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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의 표범
이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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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장에 표범 한 마리가 어슬렁거린다.
하지만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다. 이젠 이빨이 빠지고 발톱마저 무디어져 그 누구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역시 표범이 군림하던 시대는 갔다. 표범이 이빨이 빠지니 중앙시장에 평화가 드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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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지랄이구먼!
아내가 혼잣소리로 던진 한마디가 내 달팽이관을 슬쩍 훑고 지나갔다. 궁금증을 자극하기에 충분요소를 두루 갖춘 말이다. 찹쌀을 씻어서 들고 들어오며 아내가 대수롭잖게 ‘지랄’이라고 뱉었다. 분쇄기에 뽁은 콩을 넣다가 말고 슬며시 나와 밖을 내다보니 예상대로 상황 끝이다. 오늘도 어디서 처먹었는지 표범은 낮술에 떡이 되어 우리 점포 맞은편 건물, 제 집이 있는 이 층 계단으로 비틀거리며 올라가고 있었다. 허우적거리는 뒷모습만 보아도 얼마나 취했는지 감이 잡힌다. 아내 입에서 지랄이라는 교양이라곤 냄새조차도 베이지 않은 말이 나오다니 시장통에 구른 지 몇 년이 지나니 아내도 인간인지라 환경의 지배를 받는 모양이다. 표범의 지랄보다 아내의 입에서 나온 ‘지랄’이 내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표범이 또 사고를 쳤다.
오늘도 술에 절어서, 다시 말하면 술기운에 시비를 걸어 서울청과 아줌마와 평소보다는 진한 농도의 다툼을 하고 끝내 애꿎은 배추 한포기를 발로 차고 밟아 아스팔트 바닥에 뭉개놓고 순전히 귀소본능에 따라 제 집구석으로 비틀거리며 기어들어가는 것이다. 시장 골목의 상인들은 늘 보는 일상의 한부분이라 관심 없이 가게에서 자기 일을 하며 고개만 내밀어 그 광경을 보고는, 또 지랄하는구먼! 한마디씩하고는 누구도 싸움을 말리지 않았다.
늘 하는 짓거리라 특별할 것도 없다는 얘기다. 표범이 이 층으로 사라지자 서울청과 아줌마는 가게 앞에 퍼질러 앉아 서럽게 통곡을 하고 있다. 젊은 과부의 아물지 않은 상처에 소금을 뿌린 모양이다. 맞은편 경북한복 아줌마가 슬리퍼를 끌고 나와 달래지만 소용이 없다.
-오늘은 뭔 일인가?
밖으로 나와 팔짱을 끼고 서있는 순댓집 아줌마에게 들어보니 사건 발단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낮술에 고주망태가 된 표범이 지나가다가 서울청과 앞에서 배추를 발로 툭 툭 차며 시비를 걸었다.
-요새 배추가 금값이라던데....... 세를 좀 올려야 되는 거 아닌가 모루겠네.
-배추 값이 내려서 적자를 볼 때는 세를 깎아주남........
육칠 년 전 철도청에 근무하던 남편을 열차사고로 잃고 겨우 맘을 추스르고 혼자서 채소장사를 하는 서울청과 아줌마도 지지 않고 대꾸를 한 모양이다.
-장사를 하다보면 적자를 볼 때도 있는 법이지.
듣기 좋은 소리만 하고 살아도 세월이 모자라는 세상에, 표범은 듣기 싫은 소리만 골라 하며 만만한 상대를 찾아 시비를 거는 것이다. 술이 취하면 나오는 그의 고약하고 개에게 던져주어도 물어가지 않을 더러운 버릇이다.
-이 아줌마가 혼자 살면서 많이 굶어서 독이 올랐나 보네........
표범은 인사불성이었다. 해서는 안 될 소리를 혀 꼬인 소리로 해버린 것이다. 끝내 채소가게 아줌마는 혼자 사는데 뭐 보태준 거 있냐고 암팡지게 달려들어 그의 멱살을 쥐고 흔들다가 급기야 허리띠가 잡히고 그것마저도 시원치 않았는지 너도 혼자 살면서 굶어서 이 지랄을 하느냐고 하면서 급기야 아랫도리가 서울청과 아줌마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급소인 거시기가 잡히고는 뒈진다고 소리를 지르다가 억지로 손을 뿌리친 표범이 겨우 배추 한포기를 짓이기고 싸움이 끝났다. 싸움이라고 경찰을 부르는 일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 그냥 평범한 시장통의 일상이다.
손님이 뜸한 시간에 구경감으로는 그만인데 승부로 따지자면 그 싸움은 아랫도리가 잡힌 킬리만자로 표범의 치욕적인 패배다.
킬리만자로의 표범! 저 험한 설산의 눈 속을 어슬렁거리며 먹잇감을 찾고, 용맹을 떨치는 표범이 아니라 중앙시장 골목에서 좀 논다는 인물이다.
아니다.
왕년에 좀 놀았으나 이젠 늙어서 이빨이 빠진 호랑이다. 시장골목의 알 만한 사람들은 그를 두고 옛날부터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아니라 그냥 표범이라 칭했다. 옛날과 달리 지금 그가 풍기는 뉘앙스나 이미지와는 아무 상관없이 옛날부터 그렇게 불렀기에 시장사람들은 무슨 연유로 붙여진 별명인지 모르고 그냥 표범이라 부른다. 시장골목 사람들 중에는 그의 본명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 그냥 표범이라고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다.
깨끗한 수건도 세월이 가면 행주가 되고 더 지나면 걸레가 되는 법이거늘 킬리만자로의 표범도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걸레로 변해가고 있다. 걸레도 격이 있다. 탁상을 닦는 걸레가 있는가하면 변기를 닦는 걸레가 있는 법이거늘, 표범으로 말하자면 후자에 속하고 그 중에서도 곧 빨아야할 걸레에 해당하는 주정뱅이가 되어 있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라는 명칭이 무색할 정도로 초라하고 더럽게 세월의 물결에 밀려 떠다니는 더러운 헝겊조각에 불과할 뿐이다.
한 때, 발목까지 오는 바바리에 백구두, 중절모까지 쓰고 졸개 몇을 데리고 시장골목 기생집을 누비며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으로 잘 나가던 시절에는 정말 킬리만자로의 표범같이 보였다.
표범도 이빨이 빠지니 무릎이 나온 허름한 트레이닝 차림에 슬리퍼를 끌고 다니며 기생집이 아니라 순댓집에서 막걸리로 인사불성이 되도록 취한다. 주위에 따라다니던 졸개들이 떨어지고, 아랫도리 힘 빠지고, 수중에 잔돈이 떨어지니 어쩔 수없이 표범의 행동반경이 좁아졌다.
한치 앞을 못 보는 게 인생이라고 했던가?
그 잘 나가던, 킬리만자로의 표범, 그 명성 높던 인간이 저렇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하지만 마음만 잘 먹으면 재기의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저 걸레는 행주로 승급하고 수건으로 업그레이드되는 재기의 꿈을 접고 있다. 그냥 죽어가는 중앙시장을 보고만 있다.
중앙시장에서 가장 점포수가 많은 건물이 킬리만자로 표범인 이호택의 소유다. 일 층에 있는 점포만 무려 사십 개가 넘는다. 중앙시장에 들어서면서 왼쪽에 있는 천칠백 평이 넘는 금싸라기 땅에 지어진 삼 층짜리 장방형으로, 단일건물로서는 중앙시장에서 가장 크다. 역세권을 지닌 천칠백 평! 값으로 따지면 얼른 계산이 되질 않을 정도다. 그게 독자인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제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다.
부자가 망해도 삼 년은 먹고 산다고, 지금은 중앙시장이 속속 들어서는 대형마트에 밀려 죽어가고 빈 점포가 군데군데 이빨 빠진 것처럼 비어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빵빵하다. 중앙시장이 벅적거리던 칠팔십년 대에는 점포세만 받아도 경리 직원과 관리인을 두어야 할 정도였다. 그 때는 표범의 아버지 이재원 씨가 살아 있을 때의 일이고, 그 때 표범은 제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 시장 이 층에 카바레를 차리고 읍내 건달들이 뻔질나게 들락거리곤 했다. 카바레가 노래방에 밀리자 표범은 업종을 바꾸어 노래방도 하다가 말고, 지금은 위자료를 받아서 가고 없는 킬리만자로의 조강지처가 당구장도 하다가 또 고쳐서 소극장도 했지만 하는 것마다 재미를 보지 못했다. 또 아이러니하게도 업종이 바뀔 때마다 그의 아내도 바뀌었다. 지금은 이 층 소극장 하던 자리가 반쪽 비어있는 까닭인지 그의 아내 자리도 비어있고 제 늙은 어머니에게 밥술을 얻어먹는다.
시에서 재래시장 살리기에 나서서 캐노피를 설치하고 간판도 단정하게 획일화 시키고, 시내버스도 중앙시장을 중심으로 배차를 하고, 작지만 시유지에 공영주차장도 설치하고 있지만 중앙시장에는 손님이 현저히 줄었다. 이럴 때 빈 점포를 돌아가며 리모델링하고 점포 살리기에 나서면 좋으련만 저 인간은 주정뱅이로 변해 손을 놓고 있다.
오늘 짓이긴 배추 값도 저녁이나 내일이면 늙은 제 어머니가 나와서 청과 아줌마께 사과를 하고 물어줄 것이다. 부모 잘 만나서 한평생을 놀고 먹고살며 장가를 세 번씩이나 가는 팔자도 따지고 보면 그리 나쁜 팔자는 아니고, 표범의 타고난 복이다.
나도 이 중앙시장이 고향이다. 이곳에서 자라면서 나보다 일곱 살이 많은 저 인간이 살아온 궤적을 꿰뚫고 있다. 따지고 보면 초등학교 선배요, 동네 선배인 저 인간이 어릴 적부터 늙어가는 생을 쭉 지켜보았다는 말이다. 그의 행적에서 모르는 부분이 있다면 그가 군에 가고 없는 사이와 내가 군에 있을 적에, 몇 년간만은 그의 행동거지를 보지 못하고 그가 저지른 큰 사건에 대해서 얘기만 들었을 뿐이다. 그 외에는 누구와 싸우고, 도박을 하다가 걸려 교도소에 몇 번 갔는지 여자가 몇 번 바뀌는지 다 지켜보았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점포! 아니다. 말을 고치자. 아내 소유의 이 중앙떡집은 킬리만자로 표범의 점포가 아니다. 시장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있는 건물의 점포다. 우리 중앙떡집도 아버지가 하실 적에는 킬리만자로의 표범 건물에 있었으나 점포세도 비싸고 또 위치가 옷 가게 사이에 있어서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으면서 ‘먹자골목’ 의 순대집 사이로 점포를 하나 사서 옮겨 앉았다. 이 도회가 팽창하기 전, 면소재지일 적에 오일장이 서면 근동의 삼 면 장꾼들이 다 이 중앙시장으로 몰려들었다. 그 때가 최고의 번성기였다.
그 때 나는 면소재지의 중학교를 두고 가깝고 만만한 도시에 있는 중고등학교를 기차로 통학을 했다. 어머니의 지극한 교육열도 한 몫을 했지만, 면소재지 중학에 다니기 아까울 성적을 유지했었고 대도시 K중학의 교복을 입은 우월감에 젖어 있었다.
면소재지가 읍으로 승격되고 또 공단이 들어오면서 급격히 인구가 늘어나고 시로 커지고 이 도시에 국립대학이 생기고 나서 나는 고향으로 돌아와 이 도시에 있는 대학을 다녔다. 이 도시의 신설 국립대학으로 돌아온 까닭은 짐작이 가능하겠지만 굳이 밝히자면, 기차로 통학을 하면서 같은 패거리끼리 몰려다니며 공부를 뒷전으로 한 까닭이다. 면소재지일적에 이 도시에 눌러앉아 중학을 다닌 놈들은 대도시의 국립대학으로 가고 도시로 중학을 간 나는 이 도시의 신설대학으로 돌아온 이 아이러니한 법칙은 순전히 기차통학 때문이었다. 기차로 통학을 하는 학생은 두 부류로 나뉜다. 공부를 잘해서 면소재지 중학에 보내기 아까운 수재들이나, 아니면 면소재지 고등학교에 갈 수 없는 하위권 아이들이 도시의 실업계로 기차 통학을 했다. 고등학교 다니면서 실업계 아이들과 어울렸으니 이 도시의 신설대학으로 리턴 할 수밖에 없는 이치다.
대학을 다니다 군에 갔다 오고 대학을 마치니 도시는 팽창에 팽창을 거듭하여 거대한 공단을 낀 경제 도시로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직장을 멀리 잡을 필요가 없었다. 이 도시에 있는 만만한 기업에 취직을 했다가 결혼을 하고 월급생활이 적성에 맞지 않아, 솔직히 따지면 적성에 맞지 않다는 말은 남이 듣기 좋은 말이고, 강성노조가 결성되어 파업을 연중행사로 하던 시절, 넥타이부대로 불리는 관리자가 파업에 가담했다가 모가지가 덜컹 잘려서 이 중앙시장으로 돌아왔다.
도시는 커졌지만 중앙시장은 별로 발전하거나 커지지 않았다. 대학물을 먹은 아내의 반대와 아버지의 집요한 권유에 한동안 갈등하다가 아내를 간신히 설득시켜 전업주부에서 떡집 사장으로 전격 승진시켜 주었다. 그리고는 저 킬리만자로의 표범과 한 골목에서 부대끼며 살아온 지 십오 년이 된다. 십오 년! 그 동안 아내는 돈맛을 알아서 떡집아줌마로 틀이 딱 잡혀있지만 걱정이다. 여태까지는 잘 해 왔지만 최근 들어 시 외곽 주차하기 좋은 곳에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재래시장을 찾는 손님이 급격히 줄고 빈 점포가 군데군데 생기고 있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것은 굳이 재래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다. 정찰제인 대형마트가 마음에 들지 않고, 가격을 흥정할 수 있고 덤으로 한 줌 집어주는 인심이 살아 있는 재래시장을 찾는 마니아들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노인층 손님들이다.
처음에는 못미더워 떡집 경영에 관여하시던 아버지 어머니께서 우리 부부가 떡 맛을 손끝으로 익히자 뒷전으로 물러앉고 내가 경영방법을 바꾸었다. 앉아서 하는 장사가 아니라 발로 뛰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동기들이며, 몇 군데 있는 사찰과 공장마다 연줄을 찾아 명함과 스티커를 뿌린 결과로 각종행사가 있을 때마다 우리 부부가 밤을 새워 떡을 만들어 납품할 정도가 되는 단골들이 있으니 우리 떡집이야 아직 건재하지만, 가게에 앉아서 손님을 기다리는 장사들은 엄청난 타격을 입고, 급기야 물 건너간 송아지 불알 잡으려하지 않고 과감히 셔터를 내리는 점포가 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일전에 들른 민 씨의 말에 의하면 죽어가는 점포에 앉아 오지 않는 손님을 애타게 기다리는 것보다 막노동하는 게 훨씬 낫다고 했다.
민 씨는 나보다 열 살이나 많은데,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떡집 건너편에서 신발가게를 했던 장사치로 뼈가 굵은 인물이다. 시장골목 사람들은 민 씨라고 부르지만 나는 민 형이라고 부르는 격의 없이 지내는 사이다. 예전에 고무신이 팔릴 때야 번성했던 가게지만 유행을 갈구하는 신세대들이 찾는 유명 메이커에 밀리고 대형마트에 눌리고 가격경쟁만으로는 도저히 살아남질 못해 일 년 전에 시장메이커 신발가게를 정리를 했다.
그런 민 씨가 얼마 전에 작업복 차림에 안전화를 신고 우리 가게에 들렀다. 한 눈에 보아도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차림새다. 시장을 떠나고 소식조차 모르던, 오랜만에 보는 민 형이라 나는 옆집 시장순대로 뫼시고 수육 한 접시에 막걸리주전자를 놓고 두어 시간 노닥거렸다. 정정하자. 노닥거린 게 아니라 죽어가는 재래시장에 대해서, 인생 제 이 막을 연, 민 형의 사유 전환과 재래시장을 보는 객관적인 시각에 대해서 아내가 배달이 밀렸다고 찾으러 올 때까지 앉아서 진지하게 토론했었다.
민 형은 처음에는 인력시장에 나가며 막노동을 했지만 성실하고 책임감을 지닌 인부로 현장소장 눈에 발탁되어 작업반장으로 어느 현장에서 고정으로 일을 나가고 형수는 아는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주방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 수입만으로 빚 안지고 아이들 둘을 대학에 보내고 큰놈은 이제 사 학년, ROTC를 마치고 곧 장교로 군에 갈 거라고 올해만 지나면 형편이 풀릴 거라고 자랑을 늘어놓으며 하는 말인즉슨, 앉아서 월세 낼 걱정을 하는 장사들은 바보다. 이 대명천지에 몸만 건강하면 죽어가는 시장에 앉아 있을 필요가 없다는 요지였다. 막걸리 잔을 들고 나는 민 형의 말에 공감하며 고개를 주억였다.
시장을 살리는 방법에 대해서도 얘기를 했다. 민 형이 거품을 물고 피력하는 지론에 의하면 중앙시장이 아니라 중앙백화점으로 만들어야한다는 것이다. 중앙백화점? 내심 의아해 했다. 재래시장을 백화점으로 업그레이드 시킨다? 어떻게? 민 씨의 설명은 간단했다. 먼저 시장번영회에서 시에 요청하여 도로에 붙은 표범 소유의 상가 건물 반쪽을 사들인다. 그리고 그 건물 반쪽을 철거하여 철제 빔을 이용하여 삼 층이나 사 층짜리 공영주차장을 만들고 시장을 이용하는 손님에겐 점포마다 무료주차권을 주어 중앙백화점을 이용하는 고객에겐 주차료를 받지 않는다.
지금 버스타고 장보러 나오는 고객이 몇이나 되냐?
큰 도로를 물고 있는 표범의 건물 반쪽에 사 층이나 오 층으로 주차장을 설치하면 천 대 이상의 차가 주차할 수가 있다. 그 정도의 고객만 풀어놓아도 시장골목이 북적거린다. 대형마트를 따라잡는 방법은 그 뿐이고 역세권이 지닌 장점 때문에 따라잡는 정도가 아니라 능가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게 되면 자신도 다시 시장으로 돌아오겠다는 말까지 했다. 민 형의 말은 일리가 있지만 표범이 과연 건물 반쪽을 내어놓을까? 그게 의심스러웠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의심의 여지조차 없다.
-택도 없는 소리 지껄이지 마.
표범의 대답은 보나마나 그렇게 나올 것이다. 하여간 표범의 사유에 획기적인 전환이 오기 전에는 중앙시장이 대형 마트를 이기기 힘든 이치다.
떡고물을 다 빻아서 인절미에 묻히며 밖을 보니 서울청과 아줌마가 표범이 사는 이 층으로 올라가고 있다. 독이 어지간히 오른 모양이다. 표범은 소극장을 하던 자리에 주택으로 개조해서 그곳에 살고 있다. 시장 뒤쪽에 있던 이 층짜리 단독주택은 날려먹은 지 오래 전이다. 곧 이 층에서 싸움판이 걸쭉하게 벌어질 모양이다.
서울청과 아줌마는 청순가련형이다. 그런 사람일수록 독이 오르는 끝장을 보는 법이거늘, 아무래도 표범은 오늘 건드리지 말아야할 곳에 비수를 꽂은 것이다. 경북한복 아줌마가 말렸지만 소용없다. 서울청과 아줌마가 이 층으로 올라가고 경북한복 아줌마가 입구에서 서성이는데, 채 일분이 안 되어 바퀴가 달린 큰 캐리어를 끌고 선글라스를 낀 아가씨 하나가 이 층으로 올라가는 입구에서 머뭇거리더니 캐리어를 안간힘을 써서 들고 이 층으로 올라가는 게 보였다. 저게 누구지? 생각하다가 떡고물이 묻은 손으로 무릎을 쳤다.
그렇다. 미애다. 표범과 칠 년을 같이 산 조강지처가 나은 표범의 딸이다. 조강지처와 헤어지고도 새엄마 밑에서 할머니와 살며 이 도시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서울로 간 미애다.
표범은 술이 취하면 제 딸, 미애가 미국의 어느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고 자랑을 했지만 아무도 믿으려하지 않았던 그 미애가 돌아온 것이다. 미애가 이 층으로 올라가자 금세 미애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 서울청과 아줌마가 내려오는 게 보였다. 경북한복 아줌마가 서울청과 아줌마 곁에 앉아서 무슨 이야기들을 주고 받고 있다. 서울청과 아줌마의 표정이 좀 풀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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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이 밀렸다. 오늘이 음력으로 초하루라서 사찰 다섯 군데에 떡을 시간에 맞추어 배달해야 한다. 초하루 기도에 올릴 떡이라 정성을 다해서 새벽부터 아내와 설쳐 만든 떡이다. 떡을 포장하고 있는데 웬 아가씨 하나가 가게 앞에서 서성이는 게 얼핏 보였다. 시장이 붐빌 시간이 아니라 떡을 포장하며 자세히 보니 미애였다. 고등학교에 다닐 적에 보고는 처음이다. 나는 떡을 포장하다가 말고 밖으로 나왔다.
-너 미애 아니냐? 참 예쁘게 자랐구나.
제 아빠를 닮아서 훨친한 키에다 상당한 미모였다. 그제서야 미애가 인사를 했다.
-오빠! 아니 아저씨! 시장 번영회장이 누구세요?
-무슨 일로 찾냐?
-상의할 게 좀 있어서.......
-번영회장은 저쪽 건물 주인이인 김호철 씨다. 아마도 오후가 되어야 나올걸.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나 지금 좀 바쁘거든, 집에 가 있으면 내가 배달마치고 나랑 같이 만나러 가자. 배달 마치고 내가 집으로 갈게.
-예 알겠어요.
미애는 집으로 가지 않고 가게 안으로 들어와서 포장하는 떡을 보며 아, 맛있겠다고 감탄하며 송편 하나를 집어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가게를 나갔다. 아마도 식전인 모양이다. 떡을 우물거리며 나가는 모습을 본 아내는 당돌하다고 눈을 흘기고 있었다.
-번영회장을 찾네........ 쟤가 아무래도 무슨 일을 저지를 모양이야.
-그래도, 저희 아버지 닮지는 않았네.
아내가 절편에 고물을 묻히며 한마디 거들었다.
절집 배달을 마치고 미애를 시장 번영회장에게 데려가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두고 볼 참이다. 제 아버지와는 다르게 뭔가 저지를 것 같은데 그게 시장 살리기였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중국집 자장면 배달하는 것과는 달리 초하루에 절에 떡 배달하는 것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 작은 도시지만 이쪽 끝에 붙은 절과 저 쪽 끝에 산 속에 있는 절이라 다섯 군데를 배달하려면 시내를 완전히 한 바퀴 돌아야 한다. 요즘이야 절마다 차가 들어가니 괜찮지만 예전에는 겨울에도 오토바이로 배달을 했었다. 보통 절에 기도로 올라가는 떡은 절편과 송편이다. 열 시에 제를 올리니 그 전에 배달을 마쳐야 한다.
서둘러 배달을 마치고 오니 아내가 가게 밖 평상에 떡을 진열하고 있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아침상이 차려져 있다. 시장기가 돌았다. 식탁보를 들추어보니 내가 좋아하는 동태찌개다. 늦은 아침을 서둘러 먹고 신발을 꿰어 차며 아내를 향해 말했다.
-나 좀 나갔다 올게.
아내는 나를 힐끗 보고는 묵묵부답이다.
아내가 어딜 가느냐고 캐묻지 않은 건 표범의 딸을 찾아간다는 걸 알아들었다는 얘기다. 나는 무슨 일일까 궁금증을 억지로 참으며 표범이 사는 상가 이 층으로 올라갔다. 옛날에 소극장 하던 자리를 집으로 꾸며 살고 있었다. 거기도 현관문을 열어놓은 채 늦은 아침을 먹는 중이다. 식탁에 앉아있는 표범에게 꾸벅 인사를 하며 말을 건넸다.
-여기도 이제 아침을 자시는군요.
-네가 웬 일이야?
-쟤가 좀 보자고 해서요.
표범은 미애를 한 번 힐끔 보고는 꼬리를 내렸다.
표범은 방금 일어났는지 머리는 수세미가 되어 푸석한 얼굴로 트레이닝복을 걸친 채 밥을 깨작거리고 있었다. 표범의 어머니, 표범, 그리고 미애가 식탁에 둘러앉은 밥상은 단촐하다. 미애가 나를 보고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다. 그리곤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표볌은 깨작거리며 미애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보기가 좀 민망했다.
-미애야! 천천히 먹고 우리가게로 내려와라.
미애에게 그렇게 던져놓고 계단을 내려왔다. 가게 앞에 서서 담배를 한 대 피고 있으니까 미애가 금세 내려왔다. 하늘은 우중충 한 게 곧장 비라도 쏟아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미애의 표정은 맑았다.
미애는 내 곁에 오더니 당돌하게 한마디 했다.
-아저씨! 저도 담배 한 대 주세요.
-너 언제 담배 배웠냐?
-대학원 다니면서요. 많이 피지는 않아요. 공부하다가 골이 지끈거리면 한 대씩 피는 게 버릇이....... 미국에서는 담배에 의존했죠.
-뭘 전공했냐?
마애에게 담배를 건네면서 물었다.
-경영학요.
미애는 담배 연기와 함께 대답을 뱉어냈다.
-경영학 박사과정이었니?
-아니에요. 석사과정을 마쳤어요.
-그랬구나. 대단하다.
나는 담배를 한 대 더 빼물었다.
미애와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으니 가게 안에서 아내가 못마땅한 눈길을 던졌다. 미애도 그 눈길을 의식했지만 보란 듯이 담배를 반쯤 피우고 꽁초를 가게 앞 쓰레기통으로 튕겨 넣으며 한마디 헸다.
-아저씨! 이 담배 너무 써요. 박하담배로 바꾸세요. 옷에 냄새도 덜 베여요.
-그래? 알았다.
박하담배를 찾는 걸 보니 골초는 아니다.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미애가 골초가 아니라는데 왜 내가 안도의 한숨을 쉴까? 나도 모를 일이다. 나도 꽁초를 쓰레기통으로 던져 넣었다. 그리곤 가게 안의 아내를 힐끔 보고는 앞장섰다. 미애는 내 뒤를 따라 시장을 관심 있게 둘러보며 따라오고 있었다. 좀 이른 시간이라 시장 골목은 한산했다. 번영회장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번영회 사무실은 파출소가 있는 뒷골목 옷가게 이 층에 얹은 컨테이너하우스다. 철제계단을 올라가니 번영회장은 벌써 나와 사무실 청소를 마치고 사무실 마당인 옥상을 쓸고 있었다. 번영회장도 시장에 작은 상가를 가지고 있다. 점포는 고작해야 열댓 개 정도인 시장 사거리의 삼각형 건물의 주인인데 번영회장을 십 년도 넘게 장기집권하고 있다. 자기 상가에서 회장의 아내가 이불가게를 하고 있는지라 말 그대로 시장의 번영에 관심이 많다면 많은 인물이다. 많은 정도가 아니라 민감한 자다.
우리가 옥상으로 올라서자 머리가 적당히 벗겨진 번영회장이 이른 시간에 웬일이냐는 듯이 나의 아래 위를 살폈다.
-일찍 나오셨네요.
건성으로 먼저 인사를 하자 번영회장의 눈은 어느 다방 아가씨냐는 듯이 미애에게 가 있었다. 미애를 돌아보며 말했다.
-표범. 아니, 이호택 씨의 딸입니다.
그제서야 감을 잡았는지 번영회장의 표정이 풀렸다. 미애도 고개를 까딱하며 인사를 했다.
-그래? 그 애가 벌써 이렇게 컸단말이여? 참 반갑네. 반가워.
번영회장은 한 손에 빗자루를 쥐고 다가와 한 손으로 미애의 어깨를 다독여주고 있었다.
-서울에서 유명대학 경영학 석삽니다. 미국까지 가서 이 년이나 공부했고,
번영회장을 보며 한마디 더 거들었다.
-경영학 석사? 아이구 대단하네. 참말로 대단햐.
-감사합니다.
미애는 과찬하는 번영회장께 고개를 까딱했다.
-참말로 대단햐. 근데 이른 시간에 웬 일인고?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아, 예....... 쟤가 상의 드릴 일이 있다고 해서.......
-그랴? 누추하지만 잠시 들어가지.
표범을 의식해서인지 번영회장의 눈이 별로 달갑지 않은 표정이다. 미애가 무슨 말을 하려나 궁금하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배달하면서도 그 생각만 했었다. 시장의 상인들이 진정을 넣어 제 아버지를 정신병원이나 알코올 중독자 요양소로 보내게 하자는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럼 딸 앞에서 꼬리를 내린 표범을 때리더라도 이해해 달라? 그 역시 아닐 것이다. 곧 결혼하는데 주례를 부탁한다? 그건 더욱 아닐 것이다.
내가 이것저것 상상하는 사이 번영회장과 미애는 컨테이너 사무실로 들어가고 있었다. 나도 신발을 벗고 따라 들어갔다. 책상 두 개와 소파만 놓인 좁은 사무실이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번영회장이 미애더러 소파에 앉으라고 자리를 권했다. 나도 엉거주춤 미애 옆에 엉덩이만 걸치고 앉았다.
-차 한잔 해야지?
-커피요. 제가 탈게요.
미애는 말릴 틈도 없이 곧장 일어나 생수통 앞으로 가서 종이컵에 커피를 타며 인사차 한마디 했다.
-사무실이 참 깨끗하네요.
-늘 혼자 있으니 먼지가 없어야지. 먼지가 날리면 나눠 마실 사람도 없고, 허허허.
번영회장은 웃음으로 대답을 종결했지만 늘 혼자 있음을 강조했다.
종이컵에 담긴 커피 석 잔이 탁자에 놓이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커피를 홀짝이며 미애가 무슨 말을 할지 생각했다. 번영회장도 미애가 무슨 말을 할지 입을 다물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 침묵을 깨고 미애가 입을 열었다.
-지금 전체적인 현상이지만 재래시장이 너무 죽어가고 있지요?
그 말을 들은 번영회장이 커피를 마시다 움찔 했다.
-그렇지. 평생 잘 되는 게 있나? 시대가 변해 가는데........ 옛날에는 버스타고 장보러 나왔지만 요즘은 모두들 차를 가지고 다니니 주차하기 좋은 대형마트로 가니 재래시장이 죽을 수밖에........
번영회장은 한숨을 쉬었다. 그 사이 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지난 추석에는 정부에서 재래시장 주변에 불법주차를 한시적으로 허용해주었지. 그땐 반짝 경기가 살아나더니 명절이 끝나고 주차단속을 하니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어.
조신하게 앉아서 듣고 있던 미애가 나를 보며 대답했다.
-저도 매스컴을 통해 그 정도는 알고 있어요. 시장을 살릴 방법을 강구해봤는데........
늘 듣던 말이었지만 그 말이 미애의 입에서 나오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아니 오면서 상상은 했지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번영회장은 침을 끌꺽 삼키며 미애의 뒷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미애는 커피로 입을 축이고서야 뒷말을 이어갔다.
-제일 큰 문제가 주차장이지요?
-그럼. 주차장이 가장 시급한 문제지. 주차 문제만 해결되면 시장은 오지 말래도 사람들로 우글거릴 걸.
번영회장은 말끝에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쩍 다셨다. 나는 미애의 뒷말을 기다렸다. 뜬금없이 번영회장을 찾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슨 대책을 가지고 왔을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저희 건물 삼분의 일을 내놓을 게요. 주차장으로........
-어떤 식으로 내어놓는단 말이냐?
올 것이 왔구나 생각하는 사이, 번영회장이 말도 안 된다는 소리라고 심드렁하게 되물었다.
-도로에서 상주상회까지 내놓는다 하고 그 안에 있는 가게들은 빈 점포를 리모델링하여 옮기라고 하고 시에 기부 채납하는 방법으로 내놓겠습니다.
미애는 옹골차게 대답했다.
-너? 거기 땅 값이 평당 얼마쯤 하는지 알고 하는 소리냐?
-사려면 평당 천만 원이 넘겠죠? 그렇지만 지금 점포가 자꾸 빠지는데 그걸 시에 기부 채납하더라도 나머지 점포가 부가가치가 높아지니까요.
경영학 석사다운 발상이다.
-지금 네가 기부 채납하겠다는 땅이 몇 평이나 되는지 아느냐?
-한 오백 평쯤 되겠지요.
평당 천만 원이 훨씬 넘는다. 평당 천만 원으로 잡아도 오백 평이면 돈이 얼마야? 속으로 되짚어 보는 사이 번영회장이 무슨 결심을 했는지 이를 악물고 있다가 다시 물었다.
-너희 아버지가 허락할 것 같으냐?
번영회장은 핵심만 골라서 물으며 최대한 말을 아꼈다.
-표범 말씀이죠? 킬리만자로의 표범, 호호호. 이빨이 다 빠졌어요.
-그게 무슨 소리냐?
-아버지는 경영에 대해서 모르시고 판단 능력이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지주는 너희 아버지가 아니냐?
-표범은 제가 때려잡을 수 있어요. 그 쪽 점포를 빈 가게로 옮기도록 할 테니까, 시에 기부 채납할 것이니 번영회에서 시 도시계획과에 얘기해서 건물을 철거하고 삼 층이나 사 층으로 철제 주차장을 설치하는 비용은 시에서 부담하도록 하면 되겠지요. 시장을 이용하는 고객에게는 무료주차를 허용하구요. 주차장이 천오백 평이나 이천 평 정도면 우리 시장을 살릴 수 있을 겁니다.
벌써 주차장 설계도는 미애의 머릿속에 들어있다.
-너희 아버지가 정말 승낙을 하겠냐?
번영회장은 표범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다.
-그걸 내놓아도 나머지가 그만큼 부가가치가 높아지니까, 잘 설득해야죠. 그래도 안 되면 이게 있잖아요.
미애는 주먹을 쥐어 보였다.
-뭐? 아버지를 패겠다는 말이냐?
-그건 아니고........ 이제부터 표범을 제치고 제가 경영할 거예요. 그 옛날 표범의 명성을 살려주겠다고 해야죠.
-알았다. 네 생각이 그렇다면 시장 상인들의 탄원서를 받아서 시에 주차장을 설치해달라고 하겠다만 올해 예산이 남았는지 모르겠다. 오늘 안으로 네 아버지를 설득해라. 내일 너희 아버지한테 물어보고 일을 진행하겠다. 하루 늦은 건 괜찮지?
-절 못 믿겠다는 말씀이세요?
-괜히 시장을 술렁이게 하고 싶지 않아서야.
번영회장은 끝내 못 믿겠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미애를 믿는다. 표범이 그 땅을 내놓고 시장 상인들에게 생색을 내며 딸 자랑하며 다니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래도 상관없다. 시장을 살릴 수만 있다면....... 미애의 어깨를 토닥여 주고 싶은 충동을 억지로 참으며 커피잔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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