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21.> 탄일종 “탄일종이 땡땡땡 ~ 은은하게 들린다 ~ 저 깊고 깊은 산골 오막살이에도 탄일종일 들린다 ~” 어렸을 때 아이들이 가장 많이 불렀던 동요이면서, 흔히 들을 수 있었던 크리스마스 캐롤곡이다. 그런데 이 곡은 우리나라 토종 국산이다. 한국 사람이 작사, 작곡한 우리나라 곡이라는 말이다. 또한 우리나라 곡이지만 세계적으로 알려진 곡이기도 하다. 이 곡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상황에서 세상에 알려진 것으로, 훗날 영어와 독일어로 소개되면서 서구는 물론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도 자국어로 번안하여 불리기 시작해서 지구촌에 퍼져나가 널리 불리고 있는 곡이다. 6.25사변이 일어난 그해, 1950년 12월 24일 밤, 이 곡을 작사 작곡한 장수철과 그의 아내 최봉춘이 남긴 일기에서 이 곡에 담긴 사연이 전해지고 있다. 둘째 아들을 먼저 세상을 떠나보내게 된 상황에서 처절한 전장에서의 고통을 견뎌야 하는 이중고와 함께 맞은 성탄전야에 쓴 그의 일기에 그 사연을 기록으로 남겼다. 장수철은 현재 한국교회가 사용하는 찬송가 570장(통, 453장)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를 작사한 사람이다. 그는 전쟁의 비참함을 경험하면서 피난의 고통을 겪어야 하는 가운데서 아들까지 잃게 된 아픔을 가슴에 품어야 했지만 성탄전야에 그 아들의 요청으로 만들었던 “탄일종”이라는 곡을 마음으로 불러야 했다. 그리고 아직 전선에서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던 1952년 이 곡을 한 잡지에 공개함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 곡은 먼저 간 둘째 아들(준형)이 다니던 교회의 주일학교에서 성탄맞이 행사를 위한 프로그램에서 부를 노래로 만들어졌다. 주일학교 선생님이 둘째 아들에게 부를 곡을 아버지에게 만들어 달라고 해서 부르면 좋겠다고 했고, 아들 준형이는 아버지에게 그 말을 전해서 아버지가 작사를 했고, 어머니 최봉춘이 곡을 써서 부르게 했던 것이다. 먼저간 아들 준형이가 처음으로 불렀던 이 곡을 생각하면서 피난지에서 맞은 그해 성탄일 전야에 장수철은 절절한 아비의 마음을 일기에 남겼던 것이다. 그러니 이 곡은 정확히 몇 년도인지 알 수 없지만 주일학교에서 아들이 부르도록 만든 것이었고, 아들은 이 곡을 최초로 부른 사람이었다. 그리고 아들은 어떤 사연과 함께 먼저 세상을 떠났다. 부모이면서 작사, 작곡자의 마음에 남겨진 아들을 잃은 아픔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지만, 그 아들이 부탁해서 만들었던 곡은 이 땅의 방방곡곡 어디서나 아이들이 있는 곳, 교회가 있는 곳에서는 불려졌다. 하지만 가사의 면면을 보면 해방 직후 한반도가 쳐했던 환경을 그대로 읽을 수 있다. “저 깊고 깊은 산골 오막살이에도 탄일종이 들린다.” “바닷가에 사는 어부들에게도 탄일종이 들린다.” 비록 가난하고 생존을 위해서 힘들게 일을 해야 했지만, 탄일종이 울리던 그 평화로움이 전쟁 때문에 어린 아이를 품에 안고 피난을 가야 했던 부부에게는 먼저 간 아들이 불렀던 이 곡이 피난지에서 맞이한 성탄전야는 더 처절한 아픔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하여, 그의 일기에는 깊은 산골 피난지에서 맞아야 하는 성탄이 주는 평화가 더 간절했던 것이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실제로 주님이 오신 날과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성탄일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하지만 이 날을 통해서 사람들은 주님과 복음을 생각하게 된다는 의미에서 귀한 것을 얻을 수 있다. 주님을 통한 평화와 사랑, 그리고 감사한 마음을 나누는 것들이다. 아무리 어려웠던 시대에도 산골짜기와 어부들이 살고 있는 깊은 산촌과 작은 어촌에도 예배당의 종소리가 울리는 평화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가난하지만 평화와 주님의 오심을 감사하면서 노래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 전쟁 속에서는 결코 불가능한 것이기에 더 절절하게 느껴지는 평화, 그리고 먼저 간 아들이 불렀던 “탄일종이 땡땡”은 부부의 마음에 멈추지 않는 노래였던 것이다.
나아가 예수님을 모르는 세상에서도 탄일종이 들렸고, “탄일종이 땡땡!”이라는 노래는 아이들의 입을 통해서 불려졌다. 비록 기독교에 관심을 갖지 않은 사람들조차도 탄일종을 기다리게 하는 분위기는 연말과 함께 하나의 문화를 형성시켰다. 한편 생각하면 크리스마스의 세속화를 말할 수 있지만, 어떤 의미에서 크리스마스와 예수님의 탄신일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점에서 날을 성스럽게 한다는 것은 오히려 우를 범하는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하나의 문화적으로 기독교에 접근하고, 기독교의 복음의 가치를 접할 수 있으며, 누눔과 누림을 동반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탄일종이 울리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전쟁도 없고, 처절한 피난생활도 없는 오늘이지만,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 탄일종으로 기뻐하는 노래가 들리지 않는다. 세상에서도 교회에서도 ...
어진내교회 담임/대신총회신학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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