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동누리길12코스
*일시:2020년10월2일(금)
*코스:필리핀참전비~대자동마을회관~성령대군사적~최영장군묘~고양향교(중남미문화원)~고양일고등학교~선유랑마을~안장고개 (선유동입구)
*거리 : 약7km *소요시간:3시간
필리핀참전 기념비앞에서 스탬프와 함께 12코스를 시작 하고
필리핀군은 6.25전쟁때 왜관.김천.대구.임진강변 철원지구전투 등에 참전하여 국군의 북진과 고지방어등에많은 공을기여 헸으며 대한민국을위해 희생한 필리핀군의 넋을 위로하기위해 비를세웠다고합니다
고양누리길 12코스시작 지점이며 한국전쟁에 참전한 필리핀군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필리핀참전비를 다녀왔습니다.필리핀참전비는 통일로 1번 국도변에 위치해 있습니다
길목에 다리건너 이름도 거룩한 통일케페라고
연화사 주도 연화 추모공원이 자리하고 있어..명당중에 명당.
성 녕 대 군
조선 제 3대 태종의 4째 아들로 이름은 이종(李褈)본관 은 전주있,어머니는 원경왕후 민씨이고 창령 성씨 좌찬성 억의 딸과 혼인하여 일찍이 성녕군에 봉해졌다가 태종 14년(1414) 대군으로 진봉되었는데 어려서부터 부왕의 총애를 받았고 대광보국대부의 위계에 올랐으나 14세 때 홍역을 앓고 어린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태종은 이를 몹시 비통해하여그의 묘 옆에 대자암을 세워 그의 명복을 빌게 하였다.
최영 장군 묘소 오르는 길은 한적하고 조용 하기까지
경안군(원손) 묘역/ 언덕 위에 있는 무덤이 경안군 묘/ 아래 작은 무덤 뒤에 가린 무덤이 경안군의 아들 임창군의 묘입니다.
경안군(慶安君 회(檜) 1644-1665)은 소현세자의 셋째 아들입니다.
1645년 소현세자는 만 8년의 볼모생활 끝에 청나라로부터 석방되어 고국에 돌아옵니다. 그러나 반가움도 잠시, 귀국 후 불과 8개월 만에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의 죽음은 물론 미궁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죽은 시신의 모습이나, 이후 인조가 소현세자 일족에게 행한 일들을 보면 인조에 의해 독살되었을 것이라는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문구가 적힌 최영장군 묘소 입구 계단 앞...
최 영 장군
최영(崔瑩)은 1316년(충숙왕 6) 사헌규정 최원직(崔元直)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본관은 철원이다. 양광도에서 왜구를 토벌하면서 무인의 길에 들어섰고,고려 공민왕 때 원나라와 맞서 영토를 회복하고 고려 말기의 혼란한 내외 정세 속에서 고려를 지탱하려 했으나, 이성계에 의해 제거되어 참수되기전 최후를 맞이하며
"내 평생 남의 것을 탐한 적이 없다. 만약 내가 평생에 있어 탐욕이 있었다면 내 무덤에
풀이 자랄 것이고 결백하다면 무덤에 풀이 자라지 않을 것이다." 라고 ~
최영장군 묘소 밑 성황당 옆에 스탬프함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묘소 바로 뒤쪽에 자리한 산신제단은 설치한지 얼마 안된것같고..
고양 향교 포토존에서 아름다운 기와선과 담장의 좁은 길을따라..
고 양 향 교
조선 숙종 때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서 창건되었다. 창건 이후의 자세한 역사는 전하지 않지만 여러 차례의 보수가 있었고, 1970년 담장을 보수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전답과 노비·전적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현재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고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올리고 있으며,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이 향교는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69호로 지정되어 있다
주변이아직도 공사중이라 어수선하고 대성문은굳게 닫혀있고
고양향교 옆에 자리한 중남미 문화원 박물관...
신길 입구에 있는 식사하였어요 촬영지 안내판,
영의정 문경공 이직 선생 묘소및 시비와 신도비
선유동의 대표적인 인물인 이직(李稷) 선생(1362-1431) 유적. 고려조 공민왕대에 관직을 시작하여 세종대에 영의정을 지낸 인물이다. 오로시(烏鷺詩)가 유명하다.
"가마귀 검다하고 백로야 웃지마라 겉이 검은들 속조차 검을소냐 겉희고 속검은 이는 너뿐인가 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