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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계(高仁繼) 1564년(명종 19)~1647년(인조 25)
月峯先生文集卷之四 / 墓碣 / 判決事蔡公墓表
蔡有孚 1550 1593 仁川 伯忱
娶順天朴氏司果孝昌之女。贊成安命之玄孫。生四男四女。男長得海,次得江,得湖,得濂。女長適文科高仁繼。次權文煥,金基,邊胤宗。皆有子女。
朴氏生於嘉靖二十九年庚戌(1550,명종5)六月八日。歿于萬曆四十年壬子(1612,광해군4)八月二十一日。享年六十三。其年某月某日。移舊塋合窆于聞慶縣南會稽某山坐子向午之麓。壬申某月某日立石。藏誌石于壙前某地云
권호문(權好文) 1532년(중종 27)~1587년(선조 20)
松巖先生續集卷之四 / 詩
朴習讀孝昌山亭十景
仙區特地嶠南村。采采汀蘭日正暄。麗景正宜修稧事。流紅何必問花源。右山陽修稧
冠童畢集澗濱齋。風詠歸來點也儕。言志可承吾與嘆。寧隨四子共襟懷。右巖齋詠歸
谷邃林深可結廬。佳名不是季倫居。草如茵處花如錦。終日探春駐小車。右金谷尋春
伽藍遙在白雲層。細路緣溪是大乘。誰覓疏鍾山影裏。帶風歸袂夕陽僧。右遠寺歸僧
數里淸灘碧玉流。狂瀾雨後漾汀洲。鄒聖已傳觀水術。不須浮海放孤舟。右浮碧觀瀾
茂林蒼翠遶荒郊。牛背斜風一笛高。欲問牧童簑笠興。太平春色滿江皐。右長林牧笛
玉立遙岑一段奇。舊名猶帶出朝曦。最憐夜夜寒蟾影。飮罷幽人獨對時。右㬢峯對月
胡琴誰弄碧峯巓。人去千年岳色傳。一帶晴嵐迷曉旭。半含山氣半浮天。右琶岳朝嵐
平蕪十里藹無垠。孤館連村入眼分。薄暮夜光明滅處。炊煙輕颺曳西曛。右野館暮煙
一竿閒把一溪風。靑蒻生涯任釣翁。我忘鷗鳥鷗忘我。寧望周文獵匪熊。右熊灘垂釣
송암집 속집 제4권 / 시(詩)
습독 박효창의 산정 10경〔朴習讀孝昌山亭十景〕
특별한 신선 구역 교남의 마을에서 / 仙區特地嶠南村
물가의 난초 캐니 햇살이 따스하네 / 采采汀蘭日正暄
아름다운 경치는 수계하기 좋으니 / 麗景正宜修稧事
어찌 꼭 복사꽃 흘러가는 도화원을 찾으랴 / 流紅何必問花源
위는 ‘산양 수계(山陽修稧)’이다.
관동들이 시냇가의 암재에 다 모였다가 / 冠童畢集澗濱齋
시 읊으며 돌아가니 증점의 무리이네 / 風詠歸來點也儕
뜻 말하여 허여한다는 찬탄을 받을 수 있을까 / 言志可承吾與嘆
차라리 네 사람을 따라 회포를 함께 하리 / 寧隨四子共襟懷
위는 ‘암재에서 시 읊으며 돌아가다〔巖齋詠歸〕’이다
골짝 깊고 숲이 깊어 집 지을 만하니 / 谷邃林深可結廬
좋은 이름을 계륜만 차지하지 않았네 / 佳名不是季倫居
깔개 같은 풀이 돋고 비단 같은 꽃이 피어 / 草如茵處花如錦
온종일 상춘하다 수레를 멈추었네 / 終日探春駐小車
위는 ‘금곡에서 봄 풍경을 찾다〔金谷尋春〕’이다.
절이 멀리 층층 구름 속에 있는데 / 伽藍遙在白雲層
시내 따라 오솔길 가면 대승사가 있네 / 細路緣溪是大乘
누가 산속의 성근 종소리를 찾아가나 / 誰覓疏鍾山影裏
석양에 소매 날리며 스님이 돌아가네 / 帶風歸袂夕陽僧
위는 ‘멀리 암자로 돌아가는 스님〔遠寺歸僧〕’이다.
몇 리의 맑은 여울 벽옥처럼 흐르는데 / 數里淸灘碧玉流
비온 뒤라 모래톱에 거세게 출렁이네 / 狂瀾雨後漾汀洲
맹자가 이미 물 보는 방법을 전했으니 / 鄒聖已傳觀水術
바다에 조각배를 띄울 필요 없다네 / 不須浮海放孤舟
위는 ‘부벽에서 물결을 관찰함〔浮碧觀瀾〕’이다.
무성한 푸른 숲이 거친 들판 감싸고 / 茂林蒼翠遶荒郊
바람결에 소를 타고 부는 피리소리 들려오네 / 牛背斜風一笛高
삿갓 쓴 목동에게 흥을 물으려 하니 / 欲問牧童簑笠興
태평한 봄빛이 강 언덕에 가득하네 / 太平春色滿江皐
위는 ‘숲속에서 목동이 부는 피리 소리〔長林牧笛〕’이다.
저 멀리 우뚝 선 봉우리가 기이한데 / 玉立遙岑一段奇
오랜 이름 아직도 해가 뜨는 뜻을 띠고 있네 / 舊名猶帶出朝曦
가장 좋은 건, 밤마다 찬 달을 / 最憐夜夜寒蟾影
은자가 술 마시며 홀로 볼 때이네 / 飮罷幽人獨對時
위는 ‘희봉에서 달을 대함〔曦峯對月〕’이다.
누가 푸른 산 정상에서 비파를 연주했나 / 胡琴誰弄碧峯巓
천 년 전에 사람은 죽었으나 산색은 그대로네 / 人去千年岳色傳
맑은 이내 끼어서 새벽 해가 희미한데 / 一帶晴嵐迷曉旭
반은 산을 덮었고 반은 하늘에 떠있네 / 半含山氣半浮天
위는 ‘비파산의 아침 이내〔琶岳朝嵐〕’이다.
십리 길에 잡초가 끝없이 펼쳐 있고 / 平蕪十里藹無垠
마을의 외론 객관이 분명하게 보이네 / 孤舘連村入眼分
저물녘 밤 등불이 깜박이는 곳에서 / 薄暮夜光明滅處
밥 짓는 연기가 석양에 흩어지네 / 炊煙輕颺曳西曛
위는 ‘들판 객관의 저녁 연기〔野舘暮煙〕’이다.
바람 부는 냇가에서 한가로이 낚싯대 잡고 / 一竿閒把一溪風
청약립 젖혀 쓰고 낚시하며 살아가네 / 靑蒻生涯任釣翁
나는 백구를 잊고 갈매기도 나를 잊었으니 / 我忘鷗鳥鷗忘我
어찌 주 문왕의 사냥에 곰 아니길 바라랴 / 寧望周文獵匪熊
위는 ‘웅탄에서 낚시함〔熊灘垂釣〕’이다.
[주-D001] 도화원(桃花源) : 선경(仙境)을 가리킨다. 도잠(陶潛)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의하면, 동진 태원(太元) 연간에 무릉(武陵)의 한 어부가 시내를 따라 한없이 올라가다가 갑자기 도화림(桃花林)이 찬란한 선경을 만났다. 일찍이 진(秦)나라 때의 난리를 피해 처자를 거느리고 그곳에 들어와 대대로 살고 있다는 사람들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고, 수일 후에 그곳을 떠나서 배를 얻어 타고 되돌아왔는데, 그 후로는 다시 그 도화림을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陶淵明集 卷6》[주-D002] 시(詩) …… 무리이네 : 공자(孔子)가 자로(子路)ㆍ증점(曾點)ㆍ염유(冉有)ㆍ공서화(公西華) 등의 제자에게 각각 자기의 뜻을 말해 보라고 하였다. 다른 제자들이 다 말을 마친 다음에 공자가 다시 증점에게 묻기를, “점아! 너의 생각은 어떠하냐?〔點爾何如〕”라고 하자, 증점이 이때 비파(琵琶)를 천천히 타고 있다가 쟁그랑 소리와 함께 비파를 내려놓고 대답하기를, “저는 앞의 세 사람이 말한 바와는 다릅니다.……늦은 봄에 봄옷이 이루어지거든 관자 대여섯 명, 동자 예닐곱 명과 함께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쐬고 읊조리며 돌아오겠습니다.〔異乎三子者之撰……莫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論語 先進》[주-D003] 허여(許與)한다는 찬탄 : 위 각주에서 언급한 증자의 대답을 듣고 공자가 길게 찬탄하면서 “나는 증점을 허여하노라.〔吾與點也〕”라고 한 것을 가리킨다.[주-D004] 네 사람 : 공자(孔子)가 제자에게 각각 자기의 뜻을 말해 보라고 한 자로(子路)ㆍ증점(曾點)ㆍ염유(冉有)ㆍ공서화(公西華)를 말한다.[주-D005] 좋은 …… 않았네 : 박효장의 산정 10경 중에 금곡(金谷)이 있기 때문에 석숭(石崇)만이 금곡원이라는 이름을 독점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계륜(季倫)은 진(晉)나라 때 부호(富豪)로 유명했던 석숭(石崇)의 자(字)이다. 그가 일찍이 호화스런 별장 금곡원(金谷園)을 만들어 놓고 빈객들을 모아 연회를 베풀었을 때, 각각 시를 지어서 회포를 서술하게 하고 혹 시를 짓지 못하면 술 3말을 벌주로 마시게 하였다. 《晉書 卷33 石崇列傳》 이백(李白)은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에서 “만약에 시를 짓지 못하면 벌주는 금곡원의 세 말을 따른다.〔如詩不成, 罰依金谷酒數.〕”라고 하였다.[주-D006] 대승사(大乘寺) :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直指寺)의 말사이다. 사불산 산마루에는 사면(四面) 석불상이 있는데, 《삼국유사》 권3 〈사불산조〉에 587년(신라 진평왕9) 커다란 비단 보자기에 싸인 사면석불이 공덕봉(功德峰) 중턱에 떨어졌는데, 사면에 불상이 새겨진 4불암이었다. 왕이 소문을 듣고 그곳에 와서 예배하고 절을 짓게 하고 ‘대승사’라고 사액(賜額)하였다.[주-D007] 맹자가 …… 전했으니 :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맹자가 “물을 관찰함에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급한 여울물을 보아야 한다.〔觀水有術 必觀其瀾〕”라고 하였다. 이는 여울물을 보면 그 근원이 있음을 알 수 있다는 뜻으로, 도(道)의 근본이 있음을 비유한 말이다.[주-D008] 오랜 …… 있네 : 옛날부터 봉우리의 이름이 희봉(曦峯)이기 때문에 해가 뜨는 뜻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 것이다.[주-D009] 청약립(靑蒻笠) : 푸른 부들로 만든 삿갓이다. 당나라의 연파조도(烟波釣徒) 장지화(張志和)가 지은 〈어부사(漁父詞)〉에 “푸른 부들 삿갓에다 푸른 도롱이 쓰고, 비낀 바람 가랑비에 돌아갈 곳 없어라.〔靑篛笠綠簑衣, 斜風細雨不須歸.〕”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주-D010] 주(周) …… 바라랴 : 주(周)나라 문왕(文王)이 사냥을 나가기 전에 점을 쳤더니 “잡을 것은 범도 곰도 아니고〔匪熊〕 왕패(王霸)를 보좌할 인물이다.”라는 괘(卦)가 나왔고, 사냥을 나갔다가 위수(渭水)에서 강태공(姜太公) 여상(呂尙)을 만나 수레에 태우고 함께 돌아왔다는 고사가 있다. 《史記 卷32 齊太公世家》
ⓒ 안동대학교 퇴계학연구소 | 황만기 (역)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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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호문(權好文) 1532년(중종 27)~1587년(선조 20)
松巖先生文集卷之二 / 詩
次山陽朴習讀松亭沈觀察使韻。
一解微官縛。松齋歲月遲。石溪寒灑檻。煙嶂翠圍籬。暮野雙鴻信。春庭十友期。客來觴詠處。誰得逼眞詩。
송암집 제2권 / 시(詩)
산양박습독과 송정의 심 관찰사의 시에 차운하다〔次山陽朴習讀松亭沈觀察使韻〕
낮은 관직에 얽매였다가 풀려나니 / 一解微官縛
송재에 세월이 더디게 흐르네 / 松齋歲月遲
돌 시내에 정자가 시원하고 / 石溪寒灑檻
안개 낀 산에 푸른 울이 둘러있네 / 煙嶂翠圍籬
저녁 들판에 쌍 기러기가 소식 전하고 / 暮野雙鴻信
봄날 뜰에서 십우를 기약하네 / 春庭十友期
손님 와서 술 마시며 시 읊는 자리에서 / 客來觴詠處
그 누가 핍진한 시를 지을까 / 誰得逼眞詩
[주-D001] 산양(山陽) : 옛날 상주목(尙州牧)의 속현(屬縣)이었다. 지금의 문경시 산양면 일대이다.[주-D002] 박 습독(朴習讀) : 《송암집 속집》 권4에 〈박 습독 효창의 산정 십경〔朴習讀孝昌山亭十景〕〉 시 제목의 소주에 ‘효창(孝昌)’으로 되어 있으며 이는 이름으로 추정된다. 자세한 행적은 미상이다. 살았던 곳은 문경시 녹문리(鹿門里) 구야(九野) 마을로 추정된다.[주-D003] 심 관찰사 : 1549년에 경상도 관찰사를 지낸 심통원(沈通源, 1499~1572)으로 추정된다. 그는 자는 사용(士容), 호는 욱재(勖齋)ㆍ만취당(晩翠堂)이다.[주-D004] 십우(十友) : 송(宋)나라 증단백(曾端伯)은 열 가지 꽃을 십우(十友)로 삼고, 각각의 꽃에 대하여 계수나무 꽃〔桂花〕은 선우(仙友), 해당화(海棠花)는 명우(名友), 연꽃〔荷花〕은 정우(淨友), 다미(茶䕷)는 운우(韻友), 서향(瑞香)은 수우(殊友), 치자(梔子)는 선우(禪友), 매화(梅花)는 청우(淸友), 납매(臘梅)는 기우(奇友), 유란(幽蘭)은 방우(芳友), 국화(菊花)는 가우(佳友)라고 이름을 붙였다.
ⓒ 안동대학교 퇴계학연구소 | 안정 (역) | 2015
권호문(權好文) 1532년(중종 27)~1587년(선조 20)
명종 4 1549 기유 嘉靖 28 18 2월, 부친상을 당하다. ○ 10월, 麻甘山에 장사 지내다.
명종 6 1551 신해 嘉靖 30 20 4월, 삼년상을 마치다. ○ 退溪에게 수학하다. ○ 가을, 寒棲齋가 완성되다. ○ 이후 靑城山에 卜居하고 독서하다.
명종 18 1563 계해 嘉靖 42 32 3월, 黃俊良의 부음을 듣다.
선조 1 1568 무진 隆慶 2 37 5월, 具鳳齡과 人心道心圖說을 논하다. ○ 8월, 紹修書院에 가서 享禮를 행하다. ○ 文化柳氏와 혼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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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봉령(具鳳齡) 1526년(중종 21)~1586년(선조 19)
선조 15 1582 임오 萬曆 10 57 2월, 대사성이 되다. 이후 대사헌, 대사성, 부제학, 대사간이 되었으나 병으로 사직, 체차되다.
선조 16 1583 계미 萬曆 11 58 4월, 형조 참판이 되다. ○ 5월, 전라도 관찰사가 되다. ○ 8월, 靈巖 鄕校에서 釋菜禮를 행하다.
선조 17 1584 갑신 萬曆 12 59 2월, 光州 鄕校에서 釋菜禮를 행하다. 동지중추부사가 되다. ○ 3월, 대사성이 되다. ○ 4월, 이조 참판이 되다. ○ 11월, 병으로 체직되다.
栢潭先生續集卷之二 / 七言絶句
瓦洞朴習讀溪亭。次鄭八溪 仁吉 韻示幕僚元彦正。兼呈大尹沈方叔。
玉澗光呑小檻淸。林間勝會約何成。停盃欲問初生月。不覺奚霏落酒盈。
水軒高絶倚來淸。相對雲山與目成。鐵笛一聲吹海月。桂宮涼露滴盈盈
백담집 속집 제2권 / 칠언절구(七言絶句)
와동 박 습독의 계정에서 팔계 정인길의 시에 차운하여 막료 원언정에게 보이고 대윤 심방숙에게 드리다〔瓦洞朴習讀溪亭 次鄭八溪 仁吉 韻示幕僚元彦正 兼呈大尹沈方叔〕
옥 같은 시내 빛을 삼켜 작은 헌함 선명한데 / 玉澗光呑小檻淸
숲 속 좋은 모임 어느 때 약속 이루어지겠나 / 林間勝會約何成
술잔 멈추고 초승달에게 물어보려 하니 / 停盃欲問初生月
시냇가 물안개가 술잔에 가득한 것도 몰랐네 / 不覺溪霏落酒盈
물가의 헌함 우뚝하게 의지하여 맑은데 / 水軒高絶倚來淸
구름 덮인 산과 마주하여 친한 듯하네 / 相對雲山與目成
쇠피리 한 곡조 바다 위 달에 불어오니 / 鐵笛一聲吹海月
월궁의 서늘한 이슬이 방울져 찰랑이네 / 桂宮涼露滴盈盈
[주-D001] 심방숙(沈方叔) : 심의겸(沈義謙, 1535~1587)으로, 방숙은 그의 자이다. 본관은 청송(靑松), 호는 손암(巽菴)ㆍ간암(艮菴)ㆍ황재(黃齋)이다. 퇴계의 문인으로 1562년 문과에 급제하여, 1580년 예조 참판으로 함경 감사를 역임하였다.
ⓒ 한국국학진흥원 | 김우동 (역) | 2018
신익성(申翊聖) 1588년(선조 21)~1644년(인조 22)
樂全堂集卷之十 / 墓誌銘 / 司憲府大司憲靑陽君沈公墓誌銘 幷序
沈義謙 1535 1587 靑松 方叔 巽菴 靑陽君
乙丑歷右尹禮曹參判開城府留守。丁丑拜全羅道觀察使。戊寅授同知中樞府事兼同知成均館春秋館事。不拜。己卯春。禮曹參判。秋拜咸鏡道觀察使。壬午(1582,선조15)出爲全州府尹。丙戌守養母韓氏喪。廬于坡州。丁亥九月初六日不淑。壽五十有三。其年十一月。葬于先塋某坐之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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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소개 / 우리마을 유래 및 설화
산양면 <과상골(果上谷)∙과상동(果上洞)∙과곡(果谷), 과하리(果下里) .... >
- 구야(九野)
지금부터 약 250여년전 박습독(朴習讀)이라는 선비가 이 마을를 개척할 당시 이곳에 구야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이 절의 이름을 따서 마을 이름을 구야리(九野里)라고 하였다 한다.
<현리(縣里)>
- 현리
신라시대때부터 부락이 형성되어 현청 소재지였고 고려시대때에는 가유현(嘉猷縣)의 소재지여서 현리로 칭하게 되었다 한다. 지금부터 약 550여년전에 朴孝昌 이란 선비가 개척한 마을이라고도 한다. 인천채씨의 집성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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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창 (朴孝昌) 本貫 순천 (順天)
박효창朴孝昌-妻 權氏, 父 박린朴璘 祖 박윤공朴允恭 曾 박문규朴文規 高 박안명 朴安命
朴禮昌
高興雲 郡守 順天朴氏 朴禮昌의 女 高仁繼 系
高仁繼+仁川蔡氏 參奉 蔡有孚의 女 蔡有孚 妻父 朴孝昌
월봉집(月峯集) 고인계(高仁繼) 1564년(명종 19)~1647년(인조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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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명지(申命之) 조선 세조(世祖)~성종(成宗) 때의 문신. 아버지는 홍문관 교리(弘文館校理)를 지낸 신분(申賁)이며, 의흥 현감(義興縣監)을 지낸 신응지(申應之)의 형. 영천 군수(永川郡守)를 지냄.
1416~1492 한국/조선전기 , 황해도/평산 , 인명/관인/문신
2 신분(申賁) 조선 세조(世祖) 때의 문신. 본관은 평산(平山). 영천 군수(永川郡守)를 지낸 신명지(申命之)와 의흥 현감(義興縣監)을 지낸 신응지(申應之)의 아버지로, 홍문관 교리(弘文館校理)를 지냄.
한국/조선전기 , 황해도/평산 , 인명/관인/문신
홍귀달(洪貴達) 1438년(세종 20)~1504년(연산군 10)
虛白先生續集卷之五 / 墓碑銘 / 永川郡守申公墓碑銘 竝序
申命之 1416 1492 殷豐 敬甫
申命之 1416 1492 永川郡守申公墓碑銘 竝序 墓碑 洪貴達 虛白亭集
公諱命之。字敬甫。高祖諱仲全。奉翊大夫。密直司事。曾祖諱允恭。嘉善大夫。禮儀典書。祖諱維。成均進士。考諱賁。弘文校理。娶漢城府尹醴泉權誼之女。生公。公幼而孤。性溫厚。克遵慈敎讀書。應擧累不中。慨然從軍務勤力。値世祖龍飛初。宿衛有勞。與原從功臣。出知永川郡事。治郡數年。民便之。以事遞。退而家居于醴泉郡之神堂洞。事母以孝聞。母歿居廬。三年哀毀。其喪祭一如朱文公家禮。鄕黨稱焉。弟應之官至掌肄院司議。亦以母故。謝事而歸。與公禮接。公友愛天至。司議亦事公如父。常愉愉如也。兩家子孫。亦各懽然相愛。其一門雍穆之風。蓋公唱之也。公生於永樂丙申。歿於弘治壬子。得年七十七。歿。永川民來哭者數十人。其遺愛在人如此。公娶漢城判尹李思任之女。生二男六女。長耆。司猛。娶辛尙周之女。次曰髦。娶僉知辛義卿之女。女長適進武副尉
潘孟江。次適司直
朴允恭。次適縣令
具諴。次適奉常主簿
盧瑁。次適禦侮將軍
黃俊卿。次適幼學
朴守仁。
諸孫男女摠三十七。卒之明年十二月十二日。葬于同郡北新寺洞父墳之南。明年。其孤請余銘其暮。銘曰。
書云孝。詩言友。公竝有。鄕先生。郡太守。名悠久。字亦深。石亦厚。知不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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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문경시 산양면 녹문리 산 32
경북 문경시 산양면 현리 182-3
경북 문경시 산양면 과곡리 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