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베홑이불’을 꺼내보며
얼마 전 이불장 정리를 하다 오랜만에 꺼내 본 삼베 홑이불. 모두가 잠든 고요한 겨울밤. 달그락, 달그락 이불장 여닫는 내가 내는 소리에 내가 놀라 불현듯 떠오르는 울 엄마 생각에 한밤을 하얗게 지새우고 말았다.
부지런하신 할아버지가 초여름 장마철에 지럭시 큰 삼대를 몇 집 베어다가 쇠죽 끓이는 가마솥에 푹 삶아 내면 온 가족이 둘러앉아 껍질 벗겨서 바람이 잘 통하는 아래채 처마 밑에 걸어서 말렸다. 그런 후 매미 소리 요란한 한여름이 되면 동네에서 사이좋은 고부 사이로 소문난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는 처마 밑에 말려놓은 삼대 껍질을 고무 다라 물에 불려 삼베 실 꾸러미를 만들기 바빴다.
대한민국 모든 사람이 춥고 배고팠던 1,970대 그 시절 농촌에서는 보통 벼 베기, 들깨 거두기, 고구마 수확을 끝으로 가을걷이가 모두 끝나면 농한기가 시작되었다. 전기도 없던 그 시절에 추운 겨울이 다가오면 제일 걱정거리가 땔감이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은 온 동네 사람들이 낮이면 너나없이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기 위해 겨울이 시작되면 지게를 지고 낮에는 온 산을 헤집고 다니며 땔감 구하기에 열중하였다.
길쌈하기에 능한 부녀자들은 동지섣달 긴 긴 밤이면 호롱불 아래서 삼 껍질을 잘디잘게 쪼개어 무릎에 비벼서 실을 만들어 이어 붙여서 삼베 실 꾸러미 만드는 일로 밤을 지새우기도 하였다. 그 곁에서 잠들다 두런거리는 무슨 소리에 잠이 깨어 주위를 살피면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는 옛날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삼베 실 꾸러미를 감고 계셨다.
긴긴 봄날 논일 밭일하시다 틈나면 빈방이나 마루에 베틀을 세우고 삼베 짜기가 시작되었다.
도투마리에 홀 실 매어 걸어놓은 베틀에 앉아 달그락거리며 한겨울 내내 만들어 놓은 실꾸리를 북에다 넣어서 끌 신을 신고 앉을까에 앉아 발끝으로 밀고 당기며 베 짜시던 울 엄마. 허기진 배 움켜잡고 우물물 한 바가지로 허기를 달래고 해 질 녘 베틀에서 내려와 보리쌀 절구에 콩콩 찍어 식구들 입에 넣을 밥 지으시든 우리 엄마. 철없는 계집아이였던 내가 뭐라도 잘못할 때면 "그리하는 거 아니라 했게" 하고 싱겁게 나무라셨다.
본인이 손수 짜 놓은 삼베 몇 필을 풀을 곱게 먹여서 고이고이 무명 보자기에 싸서 장롱 아래 수십 년을 고이 두었다가 며느리 하나 딸 다섯 모아놓고 "엄마가 짜놓은 삼베다. 홑이불 한 게씩 만들어서 덮거라. "우리는 삼베를 들고 가서 가장자리에 빨간색 천을 두르고 삼베 홑이불을 하나씩 만들어 가졌다. 말간 색의 삼베 홑이불은 정말 시원하고 좋았다.
세상이 변하고 세월이 흘러 통기성이 좋고 촉감이 좋은 이부자리의 선택에 밀려 엄마가 물려주신 삼베홑이불을 잊고 살았다. 우리 엄마의 피와 땀과 정성이 서려 있는 귀하고 소중한 그 삼베홑이불은 이불장 제일 밑에 넣어 놓은 채 잊고 살았는데 이제야 찾아내어 꺼내 보니 엄마 생각에 가슴이 아려온다. 다시금 생각나는 엄마 말씀이 들리는 듯하다. "옥아! 그러는 거 아니라 했제“ 2024년 2월 23일 소정 하선옥
첫댓글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추억들이 스멀스멀 피어나는 판도라를 여셨군요.
작가님은 작품마다 심금을 두두리는 내용이라서 날마다 켜진 불을 기다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