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숫자는 ‘1’ 이다. 아내를 처음 만난 날이 6월 11일이었고 혼배성사도 1월 11일에 했다. ‘1’이라는 숫자를 자주 떠올리는 까닭은 ‘일치’의 영성에 초점을 맞추고 살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영적인 성품!! 일치의 영성은 요한복음 17장 21절이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
하나가 된다는 것!! 한마음이 된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태리어 ‘uno’는 ‘1’이다. 공동체 회원들은 ‘우노’를 입에 달고 산다. 일치를 이루자는 다짐이고 약속이고 희망이다.
우리가 모두 한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다짐을 하며 살지만, ‘과연 인간의 능력으로 한마음을 이룰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 피어오르곤 했었다.
‘가난’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서 가난을 발견하기 쉽지 않았고, ‘순명’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서 ‘순명’을 발견하기 쉽지 않았다. ‘중용’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서도 ‘중용’을, ‘일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서도 일치를 찾아보기 쉽지 않다. 비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에게서 사랑을 발견하기 쉽지 않아서 예수를 좋아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그러나……. ‘상대방을 한 인격체로 존중하는 사람은 한 인격체로 존중받는다.’ 이것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가르침이다. 왜? 삶이 구체적으로 따라주지 않는 것일까? 평생 갖고 살았던 의문을 풀 수 있는 실마리를 만난 것이다. 요약하면, ‘앎’이 부족해서이었다.
부부가 한마음이 되기 위해서는 배우자에 관해서 잘 알아야 하는 것이 우선이다.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부부는 상대방의 눈빛만 보아도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고 ‘착각’한다.
굳이 착각이라고 말하는 까닭은 사람은 살아서 움직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살아서 움직인다는 것은 부정적으로 표현하면 ‘변했다’이고 긍정적으로 표현하면 ‘발전하다’ 이다.
어떻게 하면 한마음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추구하던 영적인 성품을 가질 수 있을까? 많은 사람이 마음먹은 대로 실천할 수 없다고 호소한다. ‘앎’이 따라가지 못한 까닭이다. 생각하지 못한 것을 마음은 추구하기 때문이다. ‘마음’은 하느님께서 관리 하시기 때문이고 ‘생각’은 한계를 지닌 인간의 머리에서 나오기 때문인 것 같다.
‘앎’이란 하느님에 관해서 깨달아 가는 것이고, 하느님과 한마음을 이루어가는 과정이다.
부부는 상대방에 관해서 알아가면서 맞추어 줄 수 있고, 지금보다는 더 깊은 사랑을 할 수 있게 된다. 하느님께서는 역동하시는 분이시다. 나의 배우자도 역동하는 존재이다. 그 역동성은 한순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지속성을 갖고 있다.
어제의 아내보다 오늘의 아내가 더 사랑스럽고, 어제의 내 사랑 보다 오늘의 내 사랑이 더 풍성해지는 까닭이다. 그래서 우리 부부에게 1+1=1이다.
20220421 먼지아빠 예 엘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