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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 옛날, 잔잔하던 망망대해 한가운데서 바닷물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더니 갑자기 붉은 불덩어리가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지구가 가슴 깊이 감추고 있던 용암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연기가 걷히고 용암이 서서히 식어가자 바다엔 커다란 섬이 생겨났다. 바다가 고향인 세찬 바람과 거센 파도가 날마다 섬으로 달려들었지만, 지구 중심에 뿌리를 박고 있는 섬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수만, 수십만, 수백만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아슬아슬 높고 거칠기만 하던 섬은 서서히 부드럽게 바뀌어갔다. 그런 중에 수백 번의 작은 폭발들이 일어나면서 섬 안엔 작은 봉우리들이 여기저기 솟아났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이 섬에 터를 잡고 살아온 사람들은 크고 힘센 설문대할망이 이 화산섬을 만들었다는 신화를 엮어나갔다.
한라산(1,950m)이 솟아있는 화산섬인 제주도에 들 때마다 심장이 유독 심하게 뛰는 건 이런 상념 때문일지도 모른다. 웬만한 신비는 거의 벗겨진 21세기에도 신(神)들의 낙원인 제주는 누구에게나 여전히 신비로운 섬이다.
제주에 들어선 이방인은 늘 갈등을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섬이라서가 아니다. 제주가 단지 남한 최고봉 한라산이 솟아있는 덩치만 큰 섬이었다면, 그리고 용암과 바다의 애증이 빚어낸 경치만 아름다운 섬이었다면, 고민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거기엔 한라산을 만들면서 제주의 신화시대를 이끌어왔던 설문대할망이 물장오리의 ‘창터진물’에 빠져죽은 이후 이 땅의 새로운 주인이 된 인간들이 돌과 바람과 바다와 맞서면서 쌓아온 인내의 흔적들이 아주 풍부하게 남아있기 때문에 지금의 제주가 존재하는 것이리라.
서툰 길손들은 성산포로, 서귀포로, 중문으로 서둘러 떠나기 바쁘지만 탐라시대부터 지금까지 오랜 세월 제주를 다스렸던 제주시를 허투루 볼 수 없다. 우선 이곳엔 설문대할망이 천지창조를 하던 신화시대를 지나 비로소 인간의 시대인 탐라시대 개막을 알려준 삼성혈(三姓穴)이 있다. 여기서 태어난 고을나(高乙那), 양을나(良乙那), 부을나(夫乙那) 삼신인(三神人)에 의해 제주에 인간의 세상이 열린 것이다.
1947년 4·3 항쟁의 시작을 지켜보았고, 이젠 제주 시민들의 휴식 장소로 애용되는 관덕정(보물 제322호)은 제주의 몇 안 되는 보물급 유적 중 하나다. 그런데 이 관덕정보다 더 유명한 것은 바로 한라산, 그리고 밀감과 더불어 제주의 얼굴로 대접받고 있는 돌하르방이다.
제주 사람들이 남긴 돌 문화 가운데 하나인 돌하르방의 유래에 대해서는 갖가지 설이 많지만, 그 역할은 마을이나 사찰을 보호하는 육지의 돌장승이나 장승 같은 마을지킴이다.
구멍 숭숭 뚫린 현무암으로 다듬은 관덕정 돌하르방은 부리부리하게 생겨서 툭 튀어나온 왕방울눈, 뭉툭한 주먹코, 넓게 뻗는 귀, 곧게 다문 입은 기이한 얼굴 표정을 만들고, 거기에 머리엔 벙거지를 뒤집어쓰고, 한 손은 가슴에 다른 손은 배에 올려놓고 있는데, 그 자세가 별로 밉지 않다.
현재 제주와 관련된 각종 기념품으로 제작되고 있는 돌하르방은 모두 이 관덕정의 돌하르방을 모방한 것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제주의 돌하르방이 모두 관덕정 돌하르방과 같은 표정을 하고 있을 것이라 짐작하지만, 육지에서도 마을마다 장승의 표정이 다르듯, 제주 돌하르방의 표정도 다양하다.
관덕정 돌하르방을 포함한 제주목(현 제주시)의 돌하르방은 제주의 행정과 문화 중심지를 지켜온 돌하르방답게 근엄하게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래서 제주인들은 무뚝뚝한 사람을 ‘관덕정 돌하르방’ 같다고 빗대기도 한다.
정의현(현 성읍리)의 돌하르방도 조금 무뚝뚝한 편이다. 제주목 돌하르방보다는 약간 작은 키에 얼굴은 둥글넓적하고 단순한 편이고, 갸름하게 내리뻗은 콧대가 높고 눈을 크게 뜨고 일(一)자로 짧게 그어져 있는 입 모양은 덤덤한 표정을 만든다.
돌하르방 중 가장 덩치가 작은 대정현(현 대정읍) 돌하르방은 귀여워서 정감이 간다. 둥글넙적한 얼굴에 눈은 조금 튀어나왔고 눈동자가 분명하게 나타났는데, 마치 안경 쓴 아이 같다. 코는 제주목 돌하르방 같은 주먹코도 아니요, 정의현 돌하르방처럼 높은 콧대가 아니라 갸름하고 평범하다.
이렇듯 제주목 돌하르방이 지배층의 권위를 드러낸다면 다른 지역, 특히 대정의 돌하르방은 보다 민중들과 어울리는 친근하고 순박한 표정을 보여준다. 민중에 점차 동화되어 가는 과정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제주 여행에서 만나게 되는 돌하르방과 인사를 나누다보면 나중엔 사진만 보고도 어느 마을 출신 돌하르방인지 알아 맞출 수 있을 것이다.
승용차든지 자전거든지 오로지 제주 해안만을 일주할 때는 흔히들 반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서부를 먼저 가지만, 해안과 중산간을 오가며 두루두루 돌아보려면 시계 방향으로 달리면서 동부를 먼저 훑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시끌벅적한 시내를 빠져 나오니 비로소 제주에 온 듯 상쾌하다. 섬에서 바다를 끼고 달리는 해안 여행만큼 즐거운 게 있을까. 특히 풍광 아름다운 제주에서라면 그 즐거움은 곱절이 된다. 제주의 바다 풍경도 본토의 해안과는 다르다.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까만 갯바위에 쉬지 않고 부딪치는 하얀 파도, 그리고 남태평양의 유명 해안과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는 정갈한 옥빛 바다가 빚어낸 때깔은 신비롭다.
삼양동 해안을 지나면서 용천수인 ‘큰물’로 목젖을 적시면, 저 만치서 원당봉(170.7m)이 손짓한다. 그 중턱엔 육지에서 건너온 이방인에게 조금 특이한 경험을 선사하는 불탑사(佛塔寺)라는 절집이 자리하고 있다.
나지막한 돌담 안에 자리잡은 절집을 들어선다. 비구니 절집답게 정갈하고 고즈넉하다. 대웅전 오른쪽의 돌담을 지난 뒤 노란 귤이 매달린 아담한 귤밭을 왼쪽으로 끼고 돌면 대숲을 배경으로 서있는 석탑 하나가 반긴다. 바로 불탑사 5층석탑(보물 제1187호)이다.
“?……!”
‘석탑’ 하면 밝은 색의 화강암 재질을 떠올리는 육지 사람들은 대부분 눈동자가 커진다. 그건 안동 같은 데서 벽돌로 지은 전탑(塼塔)을 만져보았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귤밭 옆에 탑이 서있는 것도 신기한데, 거기에 구멍이 숭숭 뚫린 암회색 현무암이라니. 무의식에 ‘석탑=화강암’이란 등식을 갖고 있던 이 길손에게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버리라고 침묵으로 타이르니 더없이 고마운 탑이다.
불탑사의 매력은, 태자가 없어 고민하던 원의 순제가 ‘북두의 명맥이 비친 명당 삼첩칠봉(원당봉)에 탑을 세워 불공을 드려야 한다’는 계시를 따라 제2황비였던 기황후의 청으로 이곳에 원당사와 함께 불탑을 세워 불공을 드린 결과 아들을 얻었다고 하는 고려시대의 씁쓸한 전설이 아니다. 바로 절집이 여러 차례 불에 타버리는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아 고려시대 ‘절 오백’이라 할 정도로 번성했던 제주 불교의 역사를 증거하는 석탑인 것이다.
원당봉을 뒤로하면 길은 다시 해안으로 이어진다. 이 제주 해안은 탐라인들과 그 후예들이 오랜 세월 살아온 삶의 터전이다. 화산섬이라 땅은 농사도 짓기 어려울 정도로 척박했어도 온갖 물고기와 구조개 넘쳐나는 바다는 거칠긴 해도 풍요로웠다. 그래서 제주의 민가는 대부분 해안가에 몰려있는데, 무엇보다 이곳 바위틈에서 맑은 샘물이 솟아나지 않았다면 그들은 삶을 영위하기 어려웠으리라.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다우 지역이다. 그러나 현무암이 지반을 이루고 있으니 빗물은 그물 지나듯 술술 빠져나가 고여들 틈이 없었다. 이렇게 빠져나간 물은 크고 작은 굴들이 뚫려있는 지하의 ‘숨골’을 따라 흐르다가 바다와 만나는 해안가에 이르러 솟아난다. 바로 용천수다.
제주에선 사람들 모여 사는 해안 마을마다 용천수가 솟는다고 보면 틀림없다. 반면 해발 200~600m의 중산간지대 마을들은 비가 올 때면 처마로 흐르는 물을 모아 식수로 사용했고, 군데군데 파놓은 웅덩이에 빗물을 모아 허드렛물로 쓰는 봉천수에 의지했다.
그런데, 이렇게 제주인들의 삶을 지탱시켜준 용천수는 그 물맛이 이 나라 으뜸이다. 프랑스의 에비앙 샘물보다 맛있었다는 건 동행자들의 한결 같은 의견이었다. 전문가들은 제주도 용천수가 거의 완벽에 가까운 까닭을 ‘지하로 흘러든 빗물이 5~10매의 현무암층을 통과하는데, 이 천연 필터층에 의해 여과되어 깨끗하고 맑은 지하수로 바뀌게 되는 것’이라 설명한다. 단순 빗물이 이 과정에서 규산, 칼슘, 마그네슘, 황산이온, 칼륨 등의 무기성분을 적당량 포함하는 광천수로 거듭나는 된다는 것이다.
제주의 수자원에 대해 조사한 한 자료를 보면, 용천수는 제주 도내에 무려 1,000개에 가까운 911개소가 있는데, 해안 용천수는 모두 520개소로 전체의 57%를 차지한다. 이중 20세기 후반 들어 농약 사용이나 도시화 등의 부산물인 환경오염으로 수질이 나빠진 곳도 있고, 몇군데는 도로 개설 등으로 수원이 막혀버리기도 했지만, 다행히 대부분은 아직도 수질이 좋다고 한다.
21세기는 맑은 샘물 자체가 관광자원이 될 수 있는 시대다. 맛 좋고 질 좋은 천연 미네럴 워터를 공짜로 실컷 마시며 제주를 한 바퀴 돌면서 아름다운 풍광에 감탄하고, 독특한 문화를 음미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제주는 돌의 섬이다. 그래서 제주 사람들은 돌과는 뗄 수 없는 인연을 맺으며 살아왔다. 제주의 다양한 돌 문화 중 흔히 ‘거욱대’라 불리는 방사탑(防邪塔)이 있다. 마을 입구가 풍수 상 허(虛)하거나 나쁜 기운을 막으려할 때 세우는 돌탑으로, 중산간지대나 해안가 어디서든지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는 누석단 등으로 불리며 솟대나 장승 등과 짝을 이루기도 하는 육지의 돌탑과 비슷한 기능을 한다. 제주에 방사탑이 많은 건 그만큼 돌이 많다는 반증이긴 하지만, 경작을 위해 돌을 치우면서도 이를 신앙의 한 형태로 발전시킨 지혜가 놀라울 뿐이다.
그런데, 제주로 유배 온 사람들이 북쪽에서 좋은 소식이 오기를 기다렸다는 연북정(戀北亭)이 있는 신흥리의 방사탑은 지금껏 보아온 방사탑과는 다른 점이 있다. 방사탑은 바닷물 드나드는 바닷속에 자리하고 있는데, 제주에서도 바다 한가운데 서있는 방사탑은 이것뿐이니, 이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추지 않는 이가 없다.
신흥리 마을 사람들은 풍수지리 상 바다쪽이 약하고 그쪽에서 사(邪)가 비치기 때문에 탑을 세웠다고 한다. ‘큰개답’이라고도 불리는 남쪽 포구의 탑 하단부는 바닷물에 잠길 때가 많다. 탑의 상단부 안쪽이 50cm쯤 패여 있어서 음을 뜻하고, 새가 잘 앉는다 하여 ‘생이탑’이라고도 한다. 또 ‘오다리답’이라고도 하는 북쪽 바닷가 탑은 상단부에 길쭉한 돌을 세워놓아 양을 나타낸다. 바다에 세우는 탑도 음양의 원리를 존중해주는 데서 바다와 평생을 살아온 제주 사람들의 넉넉한 여유가 엿보인다.
돌이 많은 섬답게 바다에서 이뤄진 돌 문화 흔적도 적지 않다. 방사탑과 더불어 어민들의 신앙의 대상으로 돌을 모신 미륵당도 셀 수 없을 정도인데, 어민들의 생업과 직결된 돌 문화의 흔적은 바로 ‘원’이라고 하는 ‘돌그물’이다. 돌그물은 해안 생김새가 살짝 만을 이루는 ‘개’에 돌담을 둘러놓고 밀물 따라 몰려든 고기떼들이 썰물이 나면 그 안에 갇히게 만든 것으로, 충청도 태안 등지에 남아있는 독살과 같은 기능을 한다.
육지의 텃밭에선 푸성귀를 얻고, 바다의 텃밭에선 물고기를 건졌던 셈이다. 멸치가 많이 잡혔고, 멸치떼를 쫓아온 갈치, 숭어, 돔 등도 걸려들었다 한다. 대부분의 독살이 개인 소유인 본토와는 달리 제주의 원은 마을 전체 주민들이 철저히 공동으로 관리했다는 게 다르다.
구좌 하도리에 가면 그 돌그물을 볼 수 있는데, 바다에서 만난 아주머니는 가끔 멸치가 조금 잡힐 뿐 요즘은 거의 잡히지 않는다고 일러준다. 먼 바다에서 촘촘한 그물로 포획하기 때문이다.
제주 해안은 이렇듯 구석구석 이야깃거리가 참 많다. 게다가 아름답기까지 하니 시간은 한없이 짧기만 하다. 하도리에서 성산포로 이어지는 해안선도 예쁘다. 몇 굽이 휘돌면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문주란이 자생하는 토끼섬이 손에 닿을 듯 가깝다. ‘문주란의 고운 향내를 맡을 수 있을까’ 하고 코를 내밀면 거센 바람이 아직 겨울임을 일깨워주는데, 바다 건너 펑퍼짐한 우도가 보이는 듯싶더니 바로 성산 일출봉이다.
해돋이가 아름다워 예로부터 영주 10경 중 으뜸으로 꼽히는 성산 일출봉. 그 외모 또한 먼데서 언뜻 보아도 치명적인 사랑에 빠질 듯 수려하다. 성채 같기도 하고, 왕관 같기도 한 성산 일출봉은 그 인물 때문에도 제법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곳에 오면 이생진 시인의 <그리운 바다 성산포>라는 시집을 떠올린다. 쉬운 시어로 제주의 아름다움을 절절히 노래한 미덕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이 많다. 이 길손도 1987년에 동천사에서 찍어낸 시집을 갖고 있을 정도로 이 시를 좋아했다. 그리고 달짝지근하게 술맛 당기게 하는 윤설희의 시낭송만 듣다가 80년대 후반에는 대전의 한 찻집에서 노시인이 읊어주는 시를 직접 듣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성산포에서는 / 교장도 바다를 보고 / 지서장도 바다를 본다 / 부엌으로 들어온 바다가 / 아내랑 나갔는데 / 냉큼 돌아오지 않는다 / 다락문을 열고 먹을 것을 / 찾다가도 / 손이 풍덩 바다에 빠진다 / … / 성산포에서는 / 남자가 여자보다 / 여자가 남자보다 / 바다에 가깝다 / 나는 내 말만 하며 / 바다는 제 말만 하며 / 술은 내가 마시는데 / 취하긴 바다가 취하고 / 성산포에서는 바다가 술에 더 약하다…’<이생진 시인의 시집 ‘그리운 성산포’ 중에서>
당시엔 ‘술을 내가 마시는데 / 취하긴 바다가 취한다’는 구절을 제일 좋아했고, 진짜 그런지 아닌지 실험(?)까지도 해봤지만, 오늘은 맨 정신으로 성산포에서 유채꽃을 생각한다. 봄이 오면 제주도 전역을 노랗게 물들이는 유채꽃. 지금도 유채꽃과 성산 일출봉, 유채꽃과 눈 덮인 한라산은 한반도에 봄이 오는 풍경의 상징이다.
평지라고도 하는 유채(油菜)는 남해안 지방이나 제주도에 자란다. 이 식물을 제주에서 기름을 짜기 위해 본격적으로 재배한 건 1960년대 초라 하니 그리 오래 전은 아니다. 당시엔 초겨울에 씨를 심으면 유채꽃은 4월에야 절정을 이루었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턴가 제철이 없어졌다. 하루하루 당겨지더니 요즘은 겨울이 한창인 1월에도 유채꽃을 볼 수 있게 개량됐다. 봄기운을 조금이라도 먼저 느끼려는 육지인들의 조바심 때문이리라.
성산포 겨울 유채는 단지 촬영용이다. 지금 관광객이 성산포 유채밭에서 사진을 찍으려면 1,000원을 내야 한다. 씨로 기름을 짜지도 않고, 꽃에서 꿀을 거둬들이지도 않고, 오직 관광객을 위해 재배한 촬영용 꽃밭인 것이다. 그러나 겨울날 이른 아침, 시인의 말대로 유독 성산포에서만 해가 솟는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일출을 보러 나왔다가 무서리 맞고 풀이 죽어 있는 겨울 유채꽃을 보면 왠지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성산포가 제주 제일의 관광지라면 섭지코지는 성산포를 보는 전망이 가장 좋은 곳다. 해안 풍경 또한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데도 이웃한 일출봉 인기에 눌려 예전엔 그다지 인기가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 인기 드라마 ‘올인’ 촬영장으로 갑자기 유명세를 타기 시작해 지금은 언제나 인파로 북적거린다.
여주인공으로 나온 송혜교가 자라난 수녀원이 그림 같은 초원 풍경에 앉아있었기 때문인데, 아쉽겠지만, 그 세트는 지난 여름 태풍 매미의 날갯짓에 날아가 버렸다. 그 빈터에 서서, 겉만 번지르르한 세트장 따위는 단 한 방에 날려버리는 게 제주의 바람이라는 사실을 또 깨닫는다. 그러나 아쉬워하지 말자. 섭지코지의 주인공인 초원과 해안 풍경은 그대로 남아있으니.
성산 온평리 해안의 연혼포(延婚浦)에선 벽랑국 삼공주를 맞이하는 삼신인의 의젓한 자태를 상상하고, 근처 혼인지(婚姻池)에선 신방이던 궤(굴)를 기웃거린 뒤 중산간지대으로 방향을 잡는다. 중산간지대는 일주도로인 16번 국도를 근간으로 해서, 길가의 삼나무숲이 아름다워 상도 받은 적이 있는 1112번 지방도 비자림로, 목장 구경할 수 있는 1118번 남조로, 성읍 마을 지나는 97번 동부관광도로 등 여러 갈래길이 동서로 남북으로 교차하며 잘 나있다.
동부 중산간지대의 최고 매력은 오름이 있는 풍경이다. 여신의 젖무덤처럼 펑퍼짐한 오름에 등 기댄 정겨운 밭과 무덤, 그리고 그것들을 두르고 있는 밭담과 산담, 누가 뿌렸는지 다소곳이 꽃을 피운 노란 유채꽃….
이는 이방인뿐만이 아니라 타향살이하는 제주 사람들도 고향을 생각할 때마다 그리워하는 풍경이다. 그러나, 다시는 잊지 못할 이 정겨운 풍경도 바람이 불어대기 시작하면 몸조차 가누기 힘든 폭풍의 언덕이 된다. 그렇지만 억새 일어서지도 못하는 그 언덕에 서서 감상하는 황량한 풍경도 가슴 벅차다.
바람 때문이었을까. 중산간에서 길을 잃었다. 제주는 이정표가 잘 되어 있는 편이지만, 중산간으로 잘못 들어가면 매양 비슷비슷한 오름들 사이에서 잠시 환상방황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한라산 산행 도중에 길을 잃으면 그건 큰일이지만, 중산간 여행 중 길을 잘못 들었다면 그리 나쁘지 않다. 아니 어쩌면, 도시 여성처럼 화려하고 세련되게 꾸민 유명 관광지가 아닌, 제주 비바리처럼 순박한 표정을 지닌 원래의 풍광을 만날 수 있을 확률이 높다.
비자림 가는 길, 덕천 마을에선 수백 마리의 까마귀떼를 만났다. 역사의 강풍에 희생된 1901년 제주항쟁을 다룬 영화 이재수의 난은 까마귀의 시점으로 영화가 시작되기도 하는데, 실재로 제주 중산간지대에서 까마귀를 만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제주도 신화인 ‘차사본풀이’에서 임무를 엉터리로 수행해 사람들이 무질서하게 죽어나가는 바람에, 까마귀 울음소리를 불길한 징조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고 하는 얘기도 있지만, 제주 사람들은 까마귀를 ‘바람 부르는 새’라 인식하고 있다. 까마귀가 높이 날면 며칠 안에 거센 바람이 불어닥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주사람들은 흔히 까마귀를 ‘보름(바람)가마귀’라고 말한다.
그리고 까마귀가 떼를 지어 날면 ‘보름 쎄젱 호민 가마귀 놉뜬다(바람이 세게 불려면 가마귀 높게 뜬다)’라고 말하고, 또 이러한 까마귀가 날아오르면 사흘 사이에 바람이 일어난다 해서 ‘보름가마귀 공중에서 휭휭 돌민 사흘 새에 보름 쎈다(바람 까마귀 공중에서 휭휭 돌면 사흘 안에 바람이 세게 분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우리 일행은 그 말대로,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까마귀떼를 본 이튿날, 승용차 문을 맘대로 여닫지 못할 정도로 거세게 불어닥치는 바람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 ‘보름가마귀’의 위력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중산간을 돌아다니다 만난 조천읍 와흘리 본향당(本鄕堂)은 한눈에도 이방인의 마음을 휘어잡는 마력이 있었다. 둥그렇게 돌려 쌓은 나지막한 돌담 안에는 제주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수백 살 먹은 팽나무 거목이 두 그루가 서있는데, 그 아래에 서니 마치 이곳의 주인인 ‘서정승 따님’과 ‘백조도령’께서 이 불손한 길손을 옴짝달싹 못하게 옥죌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곳에 전하는 신화는 남성 가부장제에 밀려난 여성의 모습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본래 이곳에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서정승 따님이라는 과부 여신이 7명의 아이를 데리고 살며 마을을 관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송당 백조여신(벡주또 마누라신)의 아들인 백조도령이 이 여신에게 구애를 해 함께 살게 됐다.
얼마 후 임신을 한 서정승 따님이 어느 날 돼지고기가 먹고파서 돼지털을 그을러 냄새를 맡았는데, 백조도령이 부정 탔다며 여신을 구석으로 내쫓았다. 그래서인지 지금 본향당 남쪽의 제단 중앙엔 백조도령을 모셨고, 서정승 따님을 모신 제단은 동쪽 모퉁이에 마련되어 있다. 그렇긴 해도 서정승 따님에겐 저고리 등 예쁜 물색(物色·신에게 바치는 옷감)도 입히고 소원문도 적어 빌고 있으니, 아직 여신의 힘이 더 신통한 모양이다.
제주인들의 종교에 대해 말할 때 흔히 “당 오백, 절 오백”이라고 한다. 그만큼 신당도 많고 절집도 많다는 뜻이다. 제주에는 어디라 할 것 없이 마을마다 육지의 서낭당과 같은 역할을 하는 수호신을 모시고 있다. 신앙의 대상은 나무, 동굴, 바위, 돌, 당집, 무덤 등 다양하다.
평생을 제주 민속 연구에 바친 진성기 제주민속박물관장은 저서에서 ‘제주 일원엔 신당이 300여 군데가 있다’고 밝히며, ‘제주도를 동과 서로 나눈다면 동쪽의 본풀이신화엔 대체적으로 신앙이 강하며 신격들도 뛰어나고 용감한 내용으로 가득 차있다’고 했다. 특히 밀집적인 분포를 보이고 있는 곳은 제주 동북쪽의 조천·구좌읍 중산간이다.
본향당의 원형으로 여겨지는 구좌읍 송당리 본향당은 제주도 여러 마을신들의 원조인 벡주또 마누라신에게 제사를 지내 마을의 평화를 기원하는 곳이다. 벡주또 마누라신은 강남천자국에서 태어나 다섯 곡식의 씨앗을 가지고 제주도에 온 산육과 농경의 여신으로, 한라산에서 솟아난 수렵과 목축의 신인 소로소천국과 결혼해 아들 8명과 딸 28명을 낳았고, 그 자손들이 고루 뻗어 제주도 전 지역 368개 마을의 신이 되었다고 한다.
와흘리 본향당을 나온 뒤, 설원에서 목표점을 잃고 환상방황이라도 하는 것처럼, 우리는 중산간 오름 사이를 다녔다. 그러다 들어선 성읍 민속마을은 안동의 하회마을이나 공주 정안마을처럼 사람이 살고 있는 전통마을이니 따스한 체온이 있어 더없이 좋다.
마을에 들어서서 집안을 구경할라치면 마을 아낙이 다가와 정겨운 정낭(대문)이며, 억새로 이엉을 엮어서 지붕을 얹은 초가 구조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해주니 그야말로 산 교육이다. 게다가 제주의 갖가지 독특한 풍습에 대한 궁금증도 바로 풀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르방(할아버지), 할망(할머니), 아방(아버지), 어멍(어머니), 비바리(처녀), 도새기(돼지), 돌(달), 볘ㄹ(별), 미리내(은하수), 고맙쑤다(고맙습니다) 같은 제주 방언 몇 가지도 익힐 수 있어 좋았다.
다만, 구수한 이야기 말미에 몸에 좋다는 누에 동충하초, 말뼈, 오미자차 등 성읍 민속마을 특산품이라는 물건을 진열한 공간으로 안내하는 데는 아무래도 난처한 게 있다. 고객을 상품쪽으로 끌어가는 그 솜씨가 아주 자연스럽고, 제주를 친절히 알려준 게 너무 고마워 지갑을 열려고 해도 가난한 여행객은 갈등할 만한 가격이라 조금 아쉽다.
중산간지대의 성읍마을은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 내놓을 특별한 특산품이 없어 궁여지책으로 이렇게 하는 듯한데, 사실 초가를 새로 번듯하게 짓고, 여기저기서 가져온 유물 몇 개 모아놓고, 입장료 5,000원씩 받는 일반 민속촌에 비하면 불공평하다.
이 길손이 보기엔 성읍 마을도 입장료 기천 원은 충분히 받을 만한 자격이 되건만, 마을 입구가 하회마을처럼 외길이 아니라, 예전 현감이 머물던 고을답게 사통팔달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국이다. 여행객은 입장료 떳떳하게 내고, 거기서 수입을 얻은 토박이 도우미의 안내를 받아가며 마을을 관람한 뒤, 특산품은 필요한 사람만 부담 없이 살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무뚝뚝하긴 해도 정겨운 성읍 마을 돌하르방과 아쉬운 이별을 하고, 남원 해안으로 방향을 잡는다. 서귀포와 함께 감귤의 집산지로 유명한 이 고을의 ‘남원 밀감’이 육지로 나오면, 지명이 광한루가 있는 전라도 남원과 같은 탓에 “아니, 남원서도 귤이 나와요?” 하고 되묻는 도시사람들도 적지 않다. 여하튼 한라산을 배경으로 한 노란 밀감밭 풍경은 그 자체만으로 이국적인데, 내일 모레가 입춘인 요즘은 거의 끝물인 듯했다.
남원서는 꼭 만나보고픈 이들이 있다. 바로 제주의 바다를 온몸으로 경험한 해녀(잠녀·좀녀)였다. 우리 일행은 동부 해안을 도는 내내 해녀를 보려 애썼지만 번번이 물때가 맞지 않아 아쉬웠는데, 옛날엔 일본 대마도와 소련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진출할 정도로 이름을 날렸던 제주 해녀를 먼발치서나마 꼭 바라보고 싶었다. 돌 없는 제주땅을 상상하기 어렵듯이 해녀 없는 제주 바다 또한 뭔가 허전하지 않은가.
해안 경관 빼어난 ‘남원큰엉’을 지나서 서귀포로 향하면서 일부러 바닷길에 바싹 붙어서갔다. 설문대할망의 도움 덕인지 아니면 본향당 벡주또 마누라신과 서정승 따님의 은혜를 입어서인지 우리는 해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거친 바다에서 몸을 의지할 태왁, 채취물을 담는 망사리, 전복을 잡는 갈고리를 들고 바다로 막 들어가는 중이었다.
제주 해녀는 거친 파도가 넘실대는 10~15m 이상의 바다에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물질을 해왔다. 제주의 강인한 여성상의 상징인 해녀들은 아이를 낳기 3일 전까지도 바다에 들어가 일을 하고, 늙어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 물을 떠나지 않을 정도라 하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존경스럽다. 특히 1932년 구좌읍 지역에서 부춘화, 김옥련 등 해녀를 중심으로 일어난 해녀항쟁은 순수 여성집단이 주도한 국내 최대 규모의 항일투쟁으로 평가되지 않던가. 이들의 위패는 지난 해 조천 만세동산에 봉안됐다.
“휘이잇!”
해녀들이 물 밖으로 솟구치는 순간 입을 동그랗게 오므려서 내는 ‘숨비소리’다. 그러나 이내 달려드는 파돗소리에 해녀들의 숨비소리는 묻혀버린다. 해녀는 다시 자맥질을 한다. 한참 뒤 물 밖으로 나온 해녀가 또 휘파람을 분다. 그러면서 해녀들은 갯바위에서 점점 멀어진다. 또 숨비소리가 들려온다. 파돗소리일까? 아니, 어쩌면 갯바위를 스치는 바람소리였는지도 모른다.
뒤돌아보니 이마까지 흰눈 뒤집어쓴 한라산이 자맥질하는 해녀를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래…, 이 제주 땅에서 그리운 게 어찌 성산포뿐이겠는가.’<계속>
글·사진 민병준 sanmin@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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