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함평 성당
전라남도 함평군 함평읍 남일길 21
광주대교구 소속 본당. 전남 함평군 함평읍 내교리 340 소재. 1945년 12월 8일 나주 본당에서 분리 · 설정되었으며, 주보는 성모 승천.
1930년 이계윤(바오로)과 최말녀(마르타) 부부가 목포에서 함평으로 이주해 오자, 계량(현 노안) 본당의 5대 주임인 박재수(朴在秀) 요한 신부는 이들을 위해 1931년 판공 때 함평의 기산 회관에서 첫 미사를 봉헌하였고, 이후 내교리에 사는 조 마리오 집에서 주일 미사를 가끔 봉헌하였다. 이어 1936년경부터는 나주 본당의 헨리(H. Henry, 玄海) 신부와 김재석(金在石) 요셉 신부가 번갈아 와서 미사를 봉헌하였고, 1940년경부터는 신자들이 나주 본당이나 인근 공소의 미사에 참여하였다.
1941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여 한국에 있던 외국인 신부들이 일제에 의해 감금 내지는 추방을 당하자, 나주 본당의 김재석 신부가 함평을 포함하여 목포와 영광 등지를 관리하게 되었다. 1943년 삼거리터를 매입하여 함평에 성당을 건립하려 하였으나 병환으로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영광으로 이임되자, 이후 함평 공소 신자들은 본당을 설립하기 위해 제2대 광주교구장인 와키다 아사고로(脇田淺五郞) 토마스 신부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1945년 12월 8일에 함평 공소는 본당으로 승격되었고 초대 주임으로 김창현(金昌鉉) 바오로 신부가 부임하였다.
1984년 한국 선교 200주년 기념성당으로 건립된 새 성당 외부.김창현 신부는 1949년 여름에 성당 신축 공사를 시작하여 1950년 5월 7일에 상량식을 거행한 뒤 8월 15일에 봉헌식을 거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한국 전쟁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성당은 10월에 후퇴하던 공산군이 불을 지르면서 파괴되고 말았다. 이후 1951년 12월에 함평을 방문한 교황 사절단이 개축을 위한 지원을 약속하여 1952년 4월에 개축 공사가 시작되었고, 10월 13일에 헨리 주교의 집전으로 봉헌식이 거행되었다. 성당을 마련한 후 본당에서 1953년에 영광 · 법성포 · 나산 · 학다리 · 염산 · 기동 · 무안 공소를 설립하는 등 공소 사목에 진력하였고, 1954년 4월에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분원을 설치하였으며, 8월에는 성모유치원을 개원하여 지역 사회의 아동 교육에도 이바지하였다.
한편 2000년 2월 광주대교구에서는 공소 사목과 농민 사목 활성화를 위해 ‘공소 공동 사목’이라는 새로운 사목 형태를 도입하여 우선 함평 본당 관할인 나산 · 문장 · 손불 · 신광 · 기동 5개 공소를 공소 사목 특구로 정하고, 3명의 신부를 파견하여 공소 실정에 맞는 사목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13대 주임 박길년(朴吉年) 마르코 신부 재임기인 2004년 12월 31일에는 옛날 성당이 문화재청으로부터 한국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117호로 등록되었고, 2005년 6월 15일에는 함평군 3개 본당(함평 · 하상 · 학다리)이 제1회 합동 야외 미사를 거행하여 지역 본당 신자들과의 친교의 자리를 마련하기도 하였다.
[출처 : 백병근, 한국가톨릭대사전 제12권, 200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