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자: 2024.11.24 주일 낮 예배
말씀: 요 6:48-50
제목: 나는 생명의 떡이니라.
참고: 요한복음 11:25-2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선포: 대한예수교장로회 만나교회담임 이덕휴목사
은혜찬양-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
기독음대 찬양/성가대
- 성경봉독 - 다 함께
요6:48 나는 생명의 떡이다 49. 너희의 조상들이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 죽었도다.50.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사람이 먹고도 죽지 아니하리라.' - 요한복음 vi.48-50.
'너희 조상들이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으나 죽었도다.' 그러나 이 빵은 '사람이 그것을 먹으면 죽지 아니하리라'는 것을 보증합니다. 소멸하는 빵은 소멸하는 생명을 먹여 살린다. 그러나 이 빵은 소멸되지 않는 생명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창조하며, '허물과 죄로 죽은' 사람들의 영 속으로 받아들여져, 악에 지지 않는 생명, 죽어 없어지지 않는 두려움이 없는 생명을 그들에게 나누어 준다. 이 말의 뜻은 다시 태어나야 된다는 의미입니다. 성령으로 거듭태어나서 영생의 말씀을 먹고 그대로 행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빵이 아닌 것을 위하여 돈을 쓰느냐?' 주님께서 주신 명제입니다. 즉 돈을 어디대 써야 될 것이냐 라는 물음입니다.
사 55:1-3 -하나님의 긍휼
1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 부활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물리치시는 생명의 부활신앙을 우리에게 보여주심으로서 우리 기독교가 세상의 빛이 되는 십자가의 신학을 이루어 냈습니다.
우리가 매일 먹는 것은 밥이지요. 그 밥은 먹지 않으면 죽습니다. 그런데 그 밥이 영원히 생명을 이어주는 생명의 밥입니까?
- 나를 먹고 마셔라 (요 6:48-59)
- 어원 정리
만나(man:무엇이냐/ 히브리어 man라는 말을 헬라어로 manna(만나)라는 말로 번역하였다.(출16:31참조) 그 떡 이름이 뭡니까? 31절에서 ‘만나’라고 합니다. 만나는 히브리어 ‘만-후’(aWh @m;)에서 나온 이름입니다. 만-후는 “이것이 무엇이냐?”(출16:15)라는 의미입니다.
- 본문의 상황
(요 6: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요 6: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3)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3)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이스라엘의 큰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 때라 갈릴리 근처에 사람들이 많이 모였습니다. 명절떄에 우리도 고향으로 많이 내려가듯이 유대사람들도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배고픈 백성들이라 뭐 좀 얻어 먹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지요
1. 먹고 죽는 빵이냐 먹고 사는 빵이냐 - 영
생의 떡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 4:14)
이렇게 허무한 인생인데도 사람들은 대부분 세상의 헛된 것을 추구하면서 살다가 그만 이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이유도 이러한 세상적인 관심과 자신의 유익을 얻기 위해서인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에게서 뭔가 현실적인 유익을 얻으려고 그를 따라 다니기도 했습니다. 특히 예수께서 오병이어 기적을 베푼 이후에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찾아왔습니다. 이는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야말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실 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오늘날 우리가 예수를 따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1. 세상의 양식
예수께서 제자들을 따라 가버나움으로 가시자, 수많은 사람들이 다음날 아침부터 예수를 따랐습니다. 그들은 배고프고 굶주린 자신들의 현실적인 문제를 예수께서 해결해 주실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던 것입니다.
교회에도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물질적인 복을 받고, 병고침을 받기 위해서, 사업을 위해서 나오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물론 주님께서는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기에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뿐만 아니라, 복음을 처음 접한 자는 놀라운 기적과 삶의 형통을 통해 주님께 더 가까이 나갈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신앙이 언제까지나 여기에 머물러 있어서는 성숙한 신앙을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께서는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요 6:26)고 하시면서, 초보적인 신앙을 머물지 말라고 경계하셨습니다.
단지 떡을 얻어 먹기 위해, 병고침을 받기 위해 예수를 따르는 것이 온전한 믿음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오늘날 우리들 세상적인 욕구 만을 가지고 교회에 나오는 것을 넘어서야 합니다. 신앙은 그보다 더 높은 차원의 본질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진리의 양식을 먹으라
예수께서는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요 6:27)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썩을 양식”과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대조하시면서, 썩어 없어질 비본질적인 것을 구할 것이 아니라, 본질적이고 영원한 진리를 구하라고 요구하셨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까?”라고 물었습니다(요 6:28).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오해하여, 영생의 대가(代價)로 많은 인간적 업적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들더러 일 하라고 하신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말씀하신 "일"이라는 것은 댓가를 바라는 ‘노동’이 아니라, 무조건적으로 하나님께 헌신하는 ‘신앙’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오직 믿음에 의하여 그리스도의 은혜로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은 대답하시기를,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요 6:29)고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오직 믿음”입니다. 우리가 사는 것은 믿음의 생활이어야 됩니다. 그냥 먹고 살기위해 사는 것이 믿고 영생을 얻기 위해 일하고 먹고 사는 것이 일반인의 삶과 다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생활입니다.
3. 영생의 음식을 먹으라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백성들은 이번에는 “당신을 믿게 할만한 표적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말하기를, “그 옛날 출애굽 시대에 모세는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주어 40년 동안이나 이스라엘 백성들을 먹여 살렸는데, 당신도 그런 표적을 보여 줄 수 있겠느냐?”고 했습니다(요 6:30-31). 그들은 아직도 ‘떡’ 문제, 곧 물질의 문제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 말은 들은 예수께서는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떡은 ‘영생의 떡’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요 6:33)
그러자 백성들은 그 떡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요 6:34)하고 요청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생명 떡"을 육신의 양식으로 오해하고 욕심을 부린 것입니다.
백성들의 무지와 불신앙이 여기에까지 이르게 되자 예수께서는 드디어 ‘떡’으로 시작한 대화의 결론을 내리고 계십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6:35)
이사야 55:1-13 개역한글 (KRV)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거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를 삼았었나니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 달려올 것은 나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인함이니라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산들과 작은 산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바닥을 칠 것이며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질려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이것이 여호와의 명예가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 맺는 말씀
성경에는 신앙 생활을 먹고 마시는 것에 비유하는 말씀이 많습니다. “나는 하늘로써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삶이로다”(51절)
“생명의 양식”은 다름 아닌 예수 자신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만나를 주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풍성하게 하신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주셔서 온 인류를 영적인 굶주림에서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육신을 위해 양식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영혼을 위해 “생명의 양식”이신 예수를 먹어야, 곧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만 구약의 모세의 양식은 먹고 나중에 죽는 죽음에 양식 죽음의 빵이었습니다. 빵만 먹으면 죽습니다.
사도바을은 영생에 대한 확고한 말씀을 하십니다.
고린도 전서 15장20-22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예수님께 대한 우리의 신앙은 먹는 행위와 같이 음식을 먹어야 삽니다. 중요한 것은 먹고 죽는 빵이냐 먹고 영원히 사는 빵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침에 빵을 먹고 종일 굶으면 배가 고픕니다. 배가 고프면 만사가 귀찮아 집니다. 먹어야 힘이 나고 살 맛이 납니다. 옛날에 국회에서 누가 하는 말이 '먹고 합시다'라는 말이 유명합니다.
우리도 먹고 삽시다. 주님의 생명의 십자가의 신학의 말씀을 먹고 사는 만나인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사랑하는 만나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우리가영생을 얻는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신앙, 우리의 영생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루터는 십자가의 신학이라고 하였으며 카톨릭의 율법의 의식적인 신앙응 오직 하나님께 영광돌리기 위하여 하나님이 주신 말씀(율법)만 잘 지키는 것이 소위 영광의 신학입니다. 영광의 신학(theology of glory, theologia gloriae)이란 인간의 공로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중세의 로마 카톨릭 신학을 말합니다. 이것이 오늘의 주제인 먹고 죽는 빵이냐 먹고 영원히 사는 빵이냐 하는 것입니다. 먹고 죽이냐 먹고 삶이냐 우리 만나인은 먹고 영원히 사는 영생의 빵, 즉 주님의 말씀을 먹는 형제들이 되실 것을 믿을 것을 축원드립니다.
오늘은 주님께서 주신 말씀, 갈라디아1:10절을 함께 봉독하시면서 말씀을 마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