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 23회 수주문학상 당선작 >
남 생각을 했다 / 박은숙
오늘은 두어 명의 남 생각과
또 두어 명의 나를 생각했다
거울이 늘어나면 결국,
반사되는 얼굴들은 조각이 되겠지
생각과 오래 대화하는 일이
조각난 거울 속을 한데 모아
와장창 깨지는 일과 닮았을까
문득, 또는 불현듯 같은 순간들이
깨진 사금파리같이 눈을 찌를 때
두어 명의 남 생각과
내 생각에 찡그린 정각이 찾아온다.
때로는 늦은 일이 빠르기도 하고
더딘 것이 오히려 나을 때도 있지만
정각이 울렸다는 것은 이미
늦었거나 지나쳤다는 것이다.
그런 일은 두어 명의 남이거나
두어 명의 나의 일에 불꽃이 튀었다는 것이다
남의 일이 곧 나의 일
남처럼 두근거리는 일도 없다
내가 오늘 기쁘다면
그건 두어 명의 남이 해결된 일이다
남은 언제나 나보다 크고 넓다
그들이 나보다, 가 아닌
내가 그들을 더 미워한 일이 많다
어쩌면 남 생각에 너무 불려 다녔는지
오늘은 유독 피곤하다
박은숙 ▲아주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경희사이버대 문창과
▲2021 농민신문 신춘문예 당선(국수)
▲한국문인협회 시분과 회원
▲한국문인협회화성지부 부지부장 ▲좋은친구들화성지부 지부장 ▲한국크리스토퍼남양반도센터 소장
▲(사)한국사법교육원 시민로스쿨 화성지원장
▲저서 수필집 <반지>
한국문인협회 시분과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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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aver.me/GHVdMy4d 빗방울 화석/박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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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2021년 제23회 수주문학상 심사는 2회에 걸쳐 이루어졌다. 1차심사에서는 허연(시 인), 김소연(시인), 안현미(시인), 김언(시인), 이명원(문학평론가) 등 5명의 심사위원들이 응모된 모든 작품을 읽고 각각 우수작 후보 2~3인씩을 선정했다. 그렇게 해서 선정된 후보 작품들을 2차 심사과정에서 심사위원 전원이 활발한 논의를 통해 검토하고 최종 수상작을 선정했다.
심사과정을 통해서 논의된 사항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첫째, 응모작 가운데 산문시적 경향의 작품이 상당수 있었는데, 산문적 형식의 활용에 따르는 내적 필연성을 설득할 수 있는 작품의 성취가 필요해 보였다. 둘째, 응모 편수가 많다 보니, 연작시적 경향의 시도 제법 있었는데 모티프의 반복 등을 피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개별 시편들의 시적 성취에 편차가 있거나 기계적 반복에 머무르는 것은 아쉽게 느껴졌다. 셋째, 시적 자아가 1인칭의 진술을 동반하는 일이 자연스럽다고 하더라도, ‘타자’와 단절된 고립무원의 심경을 표현하는 데만 머문다면, 문학의 ‘대화적’ 성격의 약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나와 타자의 접촉면을 고뇌하고 성찰하는 시적 태도는 여전히 필요해 보였다.
이런 단점들을 잘 극복하고, 나와 타자 사이에 연루된 ‘관계성’을 시적으로 아름답게 천착한 「남 생각을 했다」외 9편을 심사위원들은 만장일치로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이 시는 나와 타자 사이의 ‘관계’ 안에서의 1)기대와 좌절, 2)인식과 오인, 3) 희열과 절망과 같은 모순감정을 서늘한 ‘미적 거리’를 통해 잘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수상작과 함께 응모된 9편의 작품들 역시 정제된 시적 형식과 대상에 대한 시적 자아의 섬세하고도 차분한 응시를 통해, 관성화된 일상을 뚫고 솟아오르는 인식론 적· 감각적 ‘낯설게 하기’의 태도를 잘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일상성의 생기(生氣)와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삶의 통찰적 의미를 잘 보여주는 작품들이었다. 이러한 점에 주목하여 심사위원 일동은 만장일치로 「남 생각을 했다」외 9편을 2021년 제23회 수주문학상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수상자에게는 진심 어린 축하를, 다른 응모자들에게는 위로의 인사를 올린다.
심사위원: 허연(시인), 김소연(시인), 김언(시인), 안현미(시인), 이명원(문학평론가, 집필)
<당선소감>
국수집을 운영하는 저는 저녁 준비로 분주하던 중 걸려온 당선 소식 전화에 놀라고 기뻐 눈물이 와락 쏟아졌다”며 “늘 못 미더웠던 내 시를 향해 이렇게 쓰면 된다는 격려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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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blog.naver.com/shishiwon/222228302794 무의식은 언어로 구조화되어 있다.
<해설>
1. 메세지
심층(라캉의 거울 단계)+표층(남 생각)
현대의 사유위주의 시는 심층의 철학적 개념을 깔고 표층에서 독자마다 다양하게 읽히도록 풍부한 장치를 한다.
심층이 품고 있는 깊은 철학적 배경과 구조를 파악해야 시의 깊이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라캉의 상상계의 거울단계이론, 상징계이론, 실재계이론을 시로 표현한 듯하다.
파편화된 신체를 거울단계를 통해 통합하면서 상징계로 진입하며, 아버지의 이름, 팔루스,언어의 세계인 상징계에는 유령, 증상 같은 실재계의 파편이 문득, 불현듯 찾아온다.이 실재계의 파편은 또 상상계의.이미지를 거치면서 상징계에 편입하게 된다.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는 단계가 아니고 겹쳐 있다
2. 이미지
ㅇ 생각의 이미지
ㅇ 거울 이미지
<개인적 해석>
남 생각을 했다 / 박은숙
오늘은 두어 명의 남 생각과
(대타자와 타자, 아버지와 어머니)
또 두어 명의 나를 생각했다
(의식과 무의식)
(내 속에서 분열된 두 자아)
(미끄러지면서도 관계에 의해 의미를 생성하는 두 개의 시니피앙(기표))
거울이 늘어나면 결국,
(나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거울이 늘어나면, 결국)
(ㅡ생후 약 6개월 정도 된 아이는 거울을 보고 자신의 신체에 대해 발견하게 된다. 거울은 내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매개물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거울을 꼭 물리적인 거울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나 자신을 확인하게 해주는 모든 것들이 거울이 될 수 있다.
ㅡ아이는 원초적인 자아성애만을 가지고 있다. 즉 몸에 대한 원초적인 감각들 밖에 없는데 나중에 엄마의 개입으로 타자적인 차원을 알게 된다. 그 발견은 자기의 신체가 외부에 투영된 거울의 발견과 일치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의 신체가 대상처럼 자신 앞에 완전하게 펼쳐져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거울은 사실 소외된 모습으로 아이를 비춰주는 것이다. 거울에 비치는 나는 내가 아니라 나의 이미지일 뿐이다.
⇒ 거울단계는 유아기의 성장과정 때에만 겪는 사건이 아니라 인간의 심리기구에서 타자의 인정을 얻기 위한 원형적인 형태로서 계속 작동한다. 거울은 분열 속에서 성립 하는데 6개월 된 아이는 자신의 신체에 대해서 완전하게 운동감각을 갖고 있지는 못하다. 거울에 비친 아이의 상은 완전하지만 실제의 아이는 아직 감각의 덩어리인데 이 완벽한 상과 감각의 덩어리는 사실은 불일치할 수밖에 없다.
→ 아이는 자신의 상을 보면서 일차적인 신체의 불안감들을 해소하게 된다. 거울은 나의 형상들을 이미지로 되돌려주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주체가 자기의 형상들을 포착할 수 있게 해주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 형상에서 나의 원초적인 차원이 배제되게 만든다.)
반사되는 얼굴들은 조각이 되겠지
(하나의 정체성의 상을 만들지 못하고 정체성이 분열되고 혼란을 느낀다.)
생각과 오래 대화하는 일이
(언어로 구조화되어 있는 생각은 상징계이다.상징계는 파편화된 이미지의 세계에 아버지의 이름, 팔루스, 언어적 질서를 부여해 의미망에 포획되게 한다)
조각난 거울 속을 한데 모아
(상상계에서 상징계로 통합하여)
와장창 깨지는 일과 닮았을까
(생각이라는 상징이 극에 달하면 상징계에 환멸을 느끼는 일과 닮았을까)
문득, 또는 불현듯 같은 순간들이
(실재계의 유령, 증상이 문득, 불현듯 떠올라)
(실재계의 응시)
깨진 사금파리같이 눈을 찌를 때
(실재계는 포획되지 않고 의미화되지 않는 파편의 세계로서 유의미의 세계인 눈을 찌를 때)
두어 명의 남 생각과
내 생각에 찡그린 정각이 찾아온다.
(분열된 타자와 내 생각에 대한 '찡그린 정각'즉 찡그림은 실재계의 증상이고 정각이라는 깨달음이 찾아온다)
때로는 늦은 일이 빠르기도 하고
더딘 것이 오히려 나을 때도 있지만
정각이 울렸다는 것은 이미
늦었거나 지나쳤다는 것이다.
(실재계에 대한 깨달음은 시간에 구애받으면서도 받지 않기도 하지만 깨달음이 울렸을 때는 이제 과거로 돌아가지 않게 하기 위해 시급한 일이된다)
그런 일은 두어 명의 남이거나
두어 명의 나의 일에 불꽃이 튀었다는 것이다
(실재계의 깨달음에 시간이 도입되었다는 것은 타인과의 관계설정을 어떻게 할 지 고민이 있었다는 것이다.실재계에 머문다면 대타자, S1, 팔루스, 아버지의 이름에 묶이게 되는 것이 주는 편안함이 있다. 한편 실재계의 유령과 증상을 통해 알아차린 상징계의 본질이 환상이고 죽음의 세계라는 것에 다시 돌아가기 싫다는 것이 충돌하는 것이다)
남의 일이 곧 나의 일
남처럼 두근거리는 일도 없다
내가 오늘 기쁘다면
그건 두어 명의 남이 해결된 일이다
(대승의 깨달음, 남과 나는 둘이 아니다. 남은 나의 거울이고 나는 남의 거울이다.)
남은 언제나 나보다 크고 넓다
그들이 나보다, 가 아닌
내가 그들을 더 미워한 일이 많다
어쩌면 남 생각에 너무 불려 다녔는지
오늘은 유독 피곤하다
(나와 남은 둘이 아니며 모두 큰 세계의 부분이면서 전체이다.나와 남을 가르는 좁은 생각에 불려다녀서는 안된다)
첫댓글 https://youtu.be/AfRnuKkvj9I?si=fYbD4jJB2bnXxpH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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