고 이주환 선생님께 또 그 이후로는 고 김기수 선생님, 고 홍원기 선생님,
고 전효준 선생님 등에게 사사하고 지금은 무형문화재 제 30호 가곡을 이수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저는 가곡과 관련된 어느 단체의 이사를 맡고 있습니다.
즉 재단법인 월하문화재단의 이사를 맡고 있는데, 재단이란 이름으로는 연주 활동 등을 펼칠 수 없는 관계로
관련 단체로 한국정가악연구원(옛이름 월하전통문화원)을 두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 원장직을 담당하고 있습니다만 회원들은 평소
매주 토요일 2시 30분부터 모여 거의 빠짐 없이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한 8, 9년 째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만, 월하문화재단 이사장이신 경북대 김경배 교수도 꾸준히 나오시거니와
그렇게도 먼 대구에서 매주 나오시는 걸 보면 참 대단하시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어떤 날은 사정이 생겨 못 오실 적도 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남창은 나 혼자 부르고 있을 적도 간혹 있습니다.
그럴 정도로 남창 인구가 절대 부족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국립국악원에 근무하고 있는 김병오 님, 김광섭님 , 문현님 등이 와서 동참하면 참 좋으련만,
연습 시간이 토요일이다보니, 국립국악원 토요상설과 매번 겹치게 되고
그분들은 마포에 거의 못 오게 됩니다. 우리 아들이라도 시켜 볼라치지만서도 그게 어디 마음대로 안 되네요.
우리 가곡은 한바탕을 부르면 할 때는 졸립기도 하고 힘들지만 긴 시간 노래하고 나면 무척 뿌듯합니다.
수양도 되고, 호흡 연습도 되어 건강에도 좋은 것 같습니다.
나는 우리나라 국민이...대한민국의 백성이 우리의 가곡을 많이 부르기를 바라는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홍난파 아류의 그런 가곡 말구 전통 가곡 그리고 가사, 시조 말입니다.
가사는 무려 12가지나 있어 12가사라고 하고, 시조도 지방마다 사투리가 있듯이 경제, 향제, 내포제, 영남제 등 각각
다른 모습으로 전해져 내려 오고 있습니다.
가곡은 보통 7-8분, 시조는 4-5분 걸리지만 가사는 한 곡을 죄다 부르려면 한 20-25분 걸리는게 보통이죠.
그래 이 가사를 연주할라치면 툭하면 하다 말게 된답니다. 무슨 스피드 시대가 되서 그렇다나요.
누가 그 긴 노래를 다 들어 주고 있느냐 하는 논리입니다만 그럼 베토벤의 교향곡, 피아노 소나타 등은 그렇게 안 걸립니까?
우리 음악을 업신여기는 그런 태도가 국악인 사이에도 팽배해 있습니다.
이래 가지고는 발전을 못합니다. 며칠전에도 케이비에스 사회교육방송을 우연히 들었는데
남창 가곡 중 우조 초수대엽이 나오길래 반가운 마음으로 조금 더 크게 틀었는데...
자 초수대엽하면 그 대여음 연주가 아니고 우조 다스름이 나와야 하는데
그 다스름이라는게 뒤에 약 10초 정도 연주되더니 이동규씨의 '동창이'가 흐르고 이 곡이 과시 끝까지 가려나 했더니,
과연, 역시, 당연하게 중여음 직전 '상기 아니 일었느냐'에서 홀연히 끝나 버리더라구요.
비슷한 얘기 또 하나, 관현악 연주할 때도 그래요.
이 경우도 툭하면 관객 걱정을 무지하게 하다 보니까.
영산회상 전곡 (전곡이래야 40-50분) 연주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언제나 염타군(염불,타령,군악의 준말이래나)만 해요. 그래서 연주하는 형태가 길어야 10분,
그 장소에 따라서 분위기에 따라서 어떻게 하면 더 짧게 하나 하는 연구만 하는.....
나부터도 중영산 연주해 보는 것이 이때껏 살아 오면서 30여번도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니 다른 곡은 다 외우는데 중영산은 할 때마다 외워야 하는 불편한 일이 생깁니다.
나는 왜 중령산이 이다지도 인기가 없는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네박자가 아니고 스무 박자라서 그런가요?
송뭐시기씨를 중령산 좀 배워 보게 할까나? 피리루...
우리 음악의 자존을 지킵시다. 여러분!!!
첫댓글 세현님 - 어디서 이런 귀한 원고를 찾으셨나요?
박문규 - 일명 박토벤? 양성소 입학당시 720명 지원중 수석으로 합격한 절대음감의 소유자이지요.
피리를 계속 불었으면 대성하였을텐데 - 중간에 가곡을 더 가까이 했지요.
중, 고, 대시절을 한반에서 10년씩이나 같이했고 중학교 교감을 끝으로 학교를 떠났지요 -
후일 재학생들을 만나 이야기들으니 선생님의 이름을 뒤집에 박곰규 ?? 라는 애칭으로 부르더라고요 - - ㅎ ㅎ
유튜브에서 가곡 언편을 검색하니 박문규선생님의 노래가 있던데 바로 그분이신가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