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67) 조조의 간계(姦計) <상편>
조조의 총공격 명령과 때를 같이 하여 성문이 활짝 열렸다.
조조의 군사들은 밀물처럼 성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그 순간, 어디선가,
"와아앗!"
하는 함성과 함께 사방에서 횃불이 켜지며 돌이 날아왔다.
돌은 억수로 퍼붓는 소나기처럼 사방에서 날아오고, 수백개의 횃불이 조조의 군사들에게 던져졌다.
그리하여 조조군은 온 몸은 물론, 머리에 돌을 맞아 쓰러지는 군사가 속출했고, 머리에 불이 붙고, 옷에 불이 당겨지고, 말은 놀라서 앞발을 들고 요동을 쳐대는 혼란에 휩싸였다.
"앗! 적의 계략에 속았구나!"
조조는 적의 계략에 속은 것을 깨달았으나, 워낙 급하게 공격하던지라, 재빨리 돌아설 수가 없었다.
게다가 뒤따르는 병사들은 영문을 몰라, 오히려 앞으로만 밀고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빨리 퇴각하라!"
조조는 소리쳤으나, 앞장선 병사들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고, 뒤따르는 병사들은 그들을 짓밟는다.
조조도 그 혼란에 휩쓸려 어찌할 바를 몰랐다.
돌과 횃불을 내던지던 여포군은,
"적을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모두 죽여라!"
하는 외침과 함께, 화살까지 쏟아 내는 것이었다.
조조는 원한에 가득찬 심정으로 북문으로 빠져나오려니까 거기에도 적들이 그득 차 있었다.
황급히 남문으로 가 보니 거기도 역시 적들이 득시글 하였다.
할 수없이 서문으로 도망쳐 가보니 서문 밖에는 복병이 급습을 해오는 것이 아닌가?
"주상, 주상! 이리로 오십시오, 어서 빨리!"
저만치서 소리치는 사람은 하후연이었다.
그는 장창을 사정없이 휘두르며 성밖으로 연결된 다리를 건너가고 있었다.
그러나 조조는 적병의 공격이 하도 심해, 하후연의 뒤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조조는 공격이 약한 반대쪽으로 몸을 피하였다.
얼마 후에 주위를 살펴보니 ,조조 자신은 완전히 적병들 속에 파묻혀 있었다.
적들도 조조가 자기편인 것으로 알고 그냥 떠들어대고 있는 것이었다.
조조도 시치미를 떼고 그들과 행동을 같이하며 빠져나갈 곳을 두리번 거리며 찾았다.
잠시후 적장 인 듯한 자가 횃불을 밝혀 들고, 많은 부하들을 거느리고 말을 몰아 조조가 섞인 무리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군사들은 그 바람에 좌우로 비켜서며 길을 터줬다.
조조도 무리에 섞인 채로 옆으로 비켜서며 바라보니, 마상의 장수는 여포가 아니던가?
조조는 얼른 고개를 숙이며 투구를 푹 눌러썼다.
그러자 여포는 조조를 자기네편 장수로 알았는지 마상에서 방천화극 창대로 툭툭 건드리며,
"조조를 치느라고 고생했다. 그 놈은 어디로 달아났는가?"
하고 묻는 것이 아닌가?
조조는 난감했지만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하여 얼른 목소리를 바꿔서 대답하였다.
"넷! 저도 지금 조조를 찾고 있는 중이옵니다. 조금 전에 갈색 말을 타고 저쪽으로 도망쳤습니다."
"그래? 저쪽으로 ...?"
여포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조조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쏜살같이 말을 몰아 달려갔다.
그리하여 얼마쯤 가다가,
"어라? 조금 전에 그놈이 바로 조조 같은데?"
하고 놀라며 이내 말을 돌렸다.
한편 조조는 여포를 기지를 발휘하여 다른 곳으로 보내놓고, 성을 빠져 나갈 곳을 찾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그러는 와중에 자기편 장수 하나가 보이는데, 그는 영군도위 전위(領軍都尉 典韋)였다.
전위는 조조를 발견하자 쏜살같이 달려왔다.
"주공! 무사하셨군요.어서 이쪽으로...!"
조조는 전위가 이끄는 동문 방향으로 함께 달렸다.
그러자 등 뒤에서 여포군의 함성이 들려온다.
게다가 여포까지 달려오며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닌가?
"조조야! 게 섯거라!"
조조와 전위는 말에 채찍을 가하며 급하게 동문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아불싸!> 동문의 누각은 이미 커다란 불덩이가 되어있는 것이 아닌가?
뒤에서는 맹장 여포가 죽일 듯이 쫓아 오고, 앞 길은 불덩이로 막혔고, 진퇴유곡이 따로 없었다.
"전위, 되돌아 가야 하나?"
조조는 순간, 결정을 못하고 전위에게 물었다.
그러자 전위는,
"주공! 지금 나갈 길은 이 길밖에 없습니다. 제가 먼저 뛰어들 테니 뒤따라 오십시오."
하며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었다.
조조는 망설일 여유가 없었다.
여포가 불과 오십보 쯤 뒤까지 쫓아왔기 때문에, 뒤를 돌아 볼 여유도 없이, 전위의 뒤를 따라 불길 속으로 뛰어 들었다.
바로 그 순간, 성루의 지붕과 서까래가 우지끈 거리며 무너져 내렸다.
"누구 없느냐? ... 누구 없느냐 ...?"
조조는 떨어지는 서가래에 깔리면서 애타는 구원의 비명을 질러대었다.
조조가 다시 정신이 든 것은 자기의 본진(本陳) 침상 위에서였다.
"주공! 이제야 정신이 드시는 군요."
전위가 자신을 내려다 보며 말한다.
"내가 살아 있는 건가?"
조조는 불덩이에 깔리던 순간 밖에는 생각 나는 것이 없었다.
그러자 전위는,
"제가, 불덩이에 깔린 주공을 구해서 본진으로 돌아왔습니다."
"내가 많이 다쳤나?"
조조는 머리부터 몸통까지 붕대가 매어있어서 전위에게 물었다.
그러자 전위는,
"전의(戰醫)의 말로는 주공께서 화상을 조금 입으셨다고 합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갑자기 조조가,
"하하하핫!"
하고 호탕한 웃음을 웃는게 아닌가?
주위에 있던 사람 모두가 깜짝 놀라며 조조의 침대 주위로 모여 들었다.
"주상! 웬일이십니까?"
그러자 조조는 어느덧 원기 왕성한 듯한 큰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하하하...! 내가 필부 여포의 계략에 감쪽 같이 속아 넘어가다니... 내가 너무 경솔했어! 그러나 이번에는 내가 한 번 속았으니까, 다음에는 여포놈을 한 번 속여야 할 판이 아닌가?"
"네? ...무슨 말씀이신지."
"하후연!"
"넷?"
"자네를 나의 장례식의 장의 지휘관으로 임명한다."
"넷? 무슨 그런 불길한 말씀을? ..."
"천만에! 계략일쎄. 자네는 오늘 새벽에 나, 조조가 죽었다는 선언을 하게. 그리고 나를 마능산(馬陵山)에 가매장(假埋葬)한다는 소문을 퍼뜨리란 말야, 그러면 여포는 그 소문을 듣고 마능산으로 몰려올 것이니, 마능산 주위에 군사를 매복시켜 두었다가 적들이 몰려오거든 일시에 공격하여 섬멸시켜 버리란 말야. 그 일은 지금 즉시 시행하라!"
명령일하...
조조의 전군은 가슴에 상장을 달고, 장군들은 상복(喪服)을 입고, 조조의 장군기에는 조장(弔章)을 매달아 띄웠다.
조조가 죽었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여포의 진지에도 퍼졌다.
그리고 닷새 후에는 조조의 시체를 마능산에 매장한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인제 됐다! 조조가 죽었으니 이제는 그 잔당을 쳐부수기만 하면 되겠구나!"
여포는 무릎을 치고 기뻐하며 그의 장례일이 오기만 기다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